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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세계의 공장’… 베트남·인도로 공급망 기지 재편[김관웅의 픽(pick)]

재편되는 아시아 질서
中, 외국인 투자·내수소비 모두 줄어
IBM·테슬라 등 글로벌기업 대거 이탈
2분기 해외직접투자 148억달러 적자
소매판매 하락세… 소비침체도 심각
‘젊은 노동력 풍부’ 인도·베트남 각광
베트남 연평균 8% 경제성장률 기록
국내 기업들 최대 생산기지로 부상
印, 중위연령 28세 베트남보다 젊어
2027년 세계 3위 경제대국 등극 전망

식어가는 ‘세계의 공장’… 베트남·인도로 공급망 기지 재편[김관웅의 픽(pick)]

아시아 대륙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서서히 저물고 베트남, 인도 등 남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다. 1990년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에도 흔들리지 않던 아시아를 요동치게 만든 것은 30년 만에 다시 도래한 신냉전이다. 그 진원지는 중국, 더 정확히 말하면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직에 오르면서 '중국몽'을 외쳤다.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2021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국가를 건설하고,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을 실현하고, 2049년에는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뛰어넘겠다고 했다. 시진핑의 도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30년 넘게 고도의 성장을 누리며 세계무대에 빅2로 올라섰다는 자신감과 치기의 표현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진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도발을 했다. 2017년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에서다. 그는 "2050년까지 세계 최강대국,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들겠다"며 미국에 직접 도전장을 던졌다. 전 세계 질서를 다시 만들어가던 '빅 보이' 트럼프가 이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암흑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중국

트럼프는 우선 관세카드를 꺼내들었다. 2018년 7월8일 중국산 수입품 818개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중국이 집중투자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전기차, 로봇 등 첨단 제품이 대상이었다. 액수로는 340억 달러에 달했다. 앞서 미국은 시진핑의 도발에 즉각 상법 301조를 발동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에 착수했었다.

시진핑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이 관세 부과를 발표하자마자 미국에서 들어오는 농산물과 자동차 등 545개 품목에 똑같은 액수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을 넘어서겠다"고 중국 인민에 공언한 시진핑은 이 게임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줄 알면서도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9월에 다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미국산 육류 등 6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에 최고 10%의 관세로 보복했다.

미중 패권전쟁은 이렇게 시작했다. 트럼프는 집권 기간 내내 시진핑의 중국을 거칠게 몰아부쳤다. 관세폭탄 외에도 대만 주권, 홍콩 민주화운동, 위구르 인권탄압 등 트럼프는 늘 시진핑이 불편해하는 사실에 대해 직접적이고 강렬한 수사를 던졌다. 국제사회 공식석상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트럼프를 마주한 시진핑의 얼굴에선 늘 견디기 힘들어하는 긴장과 초조함이 묻어났다.

여기에 중국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북한이었다. 미국 안보의 최전선인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미국 본토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타격할 수도 있다고 공언하는 김정은은 그야말로 골치덩어리였다. 김정은이 미중 갈등 속에 고도의 정치 노림수를 던진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시진핑마저 무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중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중국이 동북아 지역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시진핑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물러나고 2021년 1월 등장한 바이든은 시진핑을 훨씬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은 트럼프보다 훨씬 무섭고 더 정교하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세계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누고 신뢰가치사슬(TVC)이라는 이름으로 블록화했다. 쿼드(QUAD), 오커스(AUKUS),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이 그것이다.

IPEF는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제외한 인도태평양 국가를 경제공동체로 묶은 것이다. 역내 포괄적 경제협력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대중국 압박정책이다.

쿼드는 미국과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 동맹국인 일본, 호주와 동맹국은 아니지만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인도를 포함시킨 4자 안보대화체다. 오커스는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과 호주가 포함된 3자 안보사슬이다. 모두가 중국의 패권주의 야망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이제 안에서도 무너진다

중국은 내부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외국인 투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내수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중국을 탈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식지 않던 용광로는 불이 꺼졌고 이제 균열마저 일어나고 있다.

