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탄 포자르는 최근까지 크레디트스위스 투자 전략 부문에서 담당으로 있었던 금융·투자 분야 전문가다. 2015년 크레디트스위스에 합류하기 전에는 미국 재무부에서 부채 관리, 금융 연구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선임고문을 지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경에는 뉴욕연방준비은행에 합류해 '기간자산담보부증권대출기구(TALF)'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등 정책 자문을 지원했다. 이 외에도 IMF, G20 워킹그룹, G7 국가에 재무 정책·솔루션을 진단하기도 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다. 이미 일어난 일로 인해 무너진 신뢰도 다시 얻기까지는 매우 힘들다. 지정학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장 내일 일단락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일어난 통화 패권 다툼 등 부수적인 효과를 당장 해결하기는 힘들다." 지난 4월 19일 파이낸셜뉴스가 주최한 2023 FIND·제24회 서울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한 졸탄 포자르 이코노미스트는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 여부 전망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현상도 팬데믹 등 이미 일어난 일들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속될 것이라고 짚었다. 다음은 졸탄 포자르 이코노미스트와의 일문일답. ㅡ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우선 지금의 지정학적 위험과 갈등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여나 지정학적 갈등이 완화돼도 달러패권에 대한 다른 통화의 도전 등 통화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 되돌리기 힘든 법이다. 여기에 더해 G7이 러시아로부터 환매 가능한 예금을 압류하면서 달러의 신뢰도에도 금이 갔다고 생각한다. 기존 달러를 중심으로 묶인 통화 간 상호관계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전 세계의 지정학적 구도 또한 기존 일강체제에서 다중체제로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장 일단락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이는 되돌릴 수 없다. ㅡ달러 패권도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전망하나. ▲달러가 내일 당장 없어질 일은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 20년 후에도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다만 몇몇 변곡점을 겪으면서 위안화와 같은 다른 통화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통화의 강세는 달러를 희생시키기 마련이다. 유로의 탄생 이후 유로는 외환보유액 중 30% 비중을 차지한 적도 있다. 이처럼 만약 중국이 수출 영역에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위안화가 원자재 등 영역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면 더 많은 목소리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위안화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다. ㅡ통화정책뿐 아니라 산업정책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우리는 연방준비제도(Fed)와 같은 중앙은행의 정책에만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최근 총재가 바뀐 일본은행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일본은행의 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금리는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 등에만 관심이 크다. 하지만 산업정책 또한 금융정책에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정·산업 정책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한 이유다. 산업정책 또한 각 국가별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급격한 금리인상 속도·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양적완화, 속도조절, 인센티브 등이 그것들이다. 동시에 에너지전환, 그린에너지 산업도 눈여겨봐야 한다. ㅡ인플레이션과 고금리는 얼마나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상품 공급량을 넘어서는 많은 양의 통화를 시장에 부었다. 이에 따라 약 3년간 인플레이션은 계속 있어 왔다. 미국에선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추세를 반영하는 근원물가지수는 여전히 오름세에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점점 둔화하는 추세다. 아울러 미국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률을 보이고 있고, 임금상승률도 높다. 근원물가지수는 계속해서 뛸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원자재, 식음료, 에너지 등 시장은 포화 상태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은 당분간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최소 향후 5년간 2% 미만으로 내려갈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ㅡ지난 SVB 사태 등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은행의 위기(Banking Crisis)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은행위기였다면 연준이 지금보다 더 신속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SVB 사태는 은행의 시스템 문제라기보다 시장 불안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자금 인출이 지나치게 빠르게 이뤄진 기이한 현상이라고 본다. 이런 현상은 시스템만으로 통제하기 힘들다. 연준이 보증을 서겠다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외 다른 큰 은행들의 실적을 봐도 이로 인한 영향도 없어 보인다. 지방은행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사태들은 은행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은행공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ㅡ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주지 않았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는 은행 시스템에 더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은행부도가 시장 신뢰도를 낮추거나 부채 포트폴리오에 영향을 미치는 등 시장에 타격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이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고,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비한 제도와 정책을 지원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생각한다. ㅡ주식시장이 급변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눈여겨보는 종목 분야가 있는지. ▲아무래도 원자재 시장이 유망하지 않나 보고 있다. 최근 지정학적 문제로 인해 원자재 부족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상황이다.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에너지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기름값은 더 오를 개연성이 높다. 이에 따라 관련 기업의 실적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친환경 에너지 등 에너지 정책에 대한 관심도 이전 대비 증가한 점도 긍정적이다. 현금과 주식 보유 비율은 반반으로 정하는 것도 추천한다. 현재 현금은 보유하기 좋은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펀드에 투입해도 수익률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높은 이자율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예금 투입 등 방법 기반의 현금 보유도 좋은 방법이다. jhyuk@fnnews.com 김준혁 김예지 기자
2023-06-12 18:00:34중국 디지털위안 계좌가 1억4000만개를 돌파했다. 중국 인구의 약 10분의 1이 디지털위안을 한번 이상 사용한 것이다. 총 거래액은 1년만에 30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디지털위안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실제 이용자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위안 계좌 1억4000만개 6일(현지시간)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 무장춘 디지털통화연구소장은 "일상 거래에서 현금을 대체하는 디지털위안이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개인용 디지털위안 계좌수는 1억4000만개에 달했고, 기업용 계좌수는 1000만개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디지털위안의 공식 출범일은 아직 미정이지만, 중국 정부는 중국내 12개 지역에서 시험테스트를 진행했다. 또 전력회사, 케이터링 서비스, 운송, 정부 서비스 등 광범위하게 디지털위안을 수용하면서 2021년 10월 현재 디지털위안 거래액은 620억위안(약 1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1년 전 디지털위안 거래액 20억위안(약 3700억원)보다 약 30배 이상 거래 규모가 증가한 것이다. 디지털위안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전화번호만 있으면 된다. 기본계좌는 연간 최대 5만위안(약 930만원)을 사용할 수 있으며, 한도 무제한 계좌를 열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은행에 방문하면 된다. 