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억 형성에 핵심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국내 연구진이 찾아냈다. 서울대학교 강봉균 교수(생명과학) 연구팀은 생물의 장기기억을 형성하는 신호 전달 체계에서 ‘CAMAP’라는 특정 단백질이 ‘기억 신호 전달’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는 세계적인 생물학 관련 학술지인 ‘셀(Cell)’ 5월호에 실린다. 강 교수 연구팀은 외부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 체계에서 시냅스(신경 세포의 신경 돌기 말단이 다른 신경 세포에 접합하는 부위)에 존재하는 ‘CAMAP’라는 단백질이 학습 신호를 세포의 핵으로 전달한 뒤 장기기억에 필요한 단백질로 합성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CAMA가 신호전달의 전령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난해 3월 장기기억에 필요한 단백질을 발견해 해외 학술 저널에 발표한 바 있지만 외부 자극 신호를 시냅스에서 세포 핵으로 전달해 단백질 합성과 유전자 발현을 이끌어내는 단백질이 무엇인지는 규명되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한 연구에 주력해왔다. 강 교수는 “CAMAP와 같은 장기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전사인자(유전체의 발현을 조절하는 원인)들의 기능과 신호 전달 네트워크를 연구하면 인간의 기억을 제어하거나 치매·건망증 등 기억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2007-05-17 01:03:12새롭게 시작한 '오래된 만남 추구' 3기의 두근거림이 증폭 중이다. 지난 28일 KBS Joy·KBS2·GTV를 통해 방송한 '오래된 만남 추구'(이하 '오만추')는 시청률 2.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주 방송한 2기 마지막 회보다 0.5%포인트 상승한 모습이다. 2기 시청률이 1.3%~2.0%를 오갔던 것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출발이다. 송병철, 이규한, 박광재, 이켠, 장소연, 황보, 솔비, 홍자 등 총 8인의 출연진이 어떤 러브라인을 그려갈지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오만추' 3기 향후 관전 포인트를 살펴봤다. ◆ 오래된 인연, 오래될 연인 될까? 첫 만남에서 가장 화제가 된 오래된 인연은 황보와 이켠이었다. 두 사람은 22년 전 KBS2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에서 처음 만났던 사이로, 이켠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황보 누나를 꽤 좋아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켠의 마음을 처음 알게 된 황보는 "수줍음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날 좋아해서 그랬던 건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라며, 오래된 인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드러냈다. 8년 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연을 쌓은 솔비와 이규한은 첫인상 투표에서 서로를 선택했다. 솔비는 "둘이 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고 했고, 이규한은 "함께하면 더 즐거울 것 같다"며 상호 호감을 확인했다. 첫인상 투표에서 서로를 선택한 두 사람은 심야 드라이브 데이트 기회까지 얻게 됐다. 여기에 2기 멤버 박광재의 재출연도 시선을 끌었다. 그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며 다시 한번 용기를 낸 이유를 말했다. 특히 멜로를 찍어보고 싶다는 박광재의 진정성 있는 고백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 역대 최연소 라인업…더 가까워진 거리감 3기의 가장 큰 차별점은 연령대다. 3기 출연진의 평균 나이는 44세로, 1기 출연진이 평균 나이 52세, 2기가 평균 46세였던 것에 비해 젊어졌다. 최연소 출연자 홍자부터 최연장자 송병철까지 나이 차이가 6세에 불과해 또래 의식과 공감대 형성이 더욱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이규한은 자기소개에서 "40대가 돼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니 아쉬운 점이 친구가 없더라.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전혀 없었다"며 "자격지심이 있었다. 어느 순간 동료들이 경쟁상대로 보였다"고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런 40대 특유의 고민과 성찰이 같은 연령대 출연진들 사이에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호감 포인트로 작용할 전망이다. ◆ 룰의 변화, 설렘의 방식도 달라진다 룰 변경도 새로운 흥미 요소다. 지난 기수와 달리 이번 3기에서는 첫인상 투표에서 서로 선택한 남녀만 1대1 심야 드라이브 데이트를 나갈 수 있게 됐다. 이규한과 솔비가 이 혜택의 첫 주인공이 된 가운데, 두 사람의 데이트가 향후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연 여행의 첫 데이트 방식도 달라진다. 1기에서는 체육복 색깔, 2기에서는 캠핑, 자전거, 요트, 테니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해 함께 데이트할 상대를 결정했다. 반면, 이번 3기에서는 첫 데이트부터 여자 출연자들이 직접 상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여자 출연자들의 결정은 3기 러브라인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래된 만남 추구'는 매주 월요일 오후 9시 50분 KBS Joy·KBS2·GTV에서 동시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KBS Joy-KBS2 '오래된 만남 추구' 3기
