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의회 선거에서 이긴 것과 정책 결정권을 손에 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가져가는 '블루 쓰나미'가 현실이 됐지만,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사진)의 진단은 담담했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을 되돌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입법을 통해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잘라 말했다. 거부권이라는 벽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바뀌는 것은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의 비용이라는 것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가 5일 서울 서초구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노동일 주필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주목할 대목은 그다음이다. 국내 정치에서 길이 막힌 대통령은 재량이 큰 쪽으로 움직인다. 민정훈 교수는 "임기 2년 남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성과를 많이 만들어 위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일"이라며 "쟁점 법안은 정치적 논란만 될 테니 결국 대외정책과 경제·통상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한국이 마주할 관세·대미 투자·방위비 청구서가 중간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그대로 날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개표 윤곽이 드러난 5일 파이낸셜뉴스 노동일 주필이 민 교수를 만났다. 민 교수는 먼저 이번 중간선거의 결과를 가른 단어로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 곧 먹고 사는 문제를 꼽았다.
―무엇이 표심을 갈랐다고 보나.
▲중간선거는 의회 선거다. 대체로 경제·사회 문제가 주다. 이번에는 물가를 감당할 여력의 문제였다. 코로나19 때 뿌린 현금이 물가로 돌아왔고, 올해 2월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트랙터를 돌리고 화물을 운송해야 하는 농장주·목장주에게는 실생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나.
▲세 가지가 겹쳤다. 어포더빌리티, 후보 경쟁력, 그리고 지지층의 변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현직 공화당 상원의원을 자기가 지지하는 문제 있는 인물로 교체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반면 민주당은 지역사회에서 신망 있는 인물을 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쪽으로 19%가량 이동했던 히스패닉 유권자는 강경 이민 규제에 반발했다. 가족이나 친지가 불법 체류자일 수 있으니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전통 지지층은 민주당을 찍지는 않는다. 불만을 표시하는 제2의 방법은 투표장에 안 가는 것이다. 막판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텍사스와 캔자스를 돌며 투표를 독려한 이유가 거기 있다.
―민주당이 양원을 쥐면 트럼프 정책을 되돌릴 수 있나.
▲견제에 방점이 찍힌다. 민생 법안 90%는 어차피 통과된다. 문제는 5~10%의 쟁점 법안이다. 이민, 관세, AI 투자, 대외정책 같은 것들이다. 설령 되돌리는 법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켜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전부터 "나는 미스터 비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하원 290석, 상원 67석이 필요한데 이번 결과로는 어림없다. 입법으로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면 민주당의 무기는 무엇인가.
▲하원의 조사위원회와 감독권, 청문회다. 행정부를 귀찮게 할 수 있다. 특히 이해충돌 문제가 크다. 트럼프 가족과 측근이 연루된 사업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절차가 제대로 됐는지, 정보가 공개됐는지를 따질 수 있다. 최근 경유가 귀해지자 대러 제재를 일시적으로 푼 것 같은 사안도 마찬가지다. 다만 정책을 집행하는 주체는 행정부지 의회가 아니다. 예산을 깎아 정책을 무력화하는 행보는 굉장히 어렵다.
―이란 전쟁 예산을 틀어막는 방법도 있지 않나.
▲상당히 극단적인 정치적 선택이다. 이미 미군이 배치돼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민주당 의회가 우리 군인을, 누군가의 아들딸을 전장에 버렸다는 공격을 받게 된다. 그 위험을 감수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미국도 이란도 지쳐서 확전 의사는 없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포기하기 어렵고 핵 문제도 호락호락 내줄 사안이 아니다. 빠른 해결보다는 지난한 협상이 이어질 것이다. 제한적 공습과 대응이 간간이 있고 유가가 들쑥날쑥하는 국면이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정책에서 한국 투자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인공지능(AI) 규제다.
▲민주당 승리 소식에 주가가 빠진 것도 그 우려 때문이다. 데이터센터가 물과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지역 물값·전기값이 오르고, 발전기 소음 같은 환경 문제가 있고,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불안도 있다. 주지사와 주의회, 연방의회에서 데이터센터 건립에 유보적인 민주당 인사가 많았다. 다만 저는 이것을 중단이 아니라 조정으로 본다. AI는 미중 경쟁의 핵심이라 미국이 포기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슈퍼인텔리전스를 내세우며 표준을 선점하려는 기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초기 과열이 조정되고 오해를 풀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라,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미 관계의 핵심 의제들은 어떻게 되나.