중국 정부는 현금 결제를 디지털위안으로 완전히 대체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지난 해 4월부터 주요 도시에서 시험테스트를 꾸준히 진행했다. 디지털위안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중국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디지털 결제시장 통제…달러 패권 도전 디지털위안 공식 출시일은 미정이지만 중국 정부는 내년 2월 4일 개막하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디지털위안 이용을 장려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디지털위안을 통해 디지털 결제 시장을 통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올해 비트코인(BTC) 등 가상자산의 채굴과 결제를 강력하게 단속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외부적으로는 전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위안을 해외에서도 결제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미국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위안화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안화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고, 달러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이 강화됐다. 지난 10년간 위안화의 세계 결제 통화 점유율은 2010년 35위에서 2021년 5위로 상승했다. 그러나 위안화가 세계 결제 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이후 점유율 순위가 5위로 정체돼 있다. 반면 미국 달러는 38%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달러 대비 우위를 점하기 위해 디지털위안을 내세웠으며, 국제적인 채택을 가속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기자
2021-11-07 18:49:26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유럽연합(EU)이 국제 결제시장에서 달러를 몰아내고 유로를 띄우기 위한 청사진을 내놓기로 했다. EU는 유로를 기축통화중에 으뜸으로 만들어 무역 갈등과 이란 제재 등 미국과 마찰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여러 세력으로 갈라진 국제 질서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가 작성한 유로 유통 증진안의 초안을 입수했다며 EU가 이를 5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초안에 따르면 EU는 국제 에너지·상품 거래, 항공기 제조 분야같은 "전략적인 영역"에서 유로 사용을 늘리고 유로가 "보다 강력한 국제적 역할"을 맡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초안에서 EU는 우선 각국 정부가 에너지 관련 계약을 할 때 지불 수단을 유로로 하도록 정치적인 압박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유로 기반의 금융 거래를 장려하고 유로 결제시스템 발전을 촉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EU는 일부 파생상품들에 유로 중심 청산소 이용을 강제해 유로 표시 증권의 유동성을 조성할 예정이다. 아울러 유럽과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로를 결제통화로 사용하려 할 경우 기술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EU는 이러한 대책을 통해 다극화된 세계 질서에서 "유로의 정치적, 경제적, 금융적 무게"를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가 적극적으로 유로 홍보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정부와의 갈등 때문이다. EU는 초안에서 달러가 "파생상품 거래에서 지배적인 위치가 됐다"며 "최근 국제적으로 규칙에 기반을 둔 관리체계와 무역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무역 불균형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던 양측은 미국이 지난 5월에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하자 더욱 극명하게 대립했다. 미국은 지난 2015년에 EU 주요 회원국들과 공동으로 이란의 핵프로그램 억제와 국제적인 이란 제재 해제를 골자로 하는 합의에 성공했으나 트럼프 정부는 이를 독단으로 탈퇴하고 2개 단계에 걸쳐 제재를 복원했다. 그 결과 미 달러 중심의 국제 결제 체계를 이용해야 하는 EU 기업들 역시 미국의 제재 때문에 이란과의 거래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현재 EU의 에너지수입 80% 이상은 달러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EU 측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세워 이란과 거래를 지속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어느 회원국이 이를 주도할 지 불확실하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18-12-04 15:48:01[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는 외교·경제분야 등 앞으로 닥쳐올 대대적인 변화를 분주하게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우리나라 안보 측면에서 가장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단연 북한 문제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이례적인 ‘탑다운’ 담판을 벌인 바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 본인은 물론 입각할 가능성이 높은 측근들까지 북미협상은 재개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중동 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양안 갈등(중국과 대만의 대립) 등이 먼저 다뤄지긴 하겠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이 과거보다 크게 고도화돼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우리나라, 나아가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 심히 우려되는 건 트럼프 당선인이 끌고 갈 북미협상의 방향이다. 현재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가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과거처럼 김 위원장과 ‘빅딜’을 추구한다면 자칫 ‘군축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고, 이는 국경을 맞댄 우리나라부터 시작해 한반도 주변 국가들 모두 핵무장 요구가 빗발치게 될 수 있다.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다양한 우려와 가능성이 난무하는 트럼프 2기 정부를 맞아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 반길주 고려대 일민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과 지상대담을 통해 우리나라가 겪을 외교·안보·경제 분야 위협과 기회 요인을 짚어봤다. ―북핵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북미협상이 어떤 식으로 재개될 것이라고 보는지, 또 일각에서 우려하는 핵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보는가. ▲ 임=트럼프는 재임 시절 김 위원장과 3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개인적 친분을 쌓았고, 재집권 시 김정은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정책적 우선순위가 높진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럽 상황이 매우 시급하기 때문이다. 유럽 상황의 전개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본다. 한편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7차 핵실험 가능성은 한국 내에서 자체 핵무장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재집권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한국의 안보 불안이 가중돼 핵무장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여전히 비확산론자들의 목소리가 강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럼에도 만약에라도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들도 핵 개발을 고려하게 되어 동북아시아에서 핵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 반=트럼프는 김정은과 정상회담에 관심을 갖겠지만 하노이 결렬의 전례가 정상회담 목표와 방식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정은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미북 정상회담에는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북한의 핵무장을 인정하고 북핵 위협을 약화시킨다는 제한적 목표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입장에서 이 시나리오는 핵 안보뿐 아니라 외교 차원에서도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공식 핵보유국이 된 북한과 핵무기 없이 대응해야 하는 한국은 궁극적으로 ‘공포의 균형’ 원칙 작동이 제한될 것이고, 이는 자체 핵무장 여론을 증폭시킬 수 있다. 나아가 북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은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의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켜 핵 도미노 현상이 부상할 수 있다. ―언급한 것처럼 북한 문제에 앞서 트럼프가 가장 먼저 나설 현안으로 우크라 전쟁이 꼽힌다. 