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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我是他非는 '내로남불' 풀어쓴 말
나만 옳다는 주장이 판치는 세상
도덕적 확신이 독단으로 이어져
아시타비의 반대말은 '춘풍추상'
나에게만 관대해선 신뢰 못얻어

[fn광장]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정순민 문화대기자

교수신문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년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발표한다. 단순히 그해 유행한 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네 글자로 압축해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 진단'이다. 지난해에는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뜻의 변동불거(變動不居)를 뽑았고, 12·3 비상계엄이 발동된 2024년에는 도량발호(跳梁跋扈·함부로 날뛰며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른다), 각종 비리가 난무했던 2023년에는 견리망의(見利忘義·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는다)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또 지금으로부터 딱 6년 전인 지난 2020년에는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를 맨 앞자리에 올렸다.

아시타비는 사실 원전이 없는 말이다. 변동불거는 '주역(周易)', 도량발호는 '장자(莊子)'와 '후한서(後漢書)', 견리망의는 '한서(漢書)'에 적을 두고 있지만, 이 말은 새로 만든 일종의 신조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공표한 이래 조어를 그해의 키워드로 뽑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굳이 따지자면 아시타비의 원말은 '내로남불'이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 처음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출처도 불분명한 이 속어(俗語)를 전면에 내세우기 좀 뭣했는지 교수신문은 이를 사자성어 형식으로 바꿨다. 당시 한 신문은 이 말을 'I am right, you are wrong'이라는 영어 문장의 이니셜을 따 'IRYW'라고 줄여 불러도 되겠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올해도 이 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다시 뽑아도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주장하는 말들이 세상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다. 역사학자 이정철은 지난 2016년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200자 원고지 2000장 분량의 이 두툼한 책은 조선 선조 8년(1575년)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선조 23년(1590년)까지 당쟁이 격화하는 과정을 재구성하면서 정의로운 사림(士林)이 왜 현실정치에선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면밀히 살핀다. "선한 의도나 윤리가 정치를 대신할 순 없었다"는 이 책의 전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현 정부의 이념과 각종 정책을 들여다보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을 듯하다. 선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시작했지만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발에 차일 정도로 차고 넘쳐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과 농지 정책이다. 이들 정책에는 '내가(혹은 우리가) 옳다'는 강한 도덕적 확신이 깔려 있다. 이러다 보니 부동산과 농지 투자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거대 악이 돼 버렸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차히 따르지 않는 오만도 부리게 마련이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최근 내놓은 농지 정책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원칙을 앞세워 농지 전수조사와 함께 농사를 짓지 않는 땅에 대해선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농지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지만, 농업인 감소와 고령화로 농지가 남아돌아도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상속받은 농지를 직접 경작하기 어려운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한다면 선의의 농지 소유자까지 범법자로 내몰 수 있다. 원칙이 옳다고 해서 그 원칙을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정책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웃픈' 현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작 정부가 내세운 기준을 고위공직자들에게 적용하면 설명하기 곤란한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최근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주택이나 농지 등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잇따랐다. 당사자들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정부가 투기나 편법으로 규정했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순간,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아시타비의 반대말은 춘풍추상(春風秋霜)이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정책의 정당성은 좋은 명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명분을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국민에게 높은 허들을 요구한다면 정부와 공직자 역시 그 허들을 넘어야 한다. 남의 허물에는 추상같이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봄바람처럼 너그러워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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