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가 불러온 '전쟁통' 한국
환율급등·주가급락 후 진정국면
에너지 공급 불안, 혼란키운 요인
약한 유가충격 흡수력 도마 올라
석유제품 가격통제 '미봉책' 불과
수입처 다변화 등 장기대책 시급
김규성 정치부장
기름값 폭등으로 한푼이라도 싼 주유소는 기름을 채우려는 차량 행렬로 번잡하다. 보기 힘들었던 주가급락 제동장치인 '서킷브레이커'가 수시로 발동됐다. 60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지수는 한때 5000선 초반까지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 턱밑까지 치솟았다. "한국서 전쟁 난 거냐"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후 코스피는 급등했고, 환율도 하락세(원화값 상승)로 돌아섰지만 시장 불안이 가신 것은 아니다. 지난달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불러 온 한국 풍경이다.
이란 수도 테헤란은 서울에서 약 6500㎞에 달할 정도로 멀다. 서울에는 미사일도, 포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6거래일 연속으로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 등 시장안정장치가 발동될 정도로 출렁였다. 기름 사재기라는 전쟁통에 일어날 만한 일도 벌어졌다.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혼란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란은 주요 산유국이면서 세계 원유 수송 물량의 27%가 이동하는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다. 원유 소비량 세계 7위인 한국은 그 대부분을 중동에서 들여온다. 이란의 해협 봉쇄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경제가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유가상승은 또 무역적자 폭을 키우고 원화값을 떨어뜨린다. 환율 불안도 동반한다. 여기에다 한국의 경제·산업구조는 에너지 집약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원유 의존도가 가장 높다. 원유를 사오는 데 들이는 돈은 천문학적이어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중동사태와 관련, "한국은 연간 1000억달러가 넘는 비용을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고 있어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 경고는 적절하다.
제품·서비스 값 상승, 고용 위축은 예고된 미래다. 내수 비중이 낮고 수출지향인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유가 급등은 강한 인플레이션의 시작점이다. '오일쇼크'는 실물경제로 그만큼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배럴당 유가 100달러 지속 때 경제성장률이 0.3%p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1.1%p 오르며, 경상수지는 260억달러 악화된다. 항공사가 연간 1조원대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석유화학업계가 '산업의 쌀'인 나프타를 중동에서 공급받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상황이 현장에서 일어난다.
현재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탄탄하지 않고 유가충격 흡수력은 약하다. 정부가 올해 2%로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는 60달러대 초반의 국제유가가 전제다. 고유가 상황이 한두 달 이상 이어질 경우 인플레와 실물경기 냉각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성장판'은 닫히고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인플레 억제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데이터처 발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였다. 전쟁 영향을 반영하지 않는 수치다. 3월 물가는 가늠키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을 지시한 것은 적절하다. 대통령이 언급한 10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 확대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공급선 발굴은 시급하다. 석유류 최고가격제 시행은 빠른 실행력이 돋보이는 정책이다. 인플레 심리 차단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해서다.
다만 전제가 있다. 인위적 가격통제는 재정 투입을 수반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만큼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기름값(휘발유값) 상승을 막았던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아랍의 봄' 당시 정유사를 압박해 3개월간 L당 100원을 낮췄지만 이후 유야무야됐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빠르게 반영하면서도 내릴 때는 더디게 떨어지는 가격구조 개선, 공급망 안정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물가는 서민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포퓰리즘 대상이라고들 한다. 대통령의 말처럼 위기는 서민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는 법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플레 파고를 막을 장기적 에너지 수급 안정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위기를 에너지 공급망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동에 편중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입처 다변화와 원전 확충이 정책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게 최고의 인플레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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