전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특히나 북한군이 파병된 상황에서 우리 외교와 안보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보는가. ▲ 반=트럼프가 생각하는 러우전쟁의 해법은 정세 혹은 규칙 차원의 판단이 아니라 미국의 강압으로 전쟁을 최단시간에 봉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크라 영토의 5분의 1이 러시아에 병합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개인의 생각과 참모진의 판단이 다를 경우 미국 내부적으로 입장을 조율하는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이런 정책을 현실화할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국제사회의 결집이 약화될 우려가 있고, 북한군 파병에 대응하는 것도 복잡한 구도에 직면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군 파병은 유라시아와 한반도 지정학이 직접적으로 융합되는 단초를 제공하는 바, 한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직접적인 안보 협력을 대폭 강화하는 기제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우크라 지원에 대한 방향을 재검토하고 유럽 국가의 군사력 현대화에 한국이 기여하는 역할의 강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 임=트럼프는 당선되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와 우크라 간 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또 트럼프가 우크라의 일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하는 방안을 고려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우크라 영토 보전과 주권에 대한 국제적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 서방 국가들의 우려와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과연 그의 말처럼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오히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할 것이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안보 상황이 요동치면 트럼프가 주장했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도 더 거세질 수 있을 것 같다.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조기합의해 국회 비준만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부침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하는지. ▲ 임=12차 SMA를 타결하긴 했지만, 트럼프가 재협상을 요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과거 재임 시절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한 바 있으며, 최근에도 한국이 방위비로 연간 100억 달러(한화 약 13조6,500억원)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반=트럼프는 출범 후 빠른 시기에 방위비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선거기간 중 현 방위비의 10배 수준까지 언급했다는 점에서 ‘거래’ 목표의 상한치를 이미 제시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와 타결한 방위비 협상액을 재협상의 기준점으로 규정하는 접근법을 정교화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재협상 시 국가 간 협상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준점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경제 분야로 넘어가보면 트럼프는 관세 세율 인상을 여러 차례 밝혔고, 1기 정부 때도 고관세 정책을 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도 보편적 관세가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하나. ▲ 임=한국에 대한 보편적 관세 적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보편적 관세 적용은 FTA의 기본 원칙과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비슷한 조치를 통해 미국의 산업 보호와 무역적자 해소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와 강경한 재협상을 강조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한미 FTA를 개정하며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협정을 수정하려 했던 전례가 있다. 특히 특정 산업 분야에서 한국 수출이 미국 제조업과 충돌하는 경우, 트럼프는 기존 FTA를 재해석하거나 무역 구제 조치를 통해 제한적인 관세를 다시 논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내 일자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 행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했던 분야 중 하나이므로 타깃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2018년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전력이 있다. 이런 제한이 더 강화되거나 추가 관세가 부과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정책에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국이 주도하는 배터리 및 전기차 부품, 태양광 패널 같은 친환경 에너지 관련 제품에 대한 관세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 반=보편성과 특수성 모두가 가동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인식은 관세가 세금을 대신하는 수준으로 가동시켜 미국을 최우선에 두는 경제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원칙을 보편성에 입각해 모든 국가에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보편성만을 가동시키지 않고 무역수지 등을 따져 특수성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중국이 약탈 수준으로 미국의 경제를 잠식했다는 인식으로 보편적 관세를 넘어 상당한 수준의 특수적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보편적 관세를 적용하되 여러 이익관계를 따져 특정 분야에 대해 특수 관세 적용도 조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특수 관세에서 불리한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미국의 ‘거래적 접근’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발효돼 10년 이상 적용된 한미 FTA의 선순환 요소를 발굴해서 특수성 측면에서 유리한 협상이 되도록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협상을 통해 보편적 관세율도 낮추도록 하는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다. ―언급한 것처럼 중국에 대해선 특수한 고관세를 적용한다는 등 견제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끼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 반=대중국 견제는 미국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는 의제이다. 더욱이 트럼프의 경우 강한 지도자임을 내세워 중국을 경제적으로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디리스킹’을 ‘디커플링’으로 기조를 전환해 중국을 원천 배제하는 정책을 가동시킬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우방국들에게 동참을 강하게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지정학적 이웃인 중국을 대상으로 대중국 견제에 올인하는 것은 리스크가 적지 않다. 때문에 한미 공조가 가능한 분야를 선별하고, 그 외에는 중국을 포용하는 혜안이 요구된다. ▲ 임=미중 간 패권 경쟁은 기술,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대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나 핵심 광물을 둘러싼 대립이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는 것도 한국에게는 위협적이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갈등이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 한국은 주요 교역국인 두 나라 사이에서 무역 장벽이나 제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종합적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는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에 복합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일본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과 호주 등과도 연대해 안보와 경제의 균형을 최대한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정리=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4-11-12 17:08:11[파이낸셜뉴스] 한국어 기반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트릴리온랩스(Trillion Labs)가 420만달러(약 57억 원) 규모 프리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투자는 스트롱벤처스 리드로 카카오벤처스,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더벤처스, 미국 소재 굿워터캐피탈(Goodwater Capital), 뱀 벤처스(BAM Ventures)가 참여했다. 트릴리온랩스는 한국에 특화된 LLM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대규모 한국어 데이터로 사전 훈련된 (Pre-trained) 모델로 한국 문화와 관습을 정확히 이해하는 생성형 AI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영미권 LLM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편향성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에 특화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다. 