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한 보우소나루' 자처…군사독재 옹호한 과거
선거 존중한다면서…父·의회 난입 가담자 사면 공약
구체적 설명 없는 '재민주화' 선언…권위주의 회귀 우려
브라질 야권 대선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다시 보우소나루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장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다. 아버지가 쿠데타 모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사이, 아들은 대통령직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지난 4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플라비우는 47.03%를 얻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45.16%)을 앞섰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두 사람은 오는 25일 결선 투표에서 맞붙는다. 아버지의 정치적 후계자로 출발한 그가 현직 대통령을 제치고 결선에 진출한 것이다.
올해 45세인 플라비우는 리우데자네이루주 의회와 연방 상원을 거친 정치인이다. 아버지의 경제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자신은 더 온건한 보우소나루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면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은 그의 대권 도전이 여전히 가문의 정치적 운명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주 의회에서 상원으로…아버지와 함께 성장한 정치인
198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 헤젠지에서 태어난 플라비우는 칸지두 멘지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와 달리 법학을 전공한 그는 일찍부터 선출직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2003년 리우데자네이루주 의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뒤 네 차례 임기를 지냈다. 주 의회에서는 공공안전과 교정행정, 민방위 분야에 주로 관여했다. 2018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듬해 임기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해에 아들도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한 셈이다.
아버지의 집권 이후에는 비공식 조언자이자 정부와 의회를 연결하는 인물로 역할을 넓혔다. 주 의원과 상원의원으로 쌓은 경력에 대통령의 장남이라는 위치가 더해지면서 가문 내부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대선 도전의 결정적인 계기 역시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 패배 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27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수감된 그는 같은 해 말 장남의 대권 도전을 지지했다. 플라비우는 아버지가 부당한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지 기반을 이어받았다.
"백신 맞은 보우소나루"…온건함 내세우는 후계자?
플라비우가 내세운 전략은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정치적 이미지는 달리하는 것이다. 작은 정부와 감세, 민영화 등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을 강조하는 한편, 우파의 문화적·이념적 대립에서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 정부 지출 축소와 재정 균형을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국영 우편기업의 민영화 가능성을 언급했고,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도 자산을 검토해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아버지 정부의 방향을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차별화를 보여주는 사례로는 코로나19 백신을 들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나는 백신을 맞은 보우소나루"라며 자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두 차례 접종했지만 아버지는 접종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를 붙잡으면서도 그의 논란에 부담을 느끼는 유권자에게 접근하려는 메시지다.
선거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다른 모습을 약속했다. 플라비우는 지난 8월 인터뷰에서 현행 선거 규칙에 따라 당선되고자 한다며 선거 절차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전자투표의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대선 패배 뒤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아버지와 구별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온건함을 내세운다고 해서 기존 정치적 입장까지 모두 바뀐 것은 아니다. 브라질 일간 폴랴지상파울루는 그가 2017년 펴낸 아버지의 전기에서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주장을 담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지지했던 형사책임 연령 하향 등의 정책도 현재 선거 공약에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브라질을 '재민주화'하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플라비우는 지난 6일 유세에서 당선 후 헌법을 개정하고 브라질을 재민주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개헌 내용이나 '재민주화'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았다.
반대 진영은 이미 민주화된 브라질에서 이런 공약을 내놓은 데 반발했다. 노동자당 소속 마르셀루 프레이수는 브라질의 재민주화는 1988년 이뤄졌다며, 이를 되돌리려 한 사람은 쿠데타 모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의 아버지라고 비판했다.
사면 공약과 급여 상납 의혹…남아 있는 정치적 부담
아버지와의 관계는 플라비우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자 부담이다. 그는 당선되면 아버지를 사면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2023년 1월 브라질리아에서 대통령궁과 의회, 대법원에 난입한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가운데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면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선거 결과를 존중하겠다는 약속과 선거 패배 이후 벌어진 사건의 관련자들을 사면하겠다는 모순적 공약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플라비우에게는 아버지 지지층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본인을 둘러싼 의혹도 있다.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주 의원 시절 보좌진에게 급여 일부를 상납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유령 직원'을 등록해 급여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플라비우는 이 혐의를 부인해왔다.
이 사건에서는 수사 절차를 둘러싼 법적 다툼도 이어졌다. 브라질 고등법원은 2021년 관련 수사의 일부 결정과 증거를 무효화했고, 연방대법원도 기소의 근거가 된 금융정보 보고서 다섯 건 가운데 네 건을 무효로 판단했다. 따라서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과 법원이 해당 증거의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경과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플라비우는 이번 1차 투표에서 보우소나루라는 이름이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동원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아버지의 지지층을 넘어 더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가 브라질을 이끌 지도자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오는 25일 결정된다.
[email protected]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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