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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킬리언과 하정우

[강남視角] 킬리언과 하정우
최진숙 논설위원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발사됐을 때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워싱턴 근교 농장에서 쉬고 있었다. 1957년 10월 4일 금요일 오후였다. 긴급전화를 받은 아이젠하워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위성 자체가 바로 핵무기가 되는 것도 아니며, 작은 위성으로 군사균형이 깨질 일도 없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것은 대중의 공포다. 훗날 회고록에서도 이 순간의 판단을 뼈아픈 실책으로 인정했다.

미국 전체는 패닉에 빠졌다. 소련이 머리 위에서 미국을 지켜보고 언제든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공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언론은 과학적 진주만 공습을 당했다며 정부를 맹공격했다. 걷잡을 수 없는 여론에 아이젠하워는 과학자문위원회 멤버들을 백악관으로 부른다. 스푸트니크 발사 후 열흘 뒤의 일이었다. "대통령 바로 옆에 상주하며 목소리를 낼 강력한 과학리더(Science Czar)를 두시오." 직언이 쏟아졌다. 미국의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 자리가 이때 만들어졌다.

백악관 긴급회의 후 가장 먼저 움직인 이는 비서실장 셔먼 애덤스다. 그가 바로 전화를 건 곳은 케임브리지의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총장실이다. 미국 기술패권의 주춧돌을 만든 제임스 킬리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다. 킬리언 총장은 아이젠하워 정부의 갑작스러운 인사는 아니었다. 아이젠하워가 집권 초 소련의 기습공격 가능성을 검토할 전문가를 찾았을 때 과학계 원로들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던 이가 킬리언이다.

그 후 대통령의 요청으로 킬리언은 190쪽짜리 기술안보 첨단 전략 제안서를 만든 적이 있다. 아이젠하워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백악관에 모인 과학자들이 킬리언을 대통령 첫 과학보좌관 적임자로 지목했을 때 주저하지 않았다. 애덤스의 전화를 받은 킬리언이 아이젠하워와 독대했을 때 요구한 것은 세가지다.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는 권한, 군과 정부 내 분산된 과학 프로젝트에 대한 통합 관리 조정권, 그리고 과학예산 우선 결정권이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TV 연설은 그 뒤 공식화된다.

여전히 미국의 국방력은 강력하다는 말로 시작된 15분짜리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과학기술 전쟁을 선포한 후반에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킬리언이 대통령 바로 옆에서 정부의 모든 과학 프로그램을 감독하고 막힌 곳을 뚫어주는 전권을 가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교육과 인재, 미래를 위한 투자는 맨 마지막에 나온다. 전쟁의 승패는 교실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제도, 시스템의 대개혁을 선포했다. 시민들은 환호했고, 군과 관료 내부는 술렁였다.

전권을 쥔 킬리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우주 개발은 군대가 아닌 민간 기구가 주도해야 한다며 미 항공우주국(NASA) 설립을 밀어붙였다. 미래 기술이 관료주의에 막혀선 안 된다며 꾸린 조직이 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의 전신 아르파(ARPA)다. 훗날 인터넷,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스텔스 기술을 만들어내는 그곳이다. 과학기술공학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는 내용의 국가방위교육법(NDEA) 밑그림 작업도 그와 과학자그룹이 했다. 킬리언의 강력한 배후 아이젠하워는 당대엔 지루한 지도자로 보였으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 기술패권 시대를 준비한 영민한 전략가로 재평가받는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스푸트니크 쇼크와 비교도 안 되는 인공지능(AI) 쇼크 속에 살고 있다. AI가 국가 미래의 존망을 좌우할 것이며 앞으로 3년, 길면 5년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말한 이는 하정우 전 AI국가미래기획수석이다. 그는 이전에 없던 권한과 책임의 국가 AI사령관이었다. 대통령실은 10개월 전 이 자리를 신설하며 국가 AI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등판된 하 전 수석은 지금 느닷없이 고향으로 가 보궐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시장과 골목을 누비며 지역일꾼으로 한 표를 호소한다. 국가 미래가 걸린 직(職)이 이렇게 가벼워 보일 수가 없다. 골든타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