세계적으로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소버린 AI(Sovereign AI) 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디지털 시대 AI 주권을 확보하는데 기여한다는 목표다. 이번 투자 유치를 기점으로 트릴리온랩스는 양질의 언어 데이터를 공격적으로 확보하고 기술 고도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한국어를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답하는 LLM 파운데이션 모델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나아가 언어 배열에서 유사성을 갖는 일본, 동남아 등으로 보폭을 넓히고 아시아 특화 AI 전진기지로 자리 잡는다는 계획이다. 신득환 스트롱벤처스 책임 심사역은 "트릴리온랩스는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LLM을 통해 소버린 AI를 구현할 수 있는 팀”이라며 "장기적으로 한국의 AI 산업뿐 아니라 AI가 활용되는 모든 영역에서 이질감 없는 혁신을 이끌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영무 카카오벤처스 심사역은 "이전엔 누구도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사전 훈련부터 다시 개발해 완전히 독자적인 한국어 기반 LLM을 만들겠다는 트릴리온랩스의 공격적인 비전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트릴리온랩스가 만들어 낼 한국어 기반 LLM이 AI 주도권 확보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재민 트릴리온랩스 대표는 “AI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타 국가 대비 부족한 AI 성능만 활용해 AI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라며 “트릴리온랩스가 만들어낼 한국형 LLM을 통해 AI 선진국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생성형AI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 받는 언어권인 동북아시아도 시장 선두를 이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도록 성장하겠다”고 강조했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2024-09-10 07:57:08아시아 대륙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서서히 저물고 베트남, 인도 등 남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다. 1990년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에도 흔들리지 않던 아시아를 요동치게 만든 것은 30년 만에 다시 도래한 신냉전이다. 그 진원지는 중국, 더 정확히 말하면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직에 오르면서 '중국몽'을 외쳤다.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2021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국가를 건설하고,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을 실현하고, 2049년에는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뛰어넘겠다고 했다. 시진핑의 도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30년 넘게 고도의 성장을 누리며 세계무대에 빅2로 올라섰다는 자신감과 치기의 표현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진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도발을 했다.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에서다. 그는 "2050년까지 세계 최강대국,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들겠다"며 미국에 직접 도전장을 던졌다. 전 세계 질서를 다시 만들어가던 '빅 보이' 트럼프가 이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암흑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중국 트럼프는 우선 관세카드를 꺼내들었다. 2018년 7월8일 중국산 수입품 818개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중국이 집중투자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전기차, 로봇 등 첨단 제품이 대상이었다. 액수로는 340억 달러에 달했다. 앞서 미국은 시진핑의 도발에 즉각 상법 301조를 발동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에 착수했었다. 시진핑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이 관세 부과를 발표하자마자 미국에서 들어오는 농산물과 자동차 등 545개 품목에 똑같은 액수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을 넘어서겠다"고 중국 인민에 공언한 시진핑은 이 게임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줄 알면서도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9월에 다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미국산 육류 등 6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에 최고 10%의 관세로 보복했다. 미중 패권전쟁은 이렇게 시작했다. 트럼프는 집권 기간 내내 시진핑의 중국을 거칠게 몰아부쳤다. 관세폭탄 외에도 대만 주권, 홍콩 민주화운동, 위구르 인권탄압 등 트럼프는 늘 시진핑이 불편해하는 사실에 대해 직접적이고 강렬한 수사를 던졌다. 국제사회 공식석상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트럼프를 마주한 시진핑의 얼굴에선 늘 견디기 힘들어하는 긴장과 초조함이 묻어났다. 여기에 중국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북한이었다. 미국 안보의 최전선인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미국 본토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타격할 수도 있다고 공언하는 김정은은 그야말로 골치덩어리였다. 김정은이 미중 갈등 속에 고도의 정치 노림수를 던진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시진핑마저 무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중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중국이 동북아 지역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시진핑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물러나고 2021년 1월 등장한 바이든은 시진핑을 훨씬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은 트럼프보다 훨씬 무섭고 더 정교하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세계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누고 신뢰가치사슬(TVC)이라는 이름으로 블록화했다. 쿼드(QUAD), 오커스(AUKUS),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이 그것이다. IPEF는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제외한 인도태평양 국가를 경제공동체로 묶은 것이다. 역내 포괄적 경제협력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대중국 압박정책이다. 쿼드는 미국과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 동맹국인 일본, 호주와 동맹국은 아니지만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인도를 포함시킨 4자 안보대화체다. 오커스는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과 호주가 포함된 3자 안보사슬이다. 모두가 중국의 패권주의 야망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이제 안에서도 무너진다 중국은 내부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외국인 투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내수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중국을 탈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식지 않던 용광로는 불이 꺼졌고 이제 균열마저 일어나고 있다. 우선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외국기업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IBM은 지난 달 말 중국 내 연구개발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중국개발센터와 중국시스템센터를 폐쇄했다. 중국 내에서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 1000여명도 짐을 쌌다. IBM만이 아니다. 이미 올해 들어서만 테슬라, 아마존, 인텔, 에릭슨 등이 중국에서 철수를 했거나 사업 축소를 시작했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올 2분기 중국의 해외직접투자(FDI)는 14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3분기 때 1998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121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엄청 놀랐지만 이번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중국 당국은 긴장한 내색이 역력하다. 소비 침체도 심각하다. 코로나19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강력한 셧다운 정책을 무려 3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엄청나게 타격을 입었다. 이는 곧 부동산 시장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훌쩍 넘는다. 