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함안=오성택 기자] 고대 가야왕국 가운데 아라가야 지배층의 생활유적으로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경남 ‘함안 가야리 유적’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경남도는 21일 함안군 가야읍 일원의 ‘함안 가야리 유적’이 문화재청의 최종심의를 통과해 국가사적 제554호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가야시대 지배층의 생활유적으로, 남강으로 흘러드는 신음천(新音川)과 광정천(廣井川)이 합류하는 일대의 작은 구릉에 위치해 있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구릉 북쪽의 가장자리에서 토성(土城)과 고상건물(高床建物), 망루(望樓) 등이 확인됐으며,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에 조성돼 6세기 멸망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은 조선시대 함안지리지인 함주지(咸州誌, 1587년)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 또는 ‘옛 나라의 터’로 기록돼 있으며, 남문외(南門外), 대문천(大門川) 등 왕성·왕궁 관련의 지명이 남아 있어 그동안 ‘아라가야 왕궁지’로 전해져 온 곳이다. 또 주변에는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과 남문외 고분군(경남도 기념물 제226호), 기둥을 세워 만든 건물인 가야 최대 규모의 굴립주건물(掘立柱建物)인 ‘당산유적’ 등 주요 가야유적들이 1㎞ 남짓한 거리에 분포하고 있어 현재 가야읍 일대가 아라가야의 왕도(王都)였음을 잘 보여준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중 토(土)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 건물지 등이 확인됐으며, 건물지 내부에서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출토돼 군사적 성격의 시설임이 밝혀졌다. 특히 잔존상태가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 유적과 연계된 경관이 잘 보존돼 있어 고대 가야 중심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류명현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이번 ‘함안 가야리 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은 가야사 연구복원이 국정과제로 채택된 이래 창녕 계성고분군에 이은 두 번째 쾌거”라며 “아직도 경남에는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가야유적들이 많다. 앞으로 더욱 철저히 조사하고 연구해 더 많은 가야유적들을 국가사적으로 지정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는 지난해부터 도내 주요 가야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지표·발굴 등 학술조사는 물론, 학술대회와 사적 신청보고서 작성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김해 원지리 고분군,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 합천 성산토성 등 도내 주요 가야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 중이다. 도는 이번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문화재청, 함안군과 협의해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 보존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10-21 10:29:11【함안=오성택 기자】 경남 함안군의 가야유적 두 곳에서 가야왕국의 실체가 드러났다. 경남도는 18일 가야문화권 중요 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통해 함안군의 주요 가야유적 두 곳에서 주목할 만한 발굴성과를 올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아라가야 추정 왕성지는 지난 4월 경작지를 조성하던 중 성토 흔적과 함께 우연히 발견됐다. 이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긴급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시대 왕성의 존재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토성(土城)과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지난 9월부터 진행된 정밀발굴조사에서 수혈식(竪穴式)과 바닥을 땅이나 물 위에 높게 짓는 고상식(高床式) 건물지 14동과 구릉의 생김을 따라 조성된 토성벽 및 목책렬(木柵列) 약 100m가 확인됐다. 특히 건물지군에서는 유적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시설과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그 중 10호 건물지는 판석(板石)을 세워 만든 긴네모꼴의 건물지로, 가야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내부에 길이 5m의 부뚜막이 설치된 구조를 확인했다. 이밖에도 가로 30m×세로 6m규모의 초대형 고상식 건물지와 망루, 창고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지가 확인됐다. 출토된 유물은 그릇받침과 연질항아리, 시루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5~6세기 가야토기들이 출토됐으며, 각종 화살촉과 비늘갑옷, 말발걸이 등 다양한 철제 무기 및 마구 등이 함께 출토됐다. 발굴 관계자는 “아라가야 왕성지는 토성 등의 방어시설을 갖춘 아라가야 전성기 최고지배층의 생활공간”이라며 “이번에 발굴한 건물지군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군사집단이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거주했던 시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대상에 포함된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에서도 중요한 발굴성과가 나왔다. 