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 논설위원
미국 엔비디아 대항마 AMD의 시작은 실리콘밸리 여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도체 아버지들이 만든 페어차일드에 막판 합류한 제리 샌더스가 창업자다. 페어차일드 출신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인텔을 세운 이듬해인 1969년 AMD가 문을 열었다. 인텔의 설계 천재들이 기술을 창조할 때 샌더스는 시장을 찾아다녔다. 기초 칩을 납품했고, 인텔의 복제품도 팔았다.
AMD의 반전은 누구도 예상 못한 시나리오다. IBM PC의 폭발적인 칩 수요로 복제기술을 축적한 AMD는 서서히 자체 중앙처리장치(CPU) 기술에 눈을 뜬다. 인텔과의 기나긴 송사, 이어 창업 20년 만에 내놓은 독자칩 애슬론이 인텔 CPU를 꺾고 시장을 평정했다.
AMD의 역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벼락처럼 찾아온 1인자의 순간은 후속공정과 자본, 생태계, 브랜드에 밀린다. 당시엔 별 사업성이 없었는데도 무리하게 그래픽카드회사 ATI를 사들인 것도 몰락을 부추긴 요인이다. 적자는 쌓였고, 부채는 폭증했다. 시장엔 AMD는 끝났다는 말이 파다했다. 이 좀비 상태의 AMD에 조용히 나타난 이가 지금의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인 것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전자공학도 출신인 수는 뼛속까지 엔지니어였다. 학부에서 박사까지 걸린 시간이 8년. 졸업 후 IBM에서 알루미늄 대신 구리를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 일약 스타가 된다. IBM CEO의 기술보좌관으로 전격 발탁됐고 이때 그를 눈여겨봤던 이가 당시 IBM 부회장이던 니콜라스 도노프리오다.
도노프리오는 IBM 은퇴 후 AMD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망하기 직전의 AMD를 살릴 적임자로 리사 수를 떠올린 이가 바로 그였다. 승승장구하던 수가 침몰하는 AMD에 올라탄 이유는 해볼 만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가장 먼저 손댄 것이 공학엔지니어 중심의 대대적 조직개편이었다.
돈이 되는 것은 뭐든 판다는 과거 AMD의 DNA를 갈아엎기 시작했다. "고성능 컴퓨팅에만 집중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CPU 재건을 목표로 엔지니어들에게 전작 대비 40% 향상된 성능을 요구했다. 불가능할 것 같던 결과가 CEO 3년차이던 2017년 이후 현실화된다. 인텔 CPU를 압도한 라이젠, 에픽 신화가 리사 수의 작품이다.
AMD를 살려낸 뒤 비로소 눈에 들어온 존재가 같은 대만계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이었을 것이다. 둘은 5촌이지만 두 사람이 사석에서 따로 만난 적은 없다. 개발 실무에 밝으면서도 영업까지 아우르는 황이 시장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뼛속까지 공학자인 수는 시장에서 밀리지 않는 뚝심의 여걸이다. AMD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ATI를 수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대항조직으로 재활용했다. 엔비디아보다 인공지능(AI)에 한발 늦었지만 인텔은 누른 AMD의 막강한 CPU 저력과 AI 인프라는 시장 판도를 예측불허로 몰고 간다.
리사 수를 주목한 것은 그의 지난주 첫 한국 방문이 남긴 의미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대만 TSMC를 제외하곤 해외 기업을 직접 방문한 사례가 거의 없는 CEO다. 젠슨 황이 캘리포니아에서 엔비디아 최대 행사 'GTC 2026'을 열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을 때 수는 한국에 있었다. 그것도 방진복을 입은 채 삼성의 평택공장에.
그날 밤 수는 이재용 회장과 승지원에서 만찬을 했다.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삼성의 HBM4를 우선 공급하고 AMD 칩을 삼성의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는 논의까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혈맹의 밤이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수는 1박2일 번개 같은 일정에 네이버와 업스테이지, 정부 기관까지 훑었다. 해외 전문가들은 AMD가 한국을 엔비디아 대항군의 전초기지로 선언한 사건이라는 평도 내놨다.
깐부 젠슨 황, 새 동맹 리사 수의 잇단 방문은 한국 반도체의 'AI 슈퍼 을(乙)' 위치를 각인시켜 준다. 다음 고지는 설계능력과 생태계 구축이다. AI 강국, 지금 하기에 달린 일이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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