집이 안팔리면서 '헝다' 등 거대 부동산 기업의 부도 사태가 발생하고, 이는 주택 구매에 나섰던 사람들의 돈이 묶이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소비 척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는 2월 5.5%에서 3월 3.1%, 4월 2.3%, 6월 2.0%까지 떨어졌다. 제조업 PMI도 1월 49.2, 3월 50.8, 5월 49.5를 기록하다가 7월에는 49.4까지 하락한 상태다. 문제는 중국의 붕괴가 앞으로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은 이상 미국 등 서방세계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든 이후 미국을 이끌 대통령 후보인 해리스와 트럼프도 중국 옥죄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 공언하고 있다. ■젊고 우수한 노동시장 베트남이 뜬다 중국을 빠져나온 글로벌 기업들은 베트남과 인도 등에 새롭게 생산기지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 소비시장이 붕괴된데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서방의 수입규제를 피해 중국을 탈출해 이들 국가에 안착한 것이다. 이 중 주목할 곳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인구가 1억 명에 달하는데다 양질의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인구의 70%가 생산가능인구(15~64세)다. 이중 35%가 30대 이하 청년층이다. 이는 그만큼 생산과 소비 활동이 활발히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왕성한 교육열도 주목받고 있다. 사교육이 극성을 부릴 정도의 높은 교육열은 노동시장에 양질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이같은 역동성 덕분에 베트남은 2018년부터 매년 8%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중에도 2%대가 넘는 성장세를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공산국가임에도 서방 자유진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중국과는 다른 점이다. 미국은 1995년 베트남과 수교를 시작한 이후 각종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베트남을 최대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무려 1만 건에 육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3대 수출시장이자 최대 무역흑자 대상국으로 교역액이 877억 달러에 달한다. ■인도의 변화는 정말 눈부시다 인도는 베트남과 함께 중국을 대체하는 시장이다. 가장 큰 매력은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이며 노동인구가 젊다는 것이다. 인도는 지난 2023년 4월 14억2800만명을 기록하며 중국(14억2500만명)을 추월했다. 이 중 생산가능인구는 무려 68%에 달한다. 중위연령이 28세로 베트남보다도 젊다. 게다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노동인구가 많아 글로벌 생산기지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는 지난 10년간 연 평균 6%대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이를통해 2022년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독일, 일본을 제치고 2027년에는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대국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도의 또 다른 특징은 슈퍼리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부동산기업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에 따르면 인도는 향후 5년간 아시아 슈퍼리치 증가율이 5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것으로 이는 그만큼 벤처기업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유니콘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는 2014년 모디 총리가 집권한 후 완전히 달라진 나라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펴면서 서비스업 의존도에서 벗어나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통신, ICT, 신재생에너지, 우주산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디는 또 2015년부터는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면서 연매출 1조원을 넘기는 유니콘 기업을 83개나 키워냈다. 미국, 중국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인도는 전통적인 비동맹주의에서 벗어나 이제 서방 자유진영에 속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체제를 완성하는 쿼드의 일원이다. 이는 중국을 완전히 대체하는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4-09-01 19:29:30[파이낸셜뉴스]【베이징=이석우 특파원】중국의 위안화가 해외 사용 급증 속에 영국 파운드와 일본 엔화를 제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인민대의 최근 발표 보고서를 인용, 작년 위안화 평균 국제화 점수가 6.27점으로 전년 대비 22.9% 올랐다고 밝혔다. 점수가 높을수록 해외 사용이 빈번하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각각 4.4점과 3.76점을 기록한 일본 엔화와 영국 파운드화보다 높은 수치다. 물론 아직 미국 달러화(51.52점), 유로화(25.03점)보다는 크게 뒤진다. 인민대는 2012년부터 무역 결제와 금융 거래, 타국가 공식 외환보유고 사용 등을 토대로 위안화 등 국제화 지수를 집계해왔다. 보고서는 위안화 국제화 지수 급등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추적 역할과 지속적인 고품질 경제 발전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분석했다. 이어 "어려운 대외 환경 속에 다른 국가와 무역이 억제됐음에도 위안화 국제화는 (파운드화와 엔화 등) 다른 기축통화들과 비교할 때 탄탄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위안화 국제화가 침체하는 중국 경제와 지속적인 지정학적 위험, 상대적으로 낮은 위안화 자산 수익률, 미국 달러에 대한 위안화 약세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있다고 지적했다. 달러 패권의 균열을 노리는 중국은 오래전부터 위안화 국제화에 매달려 왔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2024-07-29 13:49:35인재 양성과 AI(인공지능)에 꽃힌 한 대학교수가 있다. 그는 10여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이른바 '오바마 프로젝트'(Obama Project)를 기획했다. 토론과 연설에 능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 핵심은 암기식 교육시스템의 한국식 교육문화 개선이다. 서울대 기숙사생 중 일부를 뽑아 초·중·고교생들에 토론교육을 학습시켜 오바마 같은 미래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다. 핵심은 어릴때부터 영어 유치원 등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내몰리는 현 교육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토론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논점이 다르더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겸손과 지혜를 겸비한 미래 인재를 키우겠다는 거다. 바로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장관급) 심의위원으로 있는 김태완 서울대 교수다. 그는 미국 MIT 파견 시절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수업을 듣고 곧바로 '서울대 로봇AI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근 관악구 소재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했다. 김 자문위원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한국이 글로벌 AI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현재 전국에 있는 '영어마을'을 '로봇AI 마을'로 전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언했다. 나아가 "영어, 수학도 중요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레고놀이하듯 AI를 접한다면 빌 게이츠같은 세상을 바꾸는 미래의 혁신가가 꼭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자문위원은 2020년부터 4년간 '서울대 캠퍼스단장'을 지내면서 첨단 스타트업 육성에도 공을 들였다. 성과로는 햄버거 생산 자동화 로봇시스템 스타트업인 '에니아이'와 반려동물 신원확인기술을 개발한 '펫나우' 등을 발굴,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중 에니아이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중이다. 그의 비전은 향후 10년 내 K-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100개를 육성하는 거다. 다음은 김 자문위원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감축 논란에 대한 견해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 감축은 과학기술계에 큰 충격을 줬다. 정부는 효율적 배분, 국제협력 강화, 전략분야 지원, 산학협력 강화, 기술 인프라 강화를 위해 예산 배분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지만 과거 과학기술 예산을 삭감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의 GDP 대비 R&D 예산 배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산업은 경쟁 국가에 밀리고, 주요 기간 산업인 제조업도 중국에 밀리는 위기가 오면서 언젠가는 한번 거쳐야 할 R&D 예산 배분 체질의 개선 문제였다. 중요한 건 어떻게 체질 개선을 통해 기업 혁신과 발전, 경쟁 우위, 시장 참여 확대, 비용 관리, 마케팅 능력 향상을 이루느냐다. 