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5차 발사 성공 다음 날,
'K우주 산실' 나로우주센터 가다
전날 불기둥 쏟으며 우주로 떠난 누리호
화염의 흔적 선명한 제2발사대엔 고요만
부품 37만개에 새긴 30년 체계종합기술
1990년 과학로켓·나로호 거쳐 독자 개발
시험장도 직접 지어 엔진 연소시험 반복
엔진 폭발·1차 발사 실패 딛고 기술 축적
5차 발사서 네온샛 5기 목표궤도 투입 성공
한화에어로, 6차부터 자체 발사체 조립
항우연은 재사용 발사체·달착륙선 목표
우주경제 2035년 1조8000억달러 전망
'위성 수요 대응' 누리호 상업화 속도내야
지난 7일 누리호 5차 발사 직후 전남광주 고흥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 연기와 수증기가 퍼져 있다. 중앙의 왼편 구조물은 발사 전 누리호에 추진제와 전력 등을 공급하는 엄빌리컬 타워다. 주변에 낙뢰를 막기 위한 철탑들이 서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의 75t급 엔진 고공 연소시험시설. 2020년 5월 누리호 엔진 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한영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발사체연구소장이 현장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고흥(전남광주)=최진숙 논설위원】 누리호가 우주로 떠난 다음 날인 지난 8일 아침, 전남광주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 도착했다. 전날 거대한 불기둥과 굉음을 쏟아내며 47m짜리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올랐던 곳이다. 이제는 더없이 고요했다.
발사통제동 임무지휘센터(MDC)부터 찾았다.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26명의 발사 운용 요원들이 발사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한다. 발사 순간의 숨 막히는 긴장과 성공의 환호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날 아침에도 요원들이 다시 모여 전날의 발사 과정을 되짚고 있었다. 여기서 만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영민 우주발사체연구소장과 함께 누리호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 보았다. 한 소장은 한국형 엔진 개발 초창기부터 현장을 지킨 산증인이다. 현재는 누리호 개발과 발사 전반을 책임지는 발사체 수장이다.
■37만개 부품의 기술력
전날까지 누리호가 누운 상태로 대기했던 조립동은 휑한 분위기였다. 한 소장은 "갑자기 없어지니 많이 낯설다"고 했다. 그러나 한쪽에선 이미 내년 6차 발사에 사용할 누리호 1단 조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7월 시작된 이 작업은 진척률이 20% 정도였다. 한 소장에 따르면 1단 조립에만 10개월이 걸린다.
조립동에는 노란색과 파란색의 거대한 받침 장치들이 놓여 있었다. 치구라고 불리는 조립용 장비다. 지름 3.5m인 누리호의 얇은 동체가 찌그러지지 않도록 받치고, 돌리고, 높낮이를 조절한다. 한 소장은 "이런 치구에도 굉장한 노하우가 들어 있다"고 했다. 누리호를 옮길 때는 천장에 달린 주황색 크레인이 동원된다. 로켓을 만드는 기술은 엔진뿐 아니라 안전하게 조립하고 옮기는 장비까지 아우른다.
누리호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37만개에 이른다. 75t급 엔진 하나에만 6500개가량의 부품이 필요하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추진제 탱크는 가장 얇은 곳이 2~3㎜에 불과하다. 가벼우면서도 내부 압력과 발사 과정의 하중을 견뎌야 한다. 탱크와 엔진, 배관과 밸브, 단 분리장치와 유도·제어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수많은 부품이 정확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체계종합기술이라고 부른다.
그 기술은 어떻게 확보했을까.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1990년 과학로켓 연구에서 출발했다. 1993년 첫 고체연료 과학로켓을 발사했고, 2002년엔 첫 액체추진 과학로켓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러시아와 손잡고 우주발사체 나로호 개발에 나섰다. 러시아가 제작한 1단 로켓에 한국이 개발한 2단 로켓을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두 차례 실패 끝에 2013년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핵심인 1단 엔진은 여전히 러시아 기술에 의존했다. 엔진부터 발사체 전체를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누리호 개발은 그 한계를 넘는 도전이었다.
한 소장을 따라 엔진시험장으로 향했다. 나로우주센터의 산자락 곳곳에 75t급 엔진 지상·고공 연소시험장과 터보펌프, 연소기 시험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우주개발 초창기 국내엔 대형 액체엔진을 시험할 시설조차 없었다. 외국에 문을 두드렸지만 유럽은 막대한 비용을 요구했고 미국은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연구진이 직접 시설을 지었다.
한 소장은 당시 동료 25명과 산을 깎은 자리에 시험장을 구축했다. 폭발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시험시설과 발사대에 피해가 없도록 배치와 안전거리까지 계산했다. 고공 연소시험장 앞에서 한 소장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그 자리예요. 한동안 매일 꿈에 나타나 자면서도 피할 수 없던 곳입니다."
■실패로 축적된 로켓 기술
꿈에서도 보였다는 그곳은 바로 2020년 5월 13일 누리호 2단용 75t급 엔진이 폭발했던 현장이다. 당시 엔진이 폭발하면서 고공비행 환경을 재현하는 체임버 내부 압력이 치솟았다. 체임버를 보호하려고 설치한 파열판이 순식간에 터졌고, 쏟아져 나온 가스는 지붕까지 날려 버렸다. 원인은 점화 계통에 남아 있던 극소량의 수분이었다. 여기서 생긴 입자가 필터를 막아 점화제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진은 흩어진 잔해를 수거해 밤새 원인을 추적했다.
