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금융부
"일찍 결혼하는 게 가장 확실한 재테크 방법이에요."
입사 초기 금융권의 한 홍보 담당자에게 들었던 얘기다. "사회초년생이 서울에서 월세를 내며 근로소득을 착실하게 모아봤자 내 집 마련은커녕 종잣돈도 만들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경고였다. 처음에는 '결혼은 현실' '사랑보다 돈'이라는 냉소적 농담으로 넘겼다. 하지만 월세 70만원짜리 원룸에 누워 그 말을 곱씹어 보니,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 시대 청년들의 현실적인 생존전략에 가까웠다.
부모의 도움 없이 평범한 직장인이 근로소득만으로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됐다. 두 사람의 소득을 합치고, 대출을 한도까지 끌어모아야 겨우 '(사실상 은행이 주인인) 내 집'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결혼이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한 '자본의 결합'이자 '공동채무 이행'처럼 비치는 풍경은 이 시대가 만든 씁쓸한 자화상이다.
자산 형성의 출발선에 선 청년들에게 대출규제의 정교한 수치는 날카로운 칼날과 같다. 가계부채 관리라는 거시적인 담론이 청년들의 '시작할 기회'조차 빼앗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최근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부동산 대출규제가 무주택 실수요 가구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보여줬다. 지난해 부동산 대책을 기점으로 무주택 청년 실수요 가구의 평균 대출가능 금액은 2억5513만원에서 1억9282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가구의 평균 자산을 고려했을 때 청년층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자산을 40%가량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이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축소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반영되는 스트레스금리가 상향 조정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기댈 곳은 정책금융뿐이다. 청약과 연계한 청년주택드림대출 등 정책대출상품의 조건 완화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청년주택드림대출은 분양가 6억원 이하 주택에만 활용할 수 있어 서울·수도권 내에선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히 대출 문턱은 높고 집값과의 괴리는 크다. 청년·신혼부부 중심의 주택공급 확대와 별개로 생애최초 실수요자의 금융 접근성을 보완하는 유연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결혼을 재테크로 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근 습관이 하나 생겼다. 잠들기 전 주택청약·청년안심주택 정보를 공유하는 팔로어 5만여명의 SNS 계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안정적 주거환경을 확보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에 오늘도 씁쓸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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