정부와 국회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규제 혁신 입법에 앞장서야 한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서 한국이 취해야할 전략은. ▲현재 글로벌 경쟁국가를 이기기 위한 첫번째는 속도이다. 최고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먼저 올라야 한다. 정상에 먼저 오르기 위해선 베이스캠프가 어디인지 가 중요하다. 국가간 기술패권전쟁도 각 국가의 베이스캠프가 해발 얼마인지 진단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베이스캠프를 어떻게 상대국가보다 높이 올려 놓는 가이다. 국가사업발전의 4요소는 인재, 기술, 자본, 시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인재와 자본에 있어 한국의 10배 이상이다. 상대보다 불리한 여건에선 상대 전략을 따라만 간다면 100전 100패한다. 우리로선 기술동맹을 해야 한다. ―한국이 AI 및 과학기술강국이 되려면. ▲AI를 선도하는 국가는 당연히 미국이다. 이론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혁신을 이룬 교수는 캐나다의 Geoffrey Hinton가 중심에 있다. 그는 신경망의 역사상 혁신 기술인 '역전파, 딥러닝'의 초석을 이루었다. 정말 대단한 기술로 진화했다. 그러한 기술이 산업으로 꽃을 피운 곳은 미국이다. 따라서 우리는 AI에 있어서 미국과의 기술 협력, 나아가 기술 동맹을 이끌어 내야한다. 정부, 대학, 기업이 모두 협력을 해야 하지만, 대학이 주도하고 기업과 정부가 협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유는 혁신 기술이 대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벌 협력의 실행과 성공이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가 이론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국가의 AI 산업 발전을 위한 생태계 조성은 어려운 과제이자 도전이다. 정부가 목표를 갖고 미션을 기업과 대학에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관찰하며, 일관되게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다면. ▲2018년 9월부터 2019년 8월간 미국 MIT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했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CSAIL(Computer Science & AI Lab) 소속 교수를 사전에 찾아 초청받았다. 이 때 수많은 과학기술 관계자들을 만났다. 목적은 한국의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였다. 예를 들어 서울대 및 카이스트와 MIT와 하버드대가 협력한다고 상상해보자. 서울특별시와 보스턴시가 협력해 연구 공간, 100평을 상호 제공하고, 학생들이 상호 상대국에 방문해 연구할 공간을 확보하면 매우 모범적인 한미간 산·학·지자체간 협업 모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면 MIT, 하버드대, 보스턴시가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비전은 크게, 실행은 빠르게, 시작은 작게'가는 게 좋다. 처음에 100평에서 시작해 신뢰를 쌓고, 점진적으로 보스턴에서 실리콘밸리, 뉴욕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앞장서 상대국에 접근하면 글로벌 협력을 이끌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학의 연구, 기업의 투자, 정부 지원이 하나의 목표를 갖고 지분 참여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새로운 AI 산업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서울대 AI캠퍼스단장 시절 보람있었던 일은. ▲2020년 3월부터 2023년까지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사업단장을 맡아 총 88개 창업기업을 육성했다. 사업 성공 지표인 투자유치액 1243억원, 매출액 405억원, 정부재정사업 선정 462억원, 고용인원 1796명의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성과로 창업 불모지였던 관악구 일대 창업기업 수와 매출액이 각각 12배, 25배 급성장했다. 이렇게 우수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유니콘 기업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혁신기술과 글로벌시장 진출의 잠재 가능성을 모집 기준으로 기업체를 선정해 맞춤형 멘토링 및 컨설팅, 투자유치 지원,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국내외 홍보 등 입주기업의 사업화와 성공적인 성장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21개 입주기업이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팁스 프로그램은 창업 기업이 최고 선호하는 정부 지원사업이다. ―AI의 조기 교육이 필요한가. ▲미국 MIT 파견 근무 동안에 '지능형 로봇' 수업을 들었다. MIT 항공우주공학과 Sertac Karaman 교수로부터 시작한 자율 주행로봇 프로그램인 'MIT Racecar'는 하나의 교육프로그램으로 브랜드화 돼 있었다. 미국은 이를 고교교육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당장 관악구 소재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대 로봇AI 프로그램'을 4년간 운영했는데 학생은 물론 학부모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울대 로봇AI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AI 교육의 희망을 봤다. 미국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AI 교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한국은 초등학교부터 일찍 AI 교육을 시작하자고 제언하고 싶다. 이를 위해 한국에 있는 '영어마을'을 '로봇AI 마을'로 전환하자. 초등학생때부터 레고놀이 하듯 로봇이 자율적으로 주행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작성법을 배운다면 대학을 중퇴한 미국의 빌 게이츠와 같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가 한국 도처에서 나올 것이다. 이러한 교육개혁의 목표가 글로벌 기술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국가 전략임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AI 교육의 조기화로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하는 사례들도 생겨날 것이다. 한국의 문제는 서울중심으로만 몰린다는 사실이다. 향후 한국 주요 거점 도시별로 도시화를 이뤄내야 한다. ―향후 10년내 100개 유니콘 기업 육성을 비전으로 제시했는데. ▲지난 4년간 육성한 창업 기업 중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가진 대표적 기업으로 크립토랩, 에니아이, 펫나우를 꼽을 수 있다. 크립토랩은 세계 최초 동형암호 상용화에 성공한 스타트업이다. 최근 기술 우수성을 인정받아 알토스, 스톤브릿지벤처스, 키움벤처스로부터 약 21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에니아이는 생산 자동화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햄버거를 자동 생산할 수 있는 로봇 시스템을 만들었다. 미국 뉴욕으로 본사를 옮겼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가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국제행사인 '넥스트 라이즈 2022'에서 'Global Business Expansion Contest'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으며, 푸드테크 로봇 스타트업 업계 최대 규모 300만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펫나우는 반려동물 신원확인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으로, 강아지의 코 사진을 찍어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프리 시리즈A 단계로 53억원을 투자 받았다. 몇 기업은 미국 나스닥 상장이 예상되고, 10여개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문계 자원을 활용한 스타트업 구상은 뭔가. ▲한국의 인문계는 위기이다. 특히 어문계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생산한 제품 및 서비스를 전 세계의 언어로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스타트업을 육성,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마켓팅 에이전시'를 창업 기업으로 설립하도록 정부가 지원하자. 창업 기업은 한국의 중소기업을 스스로 찾아가 제품 및 서비스를 세계 모든 언어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수요를 찾아 공급자인 중소기업에게 원스톱 글로벌 마켓팅 사업을 하면 된다. 정부는 '글로벌 마켓팅 에이전시' 기업이 중소기업에 매출을 올려 준 금액에 비례해 정부에서 바우처 등으로 스타트업에 보상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면 마켓팅 스타트업은 보상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스스로 중소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릴 수 있도록 대행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산업 발전의 4대 요소는 인재, 기술, 자본, 시장이다. 한국 경제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거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수요자를 글로벌 시장에서 찾는 시장개척 전략을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21세기 K-대(大)항해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지금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한류 문화의 힘에 추가해 시장을 개척하는 대항해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haeneni@fnnews.com■ 김태완 자문위원 주요 약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 박사 △미국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방문학자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사업단 단장 △한국공학한림원 컴퓨팅분과 정회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현)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현)
