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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밀가루 담합 잡았지만…빵·케이크 등 가공식품 물가는 '제자리'

설탕·밀가루 담합 잡았지만…빵·케이크 등 가공식품 물가는 '제자리'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월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 담합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2.12 ⓒ 뉴스1 김기남 기자


설탕·밀가루 담합 잡았지만…빵·케이크 등 가공식품 물가는 '제자리'
서울 시내의 대형마트에 진열된 빵 모습 ⓒ 뉴스1 김민지 기자


설탕·밀가루 담합 잡았지만…빵·케이크 등 가공식품 물가는 '제자리'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4.23 ⓒ 뉴스1 김성진 기자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 정부가 설탕에 이어 밀가루·전분당 담합까지 적발하며 식품업계 가격 단속에 나섰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안정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년 만에 가격재결정명령까지 꺼내 들며 가격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소비자물가지수로 확인되는 가공식품 가격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담합 적발이 개별 품목의 가격 왜곡을 바로잡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운송비·인건비 등 다양한 비용 요인이 반영되는 소비자물가를 단기간에 낮추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담합 적발에도 식품 물가는 보합…빵·케이크 가격 '제자리'

3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소비자물가지수는 125.22로 전월(124.94)보다 소폭 상승했다.

제빵 업계가 가격 인하를 발표한 빵과 케이크 품목 지수 역시 제자리걸음을 보였다. 지난달 빵 품목 물가지수는 138.53으로 전월(138.75)과 비교해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케이크는 같은 기간 132.13에서 132.16으로 오히려 소폭 올랐다.

설탕은 2월 147.97에서 지난달 142.10으로 4% 하락했지만, 설탕·전분당을 원료로 쓰는 다른 가공식품 가격에는 아직 뚜렷한 하락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물엿의 경우 125.43에서 138.95로 올랐고, 잼은 164.96에서 164.95로 거의 변동이 없었다. 아이스크림도 128.10에서 128.90으로 상승했다.

원재료 담합 적발과 일부 품목의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공식품 전반의 가격 하락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 "담합 적발, 단기 물가 정책으론 한계…가격 결정 요인 다양해"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설탕 제조업체들의 가격 담합을 적발한 데 이어 밀가루와 전분당, 계란 분야에서도 담합 혐의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가격 담합은 기업 간 경쟁을 저해해 인위적인 가격 교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다만 설탕 같은 소수 과점 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가격 동조화 현상이 발생해 가격이 비슷한 수준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소수 기업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행동하며 이윤이 최적화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은 "설탕 같은 경우 제품이 차별화되지 않는 데다가 고정설비가 필요하고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대표적인 정부 규제 산업이라 소수 과점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상품의 성격에 따라 독과점이 나타나는 것을 일률적으로 담합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원장은 "빵 가격 상승은 원자재 가격보다 소비자 선호 변화의 영향이 크다"며 "원자재 가격을 통제해 물가를 잡겠다는 접근은 관 주도의 가격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담합이 가격 상승의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물가 관리 수단으로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담합 적발을 물가 정책으로 내세우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상품 가격은 운송비, 인건비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경쟁 정책 집행만으로 단기적인 물가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양 교수는 "담합은 반드시 엄정하게 대응해야 할 시장 교란 행위"라면서도 "담합 규제를 물가 정책으로 인식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가격 통제 아닌 소비자 보호"…장기 효과 강조

공정위가 담합 적발을 경쟁 회복을 넘어 물가 대응 수단으로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경쟁 당국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7차 회의에서 공정위의 물가 관리 역할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중대 법위반법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는 엄정한 과징금 부과와 함께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함으로써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때까지 감시와 지도를 지속할 것"이라며 담합 제재를 통해 가격 정상화까지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공정위는 지난 23일 약 4년간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한 주요 제지사들에 300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며 20년 만에 가격을 담합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가격재결정명령'도 부과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사실상 물가 관리 역할까지 떠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공정위는 어디까지나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 결정 구조를 정상화하는 취지라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물가를 잡기 위해 담합을 적발한다기보다는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가 기대되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서로 높은 가격을 받기로 합의한 행위를 적발하면 이후에는 경쟁을 통해 가격을 책정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담합 적발 이후 설탕·밀가루 등 원재료 업체들이 가격 인하에 나섰고, 이를 원료로 쓰는 라면·빵 등 소비재 업체들도 가격 조정에 동참했다"며 "공정위 조치가 직접적인 가격 통제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재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주 위원장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설탕·밀가루·전분당 담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업계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로 설탕값은 16.5%, 밀가루는 5%, 전분당은 7%가량 내렸다고 설명한 바 있다.

OECD는 지난 2022년 EU 집행위원회의 분석을 인용해 경쟁정책 집행이 2012~2020년 EU의 전체 가격 수준을 연평균 0.63%포인트(p) 낮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OECD는 "효과적인 경쟁정책이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 달성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경쟁이 비용·가격·이윤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인플레이션 대응에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경쟁정책의 영향은 대체로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더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의 핵심적인 역할 중 하나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경쟁제한 행위가 나타나면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물가와도 관련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물가는 통화·재정·금융정책 등 여러 요인으로 결정되는 만큼 공정위 조치만으로 소비자물가가 가시적으로 내려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경각심을 갖게 하는 효과 정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소비자 보호와 물가 관련성"…공정위 내부에서도 역할 과잉 부각엔 신중

한편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정부 물가 관리 정책에서 공정위의 역할이 너무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물가 감시가 공정위 본연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비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반면 그는 "중소기업의 대기업 상대 납품단가 공동행위 등을 담합 규제에서 제외하는 논의는 소비자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며 "경쟁 당국의 임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