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정 금융부 차장
'막바지 협의.'
지난달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디지털자산기본법 추진 상황을 설명하며 꺼낸 말이다. 법안 내용은 준비돼 있고, 관계기관 협의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설명은 지난달 22일에도 반복됐다. 여당은 이달 정부안을 제출받아 다음 달 법안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은행 지분요건 등 쟁점은 남아 있다.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이 늦어지는 동안 해외에서는 실적이 쌓이고 있다. 결제 분석업체 페이먼트스캔이 추적하는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의 지난 9월 이용액은 12억3100만달러다. 지난해 같은 달 4억320만달러의 약 3배다.
이는 새로운 결제 수단이 기존 결제망과 결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용자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로 전환해 카드 가맹점에서 결제하는 방식이라면 상점마다 코인을 직접 받도록 설득할 필요가 없다. 기존 카드의 편의성을 활용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처를 넓힐 수 있는 구조다. 경쟁도 누가 코인을 발행하느냐를 넘어 누가 편리한 지갑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을 확보하느냐로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쌓이는 것은 거래액만이 아니다. 사업자들은 실제 이용 과정에서 불편과 오류를 찾아 서비스를 개선하고, 결제·정산 경험을 축적한다. 이용자와 제휴사를 먼저 확보할수록 사업을 확장할 기반도 넓어진다. 뒤늦게 시장에 들어가는 기업은 기술개발에 더해 이미 다른 서비스에 익숙해진 고객을 설득해야 한다. 제도화 지연의 비용을 단순히 몇 달의 대기 시간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국내 은행과 카드사들도 스테이블코인 결제·송금 기술을 검증하며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2일 지급결제 활용을 위한 관련 법령 정비와 국회 논의 진전에 따른 샌드박스 실증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려면 인가와 시스템 구축, 서비스 검증 등 후속 절차도 필요하다.
물론 해외 이용액이 늘었다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준비자산의 안전성과 상환 가능성, 자금세탁과 외환거래 위험은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국내 소비자와 기업이 기존 결제 수단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할 이유도 찾아야 한다.
다만 그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려면 실제 사업을 통해 경험을 쌓을 기회가 필요하다. 금융안정을 위한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결정이 늦어질수록 국내 금융회사는 새로운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대응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막바지 협의'가 길어질수록 한국 금융이 들어설 자리는 좁아질 수 있다.
[email protected]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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