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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단소송제 확대 추진, 소송 남발 부작용도 고려를

소비자 구제 취지 이해하나 신중히
혼란 겪은 나라들 제도 축소 움직임

[사설] 집단소송제 확대 추진, 소송 남발 부작용도 고려를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박주민 의원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등 참석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1월 집단소송법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와 여당이 집단소송제 전면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최근 소비자정책위원회에서 "소비자 전 분야에 걸쳐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업자가 보유한 자료를 법원이 제출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도 신설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도 소액·다수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현재 증권 분야에만 적용되는 제도를 소비자 피해 전반으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국회에도 여당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 다수 제출돼 있다.

취지는 수긍할 만하다. 수천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개별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기는 쉽지 않다. 피해액이 크지 않으면 비용과 시간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기 십상이다. 대규모 피해도 실제 배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이었다. 집단소송제는 이런 소액·다수 피해의 구제 사각지대를 줄이고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제도 도입의 폭과 속도다. 너무 갑작스럽고 전면적으로 추진되면서 기업과 산업 현장에선 혼란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논의 중인 법안에는 시행 이전에 발생한 피해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있다. 기업으로선 소송 대상과 배상 규모가 크게 늘고 이미 지나간 사안까지 다시 분쟁이 될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이 투자와 경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볍게 볼 수 없다.

먼저 제도를 도입한 해외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에선 소송 대응 자체가 기업의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미국 로펌 칼튼필즈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들의 집단소송 방어비용은 45억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48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개인정보·노동·소비자 분쟁 등으로 소송 범위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

부작용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영국은 2015년 경쟁법 위반 사건에 한정해 집단소송을 허용했지만 소송과 법률 비용이 크게 늘자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다. 소비자 구제와 기업 부담 사이의 균형을 다시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만 소비자를 대표해 소송하도록 하고, 일본도 엄격한 절차와 요건으로 소송 남발을 막고 있다.

당정은 속도보다 제도의 정교함을 먼저 따져야 한다. 소급 적용은 최소화하고, 개인정보·제품안전 등 집단적 피해가 뚜렷한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법원이 소송의 대표성과 필요성을 엄격히 사전 심사하고, 중복소송과 무분별한 기획소송을 막을 장치도 갖춰야 한다. 장기 소송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보호장치도 중요한 일이다.

집단소송제의 목적은 소송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피해 소비자가 정당한 배상을 받고 기업도 위법행위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거액 소송에 상시 노출돼 경영의 예측 가능성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소비자 권리와 기업 활동의 안정성을 함께 지킬 수 있는 한국형 집단소송제를 더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