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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문제는 젊은이 일자리

[강남視角] 문제는 젊은이 일자리
최진숙 논설위원

변방의 비주류 리서치기관이 일요일 저녁 이메일 뉴스레터에 쓴 미래 시나리오가 미국 증시를 발칵 뒤집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설립 3년차 신생 리서치회사 시트리니가 최근 자사 플랫폼을 통해 구독자에게 공개한 '2028 글로벌 지능위기' 보고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글 작성을 주도한 시트리니 창립자 33세 제임스 반 겔런의 이력은 독특하다. 생물학, 심리학을 전공한 병원 구급대원 출신으로 각종 매체와 채널에서 금융투자 칼럼을 썼던 인물이다. 보고서는 정교한 분석 리포트라기보다 장문의 메모에 가깝다. 인공지능(AI)이 사무보조로 활용된 지 3년이 흐른 2028년에 쓰인 회상형 에세이다. 인간의 지능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한 시점으로 상정된 시간이 2028년이다.

'AI 멸망 소설'인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글 대부분은 'AI 디스토피아'에 맞춰졌다. 컴퓨팅 자산을 가진 자본가는 부가 폭증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비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령 GDP' 개념이 나온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 이익은 크게 늘지만 소득은 사람에게 가지 않고 소비는 돌지 않는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체감경제는 죽었다는 의미로 유령 같은 국내총생산(GDP)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하여 2028년 6월 미국 실업률은 10%까지 뛰어오르고 주가는 고점 대비 40% 추락한다. 죽은 소비는 다시 산 기업을 잡는데, 이로 인해 회사는 줄도산하고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간다는 것이 시트리니 시나리오다.

'이게 가능한가'라는 냉정한 분석도 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메모가 유포된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보고서에 언급된 관련 종목이 줄줄이 폭격을 맞았다. 위기 전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 '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글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공포에 힘을 보탰다. 보다 못한 백악관이 보고서는 공상과학일 뿐이라고 정리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소형 리서치회사의 메모에 백악관까지 참전한 사건이 됐다.

과도한 설정이며 극한의 상황 전에 정책이 동원될 것이라는 분석이 시장의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이걸로 불안이 종결됐을까. 지금의 공포는 석학 제프리 힌턴이 경고한 AI의 공격성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차원이다.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지능을 대체하는 AI와 일자리, 분배를 둘러싼 충돌과 논쟁은 이제 본격 불이 붙을 것이다.

시나리오에서 위기는 AI가 화이트칼라, 고소득 전문직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발발한다. 로봇팔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고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24시간 컴컴한 공장 바닥에서 일하는 풍경만큼이나 아찔한 장면이다. 현대차 로드맵에 따르면 아틀라스는 2028년부터 조지아주 공장에 투입돼 상용화 단계를 밟는다. 시트리니 미래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서부 실리콘밸리, 동부 월가의 사무실에선 AI가 업무를 이미 보고 있다. 생산직보다 화이트칼라 지식근로자가 먼저 짐을 쌌다. 사무실에 남은 이들은 줄어든 노동에 상응하는 임금 삭감을 감내한다. 대규모 실직도 문제지만 더 잔혹한 것은 더 이상 신입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의 도래다. 채용 입구가 막히고 경력 사다리는 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 얼굴이 먼저 밟힌다. 지구상 가장 혹독한 입시전쟁을 치르고도 태반이 원하는 일자리를 못 갖는다. 입시에 들인 고생과 비용 생각에 일자리 눈높이도 못 낮춘다. 이 메마른 시장에 이제 AI 출근까지 맞닥뜨리게 됐다. 시트리니 메모는 '(탄광 속) 카나리아는 아직 살아 있다'로 끝난다. 지금부터라도 대비해 보라는 조언인데 속도감 있는 개혁을 밀어붙이는 건 필수다.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눈을 번쩍 떠야 할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관료들이다. 입시제도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졸업 후 청년 미래를 감안한 정책이 필요하다. AI와 윈윈하는 일자리는 교육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