2025-07-30 10:28:37[파이낸셜뉴스] 금융 공간의 긴장감을 낮추고, 브랜드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향기 마케팅이 국내 금융권에서도 본격 도입됐다. 글로벌 향기 마케팅 기업 아이센트(iSCENT)는 전북은행과 협업해 국내 최초로 전 지점에 통합된 시그니처 향기를 적용, 후각을 통한 브랜드 경험을 선보였다. 글로벌 향기 마케팅 전문 기업 아이센트는 전북은행과 함께 국내 금융권 최초로 전 지점에 동일한 시스템으로 향기를 도입하는 ‘전북은행 시그니처 향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협업은 후각을 통해 고객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고객경험 전략의 일환이다. 아이센트의 전속 조향사이자 세계적인 퍼퓸 디자이너인 레이몬드 매츠(Raymond Matts)가 개발에 참여한 이 향은 아로마틱 우디 계열을 기반으로, 편안하고 건강한 자연의 이미지를 담았다. 레이몬드 매츠는 에스티로더, 클리니크, 애버크롬비&피치 등 세계적인 브랜드 향수를 총괄한 경력을 보유한 인물로, 현재 미국 향기 마케팅 기업 Prolitec의 수석 디자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향기는 고객이 은행을 방문했을 때 불필요한 긴장을 낮추고, 서비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금융 공간은 특성상 긴장과 불안이 동반될 수 있는 환경인 만큼, 후각을 통한 정서적 안정 제공이 고객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북은행 시그니처 향기는 현재 전주, 익산, 군산, 대전, 서울 등 주요 거점 지점에서 먼저 도입됐으며, 향후 전국 지점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고객은 지점 내 공간뿐만 아니라 시향지, 퍼퓸 스프레이 형태를 통해 동일한 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아이센트 최아름 대표는 “향기는 고객 경험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브랜드와의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금융 공간에서도 감각적 브랜딩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다. 전북은행 관계자는 “시그니처 향기 도입은 고객이 은행 서비스를 보다 따뜻하고 친근하게 체감하도록 돕기 위한 전략”이라며 “브랜드 철학을 공간 전체에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후각은 오감 중 유일하게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와 직접 연결돼 있는 감각이다. 아이센트는 이러한 감각적 특성을 활용해 금융, 유통, 문화 공간 등에서의 향기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자세한 내용은 전북은행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mosdy@fnnews.com 이대율 기자
2025-07-25 14:46:59【파이낸셜뉴스 제주=유선준 기자】 "오랜 세월 말할 수 없었던 슬픔과 아픔의 진실이 침묵을 깨고 세계의 기억, 인류의 기억이 됐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 위패봉안실. '제주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봉헌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내내 화창했지만, 행사가 진행될 때쯤 갑작스레 구슬비가 내리며 어두컴컴해졌다. 진실 규명을 위해 참고 버텨야 했던 수많은 세월이 한에 맺힌 듯 영령들의 구슬픈 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오영훈 제주지사와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정영남 제주재향경우회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등은 위령 제단에 헌화 분향 후 이날 도착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를 봉헌했다. 지난 4월 등재된 제주 4·3 기록물에는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27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증언(1만4601건),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운동 기록(42건),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3건) 등 1만4673건의 역사적 기록이 포함됐다. 오 지사는 "당신들의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당신들의 외침이 세계를 울렸음을, 이제 우리는 전 세계에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제주 4·3의 진실이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씨앗이 되도록, 이 땅의 아픔이 인류의 지혜로 승화되도록 우리는 계속 걸어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 제주도는 연간 1300만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움했지만, 그 이면에는 제주 4·3사건의 아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발포가 발단이 됐다. 3·1절 기념식 행사 직후 기마경찰이 어린아이를 쳤음에도 조처를 하지 않자, 분노한 민중들이 경찰서로 몰려갔다. 