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에 따라 수백가지 재료들 사용
공연중 순식간에 바뀌는 옷의 마법
1㎜ 차이까지 잡는 섬세함에서 탄생
지난 17일 일본 도쿄 긴자 가부키자에서 공개된 사자 역할용 가부키 가발. 배우가 머리를 크게 휘돌리는 장면에 사용되는 가발로 티베트산 야크 털을 사용하며 무거운 것은 약 3㎏에 달한다.
가발 장인 시마네 마사오 씨가 지난 17일 일본 도쿄 긴자 가부키자에서 여성 역할인 '온나가타'가 사용하는 가발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발은 내년 1월 영국 런던에서 공연하는 '메오토도조지'의 하나코 역에 실제 사용될 예정이다.
쇼치쿠코스튬의 구로사키 아쓰히로 씨가 지난 17일 일본 도쿄 긴자 가부키자에서 내년 런던 공연에 사용될 가부키 의상의 구조와 제작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혜진 도쿄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여기를 1㎜만 더 높여주세요."
가부키 배우가 가발을 쓴 채 거울을 보고 주문하면 장인의 손이 다시 움직인다. 객석에서는 알아보기 힘든 차이지만 배우의 얼굴을 크게 보이게 할지, 작게 보이게 할지까지 고려해 가발의 높이와 모양을 조정한다.
지난 17일 도쿄 긴자 가부키자에서 만난 가발 장인들은 내년 1월 런던 무대에서 실제 사용할 가발을 직접 손질해 보였다. 가부키에서 가발을 만들고 머리 모양을 완성하는 전문 장인을 '도코야마(床山)'라고 한다.
남성 역할인 '다치야쿠'의 가발을 담당하는 도쿄가모지도코야마의 가모지 긴고 씨는 "머리 모양의 종류가 워낙 많아 10년을 해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같은 사무라이도 어린 시절과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따라 머리 모양이 달라진다. 가부키에서 사용하는 머리 모양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재료도 배역에 따라 달라진다. 가모지 씨에 따르면 남성 역할 가발의 80% 이상은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을 사용한다. 반면 사자 역할처럼 풍성한 움직임이 필요한 가발에는 티베트 지역에 사는 야크의 긴 털을 쓴다. 무거운 가발은 약 3㎏에 달한다. 여성 역할인 '온나가타' 가발은 미쓰미네도코야마의 시마네 마사오 씨가 맡았다. 이날 시마네 씨가 손질해 보인 것은 내년 런던 공연작 '메오토도조지'의 하나코 역에 실제 사용할 가발이다. 비녀와 꽃 장식까지 더하자 무대에서 보는 화려한 온나가타의 머리가 완성됐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가발 가격을 묻자 시마네 씨는 "전부 해서 50만엔(약 430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완성된 가발도 그대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배우의 얼굴과 배역에 맞춰 다시 손본다. 이치카와 소메고로 8대는 "역에 따라 가발을 1㎜만 더 높여달라고 하기도 하고 얼굴을 조금 더 크게 또는 작게 보이도록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첫날 공연이 시작된 뒤에도 장인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가발 옆에는 내년 런던 무대에 오를 의상도 펼쳐졌다. 쇼치쿠코스튬의 구로사키 아쓰히로 씨가 '메오토도조지' 의상의 붉은 겉옷을 들추자 안쪽에서 청록색 옷이 나타났다. 두 의상은 특수한 실로 연결돼 겉으로는 붉은 옷 한 벌처럼 보이지만 춤을 추는 도중 실을 차례로 풀면 붉은 옷이 벗겨지며 청록색 의상이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다.
가부키의 의상 교체는 속도만을 위한 기술도 아니다. 구로사키 씨는 빠르게 옷을 바꿔 관객을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지만 '메오토도조지'에서는 "놀라게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대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는 가발이 휘돌고 의상이 순식간에 바뀐다. 그 짧은 장면 뒤에는 수백 가지 머리 모양을 익히고 1㎜ 차이까지 조정하는 장인들의 손이 있다. 내년 런던 무대에는 두 명의 20대 배우 뿐만 아니라 400년 역사의 가부키를 무대 뒤에서 지탱해온 전통 기술도 함께 오른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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