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문화스포츠부장
김환기, 윤형근의 그림과 마크 로스코,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 제시한다. 지난 3일 BTS 리더 RM(김남준)과 SFMOMA가 함께 기획해 오픈한 전시회의 이름은 'RM x SFMOMA: Between You and Me'이다. SFMOMA 소장품 30여점과 RM 소장품 142점을 공동 큐레이션한 이 전시는 이 미술관 7층 9개 전시실을 모두 채웠다.
이곳에 전시된 RM의 대다수 콜렉션은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김환기, 윤형근, 박래현, 장욱진, 유영국 등의 작품들이 잘 알려진 서구 작품들과 함께 걸려 있다. 로스코 작품 옆에는 유영국의 그림이,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 옆에는 도상봉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전시관 첫 작품은 김환기로 시작해 마지막엔 윤형근 작가의 작품으로 끝난다. 윤형근이 김환기의 제자였다는 점에서 전시를 본 후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곱씹어볼 수도 있다.
RM은 미디어 프리뷰 간담회에서 이 전시에 대해 "저의 꽤 긴 자기소개"라고 운을 뗐다. 그가 8년간 모아온 컬렉션 중에는 웨인 티보 같은 샌프란시스코 출신 화가의 작품도 있지만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비중이 높다. BTS 미국 투어 중 시카고 미술관을 둘러보다 "피카소와 반 고흐는 알지만 정작 한국 작가들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의 '긴 자기소개'는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서 하는 '한국 미술의 자기소개'로 볼 수도 있음 직하다.
이 파격 전시에는 관람객 감소로 고민하던 SFMOMA의 고민도 깔려 있다. SFMOMA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샌프란시스코 여행자들의 필수코스이긴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다. 연간 90만여명 안팎이었던 관람객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겪은 후 60만여명으로 줄었다. 젊은 층 유입이 줄어든 것도 이 미술관의 가장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계 입장에선 현대 서양 미술계의 본진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내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향후 한국 미술이 해외 유수 미술관에서 더 가치 있게 재조명받고, 대규모 해외 기획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든든한 초석을 놓은 것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그와 함께 앞으로 지속 가능한 유망 작가들을 키우고 지원하는 국내 화랑업계의 노력도 절실한 시점이다. 잘 팔리는 유명 작가 위주로 대관 전시회를 여는 것도 좋지만,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고 지원하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도 국내 화랑업계가 할 일이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를 주최했던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도 늘 이 점을 강조한다. 그는 미술진흥법의 취지를 거론하며 미술계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지난 2023년 제정된 미술진흥법 2조는 화랑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작가를 발굴 또는 양성하고, 미술전시를 통하여 미술품을 중개·대여하거나 판매하는 업'. 화랑은 단순히 미술품을 사고파는 '상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그들의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양성하여 세상에 소개하는 '문화 기획자'이자 '파트너'로서의 의무를 지닌다.
특히 올해는 국내 미술 시장에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동안 한국 미술 시장의 최대 이벤트인 '키아프 서울'과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의 공동 개최 계약이 올해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몇 년간 두 행사의 동시 개최로 얻었던 막대한 시너지 효과는 사라지고 내년부터는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상황이 됐다. 국내 화랑업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깊이 있는 기획전으로 한국 작가들의 스토리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세계 미술 시장에 차별화된 비전을 제시할 묘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mail protected] 김성환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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