경찰은 군중을 향해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 총파업이 발생했다. 미 군정은 '제주도 주민 70%가 좌익 또는 그 동조자'라며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로 규정했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과 경찰·대한청년단·서북청년단(서청)의 검속과 학살, 남로당의 무장 봉기, 계엄령 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 검속 및 즉결 처분 등이 이어졌다. 1947년 3·1절 발포 사건과 1948년 4·3 무장 봉기로 시작된 제주 4·3사건은 7년 7개월 만인 1954년 9월 21일에서야 끝이 났다. 희생자만 1만4935명에 달했다. 이는 확인된 피해만 집계된 것으로, 도민의 10분의 1인 약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참담한 비극은 희생자 33%가 노인이나 어린이, 여성이었던 것이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한국기자협회 제주 4·3 팸투어'를 통해 지켜본 제주 4·3사건의 현장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1947년 3·1 발포 사건이 일어났던 '관덕정' △4·3 시기에 한라산에서 하산한 주민들의 수용소인 '주정 공장' △4·3 시기 북촌리 학살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너븐숭이 기념관' △성산면 주민들이 학살된 '터진목' △학살을 자행했던 서청 주둔지(성산 동초등학교) △오조리 주민들이 학살된 곳인 '우뭇개 동산' △표선면 주민들이 학살된 곳인 '한모살' △표선면 주민들이 소개령으로 수용됐던 '표선초등학교' △4·3 시기 희생된 가시리 주민 430여명을 위령하는 '가시리 위령비' △4·3 시기 하도리·종달리 주민 11명이 굴속에서 희생된 '다랑쉬굴' 등을 돌며 억울하게 희생된 4·3사건 피해자들의 흔적을 묵묵히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너븐숭이 4·3 기념관'은 이날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 의미가 깊다. 북촌리 주민 400여명이 몰살된 이곳은 애기무덤 20여기가 아직도 군락을 형성해 있어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400여명이 희생된 성산 터진목 학살 현장도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외로이 바다만을 향하고 있었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성산봉이 있는지라 터진목은 상대적으로 외면받는 모양새였다. 이밖에 '다랑쉬굴'도 허허벌판에서 강한 바람을 맞으며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하도리·종달리 주민 11명이 학살을 피해 굴속에 피신하자, 서청 등 병력이 굴속에 연기를 피워 질식하게 만든 장소다. 팸투어 해설을 맡은 전영미 제주역사문화해설연구회 대표는 "오랫동안 '빨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고통을 받은 4·3 희생자와 유족은 탄압에도 끊임없이 증언을 이어갔고, 결국 유네스코 등재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제주는 가해자였던 사람들을 포용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7-24 18:16:32【제주=유선준 기자】 "오랜 세월 말할 수 없었던 슬픔과 아픔의 진실이 침묵을 깨고 세계의 기억, 인류의 기억이 됐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 위패봉안실. '제주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봉헌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내내 화창했지만, 행사가 진행될 때쯤 갑작스레 구슬비가 내리며 어두컴컴해졌다. 진실 규명을 위해 참고 버텨야 했던 수많은 세월이 한에 맺힌 듯 영령들의 구슬픈 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오영훈 제주지사와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정영남 제주재향경우회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등은 위령 제단에 헌화 분향 후 이날 도착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를 봉헌했다. 지난 4월 등재된 제주 4·3 기록물에는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27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증언(1만4601건),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운동 기록(42건),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3건) 등 1만4673건의 역사적 기록이 포함됐다. 