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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기준은 환자에 즉시 도움이 될 것" 환자 중심 실용주의자, 허창훈 교수의 철학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아시아인 최초 '국제모발연구학회연합' 부의장 선출
저용량·복합제 임상부터 JAK 억제제 제도 개선까지
"논문보다 환자의 삶 바꾸는 의술 펼칠 것"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부재할 때 그것은 상실을 불러옵니다. 우리에게 깊고 무거운 상실을 일으키는 존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탈모. 탈모를 바로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해 탈모 치료 1세대 개척자인 의학박사를 시작으로 100인의 탈모 전문가를 만납니다. '탈모'라는 두 글자 뒤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 주]
"제 1기준은 환자에 즉시 도움이 될 것" 환자 중심 실용주의자, 허창훈 교수의 철학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사진=허창훈 교수 제공

[파이낸셜뉴스] "늘 고민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진료실 문을 여는 환자에게 편안하고, 효과적이며,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환자의 눈높이에서 생각한다. 지금 내 앞에 앉은 환자가 감내할 치료의 부작용, 값비싼 치료비, 심지어 진료실 앞 길어지는 대기 시간도 고민한다. 제도가 채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기꺼이 살피고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찾는다. 허 교수의 이런 대목은 그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모발연구학회연합' 부의장 자리로 이끌었다. 한국 모발 분야의 임상을 이끄는 권위자이자 세계적 지도자, '환자 중심의 실용주의자'인 허 교수를 만나 탈모 치료 분야의 과제와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제 1기준은 환자에 즉시 도움이 될 것" 환자 중심 실용주의자, 허창훈 교수의 철학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아시아인 최초 IFHRS 부의장 선출… 글로벌 가교 된 K의학

― 지난 9월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모발연구학회연합' 부의장 임기를 시작했다.
▲ 국제모발연구학회연합(IFHRS)은 유럽, 미국, 일본, 호주, 대한모발학회가 모여 만든 국제기구다. 세계 각국이 모여 협력을 증진하는 UN(국제연합)처럼 모발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기구라 하겠다.

최근 의장, 부의장, 사무총장, 직전의장 체제로 집행부를 구성하자는 안건이 의결되면서 부의장직이 신설됐다. 지난 5월 세계모발학회를 공동대회장으로서 성공적으로 치렀고, 임상 경험이 풍부하다는 다수의 추천으로 부의장에 선출됐다. 아시아인이 집행부에 합류한 것은 처음이다. 부의장을 지내면 의장을 맡는 것이 수순이므로 부의장, 의장, 직전의장까지 향후 9년간 집행부로 활동한다.

― 부의장을 지내면서 한국, 나아가 아시아를 위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 지금까지 국제모발연구학회연합 의장은 서구권에서 도맡아왔다. 아시아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드물었다. 실제로 한국, 중국, 일본은 기초의학과 임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지만 비영어권 국가의 특성상 언어 장벽 때문에 충분한 논쟁과 토론을 벌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의장의 자리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다. 집행부 차원에서도 비영어권 국가에 열린 태도로 다가갈 것으로 기대한다.

― 실제 의학 분야에서 아시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세계모발학회에서도 체감했나.
▲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한 세계모발학회에 1700여 명이 참석했다. 역대 세계모발학회 중 최대 규모였고, 중국에서만 400여 명이 찾았다. 서양에서 열릴 때 통상 1000명이 채 참여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학회 규모만으로 대륙의 학문적 수준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훌륭한 연구가 폭넓게 논의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한국은 K-뷰티의 세계적 유행만 봐도 알 수 있듯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고, 특히 모발 임상 분야에서는 글로벌 톱 레벨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축적된 임상을 토대로 신약 개발과 상용화 등 여러 방면에서 해결해 나갈 과제도 안고 있다.

― 해결해야 할 과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한국인은 특유의 독창성과 추진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신약을 개발한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엄격한 제재는 신약을 신속히 임상에 적용하는 데 허들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는 적응증 외 사용이 활발하고 일정 부분 의사의 임상적 자율성을 인정해 주는 반면, 우리나라는 약효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해당 치료에 허가를 받기 전까지 사용할 수 없다.

물론 이런 타이트한 배경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처럼, 엄격한 국내 제도를 통과한 치료제는 해외 허가를 받을 때 한결 수월하고 빠르게 통과하는 편이다.

세계 최초 두타스테리드 허가국 한국… '부작용 줄인' 저용량·복합제로 진화

―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혹은 최초로 개발한 탈모 치료제가 궁금하다.
▲ 대표적인 예가 탈모 유발 인자인 DHT 호르몬을 차단하는 '두타스테리드'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탈모증 치료 허가를 받았다. 두타스테리드의 부작용 등을 고려해 용량을 줄인 '0.2mg 저용량 제제'도 마찬가지다. 두타스테리드와 발기부전 치료제 성분인 '타다라필'을 결합한 복합제도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전립선비대증에 허가를 취득했다. 이 외에도 엉덩이에 주사를 맞으면 3개월간 약효가 지속되는 장기지속형 치료제, RNA 치료제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돼 임상 시험을 밟고 있다.

