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 논설위원
헨리 포드를 빼야 한다면 샘 월턴이 20세기 최고의 기업가라고 말한 이는 미국 작가 톰 피터스다. 1985년 펴낸 '초우량 기업의 조건'에서 그렇게 지목했다. 월마트 창시자 월턴은 시골에서 잡화점을 열어 성공한 뒤 이를 발판으로 1960년대 할인점 사업을 일으켜 30년 뒤 세계 최고 부자에 오른 인물로 일단 요약할 수 있다. 전형적인 미국식 성공 교과서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의 경영 전반은 그리 간단치 않다.
피터스는 월턴이 뼛속까지 고객을 중심에 두고 단순함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경영자였다는 점을 높이 산다. 더 싸게,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이 네가지를 30년 동안 흔들림 없이 밀어붙여 그토록 집착한 고객만족을 마침내 이뤄낸 세기의 영웅이라는 게 피터스의 평가다. 미국 유통사를 월턴 전과 후로 나누는 이들의 판단 근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남부 아칸소주의 월마트 초창기 어느 날 풍경은 진기했다. 월턴은 트럭 두대를 가득 채울 정도의 수박을 사다가 길가에 쌓아놓았다. 주차장엔 당나귀가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다.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었다. 수박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지역 주민들이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헛간처럼 볼품없는 이 매장을 찾았을까. 월턴의 자서전 '월마트, 두려움 없는 도전'에 따르면 놀랍게도 고객들은 여기서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소도시는 돈이 안된다는 선발 유통사들과 달리 월턴은 진짜 소비자야말로 소도시에 있다고 봤다. 선발사들이 점령한 대도시를 파고들 여력도 없었다. 1960년대는 베이비붐 세대, 그러니까 역사상 최대 소비세대로 불리는 그들이 시장 진입을 막 시작하던 시기다. 월마트가 들어온 도시는 생활비가 내려가는 지역으로 분류됐다.
저가경쟁의 핵심이 물류에 있다는 걸 간파했고, 이를 업의 핵심으로 삼은 것이 성공의 결정타라고 봐야 한다. 월턴은 창업 8년차였던 1970년부터 자체 물류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이어 업계로선 상상도 못한 자체 위성통신망, 실시간 재고 관리, 공급사 자동발주 시스템까지 완료한다. 당시 유통의 왕으로 불렸던 K마트의 몰락이 이상할 게 없었다.
월마트 제국은 월턴 사후 서서히 가라앉았다. 관료화된 경영진은 분기 실적과 마진, 월가 눈높이 맞추기에 급급했다. 내부 위기 못지않게 충격을 준 것은 아마존의 등장이다. 현실이 된 전자상거래, 모바일 혁명이 소비문화 판도를 다시 바꿨다. 디지털 시대를 오판한 월마트의 대가는 참혹했다. 아마존이 30% 성장할 때 월마트의 성장률은 1%에 불과했다.
아칸소주 월마트 매장 계산대 '알바' 출신인 더그 맥밀런이 이 물줄기를 바꿔놓는다. 그가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된 때가 2015년이다. 지난 10년 월마트의 변신은 가히 천지개벽 수준이라 할 만하다. "월마트는 이제 테크기업"이라고 선언한 맥밀런은 제트닷컴을 인수하고 실리콘밸리 개발자를 대거 영입해 회사 체질을 바꿨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물량의 배송 거점이자 픽업·반품 허브로 활용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로 매장을 갈아엎으면서 월마트는 생활 플랫폼으로 거듭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아마존의 압승이 예상됐으나 월마트가 더 특수를 누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거리 배송에 의존했던 아마존은 곳곳에서 인력, 공급 리스크가 발생했다. 폭증하는 생필품 주문을 안정적으로 제시간에 제공한 쪽은 월마트였다. 당시 국가 방역품 공급망 역할까지 해냈다. 아마존이 가지지 못한 오프라인 인프라가 월마트를 다시 유통 패권을 쥘 수 있게 한 것이다.
미국 유통 시장은 온라인 강자 아마존과 오프라인 제왕 월마트 2강 체제가 굳건하다. 어느 한쪽이 횡포를 부리면 선택지가 있다.
국내 시장은 재래시장 살린다고 대형마트를 옭아맨 탓에 기형적인 쿠팡 독주를 낳았다. 바로잡아야 할 유통 리스크다. 대대적인 규제개혁, 유통사의 대혁신.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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