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강남視角] '금융 사령탑' 이억원의 고언

[강남視角] '금융 사령탑' 이억원의 고언
조은효 금융부 부장
지난달 13일 '기습적'으로 금융위원회, 외교부·통일부 등 서울 잔류 부처들의 세종시행이 전격 발표됐다. 민첩하고, 민감하게 움직여야 할 금융·안보부처까지 서울과 2시간여 떨어진 세종시로 일괄 이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표 전까지도 해당 부처엔 '협의도, 공식 통보도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와 총리실, 행안부가 지방 이전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고자 속전속결, 밀어붙이기식으로 발표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발표대로라면 현재 정부서울청사에 입주해 있는 금융위는 내년 하반기에는 세종시의 한 민간 임차빌딩으로 들어가야 한다. 300명 규모의 금융위 직원들이 들어갈 청사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전이 확정된 것이다. '물리적 거리'로 인해 금융안전망, 안보관제탑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지 우려가 크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금융위의 세종시행을 재고해 달라"는 취지로 고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금융 안전망, 시장 대응능력 등을 거론하며 금융위 이전에 대한 숙고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공개적으로 "감독은 시장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자본시장은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에 대한 감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시 세종시의 안보부처들이 무슨 수로 한밤중 1시간 내 청와대에서 열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할 것인지도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문제는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에서 금융당국이나 외교·안보당국의 서울 잔류를 편들어 줄 '우군'도 없을뿐더러 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설명해 줄 '키맨'도 없다는 것이다. 금융을 모르는 사람들이 키를 잡고선 "금융이 뭐가 특별하길래 서울에 잔류하려 하느냐"고 힐난만 하니 사실상 자포자기다.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책은행 수장들은 아예 침묵을 택했다. 대놓고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직원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으니 입을 닫은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지난해 금융위의 가계부채 점검회의 때 권대영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주 1회씩 (서울에서) 시중은행 부행장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며 "(귀찮기는 해도) 우리로선 조율되지 않은 정책보다 차라리 소통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종시로 가면, 이런 소통이 원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앞서 세종시로 이전된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1급 이상은 서울에, 과장급 이하는 세종이라는 종적 이원화 구조로 변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번 주 닷새 내내 서울 출근이다. 지난달엔 해외출장과 휴일 등을 제외한 17일 워크데이 기간, 확인된 것만 열흘을 서울에서 근무했다. 앞서 김민석 전 국무총리나 한성숙 국무총리,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총리는 지난 7월 취임 이후 세종청사 출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세종청사에서 서울청사나 청와대, 국회로는 왕복 약 4~5시간이 소요된다. 정책 주설계자인 과장이 주 2회, 서울과 세종을 오간다고 할 경우 주 10시간, 한 달이면 40시간을 길바닥에서 허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추진된 파이 쪼개기식의 '분산 정책'은 이제 파이 키우기식 '유치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일본 도쿄는 지난 2021년을 기점으로 아시아의 금융허브 기능을 수복하겠다며 외국 금융기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률적 지방이전이란 원칙 앞에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수도 서울'이란 새로운 어젠다로 이 문제에 용단을 내려주길 기대해 본다.

[email protected] 조은효 금융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