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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 일방적 대미투자 발표, 떠밀리듯 끌려가선 안돼

알래스카 LNG 사업은 아직 미확정
원칙 고수하면서 추가 협상 벌여야

[사설] 美 일방적 대미투자 발표, 떠밀리듯 끌려가선 안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30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2000억달러 규모의 한국의 대미투자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2000억달러 대미 전략투자 사업을 전격 공개했다. 텍사스에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짓고,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에도 한국 자금을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한미 관세협상의 후속 작업이 구체적 사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하지만 미국 측은 우리 정부가 아직 사업성을 검토 중인 알래스카 LNG 개발에 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확정된 것처럼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그렇지 않다. 알래스카 사업은 이제 검토에 착수한 단계로,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추진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미 간에 합의된 것은 아닌 것이다.

다른 사업도 협상에서 얻은 성과는 최대한 살리고 두번, 세번의 점검이 필요하다. 1호 사업인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겨냥한 223억달러 규모 사업이다. 미국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안정적인 장기 수요처 확보 등 마지막까지 점검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원전 분야에선 최대 1200억달러를 들여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되 이 중 2기에 한국형 APR1400을 적용하기로 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합의로 막혀 있던 미국 시장 문턱을 낮춘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8기의 부지와 사업구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APR1400 2기의 실제 착공과 국내 업체의 참여 수준, 웨스팅하우스 지분의 실질적 권리까지 개별 계약을 통해 국익을 챙겨야 한다.

투자금 회수 안전장치를 구체화한 것은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모든 사업을 우산형 투자목적회사(SPV) 아래 묶어 수익과 위험을 통합 관리하고 연간 200억달러 투자 상한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운영계약에 넣기로 했다. 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질 경우 다른 사업의 수익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손실 걱정을 덜 수 있는 장치로 볼 만하다.

문제는 알래스카 LNG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540억달러를 투자하는 사업처럼 발표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투자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알래스카 북극권 노스슬로프의 천연가스를 약 1300㎞의 파이프라인으로 남부 니키스키까지 끌고 와 액화한 뒤 아시아로 수출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예상 사업비만 445억~545억달러에 이른다.

막대한 파이프라인 건설비는 반세기 가까이 사업의 발목을 잡아왔다. 10여년 전 엑손모빌·BP 등이 알래스카주와 공동개발에 나섰지만 경제성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추가 투자를 중단했고, 결국 주정부가 사업을 넘겨받았다. 지금도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공사비 상승 가능성, 미국· 걸프연안·캐나다 LNG와의 가격경쟁력이 난제로 남아 있다. 수십년간 경제성의 벽을 넘지 못한 사업인 만큼 우리 정부는 더욱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야 한다.

2000억달러는 미국의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주기 위한 돈이 아니다. 국민 부담이 뒤따르는 한국의 투자자금이다.
원전시장의 문을 열고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 기회를 넓힌 성과는 살리되, 정부가 내건 투자원칙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앞서가더라도 우리는 냉정을 잃지 말고 추가 협상을 벌여야 한다. 떠밀리듯 떠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