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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죽음의 소용돌이’ 빠진 삼성 노조

[기자수첩] ‘죽음의 소용돌이’ 빠진 삼성 노조
이동혁 산업부 기자
"개미는 방향을 잃으면 원을 그리다 죽는다."

생물학에서 앤트밀(Antmil)은 개미들이 앞선 개체의 페로몬 흔적만을 따라가다 끝없이 원을 도는 현상을 말한다. 처음에는 질서처럼 보이지만 방향 전환이 사라지는 순간 이들의 움직임은 곧 '죽음의 소용돌이'로 변한다. 외부 개입이나 새로운 경로가 없으면 개체들은 탈진할 때까지 같은 궤도를 반복한다.

최근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이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 결렬 이후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겉으로는 움직이는 듯하지만 실상은 제자리걸음이다.

사측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체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추가 보상안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다. 메모리사업부에 경쟁사 수준 이상의 지급률을 보장하는 특별포상을 내놓았고, 일정 성과 달성 시 추가 보상도 약속했다.

반면 노조는 기존 요구를 고수하며 협상의 폭을 좁히고 있다. 조건부 보상이나 단계적 개선안에도 수용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으면서 협상은 출구 없는 소모전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현실적인 해법도 마땅치 않다. 자율협상은 동력을 잃었고, 법원의 가처분 판단 역시 총파업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긴급조정권도 갈등 해소보다는 시간 지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번 갈등이 단순한 임금협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생산성 저하와 조직 안정성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 특성상 내부 갈등이 길어질 경우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협상은 서로 간 조정을 통해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 방향만 고집하는 순간 협상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전진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같은 궤도를 맴돌 뿐이다.

앤트밀을 깨는 방법은 단순하다. 누군가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방향 전환이 집단 전체를 살린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요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의 전환이다.
방향 없는 강경함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출구 없이 끝없이 원을 그리다 무너지는 개미 떼처럼 교착 상태가 길어질수록 남는 것은 소모뿐이다. 협상은 힘겨루기가 아니라 출구를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movi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