▲외교·안보와 통상 정책은 행정부 권한이 거의 독점적이다. 의회는 예산 승인, 조사위원회, 청문회 정도다. 중간선거 결과가 대외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간접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방위비 분담금만 해도 그렇다. 집권 초반에는 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이 대북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산 무기를 사라는 요구가 있었고, 그 대신 분담금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후반기에 들어 동맹 운용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이건 의회의 요구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다. 중간선거 때문이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한 결정인 것이다.
―관세도 다시 흔들릴 수 있나.
▲민주당이 관세에 부정적인 건 맞지만 정책적 대안이 막막하다. 제재 법안이나 결의안을 만들어도 거부권에 막힌다. 결국 정치적 비난과 청문회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최우선 정책 의제이고, 기조가 바뀌면 모든 게 틀어져 남은 2년간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관세는 계속 압박 수단으로 쥐고, 공급망 재편과 대미 투자를 통한 제조업 역량 확충에 힘을 실을 것이다. 기본 틀은 짜인 대로 간다고 봐야 한다.
―주한미군과 전작권은.
▲대중 견제와 한미동맹은 의회 내 초당적 공감대가 있다. 다수당이 바뀌었다고 급격히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 2만5500명 유지와 함께 전작권 환수 로드맵을 의회에 보고하라는 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은 있다. 병력 규모 유지도 한미 양국이 협의해 합의하면 조정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민주당 상원은 비확산에 더 깐깐하다. 핵추진잠수함과 농축·재처리는 더 어려워지나.
▲더 깐깐한 의회를 상대해야 하는 건 맞다. 핵잠을 도입할 때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가 다 만들 테니 농축 우라늄만 달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군사적으로 쓸 근거가 필요하다. 지금의 한미 원자력협정, 이른바 123 협정은 상업적 이용에 한정돼 있다. 일본은 미국 승인 없이 20% 미만 농축을 평화적·상업적 목적으로 할 수 있는데, 원자력 발전이 전력의 35%를 차지하는 원자력 주요국 가운데 그 권한이 없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이다. 협정을 개정하고, 군사용 사용에 관한 협정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의회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당 설득이 가능하겠나.
▲작년 말 민주당 의원들이 핵 잠재력을 우려하는 서한을 보낸 건 사실이다. 그런데 만나보면 의외다. 이들이 말하는 불만은 "탑다운으로 정상끼리 합의했는데 후속 조치가 없고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인 한국이 핵잠을 갖는 데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게 아니라, 우려를 불식시킬 정보와 근거를 달라는 것이다. 왜 핵잠이 필요한지, 예산이 얼마나 들고 그것이 전체 국방비에서 어떤 의미인지, 다른 부문을 침해하지는 않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는 어떻게 봐야 하나.
▲큰 틀과 개별 사업을 나눠 봐야 한다. 1500억달러는 조선 협력이고 2000억달러가 전략 투자다. 텍사스 가스복합화력에 550억달러, 미국 전역 원전 8기에 120억달러 정도가 들어가면 거의 소진된다. 남는 500억~600억달러를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에 넣고 싶어 해 계속 군불을 뗀 것이다. 선거용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알래스카 공화당 의원이 패배하면 관심에서 급격히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인사들도 선거 이후 관심이 뚝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쥔 카드는 무엇인가.
▲거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너무 착하고 선비 같다. 트럼프의 미국은 칼만 안 들었지 거의 강도에 가깝게 나온다. 치열하게 협상해도 미국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사업적 합리성에 따라야 한다. 피 같은 돈이 들어가면 피 같은 걸 받아야 한다. 원전 8기를 지어주면 운영권은 당연히 받아와야 한다. 관세 협상은 미국의 최우선 이익이었고 안보 협의는 우리의 최우선 이익이었다. 대미 투자에서 진전을 줬으면 받아오는 게 당연하다. "안 주면 더는 못 한다"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동맹은 서로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상태가 가장 좋은 동맹이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도 넓어졌다.
▲과거엔 백악관과 행정부, 워싱턴 싱크탱크가 대상이었다. 이제는 의회가 중요해졌고, 대미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주정부와 지방정부, 주의회까지 챙겨야 한다. 주미대사관이 텍사스·조지아 같은 투자 지역을 직접 찾아가 민심을 듣고 공감대를 만드는 '카라반'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상원을 민주당이 가져간 만큼 민주당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공화당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미국이 동맹에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는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이어진다. 그 방식에 익숙해지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email protected]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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