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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DNA, 지금의 기적 만들었다" [논설실의 뉴스 진단]

조준희 KOSA 회장 인터뷰
'韓 벤처 30년 평가와 전망'
1995년 벤처기업인협회 창설 후
30년간 벤처 2000개서 4만개로
정부 AI정책 민간파트너로 우뚝
정보·자본·네트워크 없던 초창기
벤처 창업위해선 시간·용기 필요
지금은 투자 인프라 비약적 발전
국내 AI스타트업 1000개도 안돼
해외 기술인재 유인 지원책 필요
M&A시장 키워 출구 만들어줘야
AI 3강 왜 못하겠나, 국회가 발목
퓨리오사·리벨리온 등 거침 없어
K엔비디아 위해 모험자본 필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DNA, 지금의 기적 만들었다" [논설실의 뉴스 진단]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유라클 회장)이 서울 서초구 유라클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벤처 대부' 고 이민화 메디슨 회장이 벤처기업인들과 뜻을 모아 단체(벤처기업인협회)를 만든 때가 1995년이다. 세계 첫 벤처기업특별법(1997년)과 벤처의 자금줄 코스닥시장(1998년)이 이들의 노력 끝에 빛을 봤다. 이 회장을 비롯한 벤처 1세대는 벤처 열풍이 불던 2000년 초반 생태계 저변 확대 차원에서 사회 각층의 벤처 지지자를 모아 벤처리더스클럽을 꾸렸다. 당시 클럽의 100여명 멤버 중 막내가 30대 초반에 창업 2년 차인 조준희 유라클 회장(57)이었다. 지금 유라클은 모바일앱 플랫폼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했고, 조 회장은 한국 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를 5년째 이끌고 있다. 협회는 정부 인공지능(AI) 정책의 민간 파트너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이 단체 출신이다. 조 회장으로부터 한국 벤처 30년 평가와 전망을 들어봤다.

―한국 벤처의 지난 30년에 대한 총평은.

▲한마디로 하면 아주 배고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자 혁신의 주체였다. 기업 숫자, 고용창출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벤처기업 수가 30년 전 2000개 정도였는데 지금 4만개가 넘는다. 2023년 기준 벤처 기업 총매출이 242조원에 달했다. 단일 기업으로 재계 3위 규모다. 고용한 인력도 93만명이다. 4대 그룹 전체 고용을 초과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할 게 더 많다는 사실이다. 30년 저력을 볼 때 미래의 성과가 더 폭발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벤처 기업들의 성과는 구체적으로 어떠한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만큼 벤처가 성공한 나라도 많지 않다. 네이버, 카카오, NC소프트, 크래프톤 등 이름만 대도 다 아는 기업들이 벤처 출신이지 않은가. 연 매출이 1조원을 넘는 벤처 출신이 30개사 가까이 되고 5000억 클럽이 85개사, 1000억 클럽만 해도 1000개에 육박한다. AI 벤처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해외에서 눈독을 들이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퓨리오사, 리벨리온은 미국 시장에서 거침이 없다. 의사나 대기업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3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창업 환경을 비교해본다면.

▲과거엔 정보, 자본, 네트워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시장 진입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창업 자체가 대단한 용기였다. 초기 실패는 바로 사업 철수로 이어졌다. 창업 경험 자체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금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정부 벤처인증제 성과도 적지 않다. 민간 투자 인프라도 촘촘해졌다. 스타트업 전용 펀드나 갈수록 성장 지원 속도를 내는 액셀러레이터,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던 제도다. 민간 투자회사가 스타트업을 발굴해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TIPS)도 획기적이다.

―그런데도 국내 창업보다 미국 창업을 더 선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창업해서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밸류가 미국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얻는 결실이 10배 이상이다. 우리의 경우 벤처 인수합병(M&A) 시장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문제다. 상장 전에 기업을 팔 수가 없다. 사실상 사업 출구가 없는 것이다. 중간에 회사를 파는 과정이 다들 익숙하지 않다. 팔 때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하는데 미래 가치 평가도 제대로 안 된다. 그러니 상장 후 주식을 파는 수밖에 없고, 투자회수 기간이 길다. 미국보다 창업해서 얻는 가치가 적다고 여기는 것이다.

―벤처기업 5년 생존율이 25%다. 이유는.

▲장수하는 기술벤처가 많지 않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사업을 키워서 파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다만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1위가 되고 싶다는 자세로 도전하는 기업인이 많아야 한다. 초기에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빠르게 주목을 받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을 사업으로 완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기성과 중심의 투자환경 탓도 있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도 M&A 시장을 키워 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한국 벤처의 강점은.

