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균 경제부 부장
경제가 사상 최대 호황이다. 거시지표는 팽창 쪽을 가리키며, 올해 국민 1인당 총소득 4만달러 달성이라는 첫 축포가 확실시된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 중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초고가 반도체' 덕에 사상 유례없는 수출과 경상흑자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건만, 어딘지 공허한 '착시경제'라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코스피 9000'을 향해 질주할 것 같던 달콤한 백일몽에 취해 있다 '쿵' 하고 깨어난 기분이랄까. 대한민국의 화려한 경제지표와 그 밖의 냉혹한 현실 사이, 네 가지 거대한 '착시의 안개'가 가득하다.
첫째, 반도체 호황의 착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가격 폭등으로 침체의 터널 앞에 있던 대한민국이 초호황 경제로 순간 이동한 듯하다. 상반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8%, 인구구조가 지금보다 덜 악화한 2010년대(평균 3.5%) 성장치를 넘어섰다. 메모리 등 반도체 가격은 2022~2025년 평균치에 비해 최대 800%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에 반도체 기업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50% 폭증했고,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450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울 태세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수출·내수의 디커플링 산업이다. 반도체 기업과 종사자 등 '그들만의 호황'으로, 온기가 민생이나 내수로 넓게 퍼져나가지 못한다. 한국은행 분석에서 올 2·4분기 기업들의 영업이익률(16.9%)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3분의 2를 차지하는 반도체 편중이 심각하다. 게다가 글로벌 AI 투자 버블 논란, 중국의 거센 추격 등으로 봐선 초호황이 내년까지 갈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둘째, 국가부채의 착시다. 올 상반기 명목 GDP 성장률은 21.9%로, 1970년대(30.9%)와 1980년대(17.9%) 고도성장기 수치의 한복판에 위치한다. 이에 따라 국가부채비율은 40%대 중반으로 하락하는 '분모효과'가 가시화되지만, 국가 재정여건과 건전성이 구조적으로 좋아졌다는 의미로 볼 수 없다. 막대한 채무 잔액은 고스란히 남은 채 고금리로 이자 부담은 가중된다. 지표상의 착시와 달리 실제 재정의 숨통은 조여오는데도 '덩치(경제규모)가 커졌으니 빚이 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안이한 인식이 관료사회와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
셋째, 유동성의 착시다. 반도체 여윳돈이 넘치면서 8월 기준 광의통화(M2)는 전달에 비해 40조원 가까이 불어난 4267조원에 달한다. 증가폭(0.9%)은 지난 7월(0.3%)의 3배다. 내년에는 반도체 효과로 시중에 더 많은 돈이 풀릴 텐데, 특정 기업 근로자와 상위계층에 부가 쏠려 '하마의 입'처럼 쩍 벌어지는 양극화를 더 키울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명분으로 현금 복지 지출사업을 남발하다간 재정고갈의 덫에 깊숙이 빠져들 것이다.
넷째, 2%대 물가 착시다. 지표상 물가는 안정됐다지만 외식비·교육비·전월세 등 서민 생활물가는 이미 3%를 한참 웃돈다. 정부는 수조원의 혈세를 들여 휘발유 가격을 누르고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땜질 처방에 매달려 있다. 막대한 재정을 무기 삼아 인위적으로 물가를 틀어막고 있으니 국민들은 고유가·고물가의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확장재정과 한은의 통화긴축 간에 엇박자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양측 당국이 '정책 조율' 운운하지만, 페달을 밟으며 브레이크를 쥐는 근본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
착시의 대가는 가볍지 않다. 이미 폭락한 증시는 다가올 역풍이 얼마나 매서울지 보여주는 '착시의 선행지표'다.
자산가치 붕괴, 고금리·고물가 충격, 이 모든 착시의 비용은 선량한 납세국민, 가장 취약한 청년들이 지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은 여전히 낙관론이 지배한다. 거시지표 뒤에 숨은 본질을 직시하고, 다가올 위기를 경고하는 정권과 관료들의 직언이 사라졌다. 또 다른 착시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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