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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포스마주르’에 ‘칩플레이션’, 악재 겹친 한국 산업

원재료 공급난·비용상승 우려 겹쳐
충격 줄이고 전쟁 이후도 대비해야

[사설] ‘포스마주르’에 ‘칩플레이션’, 악재 겹친 한국 산업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장기 봉쇄 의지를 선언함에 따라 석유화학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최대 에틸렌 제조사인 여천NCC. /사진=연합뉴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장기 봉쇄 의지를 선언함에 따라 석유화학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경고등이 켜졌다. 중동에서 나프타를 들여오기 힘들어진 국내 기업들은 고객사에 제품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의 '불가항력(Force Majeure·포스마주르)'을 통보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석유화학은 제조업의 핵심 기반이 되는 산업이다. 석유화학업체들은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기초 화학물질을 만든다. 이어 중간재 업체들이 이 화학물질을 이용해 비닐, 플라스틱, 고무, 섬유 등 다양한 소재를 생산한다. 이러한 생산구조에 차질이 생기면 한 나라의 경제 전반이 타격을 입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나프타 공급난은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는 '칩플레이션'에 따른 위기감이 커진 상태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삼성전자의 DS 부문의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이 반도체를 사용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원가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LG전자 역시 지난해 원재료 매입비용이 전년보다 1조원 증가하는 등 원가 상승 압박이 전자업체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TV, 생활가전, 스마트폰 분야 등은 비상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DX 부문은 전 사업부에 비용 30% 감축을 지시했고, 부사장급 이하 임원이 10시간 미만 출장을 갈 때는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했다. 일부 사업부는 희망퇴직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업계의 나프타와 정보기술(IT) 산업의 반도체 칩은 모두 '산업의 쌀'로 불린다. 이러한 핵심 원재료의 공급 차질이나 가격 급등은 곧바로 생산비 상승과 기업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의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 수출경쟁력 약화와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지며 결국 성장둔화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구조를 고려하면 공급불안과 비용충격이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위기는 산업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려 심각한 불황을 초래할 우려가 적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 석유·화학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역시 간접적인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항공·해운·물류 업계 역시 연료비와 달러 결제비용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한국과 세계 경제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우려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한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를 '산업위기 특별대응 지역'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당장의 충격을 완화하는 긴급대책도 필요하지만 전쟁 이후를 대비한 중장기 대응전략 마련 역시 서둘러야 한다. 특히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점검하고 기업의 비용 부담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과 시장안정 조치에 나설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산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불확실성을 줄이고 선제적이고 일관된 대응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와 대응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