오 지사는 "당신들의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당신들의 외침이 세계를 울렸음을, 이제 우리는 전 세계에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제주 4·3의 진실이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씨앗이 되도록, 이 땅의 아픔이 인류의 지혜로 승화되도록 우리는 계속 걸어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 제주도는 연간 1300만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움했지만, 그 이면에는 제주 4.3사건의 아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발포가 발단이 됐다. 3·1절 기념식 행사 직후 기마경찰이 어린아이를 쳤음에도 조처를 하지 않자, 분노한 민중들이 경찰서로 몰려갔다. 경찰은 군중을 향해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 총파업이 발생했다. 미 군정은 '제주도 주민 70%가 좌익 또는 그 동조자'라며 제주도를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로 규정했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과 경찰·대한청년단·서북청년단(서청)의 검속과 학살, 남로당의 무장 봉기, 계엄령 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 검속 및 즉결 처분 등이 이어졌다. 1947년 3·1절 발포 사건과 1948년 4·3 무장 봉기로 시작된 제주 4·3사건은 7년 7개월 만인 1954년 9월 21일에서야 끝이 났다. 희생자만 1만4935명에 달했다. 이는 확인된 피해만 집계된 것으로, 도민의 10분의 1인 약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참담한 비극은 희생자 33%가 노인이나 어린이, 여성이었던 것이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한국기자협회 제주 4·3 팸투어'를 통해 지켜본 제주 4.3사건의 현장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1947년 3·1 발포 사건이 일어났던 '관덕정' △4.3 시기에 한라산에서 하산한 주민들의 수용소인 '주정 공장' △4.3 시기 북촌리 학살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너븐숭이 기념관' △성산면 주민들이 학살된 '터진목' △학살을 자행했던 서청 주둔지(성산 동초등학교) △오조리 주민들이 학살된 곳인 '우뭇개 동산' △표선면 주민들이 학살된 곳인 '한모살' △표선면 주민들이 소개령으로 수용됐던 '표선초등학교' △4.3 시기 희생된 가시리 주민 430여명을 위령하는 '가시리 위령비' △4.3 시기 하도리·종달리 주민 11명이 굴속에서 희생된 '다랑쉬굴' 등을 돌며 억울하게 희생된 4.3사건 피해자들의 흔적을 묵묵히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너븐숭이 4·3 기념관'은 이날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 의미가 깊다. 북촌리 주민 400여명이 몰살된 이곳은 애기무덤 20여기가 아직도 군락을 형성해 있어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400여명이 희생된 성산 터진목 학살 현장도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외로이 바다만을 향하고 있었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성산봉이 있는지라 터진목은 상대적으로 외면받는 모양새였다. 이밖에 '다랑쉬굴'도 허허벌판에서 강한 바람을 맞으며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하도리·종달리 주민 11명이 학살을 피해 굴속에 피신하자, 서청 등 병력이 굴속에 연기를 피워 질식하게 만든 장소다. 팸투어 해설을 맡은 전영미 제주역사문화해설연구회 대표는 "오랫동안 '빨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고통을 받은 4.3 희생자와 유족은 탄압에도 끊임없이 증언을 이어갔고, 결국 유네스코 등재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제주는 가해자였던 사람들을 포용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7-24 10:45:33[파이낸셜뉴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리버풀이 최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디오구 조타(Diogo Jota)의 등번호 2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며,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의 존재를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충격적인 비보에 슬픔에 잠긴 팬들에게 전하는 구단의 깊은 애도이자, 조타의 헌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다. 