그때가 가장 고통스러웠을까. 한 소장은 아니라고 했다. 폭발 사고도 원인을 찾으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정작 피를 말리는 것은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문제였다. 75t급 엔진 개발 과정에서 연소실의 압력 진동이 커지는 연소불안정 문제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대표적이다.
2016년 5월 3일 오후 7시. 한 소장은 그 날짜와 시간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한국이 자체 개발한 75t급 엔진 전체를 처음 연소시키는 데 성공한 순간이다. 비록 1.5초였지만 연소기와 터보펌프, 가스발생기와 밸브가 비로소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했다.
엔진을 완성했다고 끝은 아니었다. 2021년 10월 누리호 첫 발사에선 3단 엔진이 일찍 꺼져 위성모사체를 목표궤도에 올리지 못했다. 산화제탱크 내부의 헬륨탱크 고정장치에 문제가 생긴 게 원인이었다. 연구진은 실제 비행에서 발생하는 가속도와 진동, 극저온 환경을 다시 분석해 설계를 보완했다. 이듬해 2차 발사에서 마침내 목표궤도 투입에 성공한다. 2023년 3차부터 실제 위성을 우주로 운송했고, 지난해 4차에선 13기를 실어 올렸다.
그리고 지난 7일 다섯 번째 누리호가 고흥을 떠난 것이다. 이번 발사에선 초소형군집위성 네온샛 5기를 목표궤도에 성공적으로 투입하는 고난도 임무를 완수했다. 예정된 시각에 정확히 발사한 데 이어 다수의 위성을 정밀하게 분리하는 능력까지 입증한 것이 큰 수확이다. 위성이 분리될 때마다 발사체에는 미세한 반작용이 생기고 질량과 관성도 달라진다. 위성끼리 충돌하지 않도록 3단의 자세를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네온샛 5기는 내년 6차 발사에서 추가되는 위성들과 함께 한반도를 반복 관측하는 임무를 맡는다. 전체 군집이 구축되면 한반도를 하루 세 차례 이상 촬영하고 같은 지역을 24시간 안에 다시 관측할 수 있다. 산불과 홍수 감시에서 국토 관리, 국가안보까지 활용 분야가 광범위하다.
■우주산업 도약의 조건
30여년에 걸쳐 독자 우주발사체 개발에 성공한 한국은 이제 민간 우주수송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항우연이 주도해 개발한 누리호의 기술을 민간에 넘겨 산업으로 키워야 할 차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4차 발사부터 체계종합기업으로 제작을 총괄했다. 이번 5차에선 발사운용의 상당 부분까지 맡았다. 내년 6차부터는 순천의 자체 공장에서 발사체 각 단을 조립해 나로우주센터로 옮길 것이라고 한다. 상업 발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민간의 역량이 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제작부터 시험, 발사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비정상 상황에서 설계를 변경하거나 기술적 대책을 마련하는 능력, 발사 준비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사를 계속할지 중단할지 결정하는 판단력도 마찬가지다. 국가 연구기관과 민간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더 필요한 이유다.
항우연은 미래 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검증된 제작·발사운용 기술은 민간에 넘기고, 정부 연구소는 재사용발사체와 고성능 메탄 엔진 등 고위험·고난도 기술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는 게 한 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더욱 절박하게 강조한 과제는 발사 수요다. 연간 3~4회 이상 발사해야 전문인력과 생산라인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우연 분석에 따르면 연간 4회 이상 발사할 경우 발사 비용은 현재의 65% 수준으로 낮아진다.
■세계는 우주 패권 경쟁 중
세계 우주산업은 이미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우주산업 분석기관 브라이스테크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궤도 발사는 325차례로 전년보다 25% 늘었다. 이 가운데 87%를 상업 발사 사업자가 수행했다. 미국 사업자가 세계 발사의 60%를 차지한다. 국가적 이벤트였던 로켓 발사가 고객의 위성을 수시로 실어 나르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 스페이스X는 로켓 1단을 회수해 재사용하면서 발사 횟수와 비용의 판도를 바꿨다. 자체 위성통신망인 스타링크를 구축해 지속적인 발사 수요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도 국가 주도 우주개발에 민간기업의 기술 경쟁을 결합해 맹렬히 추격 중이다. 세계 우주경쟁은 발사체 기술을 넘어 위성통신과 지구관측, 항법과 국가안보까지 아우르는 산업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누리호 후속인 차세대 발사체를 메탄 엔진 기반의 재사용 발사체로 개발하고, 2032년 한국형 달 착륙선을 우리 발사체로 보내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재사용 기술로 우주산업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싸고, 자주 우주로 갈 수 있느냐, 그 로켓을 이용할 고객을 충분히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초기 시장의 고객이 돼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기존 누리호의 상업화도 속도를 내야 한다. 한 소장은 다양한 위성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운용 비용을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제작 공정을 단순화하고 계측 장비를 최적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국가 기술 이전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고객이 선택할 발사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업의 몫이 될 것이다.
시장 전망은 밝다. 세계경제포럼과 맥킨지는 세계 우주경제가 2023년 6300억달러에서 2035년 1조8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류·농업·재난 대응·국방 등 위성 서비스를 활용하는 분야에서 부가가치가 커질 전망이다. 발사체·위성 제조와 데이터 서비스가 맞물리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에 찾은 제2발사대에는 전날 누리호가 남긴 화염의 흔적이 선명했다.
하얗던 시설물은 검게 그을렸고 바닥의 페인트는 뜨거운 열에 녹아 끈적거렸다. 한 소장은 유압장치를 보호하던 단열재를 가리키며 차기 발사 때는 보호 범위를 더 넓힐 것이라고 했다. 누리호는 떠났지만 다음 발사를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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