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미 경제부
심판이 내린 판정에 선수가 반성보다 판독요청부터 떠올린다면 경기의 질서는 흔들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둘러싼 풍경도 이와 닮아가고 있다. 거액의 과징금이 발표돼도 시장의 관심은 곧 법원에서 얼마가 살아남을지로 옮겨간다. 처분이 분쟁의 마침표가 아닌, 소송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호반건설에 부과된 과징금 608억원 가운데 365억원을 취소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지난달에는 구글의 경쟁 앱마켓 배제행위에 대한 과징금 421억원을 서울고등법원이 취소했다. 구글의 위법행위는 인정하면서도 과징금 계산에 포함한 매출액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징금 취소가 곧 위법행위에 대한 면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는 판결 취지에 따라 과징금을 다시 산정해 부과할 수 있다. 법원이 행정처분의 적법성을 따지는 것 역시 당연한 견제장치다. 문제는 제재의 근거와 산정방식이 반복해서 흔들릴 때다. 처분에 승복하기보다 법정에서 다투는 편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제재의 경고 효과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올해 과징금 부과기준율 하한을 높이고 감경 혜택을 줄였다. 불공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제재 부담이 커야 한다는 방향은 옳다. 다만 산정 근거의 빈틈을 남겨둔 채 금액만 키우면 소송으로 줄일 수 있는 몫도 커진다. 강한 제재가 오히려 불복을 부추기고 권위를 깎는 역설이다.
그 비용은 공정위와 기업에 머물지 않는다. 처분이 취소되면 과징금 환급과 가산금 지급이 뒤따를 수 있고, 재산정과 재처분에도 행정력이 다시 투입된다. 제재가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장에 보내려던 경고도 흐려진다.
공정위는 높아진 제재 수위에 걸맞게 처분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위반행위와 관련 매출액의 연결 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과징금 산정기준과 적용 근거를 처분 단계에서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법원이 취소하거나 효력을 정지한 사건은 같은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사와 심의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 제재의 강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판단이 법원에서도 유지되도록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공정위의 권위는 기업이 겁내는 액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법정에서 다퉈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판단에서 나온다. 경고장을 크게 인쇄한다고 심판의 판정이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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