말이산에서 최대 규모의 고분이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13호분은 5세기 후반 아라가야 전성기 왕묘로 추정되는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가 발굴을 시도한 이래 꼭 100년 만의 재발굴 조사로, 지난해 6월 봉분 정상부에 지반침하가 발생하면서 유적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도와 함안군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해 내년 4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말이산 13호분은 봉분지름 40.1m, 높이 7.5m 규모의 대형봉토분으로 구릉 정상의 암반지형을 활용해 더욱 높고 크게 보일 수 있도록 조성됐다. 또 내부구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으로 네 벽면을 점토로 미장한 후 붉은 색 안료를 칠한 채색고분(彩色古墳)이다. 가야고분 중에서는 6세기 전반 소가야 고분인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의 1B-1호 돌방무덤(石室墓)에서 확인된 적이 있으나, 말이산 13호분은 이 보다 수십 년 앞선 것으로 향후 면밀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또 무덤 주인의 시신이 안치되는 공간 위쪽의 뚜껑돌에서 125개의 성혈(星穴)도 확인됐다. 성혈은 지금까지 청동기인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큰 바위나 돌에 새긴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구려 벽화고분에 북두칠성 등 별자리가 그려진 사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뚜껑돌의 성혈 역시 옛 가야인들의 천문사상이 반영된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김제홍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문헌기록이 부족한 가야사는 그동안 유적에 대한 조사연구가 절실히 필요했음에도 소홀한 감이 있었다”며 “가야사가 우리 고대사의 한축이었음을 밝혀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는 내년도 가야사 연구복원을 위해 국비 포함 739억 원을 확보했으며, 조사연구를 통한 가야사 규명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및 가야문화 아카데미, 영호남 화합한마당 축제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8-12-18 11:35:45【전주=이승석 기자】전북도는 문화재청이 전북 남원시 유곡리·두락리 가야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예고 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에 지정예고 되는 유곡리·두락리 가야 고분군은 남원시 인월면 성내리 35-4 외, 유곡리 746-1 외 문화재 구역 40필지 9만8225㎡로, 호남지역 최초의 가야유적 사적 지정예고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를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이에 처음으로 아영면 두락리와 인월면 유곡리 일대에 남아 있는 가야와 백제 무덤들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이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영남 지역에 비해 저조했던 호남의 가야유적 조사와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고분군은 지난 1989년 5기의 고분을 대상으로 처음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2011년 정밀지표조사, 2013년 32호분 발굴조사 등이 진행됐다. 그동안 조사를 통해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는 물론, 일부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이 확인돼 210여점의 철기류와 110여점의 토기류가 출토됐다. 특히 2013년 32호분을 대상으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해당 무덤은 석곽의 크기가 길이 7.3m, 너비 1.3m, 깊이 1.8m로 조사됐다. 백제 왕릉급 무덤에서 나오는 청동거울이 무덤 주인공의 머리 주변에서 발견됐고, 금동신발 조각도 출토됐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의 무덤은 견고한 봉분을 위해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가며 판축기법(흙을 얇은 판 모양으로 켜켜이 다져 올리는 방법)으로 쌓고, 석곽을 축조할 때 나무기둥을 이용하는 등 삼국시대 무덤 조성 기술이 잘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은 지난해 2월 중순 사적을 신청했고, 같은해 11월 문화재청 현지조사를 두 차례 걸쳤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는 2~3월께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으로 지정된다. 도는 장수 삼봉리 가야 고분군과 침령산성을 올해 상반기에 발굴 및 학술대회 개최 등을 통해 고증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중에 추가로 사적신청을 할 계획이다. 현재 전국에는 가야유적 중 사적으로 26건(부산 3, 경북4, 경남 19)이 지정돼 있다. 도는 690개의 가야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동부지역 7개 시·군(남원시·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순창군)에 올해 93억원을 투입, 주요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와 유적을 정비할 방침이다. 오는 2027년까지 5500억원을 투자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전북도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전북 가야유적은 우선 주요유적에 대한 집중 발굴 및 고증을 통해 실체를 규명하고 국가 사적지정에 중점을 두고 지원해 나가겠다“며 ”전북가야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은 물론, 정치권 및 시군과 공조하여 국가예산 확보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press@fnnews.com 이승석 기자
