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 합의에 산업계 파장
재고용·임금체계 개편 선행돼야
서울 서초구 현대차·기아 양재 사옥. /사진=뉴스1
현대자동차 노사가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최악의 장기 파업 위기를 넘기고 합의문에 서명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러나 합의문에 담긴 정년 관련 문구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법정 정년이 연장될 경우 이를 즉시 적용하되, 현행 임금피크제는 더 확대하지 않기로 한 대목 때문이다.
물론 "법률 개정 시 시행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다. 그러나 법이 바뀌면 별도 협상 없이 임금 삭감 없는 정년연장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못 박아 두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 문제다. 이대로라면 현재 59세 임금 동결, 60세 10% 삭감으로 짜인 임금피크 구간이 정년연장법이 시행될 때 같은 구간 방식으로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떠안아야 할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현대차 같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욱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일수록 노조의 요구를 거스르기 힘들다. 궁극적으로 임금 삭감 없는 정년연장이 도입된다면 중소기업의 경쟁력 도태가 먼저 시작될 것이다.
더 큰 우려는 재계가 중지를 모은 정년연장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년연장 관련 법안은 사회적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65세로 정년을 법적으로 연장하는 방안과 재고용을 통해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놓고 논쟁 중이다. 이 가운데 재계는 정년연장에 대해 재고용 방식을 도입하고, 임금체계 개편을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정년연장의 사회적 합의가 진행 중인 마당에 현장의 노사 교섭에서 한쪽으로 기운 결정이 나온다면 법제화 논의에서 산업계의 목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현대차 사례가 미칠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차는 노조의 조직력과 협상력이 가장 큰 사업장이다. 현대차의 노사협상 향방은 다른 부품·철강·조선 등 제조업 전반의 교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년연장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은 맞다. 고령화와 국민연금 수급연령 상향을 감안하면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정년연장이 지속 가능하려면 최소 두 가지 전제가 함께 충족돼야 한다. 먼저, 근속연수만으로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형 호봉제의 폐해를 걷어내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정년을 늘려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기존 낡은 호봉제까지 유지한다면 기업의 경쟁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세대를 넘어서는 일자리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고령 인력의 고용기간이 늘어난다고 청년층에 돌아갈 신규 일자리가 줄어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장년층이 중심이 된 노조가 정년연장으로 일자리를 차지하면서 청년의 몫을 외면한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 간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정년연장 법제화 과정에 청년 실업과 중소기업 경영난 및 산업 경쟁력 저하까지 두루 살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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