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테헤란로] ‘원스트라이크 아웃’, PEF 규제의 명암

[테헤란로] ‘원스트라이크 아웃’, PEF 규제의 명암
김미희 증권부 차장

"자본시장의 혁신은 신뢰라는 토대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연례 서한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새해를 앞둔 한국 자본시장의 핵심 화두다. 지난 20년간 양적 팽창을 거듭한 기관전용사모펀드(PEF) 시장이 이제 질적 제고와 책무라는 엄중한 시험대에 올랐다.

금융당국이 최근 발표한 '자본시장 인프라 효율화 방안'은 그간 '모험자본의 기수'를 자처해 온 PEF 업계에 강력한 경고장과 다름없다. 중대한 법령 위반 시 시장에서 즉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이 그 정점에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PEF 시장은 2024년 말 기준 약정액 153조6000억원, 펀드 수 1137개에 달하는 거대시장으로 성장했다. 외형적으로는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지만, 그 이면에는 내부통제 부실과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된 기업가치 훼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운용사(GP) 대주주 적격 요건을 일반 금융회사 수준으로 상향하고, 운용 규모가 5000억원을 초과하는 중대형 GP에 준법감시인 선임을 의무화한 것은 PEF를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선언이다.

당국은 이번 대책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강력한 관리·감독체계 구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는 제재를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명확한 기준, 단계적 제재, 시장 참여자와의 소통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선진 규제체계가 완성된다.

이런 맥락에서 PEF 시장에 도입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과 같은 강력한 규율이 자칫 시장의 역동성을 무너뜨리는 과도한 규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PEF는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 발굴을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다. 일부 일탈 사례를 엄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장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결국 규제는 시장의 숨통을 끊는 '칼'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규제의 경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틀 안에서 자본배분과 투자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본시장의 건전한 성장이 가능하다.

내년 상반기 입법 과정을 거쳐 시행될 이번 대책이 한국 자본시장의 질적 도약을 이끄는 '대전환'의 기점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규제의 덫'에 그칠지 시장은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

eli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