2018-01-22 16:41:09김해 봉황동 유적 전경 창녕 교동 39호분 원경 금관가야 수로왕대 왕궁터로 추정되는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과 창녕 교동 39호분 발굴조사가 시작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가야문화권 중요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연구의 하나로 지난해에 이어 금관가야 추정 왕궁터인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과 비화가야권의 중요 고분인 '창녕 교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3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오는 4월 4일에 착수한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 수로왕대의 왕궁터로 추정되며, 그동안 일제 강점기에 회현리 패총 조사를 시작으로 주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60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그 결과, 토성, 주거지 유구, 패총 등이 확인됐으나 아직 왕궁이나 도성의 명확한 실체를 찾지는 못하였다. 금관가야는 가락국이라고도 하며 서기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가야국이다. 이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지난해부터 추정 왕궁터 중심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해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문화층과 각종 수혈 유구(구덩이)를 확인했다. 올해는 오는 4월 4일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시작해 가야 시기의 유구와 유물을 통해 역사적 변천 과정을 밝혀낼 계획이다. 또 비화가야권의 중심 무덤군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북서쪽에 있는 교동 3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도 시행한다. 지난 2014~2015년에 걸쳐 진행된 39호분 주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기존에 알려진 3기 이외에 21기의 무덤을 새롭게 발견했으며 다양한 무덤 구조와 함께 둥근고리큰칼 등 총 410여 점의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이 무덤 주변 일대는 아직 정비되지 않은 곳으로 현재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교동 39호분은 그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고분은 지름이 약 25m에 달하는 대형 봉토분으로, 올해 조사를 통해 무덤의 성격을 파악해 정비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6-03-31 09:05:41수수께끼의 고대 왕국 가야. 삼국 열강의 그늘에 가린 탓에 좀처럼 가야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보기 힘들다. 전해지는 흐릿한 비문과 왜곡된 역사서만이 500년간 남도 자락을 각인시키던 고대 제국의 옛 영화를 담고 있을 뿐이다. 가야는 대체 어떤 국가였을까. KBS 1TV ‘HD 역사스페셜’은 베일에 가려진 옛 국가, 가야의 그 실체를 밝혀보기 위한 ‘제4의 제국 대가야-백두대간을 넘다’편을 19일 오후 10시에 방영한다. 프로그램은 먼저 남도지역에 산재한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당시 가야가 보인 막강한 영향력을 더듬어 간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서쪽에 대해 우리는 흔히 백제의 영토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남서부를 호령하던 백제땅 일부에서 가야의 역사가 점차 발견되고 있는 것. 전북 남원군 월산리와 두락리, 장수군 삼봉리 등 호남 동부지역에 자리잡은 주요 교통 요충지에서 가야의 대형 고분들이 집중 발굴되고 있다. 무덤뿐만이 아니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주요 공략지이던 섬진강 유역에는 최근 40여개의 봉수대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전북 진안군, 장수군, 남원군 일대에서 발견된 이 봉수대는 모두 백두대간 서부를 넘보던 가야 영토와 동일하다. 백제와 가야가 섬진강 유역을 놓고 벌인 분쟁의 흔적인지, 일본과의 교역루트로 사용하기 위한 통신도구였는지 이들 봉수대가 얽힌 당대의 비밀을 파헤친다. 프로그램은 또 독자적인 해외 공략에 나선 가야의 흔적도 살핀다. 전북 부안군 죽막동, 경북 고령군 지산동 등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당시 대가야가 주변국과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증명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던 야광국자가 당시 가야 영토에서 출토되는 등 가야는 일찍이 해외문물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또 중국 제나라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가야가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가야가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과 일본에 손을 뻗어서 얻으려했던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알아본다. / sunysb@fnnews.com 장승철기자 ■사진설명=탤런트 고두심이 진행하는 KBS 1TV 'HD 역사스페셜'은 19일 삼국 열강의 틈새에서 독자적인 문화저력를 갖춘 가야의 옛 흔적을 찾아간다.
