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로 진영 갈등 확산
진실로 따져야지 이념은 안돼
문세광 범행은 부정 못할 사실
만약 박정희의 자작극이라면
자신을 향해 총을 쏘라 했겠나
사실과 다른 영화, 곧 가짜뉴스
손성진 논설실장
끝내 진영 갈등으로 번지고 말았다. 영화 '암살자(들)'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관객 200만명 돌파라는 소득을 건졌지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진실은 외면한 채 각자의 논리로 옹호하고 공격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라는 사법적 용어가 있다. 진실은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을 판별하는 도구다. 진영 논리로 따질 게 아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99%가 진실이고 의혹은 1%에 불과하다. 실체적 진실이 확인됐다고 할 사건이다. 증거와 정황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영화는 작은 의혹을 크게 부풀렸다. 수많은 국민이 TV로 현장을 보고 있었고 수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다른 세력의 개입에 관한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다.
의심하려면 이런 명백한 사실에 반하는 증거(반증)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정희가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국면 전환을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은 추측일 뿐이다. 아무런 증거가 없다. 탄환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역시 의문점일 뿐이다. 문세광이 발사한 총탄에 육 여사가 맞은 것은 미국 CBS의 방송 필름에 증거로 남아 있다. 제작자 측은 미국 필름이 조작됐다고 말할 수 있나.
자작극이라면 문세광을 박정희가 조종했다는 말이 되는데, 얼토당토않다. 문세광이 쏜 총탄 중 한발은 박정희가 연설하던 연단으로 날아가 박혔다. 자작극을 펼치면서 부인을 죽이라고 했을지언정 자신에게도 총을 쏘라고 할 리가 만무하지 않나.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하야를 권유했었는데 (사후) 100일 동안 만약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아내가 아직 살아있었을까 생각했다'는 박정희의 말도 미국 문서에 남아 있다.
문세광은 사형 집행 직전에 이렇게 마지막 말을 했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박 대통령께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육 여사와 죽은 여학생의 명복을 저승에 가서도 빌겠습니다. 조총련에 속아서 이러한 과오를 범한 나는 바보였으므로 사형을 당해도 당연합니다." 박정희의 자작극이라면 이 유언까지 조작하거나 강요했다는 뜻이다. 박정희가 패륜을 자청했다 해도 유언까지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74년은 10월 유신 2년 후로 긴급조치 1호와 2호가 발령된 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재야와 대학가의 반발이 있었지만 국정을 휘어잡고, 옳든 그르든, 통치권력을 확보한 상태였다. 특히 남북대화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엄청난 사건을 벌여 분란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허진호 감독은 사건의 배후에 박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발을 뺐다. 그것이 진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해석은 제작자가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관객이 그렇게 느끼면 그런 것이다. 허 감독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권력 암투 가능성을 대신 내세웠다. 당시 중정부장은 신직수로 박정희에게 충성하던 인물이었고 사건 이후에도 2년 반을 더 재직했다.
영화가 사건의 진실을 좇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영화는 허구와 상상을 바탕에 깔고 흥행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진실과는 완전히 방향이 다르다. 영화로 진실을 찾으려는 시도는 모순적 행위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자주 만들어진다. 존재하는 사진과 영상을 삽입하며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 제작된다. '암살자(들)'은 '등장인물과 구체적 사건은 일부 각색됐다'는 자막을 넣고는 사건 당시 화면을 삽입하며 다큐멘터리 흉내를 내 관객들의 믿음을 얻으려 했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극적 효과를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넣거나 과장해서 표현하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역사 드라마도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TV 사극의 거장 신봉승 작가는 "재미있게 꾸미되 사실과 달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늘 조선왕조실록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많은 역사 영화나 드라마들이 사실(事實) 또는 사실(史實)과 허구를 섞은 '팩션(Faction)'으로 관객이나 시청자를 호도하고 있다. 경계가 불분명한 극을 보고 진실로 믿게 되고, 이는 국민 전체의 역사의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왕과 사는 남자'에도 허구적 요소가 다분하다.
흥미를 위한 역사의 극화도 진실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특히 유족이나 후손 등 이해관계자들이 있는 영화는 명예와 관련이 있으므로 더욱더 유의해야 한다.
관객과 대중은 언제나 제작자보다 똑똑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일부를 위해서라도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거짓으로 선동하는 영화는 범람하는 가짜뉴스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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