리버풀 구단은 12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등번호 20번은 리버풀의 수많은 승리를 이끈 조타의 자부심과 탁월함이 담긴 번호"라며, "조타는 앞으로 영원히 리버풀의 '20번'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단은 조타의 아내 루트 카르도소와 유족과의 신중한 협의 끝에, 1군 선수단은 물론 여자팀과 유소년팀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20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조타는 2020년 울버햄프턴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뒤, 빠른 발과 탁월한 득점력을 앞세워 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공식전 182경기에서 65골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22년 FA컵과 리그컵 우승에 기여했고, 2024년에도 리그컵 트로피를 추가하며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리버풀의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에도 힘을 보태며 팀과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유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새벽, 조타는 동생인 안드레 조타와 함께 스페인 사모라에서 차량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그가 아내와 결혼식을 치른 지 불과 10일 만에 참변을 당했다는 점이다. 이 소식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리버풀은 조타를 기리며 홈페이지에 '포르투갈에서 온 우리의 동료. 영원한 디오구 조타'라는 제목의 추모 영상을 공개하는 등 애도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현지시간 11일에는 리버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가 조타의 가족들과 함께 홈구장인 안필드 외부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리버풀은 오는 13일 예정된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프리시즌 친선전에서도 조타와 그의 동생 안드레를 위한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킥오프 직전 리버풀의 상징적인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이 안필드에 울려 퍼질 예정이며, 홈팀 프레스턴은 원정 응원단과 함께 추모 화환을 헌정하기로 했다. 양 팀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1분간 묵념을 진행한 뒤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2025-07-12 18:06:38[파이낸셜뉴스] 토스뱅크의 뇌 건강 관리 서비스 ‘하루 1분 뇌 운동’이 출시 약 15일 만에 누적 참여자 50만명을 돌파했다. 토스뱅크는 40대 이상 고객의 참여 비중이 58.2%에 달한다고 9일 밝혔다. 액티브 시니어의 일상 속에 새로운 뇌 건강 루틴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는 설명이다. 토스뱅크가 선보인 ‘하루 1분 뇌 운동’은 기억력과 연산력을 훈련하는 게임형 콘텐츠다. 게임 참여만으로도 리워드를 받을 수 있어 출시 초기부터 입소문이 났다. 카드 짝 맞추기(기억력 훈련)와 영수증 계산 문제(연산력 훈련)를 번갈아 즐기며 '뇌'를 단련할 수 있다. 게임 난이도는 점진적으로 높아져 꾸준한 뇌 자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게임 참여로 받은 리워드는 토스뱅크 통장으로 즉시 출금할 수 있어 재미와 건강은 물론 금융 혜택까지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토스뱅크 조사에 따르면 이 서비스의 평균 참여 연령은 41.4세이며, 가장 많은 참여를 보이는 연령대는 50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50대 이상 고객의 참여 비중은 약 37.5%에 달하는 등 시니어 고객층의 높은 호응을 입증했다. ‘하루 1분 뇌 운동’은 단순히 일회성 참여에 그치지 않고, 고객들의 꾸준한 참여를 유도하며 건강한 습관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누적 참여자 50만명 중 약 29%가 3일 이상, 18%가 5일 이상 게임에 참여하며 높은 재방문율을 보였다. 전체 고객의 13%는 7일 연속으로 뇌 운동에 참여하는 등 견고한 참여율을 자랑한다. 연산력 훈련인 ‘영수증 계산 문제’ 게임의 평균 뇌 나이는 약 27.6세를 기록했으며, 기억력 훈련인 ‘카드 짝 맞추기’ 게임은 38.2세로 나타났다. 요일별로는 목요일이 가장 이용자가 많았으며, 시간대별로는 오전 8시에 가장 많은 고객이 뇌 운동 서비스에 참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2025-07-10 15:55:05[파이낸셜뉴스] "추상은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개인의 서사와 시대의 상흔이 축적돼 있다." 미국과 한국의 추상 회화 거장들이 '네모'라는 단순한 도형 안에서 만났다. '네모'는 라틴어로 '아무것도 아닌 자'를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채울 수 있는 공간도 된다. 이들이 채워가는 '네모'는 서로 다른 문화권과 시대적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형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 정체성에 대한 질문, 사회적 기억에 대한 성찰이 스며있다. 한국 기획자 엄태근 큐레이터와 손잡고 공동 기획한 윤형근·정상화·맥아서 비니언·스탠리 휘트니 작가의 기획전 '네모: Nemo'전(展)이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린다. 엄 큐레이터는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평론가로, 동시대 추상회화의 언어를 한국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번역해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형식 너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리만머핀이라는 글로벌 갤러리와 함께 구현한 대형 프로젝트다. 