외국에서는 적응증 허가가 없어도 처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 허가 자체가 덜 중요할 수 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공인된 연구와 엄격한 임상으로 증명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설명한 것처럼 저용량 두타스테리드 등 새로운 치료제, 새로운 치료 방법도 많아지고 있다.
▲ 통상의 탈모, 그러니까 안드로겐성 탈모증 치료는 호르몬 계열과 비호르몬 계열 치료로 나눈다. 그중 호르몬 계열의 치료는 모낭의 퇴화를 유발하는 DHT 호르몬을 억제해서 모낭이 굵어지게 만든다.

여기서 문제는 호르몬 계열의 치료제가 치료 환자의 1~2%에서 부작용을 낸다. 따라서 앞으로 치료는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불식시키는 방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투약하는 루트를 바꾸거나 부작용 치료제를 혼합하는 방식이다.

DHT 호르몬 차단제와 발기부전 치료제를 결합한 경구약, 전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에서 주입하는 주사, 바르는 치료제들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두타스테리드를 스프레이 형태로 만든 치료제를 우리나라에서 임상 진행하고 있다.

레이저·톡신 등 비호르몬 보조 요법… 세포 치료 '가성비·규제'는 넘어야 할 산

― 비호르몬 계열 치료 중 눈여겨볼 만한 분야는 무엇인가.
▲ 대표적인 혈관 확장제인 미녹시딜의 경우, 최근 미국의 한 제약사에서 약물이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방출되도록 설계한 서방형 경구제를 개발하고 있다. 모낭 주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세포를 자극하는 저출력 레이저(LLLT), 각종 항산화 성분과 미네랄이 풍부한 태반주사, 재생과 성장에 효과를 내는 자가혈소판풍부혈장(PRP), 모발 퇴행기 유도 신호 물질(TGF-β1)을 억제하는 보툴리눔 톡신 주사 등도 시도해 볼 만하다.

다만 비호르몬 계열 치료는 호르몬 치료의 효과를 돕는 '보조 요법'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만족스러운 효과를 내기 어렵다. 비용 부담이 높은 치료도 많다.

― 줄기세포나 모낭 복제 기술의 전망은.
▲ 모낭 복제는 10년 전에도 화두였다. 나 역시 과거 다수의 모낭 복제 연구에 직접 참여했고, 지금도 많은 대학과 기업이 이를 연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체외에서 세포를 배양해 주입하는 방식의 치료는 공여자의 연령대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하고, 경제성 측면에서도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세포 치료제는 1회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하지 않나.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가가 숙제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가성비를 충족하더라도, 타인의 세포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고려할 사항도 많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직면한 과제다.

JAK 억제제 급여 사각지대 해소 절실… "환자에게 즉시 도움 되는 임상 이어갈 것"

― 원형탈모 치료 역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 치료법이 발전하는 이면에 환자들에게 불편과 혼란을 주는 현실도 공존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원형탈모 치료에 염증과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 국소면역요법 치료제인 DPCP 등이 쓰였다. 그런데 DPCP가 '시약'으로 분류돼 병원에서 치료를 시행할 경우 그 치료비가 부당이익으로 간주 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이에 대학병원에서는 DPCP 치료를 잇달아 중단했고 제조사도 공급을 꺼려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스테로이드 치료가 대안이 될 수있지만 스테로이드는 부작용 부담이 크다.

원형탈모 치료에 새 장을 열었다는 잭(JAK) 억제제도 마찬가지다. 자가면역 기전을 정조준하는 표적치료제로 효과는 뛰어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접근하기 매우 까다롭다.

의료보험 적용 전에는 한 달 약값이 50만 원을 넘을 정도로 매우 비쌌고, 급여화가 된 이후에도 환자들이 급여를 받기 위해 중증도 기준, 사전치료 조건 등을 증명해야 한다. 과거 잭 억제제로 효과를 본 환자들조차 급여를 위해서는 약제를 끊은 후 다시 악화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급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평생 복용해야 하는 치료제'임에도 2년까지만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12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그마저도 적용되지 않는다.

― 환자들이 현 상황을 타개할 현실적 대안은 없나.
▲ 실손보험으로 부담을 덜려는 환자도 있지만 실손 보험에는 일일 청구 한도가 있지 않나. 환자들이 한 달 씩 처방 받을 약도 며칠 간격으로 처방 받는 수고로움을 거친다. 이는 대학병원 시스템을 과부하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환자 동의 하에 환자가 비용을 온전히 지불하는 경우도 있는데, 당국 검토 과정에서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판단되면 과다처방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괴리는 여러 혁신 치료제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건강보험 재정을 비롯, 사각지대와 실무적 괴리를 국가차원에서 고민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 환자들의 권익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성남시의료원 진료도 같은 맥락인가.
▲ 그렇다. 환자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성남시의료원에서 탈모 치료는 물론이고 피부암 등 고난도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환자들이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여생이 길어진 시대다. 진료를 쉽고 빠르게, 편안하게 볼 수 있어야 남은 여생을 건강한 날들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연구 목표나 계획은 무엇인가.
▲ 원하는 것은 하나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대한모발학회 회장을 맡으면서도 "앞으로 임상을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
미래에 상용화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논문을 통해 학술적으로 주목받는 것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환자에게 즉시,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을 1원칙으로 삼아왔다.

환자의 치료 문턱을 낮추고, 부작용과 비용 부담을 덜면서 치료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실용적 임상 연구를 지속하겠다. 내 연구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현장의 도구로 널리 쓰이길 바란다.

[email protected] 김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