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기자수첩] 삼성전자 흔드는 성과급 파장

[기자수첩] 삼성전자 흔드는 성과급 파장
임수빈 산업부
반도체 산업은 혼자 뛰는 100m 달리기가 아닌 계주에 가깝다. 앞 주자가 아무리 빨라도 바통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팀 전체 기록은 무너진다. 어떤 조직은 선행기술을 개발하고, 어떤 조직은 적자를 감수하며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또 다른 조직은 수년 뒤 시장을 위한 설계를 준비한다. 당장 기록표에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다음 주자를 위해 뛰어야만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역시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움직여왔다. 메모리가 돈을 번다면 파운드리는 미래 공정을 준비했고, 시스템LSI는 적자 속에서도 모바일 생태계와 최선단 공정 경쟁력을 떠받쳤다. 반도체연구소를 비롯한 공통 연구조직은 수년 뒤 기술 경쟁력을 위한 씨앗을 심었다. 적어도 DS 안에선 메모리와 비메모리, 연구와 생산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만든 역대급 성과급은 아이러니하게도 삼성 내부의 가장 깊은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최종 가결되면서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은 1인당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게 됐지만, 비메모리사업부(시스템LSI·파운드리)는 2억원대 초반을 받을 전망이다. 반도체연구소를 비롯한 공통조직 역시 메모리사업부 지급률의 70% 수준만 적용받으면서 내부에서는 "같은 부문 안에서도 사실상 다른 회사가 됐다"고 말한다.

비메모리와 공통 연구조직의 반발은 단순 박탈감과는 결이 다르다. 현재의 AI 메모리 슈퍼사이클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확보 과정에서 이들 조직의 기여 역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HBM4 개발 과정에서도 파운드리는 베이스 다이를, 반도체연구소와 공통 연구조직은 선행기술을 맡으며 함께 경쟁력 확보에 힘을 보탰지만 보상은 메모리사업부에 크게 집중됐다. 선행개발과 차세대 기술 연구처럼 당장 실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조직들까지 단기 영업이익 중심으로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결국 남는 건 인재가 아닌 '숫자'뿐이라는 자조 섞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균열이 단기적인 불만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부에서는 "경쟁사로 옮기면 몇 년 안에 보상 차이를 만회할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지금 삼성 반도체가 경계해야 할 것은 경쟁사의 추격만이 아닐 수도 있다. 팀 전체가 함께 뛰어야 하는 계주에서 일부 주자들이 아예 트랙을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삼성 반도체에 찾아올 위기는 어쩌면 경쟁사의 추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바통을 놓치기 시작했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soup@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