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테헤란로] '미래대응기금'은 고양이 앞 생선

[테헤란로] '미래대응기금'은 고양이 앞 생선
서영준 경제부 차장
반도체 호황이 만든 세수풍년을 두고 정부가 대규모 기금 조성에 나섰다. 내년 예산안에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편성했다.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는 한편 세금이 덜 걷힐 때 꺼내 쓰는 재정 안전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구상에도 일리는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매년 새로 짜는 예산만으로는 장기투자를 이어가기 어렵다. 그 때문에 기금을 통해 미래도 대비하면서 재정안정 댐까지 구축,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도 기금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기금에 거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는 의미다. 기금에 대한 긍정적 기대보다 우려되는 점을 몇 가지 짚어보려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의 통제권이다. 기금 운용계획은 국회 심의와 의결을 거친다. 그러나 사업성 기금은 20%, 금융성 기금은 30% 범위에서 국회 승인 없이 자체 집행이 가능하다. 주요 사업비를 최대 30%까지 의결받지 않고 늘릴 수 있다는 점도 통제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국회 심의를 거치는 만큼 쌈짓돈이 될 수 없다고 하나, 심의가 끝난 뒤 일정 비율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그 심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야당이 '상시 추경'으로 부르는 이유다.

국가채무 관리 측면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104조원을 여유자금으로 쌓아두면서 4%대 고금리 국채를 발행하는 구조는 '빚투'라는 지적이 나오게 만든다. 정부는 단순히 빚을 갚는 것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투자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대규모 국가채무를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금이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꺾여 법인세가 줄면 기금 수입도 쪼그라든다. 그런데도 돈을 쓰는 기준은 보이지 않는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매년 기금의 3% 안팎만 쓴다는 원칙을 세워 두고 있다. 반면 우리는 쓸 곳과 쓸 기준을 정하기도 전에 농축산물 할인 자금으로 기금을 쓸 수 있다는 논란부터 나왔다. 기준 없는 돈은 결국 정치 논리에 쓰이기 마련이다.

여당은 기금 신설에 사활을 건 모양새고, 야당은 신설 자체를 반대한다.
대립이 격해질수록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자율집행 비율을 대폭 낮추고, 적립한도와 지출원칙을 법에 명시하고, 채무상환 몫부터 정해야 한다. 곳간 열쇠를 쥐려는 쪽이 먼저 투명해져야 한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