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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범석 쿠팡 총수 지정, 한미 갈등 악화는 막아야

합법적 결정임을 알려 이해 구해야
구시대 낡은 규제 개편도 서둘러야

[사설] 김범석 쿠팡 총수 지정, 한미 갈등 악화는 막아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쿠팡 로고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29일 지정했다. 쿠팡은 2021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이후 그동안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돼 왔지만 5년 만에 자연인인 김 의장으로 바뀐 것이다. 공정위는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씨의 경영참여가 새롭게 확인된 점을 들어 자연인 지정 예외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김 의장은 총수로 지정됨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해외 계열사 현황 등 공시 의무가 크게 확대되고, 사익편취 규제 등 책임과 의무가 대폭 강화된다.

이번 결정은 법과 원칙에 따른 조치로 봐야 한다. 국내 기업 총수에게는 엄격한 동일인 규제를 적용하면서 외국 국적 창업자라는 이유만으로 예외를 인정한다면 역차별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 쿠팡이 한국 소비자와 판매자, 물류망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상 지배주체를 명확히 하라는 요구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 대신 이 문제가 한미 통상·외교 마찰로 번질 가능성은 차단해야 한다. 김 의장은 미국 국적자이고, 쿠팡 모기업은 미국에 상장돼 있다. 미국 측에선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불리한 대우라고 문제 삼을 여지도 없지 않다. 이미 쿠팡의 개인정보유출 사건에 대한 법적 처리도 한미 분쟁의 리스크가 된 상태다. 지난주 미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54명이 쿠팡에 대한 차별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주미대사에게 발송했다. 이에 맞서 우리측 범여권 의원 90여명은 미국 의회와 미국 정부는 쿠팡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지 말라는 기자회견을 28일 열었다.

개별 기업 문제로 한미가 이렇게 맞선 사례는 없다. 미국 의원들의 행태가 지나친 건 맞지만 우리 측이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합당한 법 집행이 불필요한 의원 간 공방으로 한미 마찰의 불씨가 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쿠팡과 관련된 국내법 적용과 절차 전반에 대해 미국에 명확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번 조치가 특정 국적이나 특정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 정당한 조치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전달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동일인 지정제도는 근본적 손질이 불가피하다. 동일인 제도는 과거 재벌 총수 일가의 문어발 확장과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지금은 국경 없는 투자와 해외 상장, 외국 국적 창업주 등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환경으로 변화했다. 그 속에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
1980년대식 가족지배 대기업을 전제로 만든 규제를 오늘의 첨단기업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40년 묵은 낡은 규제는 혁신기업들의 날개만 꺾을 뿐이다. 쿠팡에 대한 조사와 처리는 법과 원칙대로 하되, 동일인 지정제도 전면 수술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