그는 네 작가의 공통점으로 △형식에 대한 치열한 사유 △정체성과 시대에 대한 성찰 △감정의 물성을 추상 언어로 변환해낸 점을 꼽았다. 단순히 사각형을 반복하는 작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각각의 '네모'는 한 사람의 삶, 하나의 시대, 하나의 공동체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윤형근 작가는 고통과 침묵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 현대사의 정신적 초상으로 푸른색과 갈색을 반복해 발라 '하늘과 땅의 문'을 그렸다. 색은 그에게 상징이자 묵언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Blue Umber(1978)'는 린넨에 유채이며 화면 중앙을 기준으로 양옆에 수직의 띠가 한 쌍이 배치돼 있다. 주된 색조는 암갈색과 청색으로 이 띠들은 부드럽게 번지며 화면 가장자리로 퍼져 나간다.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침묵과 여백이며 수직 띠는 기둥이나 문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강한 상징성과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상화 작가는 '벗기고 칠하는' 단색화의 물성 실험을 통해 추상이 갖는 물리적 저항을 보여준다. 사각형은 그에게 노동이자 수행이었다. 특히 '무제 855-6(1985)'은 화면 전체를 짙은 청색 톤으로 채우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를 접고 균열을 낸 뒤 그 틈을 파란색으로 반복해 메우는 방식으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완성했다. 스탠리 휘트니 작가는 재즈의 즉흥성과 색의 리듬을 격자 구조 안에 담아낸다. 단순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폭발하는 감각은 도시의 리듬, 혹은 인종적 삶의 진폭과 닮아 있다. 이번 전시작 'Untitled(2020-21)'는 그의 대표적인 방식인 화려한 직사각형 '블록' 그리드 구성으로 노랑, 연두, 주황, 분홍 등 다채로운 색조로 채워져 있다. 붓질은 풍부하면서도 절제돼 있으며, 각각의 색면은 선명하지만 동시에 물감의 흘러내림으로 그리드의 '침범'을 볼 수 있다. 구조 안에서는 일종의 리듬감을 유지하고, 경계선은 종종 부드럽게 처리되거나 미묘하게 겹쳐 색면 간의 흥미로운 상호 작용을 만들어낸다. 맥아서 비니언 작가는 콜라주, 드로잉, 페인팅을 결합해 사적 문서와 사진 위에 격자무늬 그리드를 중첩시키는 자전적 추상 작업을 선보인다. 출생증명서, 주소록, 전화번호부, 유년 시절의 그림 등 그의 개인사가 담긴 재료들은 오일 스틱으로 그린 격자 위에서 은폐되고 추상화된다. 프린트 연작 'Berkeley:Suite(2018)'는 1973~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거주한 기억과 역사적 서사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렌즈로 작용한다. 그 곳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문서들은 비록 즉각적으로 읽히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가 그린 선과 색채의 여러 겹 아래에 삽입돼 질감 있고 암호화된 듯한 시각 언어를 형성한다. 엄 큐레이터는 "'네모'는 단순한 도형이 아니고, 반복과 겹침을 통한 저항이자 균열을 품은 침묵"이라며 "그 틈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고백이기도 한데, 네 개의 점이 선으로 연결돼 하나의 형체가 이루듯, 각각의 '네모'인 개별적인 작품들은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고 평했다. 한편, 리만머핀은 1996년 라쉘 리만과 데이비드 머핀이 미국 뉴욕에 설립한 세계적인 갤러리로, 미국과 유럽, 아시아로 지리적 확장을 도모해 왔다. 현재 갤러리는 뉴욕, 서울, 런던에 상설 전시 공간을 두고 있고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팜비치에도 팀을 운영 중이다. 최근 리만머핀은 새로운 시장의 성장 기회에 발맞춰 아스펜과 팜비치, 타이베이, 베이징 및 밀라노에 시즌별 전시 공간을 마련한 바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7-03 12:05:27"그림에서든, 조각에서든 나의 어떤 맑은 기운과 관조자의 맑은 기운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길 소망한다."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 이강소 작가(82)가 50년간 걸어온 실험 미술과 사유의 여정을 응축해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다. 글로벌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은 이 작가와 손잡고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첫걸음인 개인전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 전(展)을 오는 8월 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9월 이 작가가 타데우스 로팍과 전속 계약을 체결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전시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독창적이고도 선구적인 위치를 확립한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설치,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 20여점이 소개된다. 