2005-08-18 13:35:08[파이낸셜뉴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아라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배수 시설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소는 "함안 가야리 유적 일대를 발굴 조사해 과거 토성의 내·외부를 연결한 것으로 보이는 배수 체계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지난해부터 가야리 유적의 북서편 곡간지(谷間地) 일대를 조사한 결과, 성벽 축조 구조와 성 내부의 대지 조성 과정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곡간지는 좁게 움푹 패어 들어간 지형으로, 주변의 물이 모여 자연 배수되는 곳을 뜻한다. 곡간지 일대 성벽은 매우 정교하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흙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다져가며 쌓아 올리는 판축 기법으로 중심 토루(土壘·흙으로 쌓아 둔덕지게 만든 방어용 시설)를 쌓은 것으로 파악됐다. 좁게 골이 진 부분의 지형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바닥에는 나뭇가지 등을 깔았고, 토루 주변으로 경사지게 흙을 켜켜이 다져 쌓은 내벽과 외벽을 올려 성벽을 보강했다. 이렇게 만든 판축 토루의 너비는 5.5m, 판축 토루와 내·외벽을 포함한 기저부의 너비는 29.5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 지형의 특성을 고려한 축조 방식인 셈이다. 그 안에서는 짧은 목 항아리, 솥 모양 토기 등이 발견됐다. 이들 유물은 대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제사나 각종 의례를 지낸 흔적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성벽을 통과하는 석축 배수시설 흔적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길이가 16.5m에 이르는 배수 시설은 성 내부의 곡간지로 모이는 물을 성 밖으로 배수하기 위한 구조로, 성벽을 통과해 밖으로 이어진 양상이다. 배수 시설 구조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성벽 밖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너비가 최대 3.5m까지 벌어지는 나팔 모양인데,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이런 형태를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내부의 배수 문제와 습하고 연약한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성벽과 배수 체계를 조성한 고대 가야인의 뛰어난 토목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소는 오는 13일 오후 2시 발굴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연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1-11 11:12:23[파이낸셜뉴스] 국가유산청은 경상남도 고성군과 함께 오는 7일 오후 1시 고성군 문화체육센터에서 '고성 동외동 유적'의 국가유산 사적 지정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난 6월 사적으로 지정된 고성 동외동 유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지역 주민과 학계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자리로 기대된다. 고성 동외동 유적은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의례시설과 광장, 취락지, 환호(방어시설) 등으로 구성된 복합생활유적이다. 이 유적은 변한과 가야 시대에 걸쳐 고성 지역의 발전 과정을 밝혀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주제 발표 후에는 임학종 전 국립김해박물관장이 좌장으로 나서 발표자와 토론자 간 심도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질 예정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1-06 14:30:13<36> 이집트 '룩소르'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을 출발하여 한시간 거리의 룩소르에 도착했다. 룩소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굉장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도시이지만 길거리 풍경은 따스하고 정겹다. 우리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우릴 초대해준 무함맛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직장이라는 병원을 찾아갔다. 번화가에 있는 큰 종합병원인듯한 곳 앞에서 조금 기다리자 큰 키의 무함맛이 손을 흔들며 나왔다. 서로 인사를 하고 그는 곧 다시 병원에 들어가봐야 한다며 우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당연히 그의 집에 묵으며 교제를 나눌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희안하게도 데려다준 곳은 그의 친구네 집이라고 했다. 작은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이었는데 1층을 우리가 사용해도 좋다고 한다. 무척 이례적인 카우치 제공이었지만 자세한 것을 물어볼 새도 없이 우리만 남겨두고 가버렸다. 친구라고하는 사람도 첫날 잠깐 인사를 한 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넓은 거실에 부엌도 있고 침실도 잘만하고 씻을 수 있는 화장실도 있음에 감사히 머물렀다. 다음날 무함맛에게 우리는 이스트뱅크의 유적들에 갈 예정이라고 문자를 남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나일강을 기준으로 해가 뜨는 동쪽-이스트뱅크는 산자의 땅, 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고 서쪽은 웨스트뱅크라고 부르는데 해가 지는쪽이라해서 죽은 자의 땅이라 생각되며 무덤이나 신전들이 주로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 있는 숙소를 출발해서 다리를 건너 서쪽 웨스트뱅크로 넘어왔다. 