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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그림자금융의 민낯

[테헤란로] 그림자금융의 민낯
김현정 증권부 차장
미국 사모대출 환매 중단 사태는 다시 한번 그림자금융의 민낯을 드러냈다. 월가에서는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금융시장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지난달 31일 첫 출근에서 미국 사모대출 신용리스크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봤을 때 (우리나라는)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달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사모신용 시장 부실화가 한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 걸린다'는 말은 구문(舊聞)이 아니다. 세계 경제와 한국은 과거보다 더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서다. 이번 사모신용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대외변수는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를 건드릴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취약 고리는 '기업의 유동성'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최근 10년간 '약한 고리'를 금융공법으로 감춰왔다. STX, 동양그룹, 한진해운 등 2010년 전후로 자본시장의 여러 사태를 겪은 후 기업과 금융투자업계는 '손에 잡히는 대로' 유동화하기 바빴다. 구매카드, 당좌수표, 매출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유동화증권은 개인투자자에게까지 '높은 금리'로 팔려 나갔다.

'좀비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더뎌지고 잠재 리스크는 개인투자자에게까지 확대됐다. 대표적으로 홈플러스 사태는 카드 매출채권 유동화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가수익스와프(PRS) 거래도 대기업 사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러한 '금융공법 난무'에 최근 나이스신용평가도 경고음을 냈다. 나신평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일즈앤드리스백, 리츠, PRS·총수익스와프(TRS) 등 자산기반 조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이들 조달은 우량자산과 미래 현금을 앞당겨 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은 현재 글로벌 유동성 위축 가능성에 국내 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맞물리며 '살얼음판' 형국이다. 여기에 환율, 저성장, 고금리 리스크까지 겹쳤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고,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는 고점을 찍었다. 연초 이후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만 70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여전히 여의도 한복판인 한국거래소 정문에는 'KOSPI 6000' 플래카드가 코스피 6000을 기원하듯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시장은 여전히 숫자로 안심하려 한다. 위기는 숫자가 아니라 구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깜깜이 금융시장 구조를 살펴야 할 때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