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해 봉황동유적 서벽 토층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파이낸셜뉴스] 경상북도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에서 5세기 금관가야의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이 나타났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오는 24일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조사성과 설명회를 연다고 22일 밝혔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의 왕궁 또는 왕성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봉황대 구릉을 중심으로 유적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여러차례 이뤄졌다. 그간의 조사에서 항구 창고터를 비롯해 야철터, 건물터, 조개무지, 환호, 토성, 지석묘 등 청동기 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유적이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연구소는 봉황대 구릉 동편의 경사면과 평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패각 성토층을 확인해 그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세부조사를 진행해 왔다.
연구소 조사 결과 봉황대 구릉 북동편의 저지대는 다량의 조개를 섞어 경사지게 켜켜이 다져 쌓아 대지 조성 및 확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구조물은 가야 당시의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이 조개껍질을 쌓아 성토한 토목 기술은 지반을 강화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여진다. 패각성토층은 최대 깊이가 4m로 길이는 주변 봉황토성 성벽까지 이어질 것을 고려하면 100m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성토 방법은 주로 넓은 대지를 조성할 때 이용된다. 경주 황룡사터와 부여 금강사터 등 삼국시대 절터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연구소는 봉황동 유적 성토층이 이들 유적보다 조성 시기가 앞서고 조개 껍질을 섞어 사용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측은 "금관가야의 전성기는 4세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규모의 공사가 5세기에 이뤄졌다는 것은 당시 지배층의 권력이 공고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봉황동 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자연과학적인 분석 연구 등을 통해 가야왕성의 실체를 밝힐 방침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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