날씨가 매우 좋다. 나일강을 지나 좀 더 들어가자 누런 모래사막이 나온다. 하늘에는 벌룬이 떠있다. "와, 여기 열기구를 타고 웨스트 뱅크를 관광할 수도 있나 봐." 표를 사서 나오니 놀이공원에 흔히 있는 전기카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매표소에서 장제전까지 거리가 조금 있는데 더운 날이나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타고가면 좋을 것 같았다. 탄이는 공짜면 타고가지 뭐 하며 혹시나 하며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10파운드(200원)란다. 해는 내리쬐었지만 아직 더울 때가 아니어서 우리는 그냥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느리게 걸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유적의 모습을 충분히 감상하고 싶었다. 핫셉수트 장제전은 천혜의 위치와 풍경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누런 사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래 포근하게 감싸여진 핫셉수트 장제전은 풍경부터 장관이었다. 3층의 테라스식 신전으로 수많은 열주식 기둥마다 파라오석상이 늘어서있는 모습이 고대 이집트 건출의 최고 걸작으로 불릴만큼 장엄하고 멋있었다. 개장시간에 맞춰 일찍 왔는데 우리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꽤 많다. 거의가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관광객들이다. 중앙도로 양 옆으로 스핑크스 조각상들이 도열해 있는데 개중 이목구비가 잘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다. 중앙계단을 다 오르자 기둥마다 서있는 석상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핫셉수트는 여왕이지만 자신의 석상에 턱수염을 만들었다. 남자 파라오 못지않게 위엄 있게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기록에 따르면 파라오인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을 섭정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힘있게 이집트를 다스린 여장부인 것 같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확실히 다른 종류의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예전에는 거의 다 무너졌던 벽들을 잘 복원해놓아 벽화들을 볼 수 있었는데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 이집트 아저씨가 신전입구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더니 코리안이냐고 하며 계속 따라다닌다. 이곳저곳 다니는 곳마다 부탁하지 않은 안내를 하는데 같은 관광객 같지는 않고 팁을 바라는 비공식 가이드인 듯. 다행히 우리가 별로 흥미있어 하지 않자 귀찮게 하지는 않고 금새 떨어져 다른 사람을 찾아 갔다. 신전 내부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아크릴로 보호판을 만든 것이 너무 반갑다. 사람들이 만지지 못하도록 덴데라신전에도 이런것을 설치해두어야 할텐데. 아크릴 너머의 호루스와 파라오 그림이 매우 아름다왔다. 신전의 가장 안쪽 방은 바위산인 절벽을 파낸 동굴이라고 한다. 위층 신전을 나와 우리가 걸어온 넓은 길을 내려다보자 멕시코에서 본 테오티우아칸(피라미드)이 떠올랐다. 먼 옛날 고대 파라오들이 이곳에서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위엄을 떨쳤겠지. 아래로 내려와 둘러본다. 확실히 위층보다는 벽화가 많이 남아있다. 천장에는 남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노란색으로 팔이 5개 달린 불가사리같은 모양으로 별을 형상화 해놓았다. 홍천에 있는 워터파크에 가면 슬라이드 타는 곳의 천장을 바로 이것과 똑같이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기원전 1500년, 그러니까 3500년도 더된 채색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당시에 사용하던 여러가지 모양의 토기며 식물들을 참 구체적으로 자세하게도 그려놓았다. 이집트 벽화가 비슷비슷한것 같지만 만들어진 시대별로 또 장소의 중요성이나 특성별로 조금씩 다르다. 어제 보았던 덴데라 신전의 화려함과 섬세함의 극치였다면 핫셉수트 장제전은 천혜의 위치와 풍경이 말문을 막히게하는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신전을 바라보고 왼쪽끝에는 하토르 여신을 위한 장소가 있다. 덴데라신전에서 본것과 비슷한 커다란 여자머리가 있는 기둥들과 하토르 여신의 상징인 소가 많이 새겨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람세스 3세의 신전 '메디넷 하부(Medinet Habu)' 실컷 여유있게 구경을 하고 공원입구로 걸어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7분 거리의 메디넷 하부. 메디넷 하부에 도착해서 왼편의 주차장에 차를 잘 세워두고 신전으로 걸어갔다. 단체관광객들 사이에 함께 줄을서서 들어가려다 티켓을 사오라며 쫓겨났다. 매표소가 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머쓱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매표소 같은 곳이 없다. 지키는 경찰 같은 분에게 물어보니 저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알려준다. '매표소가 그렇게 멀리 따로 있다고?', 이해가 안되서 진짜인가 의아했지만 일단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입구가 몇개 되나? 그러면 말이 될 수도 있는 것 같고. 암튼 알려준 대로 가는 수 밖에. 사람들이 별로 안다닐 것 같은 흙길을 한 5~6분 걷다보니 현지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가봤자 매표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인데 이게 맞나 싶어 머뭇대다가 탄이 마을사람에게 매표소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가라고 한다. 