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얀차렉 주한 체코대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한 체코대사관 제공
이반 얀차렉 주한 체코대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한 체코대사관 제공
[파이낸셜뉴스]
"한국과 협력으로 얻고 싶은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다. 두코바니 신규 원전은 체코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이반 얀차렉 주한 체코대사는 26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프로젝트는 "발전소 2기를 짓는 계약"이 아니라 "체코의 제조 기반과 한국의 원전 기술, 사업 수행 경험을 결합한 산업협력 플랫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코리아는 2024년 7월 두코바니 5, 6호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지난해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1000MW급 APR1000 2기를 짓는 사업으로, 총사업비는 4000억 코루나 안팎, 원화로 20조원을 훌쩍 넘는 규모다. 체코는 이미 두코바니 4기와 테멜린 2기를 운영하며 전력의 약 40%를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에너지 산업이 성장 축...두 나라는 닮았다"
얀차렉 대사는 양국의 공통점으로 제조업, 특히 중공업과 기계공학을 지목했다. 그는 "체코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강력한 산업 생태계의 형성"이라며 "한국은 제조업을 국가 발전의 핵심 축으로 삼으면서 기술 개발, 인력 양성, 공급망 육성을 동시에 추진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높은 수준의 현지화를 통해 체코 기업이 공급망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새로운 역량을 축적한다면, 이 사업은 원전 분야를 넘어 제조업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두 나라가 함께 성장하고 제3국 시장에서도 함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유럽의 원전 프로젝트는 최근 공기 지연과 예산 초과로 몸살을 앓았다.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 프랑스 플라망빌 3호기, 영국 힝클리포인트 C가 대표적이다. 체코가 한국을 선택한 배경에 온 타임, 온 버짓(On-Time, On-Budget) 실적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평가 과정에서 공기와 예산 준수 능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며 "기술적 우수성뿐 아니라 실제 사업 수행 역량을 면밀히 들여다봤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측 제안의 설득력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착공과 준공 시점을 명확히 못 박은 공정계획, 그리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지체상금이 적용되는 계약 구조다. 그는 "사업 관리와 이행 의지 측면에서 높은 신뢰를 줬다"고 했다.
여기에 국내 원전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실적이 뒷받침됐다. 그는 "체코가 중시한 것은 가격 경쟁력이나 기술적 우위만이 아니라, 계획된 일정과 예산 안에서 사업을 끝낼 수 있다는 검증된 실적에서 나오는 신뢰였다"고 강조했다.
한국 원전의 힘은 특정 기업 한 곳이 아니라 설계부터 주기기 제조, 시공, 운영, 정비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와 숙련 인력이 국내에 집적돼 있다는 데서 나온다는 분석이 많다.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터빈 같은 핵심 기기를 한 공장에서 일괄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힌다.
그는 "긴밀하게 통합된 산업 생태계는 한국 원전산업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라며 "주요 역량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품질 관리와 사업 예측 가능성이 함께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체코가 특히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런 제조 역량이 더 넓은 산업 생태계와 결합돼 있다는 점"이라며 "수십년간 신규 원전을 지어오며 기술과 인력, 산업 기반을 발전시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자국 내 추가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안정적인 수행을 기대할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플젠의 100년 터빈, 두산스코다파워
한국 기업이 체코 플젠의 터빈 제조사 두산스코다파워를 이미 계열사로 두고 있다는 점은 기술 이전을 논하기 전부터 현지 산업 생태계에 뿌리를 내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두산스코다파워 같은 사례는 양국 산업협력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돼왔음을 보여준다"며 두산과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넥센타이어의 투자와 고용 창출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기술력과 안전성, 사업 수행 능력, 경제성, 장기 협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평가였다"면서 "기존 산업협력 경험이 서로의 산업 환경과 기업 문화를 이해하는 의미 있는 토대가 됐다"고 했다.
스코다 브랜드에 대해서는 "체코의 산업 전통과 엔지니어링 유산을 상징하는 이름"이라며 "두산스코다파워의 참여는 체코가 오랜 기간 쌓아온 기술과 제조 역량이 미래 에너지 사업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협력 확장 영역으로는 수소와 재생에너지가 꼽힌다.
그는 "유럽의 에너지 전환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수소는 경쟁이 아니라 보완 관계"라며 "재생에너지가 탈탄소의 중심이라면 원전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으로 계통을 지탱하고, 그 전력으로 만드는 청정수소는 중요한 미래 분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과 체코수소기술플랫폼(HYTEP)은 원자력 기반 청정수소 생산과 기술 개발 협력에 합의했고, 같은 해 프라하에서 열린 한·체코 산업·에너지 기술협력 포럼에서도 수소와 원자력이 논의됐다.
얀차렉 대사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수소, 에너지저장, 재생에너지로 협력이 넓어지면 두 나라는 원전 파트너를 넘어 포괄적 에너지 파트너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mail protected]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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