2024-07-21 18:57:51[파이낸셜뉴스] 인재 양성과 AI(인공지능)에 꽃힌 한 대학교수가 있다. 그는 10여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이른바 '오바마 프로젝트'(Obama Project)를 기획했다. 토론과 연설에 능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 핵심은 암기식 교육시스템의 한국식 교육문화 개선이다. 서울대 기숙사생 중 일부를 뽑아 초·중·고교생들에 토론교육을 학습시켜 오바마 같은 미래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다. 핵심은 어릴때부터 영어 유치원 등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내몰리는 현 교육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토론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논점이 다르더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겸손과 지혜를 겸비한 미래 인재를 키우겠다는 거다. 바로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장관급) 심의위원으로 있는 김태완 서울대 교수다. 그는 미국 MIT 파견 시절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수업을 듣고 곧바로 '서울대 로봇AI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근 관악구 소재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했다. 김 자문위원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한국이 글로벌 AI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현재 전국에 있는 '영어마을'을 '로봇AI 마을'로 전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언했다. 나아가 "영어, 수학도 중요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레고놀이하듯 AI를 접한다면 빌 게이츠같은 세상을 바꾸는 미래의 혁신가가 꼭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자문위원은 2020년부터 4년간 '서울대 캠퍼스단장'을 지내면서 첨단 스타트업 육성에도 공을 들였다. 성과로는 햄버거 생산 자동화 로봇시스템 스타트업인 '에니아이'와 반려동물 신원확인기술을 개발한 '펫나우' 등을 발굴,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중 에니아이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중이다. 그의 비전은 향후 10년 내 K-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100개를 육성하는 거다. 다음은 김 자문위원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감축 논란에 대한 견해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 감축은 과학기술계에 큰 충격을 줬다. 정부는 효율적 배분, 국제협력 강화, 전략분야 지원, 산학협력 강화, 기술 인프라 강화를 위해 예산 배분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지만 과거 과학기술 예산을 삭감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의 GDP 대비 R&D 예산 배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산업은 경쟁 국가에 밀리고, 주요 기간 산업인 제조업도 중국에 밀리는 위기가 오면서 언젠가는 한번 거쳐야 할 R&D 예산 배분 체질의 개선 문제였다. 중요한 건 어떻게 체질 개선을 통해 기업 혁신과 발전, 경쟁 우위, 시장 참여 확대, 비용 관리, 마케팅 능력 향상을 이루느냐다. 정부와 국회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규제 혁신 입법에 앞장서야 한다.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서 한국이 취해야할 전략은. ▲현재 글로벌 경쟁국가를 이기기 위한 첫번째는 속도이다. 최고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먼저 올라야 한다. 정상에 먼저 오르기 위해선 베이스캠프가 어디인지 가 중요하다. 국가간 기술패권전쟁도 각 국가의 베이스캠프가 해발 얼마인지 진단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베이스캠프를 어떻게 상대국가보다 높이 올려 놓는 가이다. 국가사업발전의 4요소는 인재, 기술, 자본, 시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인재와 자본에 있어 한국의 10배 이상이다. 상대보다 불리한 여건에선 상대 전략을 따라만 간다면 100전 100패한다. 우리로선 기술동맹을 해야 한다. ―한국이 AI 및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AI를 선도하는 국가는 당연히 미국이다. 이론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혁신을 이룬 교수는 캐나다의 Geoffrey Hinton가 중심에 있다. 그는 신경망의 역사상 혁신 기술인 '역전파, 딥러닝'의 초석을 이루었다. 정말 대단한 기술로 진화했다. 그러한 기술이 산업으로 꽃을 피운 곳은 미국이다. 따라서 우리는 AI에 있어서 미국과의 기술 협력, 나아가 기술 동맹을 이끌어 내야한다. 정부, 대학, 기업이 모두 협력을 해야 하지만, 대학이 주도하고 기업과 정부가 협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유는 혁신 기술이 대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벌 협력의 실행과 성공이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가 이론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국가의 AI 산업 발전을 위한 생태계 조성은 어려운 과제이자 도전이다. 정부가 목표를 갖고 미션을 기업과 대학에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관찰하며, 일관되게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다면. ▲2018년 9월부터 2019년 8월간 미국 MIT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했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CSAIL(Computer Science & AI Lab) 소속 교수를 사전에 찾아 초청받았다. 이 때 수많은 과학기술 관계자들을 만났다. 목적은 한국의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였다. 예를 들어 서울대 및 카이스트와 MIT와 하버드대가 협력한다고 상상해보자. 서울특별시와 보스턴시가 협력해 연구 공간, 100평을 상호 제공하고, 학생들이 상호 상대국에 방문해 연구할 공간을 확보하면 매우 모범적인 한미간 산·학·지자체간 협업 모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면 MIT, 하버드대, 보스턴시가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비전은 크게, 실행은 빠르게, 시작은 작게'가는 게 좋다. 처음에 100평에서 시작해 신뢰를 쌓고, 점진적으로 보스턴에서 실리콘밸리, 뉴욕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앞장서 상대국에 접근하면 글로벌 협력을 이끌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학의 연구, 기업의 투자, 정부 지원이 하나의 목표를 갖고 지분 참여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새로운 AI 산업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서울대 AI캠퍼스단장 시절 보람있었던 일은. ▲2020년 3월부터 2023년까지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사업단장을 맡아 총 88개 창업기업을 육성했다. 사업 성공 지표인 투자유치액 1243억원, 매출액 405억원, 정부재정사업 선정 462억원, 고용인원 1796명의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성과로 창업 불모지였던 관악구 일대 창업기업 수와 매출액이 각각 12배, 25배 급성장했다. 이렇게 우수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유니콘 기업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혁신기술과 글로벌시장 진출의 잠재 가능성을 모집 기준으로 기업체를 선정해 맞춤형 멘토링 및 컨설팅, 투자유치 지원,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국내외 홍보 등 입주기업의 사업화와 성공적인 성장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21개 입주기업이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팁스 프로그램은 창업 기업이 최고 선호하는 정부 지원사업이다. ―AI의 조기 교육이 필요한가. ▲미국 MIT 파견 근무 동안에 '지능형 로봇' 수업을 들었다. MIT 항공우주공학과 Sertac Karaman 교수로부터 시작한 자율 주행로봇 프로그램인 'MIT Racecar'는 하나의 교육프로그램으로 브랜드화 돼 있었다. 미국은 이를 고교교육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당장 관악구 소재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대 로봇AI 프로그램'을 4년간 운영했는데 학생은 물론 학부모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울대 로봇AI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AI 교육의 희망을 봤다. 미국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AI 교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한국은 초등학교부터 일찍 AI 교육을 시작하자고 제언하고 싶다. 이를 위해 한국에 있는 '영어마을'을 '로봇AI 마을'로 전환하자. 초등학생때부터 레고놀이 하듯 로봇이 자율적으로 주행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작성법을 배운다면 대학을 중퇴한 미국의 빌 게이츠와 같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가 한국 도처에서 나올 것이다. 이러한 교육개혁의 목표가 글로벌 기술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국가 전략임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AI 교육의 조기화로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하는 사례들도 생겨날 것이다. 