많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다들 저쪽으로 가라고 하니 더 가보자. 그렇게 허허벌판 500미터를 더 걸어가서야 매표소가 진짜 있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표를 구입했다. 빠른 걸음으로 왕복 20분거리. 단체여행객들은 아마 가이드가 미리 표를 구해와서 매표소에 들릴 필요가 없으니 바로 입장하는 것 같다. 우리처럼 개인적으로 오는 경우는 이렇게 멀리 떨어진 매표소를 먼저 들러 표를 구입해오거나 이집트정부에서 판매하는 "룩소르 패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룩소르 패스는 5일간 룩소르의 주요 관광지를 제한없이 입장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 같은 것이다. 가격은 100달러이고 적용이 안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3일간 룩소르에서 낸 입장료는 인당 4만원 정도였어서 룩소르 패스는 패스했다. 어렵게 표를 사서 다시 왔던길로 돌아와 겨우겨우 메디넷 하부 신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메디넷 하부는 상부, 하부가 아니고 Medinet Habu라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무안했다. 이곳은 람세스3세의 장제전으로 알려져있는데 람세스 3세는 카이로 문명박물관 지하 미이라실에서 본적이 있던 분으로 고대 이집트가 더 이상 세계 제일의 국가가 아닌 시대에 왕이 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운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로 불리는 왕이다. 장제전의 크기와 규모를 보면 과연 그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벽에는 람세스 3세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내용의 벽화가 많았는데 당시 북쪽바다와 중동민족, 남쪽의 누비아, 사막민족등 사방에서 외세의 침략이 매우 잦아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었다고 한다. 메디넷 하부는 람세스 3세의 장례신전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쳐 증축이 되어 다양한 기능의 여러 건축물들로 구성된 복합신전이라고 한다. 높이 쌓은 탑같은 문을 지나니 안뜰이 나왔다. 건물들이 웅장하고 규모가 굵직한 것이 지금까지 본 여자 파라오들이 만든 두개의 신전과 확연히 비교가 된다. 덴데라와 핫셉수트신전은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압도하는 장엄함이 느껴진다. 커다란 두번째 문을 지나 두번째 안뜰에 들어서자 양옆에 높은 기둥들과 그 앞에 선 석상들이 보인다. 핫셉수트 장제전의 석상에 다섯배는 되보이는 커다란 석상들이 열을 지어 서있다. 석상들 옆에는 종아리까지 오는 작은 여자석상들도 있는데 아내인지 딸인지 아니면 하녀인건지 궁금했다. 이곳의 상형문자는 웬만해서는 지워지지 않도록 매우 깊게 조각되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후대의 파라오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많아 고치지 못하도록 깊이 새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번째 문까지 들어가자 아직 복원이 덜된것인지 기둥들도 밑둥만 남아있고 천장도 훤히 뚫려있었다. 미로처럼 여러개의 방이 있어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VR로라도 옛날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구현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9CWNcgV0IFg?si=zgvtiY47CN33zlX8>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24 19:12:55[파이낸셜뉴스] 경상북도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에서 5세기 금관가야의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이 나타났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오는 24일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조사성과 설명회를 연다고 22일 밝혔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의 왕궁 또는 왕성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봉황대 구릉을 중심으로 유적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여러차례 이뤄졌다. 그간의 조사에서 항구 창고터를 비롯해 야철터, 건물터, 조개무지, 환호, 토성, 지석묘 등 청동기 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유적이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연구소는 봉황대 구릉 동편의 경사면과 평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패각 성토층을 확인해 그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세부조사를 진행해 왔다. 연구소 조사 결과 봉황대 구릉 북동편의 저지대는 다량의 조개를 섞어 경사지게 켜켜이 다져 쌓아 대지 조성 및 확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구조물은 가야 당시의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이 조개껍질을 쌓아 성토한 토목 기술은 지반을 강화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여진다. 패각성토층은 최대 깊이가 4m로 길이는 주변 봉황토성 성벽까지 이어질 것을 고려하면 100m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성토 방법은 주로 넓은 대지를 조성할 때 이용된다. 