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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전세를 위한 변론

[강남視角] 전세를 위한 변론
임상수 논설위원

'직동(直洞)의 초가집을 팔고 셋집(貰家)을 구했는데 주동(鑄洞) 허생(許生)의 집으로 머물 곳을 정하였다. 주인은 바로 병마절도사 허근(許近)의 조카이며….' 정조 때인 1796년 2월, 무관 노상추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67년간 쓴 이 일기에는 그가 살던 초가집을 팔고 전세를 얻는 과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두 달 뒤 집주인으로부터 일방적인 퇴거 압박을 받고, 전세 보증금에 해당하는 세전(貰錢)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인다. 오늘날의 전세 보증금 분쟁을 연상케 한다. 집주인은 그를 내쫓으려 행패까지 부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이보다 앞선 영조 때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보증금 미반환은 중대 범죄로 여겨져 감옥에 갇히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의 '주택금융 리서치' 33호(2024년)에 실린 '전세의 원형, 조선 후기 세매관습의 특성에 관한 분석'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국의 전세제도는 이처럼 230년 전에도 존재했을 만큼 역사가 깊다. 무과에 급제해 고위 관직인 정3품까지 올랐던 노상추조차 보증금 문제를 겪었음에도 전세는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주거 제도로 살아남았다. 다만 2010년대 초·중반 월세가구가 전세가구를 추월했고, 최근에는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도 전세 비중이 월세에 뒤졌다. 대출규제와 전세사기 여파가 겹치면서 월세화가 급격히 진행된 결과다.

전세는 임대인이 주택의 점유·사용권을 내주고 보증금을 받아 활용하는 일종의 사금융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몇몇 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주택금융이 덜 발달한 나라에서 주로 통용된다. 공식 금융기관을 거쳐야 할 자금이 임대인에게 흘러들어 제도권 금융의 발전을 막고, 주택 가격 상승기에는 투기 수요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나 대출심사 없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무이자로 거액을 빌려주는 사적 계약이라는 이유로 '후진적' 사금융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단점만 있었다면 전세가 200년 넘게 존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전세는 오랫동안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 왔다. 월세 부담을 줄이면서 목돈을 모아 자가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징검다리가 됐다. 내 집 마련을 위한 '강제 저축'이란 말도 있다.

목돈이 있는 가구는 전세를, 월 소득은 안정적이지만 목돈이 부족하면 월세를 선택하는 등 주거 선택지를 넓혀 주는 역할도 했다. 대체로 전세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적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전세는 월세보다 주거비가 싸다. 임대인에게는 금융권 대출을 대신하는 자금조달 수단이 된다. 국가의 주거복지가 미흡했던 고도성장기에는 이처럼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민간 자율의 주거안전망 역할을 했다.

최근 월세가 늘어 가계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그로 인해 소비여력이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급격한 월세화가 내수위축과 함께 주거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학술서 '전세'(2017)를 펴낸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전세권 설정 의무화, 전세가율 상한제, 임대인·임차인 정보의 투명한 공개로 전세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증금 반환 위험을 낮추면 다양한 장점을 가진 전세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도 이미 답을 찾아가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린 반전세가 크게 늘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각각 자산과 소득여건에 맞게 보증금 규모를 조율할 수 있다. 이처럼 보증금 규모를 폭넓게 조절하는 방식은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최근 동향을 전세의 몰락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답은 전세냐, 월세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제도 보완으로 전세를 안전한 선택지로 지키는 동시에 저마다 형편에 맞는 다양한 주거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전세는 사라지지 않고 시장의 요구에 맞춰 모습을 바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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