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덕 증권부장
미국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8개월 전인 2008년 1월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민스키 모멘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1919~1996년)의 금융불안정성 가설에서 착안된 개념인데, 과도한 부채로 지탱되던 자산 가격이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급격히 폭락하는 시점을 뜻한다. 당시 기사에서는 헤지펀드 베어스턴스의 붕괴와 금융기관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기 꺼리던 2007년 여름을 민스키 모멘트로 지목하며 위기를 경고했고,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 자산 가격이 폭락하자 하이먼 민스키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17년 '민스키 모멘트'는 다시 한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한 저우샤오촨 당시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호황기에 지나치게 낙관하면 내부의 모순이 누적되고, 결국 급격한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민스키 모멘트'"라고 말하면서다. '갑작스럽고 급격한 조정을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저우샤오촨 총재의 발언은 경제 낙관론만을 반복하던 중국 정부 관료들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고, 국제사회에서도 현직 중앙은행 총재로서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발언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 발언이 나온 다음 날 홍콩 증시가 2%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가 이후 부채축소와 금융규제 강화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딱딱한 경제학자인 듯싶지만 하이먼 민스키는 주식투자자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자산 시장의 버블 형성과 붕괴 과정을 투자자의 심리와 함께 보여주는 '하이먼민스키 모델'의 하이먼민스키가 바로 그다. 핵심은 이렇다. 현명한 투자자들과 기관투자자들이 먼저 자산 가격을 서서히 상승시키고 엑시트를 하며 1차 조정이 온다. 이후 대중들이 이에 가세하면서 재차 상승하게 되는데 여기에 탐욕과 환상이 맞물리며 자산 가격은 정점을 찍은 뒤 급격한 하락세가 나타나게 된다. 꼭지에서 급락을 맞은 투자자들은 '현실 부정→공포→투매'로 이어지고, 마지막 좌절의 단계까지 이르는 하락을 경험하게 되는데 여기를 지나야 자산 가격은 반등을 한다.
실제로 이 모델은 최근 코스피의 움직임과 유사하다. 3000을 밑돌던 코스피는 올해 2월 6000선을 찍은 뒤 조정을 받았고 이후 6월 말 9114를 찍을 때까지 급등세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대중들은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뛰어들었고, 국내 증시를 등졌던 서학개미들까지 줄줄이 힘을 보탰다. 탐욕과 환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급격한 하락세가 나타나며 코스피는 5500선까지 주저앉기도 했다. 어쩌면 5~6월 언제인가가 증시 '민스키 모멘트'였던 셈이다.
아쉬운 점은 모두가 장밋빛 꿈을 꿀 때 저우샤오촨 총재 같은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상승장에서 코스피가 8000선 아래로 내려오자 "약간 저평가"라는 발언이 나왔고, 9000선을 넘자 "2∼3년 뒤에는 글로벌 시가총액 3강"이라며 오히려 바람을 넣었다. 하이먼민스키 모델의 꼭짓점에서 나온다는 '새로운 논리'를 제공했던 셈이다. 어쩌면 민스키 모멘트였을지도 모를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출시의 내막은 국정감사에서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하이먼민스키 모델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다. 이론대로라면 마지막 좌절의 단계에서 자산 가격이 1차 상승기 수준까지 내려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무서운 하락이 그저 현실부정을 지나 공포로 접어드는 단계라는 얘기가 된다.
시장이 실적과 별개로 움직이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책적인 호재가 나와야 한다. 마침 대통령도 주식시장 정상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보고받겠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지수 급락의 핵심 요인으로 꼬여버린 수급을 지목한다. 외국인은 연일 주식을 팔고, 연기금도 매수 여력이 없는 처지다. 꼬여버린 수급을 풀 수 있는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mail protected]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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