경주 황룡사터와 부여 금강사터 등 삼국시대 절터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연구소는 봉황동 유적 성토층이 이들 유적보다 조성 시기가 앞서고 조개 껍질을 섞어 사용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측은 "금관가야의 전성기는 4세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규모의 공사가 5세기에 이뤄졌다는 것은 당시 지배층의 권력이 공고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봉황동 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자연과학적인 분석 연구 등을 통해 가야왕성의 실체를 밝힐 방침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0-22 14:39:33전라권 해상풍력발전 전기를 전력계통에 연결하기 위한 345㎸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 사업이 시작조차 못하고 삐걱대고 있다. 지역 주민의 반대로 첫 단추인 입지선정위원회(이하 입선위)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 이 송전선로의 최종 목적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점에서 사업이 지연될 경우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지역 반대로 첫단추도 끼우지 못해 지난 17일 찾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 인삼이 지역 최대의 특산품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345㎸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가 지나갈 후보지 중 하나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주변에서 '송전선로 반대' 플래카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전은 지난 2020년 발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이 송전선로 사업을 오는 2029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한전은 지난해 8월 1단계 광역 입선위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입선위를 개최하면서 법적 제약개소(군사보호시설, 문화재 보호구역 등)와 인구밀집지역 등을 제외했으며,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총 15개 후보지를 9개(정읍, 임실, 김제, 완주, 진안, 금산, 논산, 계룡, 대전)로 줄여놓았다. 문제는 2단계 입선위부터 제동이 걸린 점이다. 2단계 입선위에 참여하는 지자체 중 완주와 금산에서 입선위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해당 지역주민들은 한전이 이해관계가 밀접한 송전선로 통과 지역 주민들을 배제한 채 사업을 추진했고, 명확한 송전선 통과기준도 없는 등 절차상 하자가 많다는 입장이다. 특히 계룡과 정읍을 잇는 일직선상에 금산군이 없음에도 선정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부 주민은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는 지역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며 송전선로가 통과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 기업이 내려오는 것이 맞다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관계자는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은 금산군 내에서도 청정지역이고, 유적지가 많은 곳인데 하필 이곳으로 지나가느냐는 불만이 많다"며 "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입선위를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최근 (입선위에) 안 가면 우리 주민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해 참여에 대해 심사숙고 중"이라고 말했다. ■국가 미래 걸린 송전선로 건설 지역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송전선로를 추진하는 것은 국가 핵심산업인 '반도체'는 물론 신재생에너지 계통연결과도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 송전선로는 전남 신안 지역의 해상풍력(8.2GW) 및 전북 서남권 지역의 해상풍력(2.4GW)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 연결된다. 국내 신형원전 7기의 발전과 맞먹는 규모다. RE100(2050년까지 사용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조달)을 선언하는 기업이 매년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해당 송전선로가 갖는 가치는 크다. 더욱이 이 송전선로의 최종 목적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이다. 만약 해당 송전선로의 적기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면 국가 핵심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전 관계자는 "345㎸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정부의 탄소중립 및 탈석탄 실현을 위한 무탄소에너지의 전력계통 연계뿐만 아니라, 국내 미래 신사업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적기에 건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송전망 구축이 지연되면 전력을 만들어도 보낼 전력망이 없어 부득이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데 그 피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지고,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2024-10-20 18: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