▲한국 벤처 생태계는 1995년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함께 정보기술(IT) 혁명의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의 흐름을 쫓아갔다. MS 워드나 구글이 점령하지 못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플랫폼 주권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글로벌 시장 장악력을 키우고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원천기술과 글로벌 주도권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벤처 역량의 문제보다 원천기술 축적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자본과 시장 탓이 더 크다. 시장의 크기와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비교적 작은 내수 시장과 빠른 투자회수 중심의 구조 속에서 수십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하는 원천기술 연구가 벤처에는 쉽지 않다.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

―정부의 AI 벤처 지원책에 대해 현장 반응은.

▲현재 국내 AI 스타트업은 1000개도 안 된다. 아직은 미약하다. 제조기업 중 AI로 전환한 기업도 5%가 안 된다. 지금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AI 고속도로를 깔고 무차별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 길이 닦이면 옆에서 일거리가 계속 생긴다. 정부는 대대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로 AI 컴퓨팅 인프라를 깔고 있고 파운데이션 독자모델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기본골격을 잘 짰다고 본다. 인재는 일반형 이공계 인재는 부족하지 않다. 자기 기술 하나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인재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어떤 부분을 자신의 기술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한국 기술인재가 해외에 제법 있다. 이들을 유인할 지원책이 더 있어야 한다.

―정부의 AI 3강 청사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결국 수많은 AI 서비스를 만들어내면 된다.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가령 AI를 도입한 자동차 부품이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다. 이 부품은 미국, 독일 해외 자동차공장에 다 납품될 수 있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AI를 적용한 부품이 세계 시장을 다 휩쓸 수 있다. 이 일을 AI 벤처 창업가들이 할 수 있다. 창업 아이템은 앞으로 무궁무진 쏟아진다. 앞으로 5년이 그래서 중요하다. 3강을 왜 못하겠나. 그 대신 국회 입법을 보면 답답하다. 첨단직에 주52시간제를 왜 못 푸나. 국회 과방위를 봐도 그렇다. 방통위 때문에 매번 싸우고 중요한 AI 현안인 과학기술 쪽 현안은 손도 못 댄다. 이런 게 빨리 바뀌어야 한다.

―한국 벤처에 글로벌 장벽은 그동안 꽤 높았는데.

▲우리나라 제조 데이터가 전 세계 최고다. 제조업과 AI의 접목, 그리고 콘텐츠 분야를 AI로 특화시켜 새로운 사업으로 만들 수 있다. 예전과 다른 것이, 국내용으로 만들어도 이제 해외에 팔릴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점이다. K콘텐츠가 그 길을 열어줬다.

―한국 벤처에 유입된 글로벌 벤처 투자자금이 1% 수준인데.

▲아쉬운 대목인 건 맞지만 돌아보면 그런 수준은 1970년대부터 그랬다. 우리의 선배 기업인들은 그런 환경에서 기적을 만들지 않았나. 한국의 모든 산업이 역사가 비슷하다. 우리 안에 벤처 DNA가 있다고 믿는다.

―벤츠 DNA, 벤처 정신의 핵심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규제와 장애물에도 끄떡없다. 먼저 극복하는 사람이 혜택이 가장 크다. 그 수혜를 나누는 것도 벤처 정신이다. 그런 면에서 성공한 벤처 기업인, 벤처 리더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고 본다.

―K엔비디아가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미 그런 기업이 나오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퓨리오사는 메타의 인수를 거절할 정도로 기술에 자신감이 있다. AI 반도체칩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반엔비디아 생태계 선봉장이다. 이런 기업인이 많이 나오면 AI 창업 생태계가 절로 튼튼해질 것이다. 더 많은 K엔비디아를 위해선 모험자본도 많이 필요하다. 기술 기반 딥테크 창업의 경우 상용화까지 시간이 길고 불확실성이 크다. 모험자본 확대를 위해 67개 법정 기금의 벤처 스타트업 투자 의무화 같은 과감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30년 전 벤처 선배들에 대한 기억은.

▲정말 절박하게 도전을 했다. 이민화, 장흥순 회장님이 계속 강조한 말이 있다. 벤처는 결국 산업이 돼야 된다는 거였다. 기업은 산업의 발전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벤처협회를 만들었고 벤처특별법 제정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법은 당시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다음에 코스닥 시장도 만들었다. 국가를 위해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잊은 적이 없다. 일자리와 세금이 결국 국가를 위한 일 아닌가.

―예비 창업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의사보다 창업이 낫다는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각오를 가지면 AI 시대 창업 아이템은 너무나 많다.
그 기회를 꼭 잡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이 뜻이 맞는 사람과 공동창업도 좋다. 의지와 기술이 있으면 포기하지 마시라. 도전하면 길은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