전시 제목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는 퇴계 이황의 시조 '도산십이곡' 제2곡에서 인용됐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자아를 우주적 질서에 조율하고자 했던 퇴계의 세계관은 이 작가가 예술에 임하는 자세와도 겹친다. 이강소 작가는 "퇴계의 자연관에 깊이 공명하며, 나의 예술 또한 자아를 표출하거나 고정된 실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세계의 흐름과 조응하는 행위"라며 "마음과 우주가 하나가 되면 이때 나도 남도 탈각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회화는 동아시아 수묵화의 사유와 서예적 붓질, 인상주의적 색채가 공존한다. 그의 유려한 붓놀림은 윌렘 드 쿠닝, 사이 톰블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는 자아를 전면화하기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상태를 지향한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회화 대표작 '섬에서-03037(2003)'는 안개처럼 흐릿하게 번지는 기운 위에 수직으로 교차하는 선들을 통해 섬이나 해안가와 같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런 형상은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관람객들의 기억과 감각을 자극하며 작품을 마주한 각자 만의 해석에 다다르게 된다. 관람객이 자신의 기억 속 풍경이나 경험을 투영함으로써 작품과 관계를 맺고 그로써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길 기대한다고 이 작가는 전했다. 또 다른 회화 대표작 '청명淸明-16229(2016)'은 유려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붓놀림이 서예와 수묵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가 엿보이며 대담하고 즉흥적인 필치가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이런 표현은 단순한 형상이나 구성의 차원을 넘어 작가의 신체적 리듬과 정서적 에너지가 응축된 움직임의 흔적으로 작용하며 작가 고유의 '기운생동'의 에너지가 작품 전반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조각 역시 회화의 제스처가 공간으로 확장된 결과다. 청동작 '무제-94095(1994)'는 평면의 붓질을 입체로 구현했다. 타는 '배'를 둘러싸고 놓인 조각 덩어리들은 작가 특유의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붓놀림을 연상시키며 회화에서 나타나는 필치의 에너지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듯한 형상을 띤다. '팔진도(1981/2017)'도 마치 솟아오른 산맥처럼 공간을 장악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는다. 이 작품은 중국 삼국지 최고의 전략가인 제갈량의 전략에서 착안한 것으로,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전술적 진형인 팔진도에서 영감을 받아 여덟 개의 문을 갖춘 구조로 설계됐다. 특히 이 설치는 장소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무한히 변주될 수 있도록 고안했다. 겉보기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부에는 관람객이 스스로의 길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질서 있는 동선이 숨어있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구성한 팔진 속으로 들어가 직접 길을 찾아가며 각자의 속도와 흐름에 따라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타데우스 로팍 측은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폭넓게 아우른 전시"라며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독창적이고도 선구적인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자리"라고 평했다. 한편, 이 작가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비롯해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며 국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2021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에서는 '청명' 시리즈와 '강에서' 연작을 통해 '기(氣)'의 표현을 강조하며 유럽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6-26 18:38:59[파이낸셜뉴스] "그림에서든, 조각에서든 나의 어떤 맑은 기운과 관조자의 맑은 기운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길 소망한다."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 이강소 작가(82)가 50년간 걸어온 실험 미술과 사유의 여정을 응축해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다. 