한국의 문제는 서울중심으로만 몰린다는 사실이다. 향후 한국 주요 거점 도시별로 도시화를 이뤄내야 한다. ―향후 10년내 100개 유니콘 기업 육성을 비전으로 제시했는데. ▲지난 4년간 육성한 창업 기업 중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가진 대표적 기업으로 크립토랩, 에니아이, 펫나우를 꼽을 수 있다. 크립토랩은 세계 최초 동형암호 상용화에 성공한 스타트업이다. 최근 기술 우수성을 인정받아 알토스, 스톤브릿지벤처스, 키움벤처스로부터 약 21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에니아이는 생산 자동화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햄버거를 자동 생산할 수 있는 로봇 시스템을 만들었다. 미국 뉴욕으로 본사를 옮겼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가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국제행사인 '넥스트 라이즈 2022'에서 'Global Business Expansion Contest'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으며, 푸드테크 로봇 스타트업 업계 최대 규모 300만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펫나우는 반려동물 신원확인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으로, 강아지의 코 사진을 찍어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프리 시리즈A 단계로 53억원을 투자 받았다. 몇 기업은 미국 나스닥 상장이 예상되고, 10여개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문계 자원을 활용한 스타트업 구상은 뭔가. ▲한국의 인문계는 위기이다. 특히 어문계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생산한 제품 및 서비스를 전 세계의 언어로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스타트업을 육성,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마켓팅 에이전시'를 창업 기업으로 설립하도록 정부가 지원하자. 창업 기업은 한국의 중소기업을 스스로 찾아가 제품 및 서비스를 세계 모든 언어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수요를 찾아 공급자인 중소기업에게 원스톱 글로벌 마켓팅 사업을 하면 된다. 정부는 '글로벌 마켓팅 에이전시' 기업이 중소기업에 매출을 올려 준 금액에 비례해 정부에서 바우처 등으로 스타트업에 보상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면 마켓팅 스타트업은 보상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스스로 중소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릴 수 있도록 대행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산업 발전의 4대 요소는 인재, 기술, 자본, 시장이다. 한국 경제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거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수요자를 글로벌 시장에서 찾는 시장개척 전략을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21세기 K-대(大)항해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지금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한류 문화의 힘에 추가해 시장을 개척하는 대항해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김태완 자문위원은 누구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박사(1993~1996) ▼미국 (주)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1996~1999)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방문학자(2018~2019)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사업단 단장(2020~2023) ▼한국공학한림원 컴퓨팅분과 정회원(2021~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2003~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2023~현재)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2024-07-21 14:46:11[파이낸셜뉴스] 한국과 북한은 전쟁의 폐해라는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70여년이 흐른 오늘날 한국과 북한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경제난을 방치하는 방기 정부와 파탄국가라는 오명을 받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뿐 아니라 유럽 등 오랜 선진국에도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경제력 10위권, 군사력 5위권인 하드파워뿐 아니라 한류에 힘입어 소프트파워도 세계적 위상을 자리잡은지 오래다. 한국인이 한국 여권을 지참하고 전 세계로 여행을 가면 환영받는 것은 한국에 대한 인식과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체감 지수다.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이어가는데 또 다른 희소식이 들렸다.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Gross National Income)은 3만6194달러로 5천만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 중 세계 6위를 기록했다는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한국인의 물질적 삶의 질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이 이번 발표된 수치를 통해 다시 확인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샴페인 개봉은 금물이다. 지금 한국이 처한 도전과 숙제는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어떠한 도전이 있으며 향후 어떠한 상황에 대비해야 할까? 첫째, ‘발전’ 단계 이후에 ‘진화’가 아닌 ‘퇴화’의 수순도 있다는 사실은 주지해야 한다. 한때 미국에 이은 패권 지위 등극 후보국가로도 회자되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일본은 2023년 1인당 GNI 순위에서도 한국에 밀리며 뒤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 신냉전 시대에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회자되어온 중국도 피크 차이나(Peak China) 담론이 부상할 정도로 성장엔진이 둔화된 상태다. 한국은 이러한 퇴화의 사례를 남의 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자칫 방심하거나 축배를 빨리 들면 ‘잃어버린 시대’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코앞의 성과뿐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항상 챙겨야 하는 이유다. 한국이 민주화 공식과 경제발전 공식을 전 세계에서 아주 이례적으로 잘 따른 롤모델인 것은 분명하지만 중간점검 없이 방치하면 현재의 롤모델이 미래에는 ‘왕년의 한국’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둘째, 안보적 도전이 녹록지 않다. ‘안보’ 없이는 ‘번영’도 요원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반도에서 한국의 핵위협은 이미 현실화된 상황이고 국제적으로는 한국에 번영을 가져다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퇴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퇴화기류는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수정주의 세력의 연대와 결속이 강화되면서 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안보 차원의 도전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해상교통로도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주지할 점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해상교통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잃어버린 시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한국 사회의 인력 인프라 도전 측면에서도 축배를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2023년 기준 한국 여성의 1인당 출생률은 0.72에 불과했다. 이러한 저출생 문제는 여러 사회적 도전 중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도 직결될 정도로 심대한 사안이 된 상태다. 인구절벽으로 국가안보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병력 충원이 힘든 것은 이미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나아가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서 경제 활동의 중심에 서야 할 젊은 세대층이 줄어들고 있다. 자칫 한국의 기적이 인구감소로 증발해 버릴 운명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남태평양 도서국이 기후변화로 국가생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면, 한국은 인구감소로 국가생존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각심은 단순한 기우로만 치부할 수 없다. 한국의 기적은 국내적으로는 한국인의 열정, 땀, 근성과 국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하에 가능했다. 그런데 인구감소로 전자의 동력도 떨어지고, 국제규칙 마비로 후자의 동력도 떨어지는 상황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달콤한 축배보다는 쓴 약을 들이키며 경각심을 갖고 미래를 챙겨나가야 할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6-07 16: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