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카드로 UAE 원전 수주 승부
안보·신뢰 패키지딜로 빅딜 성사
원전·방산 수출국은 딜레마도
러 반발, CPSP 실패 교훈 새기며
달라진 몸집에 맞는 새 전략 구축
우호와 적대, 동맹과 연루 넘어야
이석우 국제부장
"한국은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를 못하게 돼 있다. 한국산 원전을 쓰다가 연료 공급이 끊기면 어떻게 할 거냐. 우리는 핵 재처리 회사도 있어 안정적인 연료 공급도 보장한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 수주전이 뜨겁던 2008년. 프랑스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어필했다. 한전 등의 '코리아 컨소시엄'은 시공능력과 가격경쟁력에도 '핵 농축과 재처리 불가'라는 약점에 밀려 대세는 프랑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의 파격적인 군사·안보 파트너십 제안이 UAE의 선택을 바꿨다. UAE는 원전 건설국이 자국 안보의 일부를 함께 책임져주기를 원하고 있었고, 한국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아크부대' 파병을 약속했고, UAE와 '형제국가'로서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정무적 다짐도 다졌다. 인구 9000만명의 이란과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UAE. 인구 1000만명 가운데 900만명이 외국인이고, 자국민은 100만명밖에 안되는 이 나라는 안보불안 해소가 당면과제였다. 외국군의 자국 주둔을 억지력으로 보고 있었다.
절실한 현안에 손을 뻗으며 다가선 한국의 결단(군대 주둔)에 힘입어 코리아 컨소시엄은 2009년 12월 바라카 원전 4기 건설의 주계약을 따냈다. 186억달러(약 27조5075억원) 규모의 'K원전' 수출 1호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 뒤 UAE는 각종 수주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을 챙겼다. 특정 국가가 UAE를 침공할 경우 한국군도 연루되는 사실상 동맹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UAE에서 10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연간 수주실적이 100억달러(2025년 93억7000달러)에 육박하게 된 것도 이런 신뢰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 뒤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UAE는 우리 대통령 비서실장을 불렀다. 그 과정에서 다시 (군대 파견 연장) 다짐을 받고, 유류 추가 공급을 선물로 보내며 우호를 다졌다. 임종석·강원식 비서실장도 그렇게 다녀왔다.
원전 같은 초대형 계약들은 가성비 좋은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 간 신뢰를 바탕으로 전략적 결단과 약속, 향후 협력 전망, 지정학적 고려 등에 대한 고차방정식이 적용된다. UAE처럼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 신뢰와 안보를 주고받는 패키지딜 성격은 더 짙어진다. 국가 차원의 섬세한 외교적·지정학적 배려와 정무적 결단이 필요하다.
방위 산업의 경우는 더 복잡해진다. 이달 초 독일로 결정 났던 캐나다 초계잠수함 프로젝트(CPSP) 수주 경쟁도 그런 속살을 드러내 보였다.
K방산 고객들이 가파르게 늘어난 까닭은 일부 강대국의 팽창적 태도로 인한 안보불안이 높아진 탓이다. 방산 수출은 리스크와 딜레마도 따라온다. 아무도 가성비와 품질만 갖고 원전과 방산 물자를 사고팔지 않는다.
힘센 제3의 국가들의 ("특정 무기를 특정 국가에 팔지 마라"는) 압박 속에서도 고객국가들과 약속을 지키고, 유지·보수·부품 공급 등에 대한 신뢰를 줄 때만 방산 수출은 이뤄지고 유지된다.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이 K방산 고객들에게 갈 때 이를 주시하며 불편해하는 주변 강대국들이 있다. 양자 관계를 넘어 또 다른 상대방을 상정해야 하는 다자적인 행위가 된다는 점에서 셈법은 복잡해진다.
때로 방산협력을 간접적 군사행위로 여기는 이해 당사자도 있다. 지난 16일 러시아 외무부가 이석배 주러 한국대사를 불러 "한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쪽으로 한층 더 기울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몰아세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8일 튀르키예 나토 정상회의에서 밝힌 한·나토 방산협력 확대 제안을 견제한 것이다.
방산 수출국은 더 이상 냉장고와 세탁기 팔던 때의 그 나라가 아니다. 전혀 다른 외교적 지형과 도전을 맞닥뜨리게 된다. 우호와 적대, 동맹과 연루의 덫을 회피하고 감수하고 돌파해야만 한다.
몸집이 달라진 한국은 사고방식과 태도도 변해야 산다.
달라진 행동양식과 전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을까. 주변국과 이해당사국의 입장을 확인하고 사전에 설득하고 대응하는 예방외교는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나.
최근 러시아의 반발과 CPSP 경쟁 실패는 새로운 모색과 점검을 강요한다. 우리는 달라진 국제 환경과 지형에 더 적합한 새로운 국가적 생존전략을 구축하고, 우호적인 새 환경 구축을 위해 더 절치부심을 해야 할 때이다.
[email protected]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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