글로벌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은 이 작가와 손잡고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첫걸음인 개인전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 전(展)을 오는 8월 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9월 이 작가가 타데우스 로팍과 전속 계약을 체결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전시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독창적이고도 선구적인 위치를 확립한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설치,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 20여점이 소개된다. 전시 제목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는 퇴계 이황의 시조 '도산십이곡' 제2곡에서 인용됐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자아를 우주적 질서에 조율하고자 했던 퇴계의 세계관은 이 작가가 예술에 임하는 자세와도 겹친다. 이 작가는 "퇴계의 자연관에 깊이 공명하며, 나의 예술 또한 자아를 표출하거나 고정된 실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세계의 흐름과 조응하는 행위"라며 "마음과 우주가 하나가 되면 이때 나도 남도 탈각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회화는 동아시아 수묵화의 사유와 서예적 붓질, 인상주의적 색채가 공존한다. 그의 유려한 붓놀림은 윌렘 드 쿠닝, 사이 톰블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는 자아를 전면화하기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상태를 지향한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회화 대표작 '섬에서-03037(2003)'는 안개처럼 흐릿하게 번지는 기운 위에 수직으로 교차하는 선들을 통해 섬이나 해안가와 같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런 형상은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관람객들의 기억과 감각을 자극하며 작품을 마주한 각자 만의 해석에 다다르게 된다. 관람객이 자신의 기억 속 풍경이나 경험을 투영함으로써 작품과 관계를 맺고 그로써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길 기대한다고 이 작가는 전했다. 또 다른 회화 대표작 '청명淸明-16229(2016)'은 유려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붓놀림이 서예와 수묵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가 엿보이며 대담하고 즉흥적인 필치가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이런 표현은 단순한 형상이나 구성의 차원을 넘어 작가의 신체적 리듬과 정서적 에너지가 응축된 움직임의 흔적으로 작용하며 작가 고유의 '기운생동'의 에너지가 작품 전반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조각 역시 회화의 제스처가 공간으로 확장된 결과다. 청동작 '무제‑94095(1994)'는 평면의 붓질을 입체로 구현했다. 타는 '배'를 둘러싸고 놓인 조각 덩어리들은 작가 특유의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붓놀림을 연상시키며 회화에서 나타나는 필치의 에너지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듯한 형상을 띤다. '팔진도(1981/2017)'도 마치 솟아오른 산맥처럼 공간을 장악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는다. 이 작품은 중국 삼국지 최고의 전략가인 제갈량의 전략에서 착안한 것으로,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전술적 진형인 팔진도에서 영감을 받아 여덟 개의 문을 갖춘 구조로 설계됐다. 특히 이 설치는 장소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무한히 변주될 수 있도록 고안했다. 겉보기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부에는 관람객이 스스로의 길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질서 있는 동선이 숨어있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구성한 팔진 속으로 들어가 직접 길을 찾아가며 각자의 속도와 흐름에 따라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타데우스 로팍 측은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폭넓게 아우른 전시"라며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독창적이고도 선구적인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자리"라고 평했다. 한편, 이 작가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비롯해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며 국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2021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에서는 '청명' 시리즈와 '강에서' 연작을 통해 '기(氣)'의 표현을 강조하며 유럽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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