우선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외국기업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IBM은 지난 달 말 중국 내 연구개발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중국개발센터와 중국시스템센터를 폐쇄했다. 중국 내에서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 1000여명도 짐을 쌌다. IBM만이 아니다. 이미 올해 들어서만 테슬라, 아마존, 인텔, 에릭슨 등이 중국에서 철수를 했거나 사업 축소를 시작했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올 2분기 중국의 해외직접투자(FDI)는 14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3분기 때 1998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121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엄청 놀랐지만 이번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중국 당국은 긴장한 내색이 역력하다.

소비 침체도 심각하다. 코로나19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강력한 셧다운 정책을 무려 3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엄청나게 타격을 입었다. 이는 곧 부동산 시장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훌쩍 넘는다. 집이 안팔리면서 '헝다' 등 거대 부동산 기업의 부도 사태가 발생하고, 이는 주택 구매에 나섰던 사람들의 돈이 묶이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소비 척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는 2월 5.5%에서 3월 3.1%, 4월 2.3%, 6월 2.0%까지 떨어졌다. 제조업 PMI도 1월 49.2, 3월 50.8, 5월 49.5를 기록하다가 7월에는 49.4까지 하락한 상태다.

문제는 중국의 붕괴가 앞으로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은 이상 미국 등 서방세계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든 이후 미국을 이끌 대통령 후보인 해리스와 트럼프도 중국 옥죄기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 공언하고 있다.

■젊고 우수한 노동시장 베트남이 뜬다

중국을 빠져나온 글로벌 기업들은 베트남과 인도 등에 새롭게 생산기지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 소비시장이 붕괴된데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서방의 수입규제를 피해 중국을 탈출해 이들 국가에 안착한 것이다.

이 중 주목할 곳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인구가 1억 명에 달하는데다 양질의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인구의 70%가 생산가능인구(15~64세)다. 이중 35%가 30대 이하 청년층이다. 이는 그만큼 생산과 소비 활동이 활발히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왕성한 교육열도 주목받고 있다. 사교육이 극성을 부릴 정도의 높은 교육열은 노동시장에 양질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이같은 역동성 덕분에 베트남은 2018년부터 매년 8%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중에도 2%대가 넘는 성장세를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공산국가임에도 서방 자유진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중국과는 다른 점이다. 미국은 1995년 베트남과 수교를 시작한 이후 각종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베트남을 최대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무려 1만 건에 육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3대 수출시장이자 최대 무역흑자 대상국으로 교역액이 877억 달러에 달한다.

■인도의 변화는 정말 눈부시다

인도는 베트남과 함께 중국을 대체하는 시장이다. 가장 큰 매력은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이며 노동인구가 젊다는 것이다. 인도는 지난 2023년 4월 14억2800만명을 기록하며 중국(14억2500만명)을 추월했다. 이 중 생산가능인구는 무려 68%에 달한다. 중위연령이 28세로 베트남보다도 젊다. 게다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노동인구가 많아 글로벌 생산기지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는 지난 10년간 연 평균 6%대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이를통해 2022년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독일, 일본을 제치고 2027년에는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대국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도의 또 다른 특징은 슈퍼리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부동산기업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에 따르면 인도는 향후 5년간 아시아 슈퍼리치 증가율이 5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것으로 이는 그만큼 벤처기업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유니콘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는 2014년 모디 총리가 집권한 후 완전히 달라진 나라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펴면서 서비스업 의존도에서 벗어나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통신, ICT, 신재생에너지, 우주산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디는 또 2015년부터는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면서 연매출 1조원을 넘기는 유니콘 기업을 83개나 키워냈다. 미국, 중국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인도는 전통적인 비동맹주의에서 벗어나 이제 서방 자유진영에 속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체제를 완성하는 쿼드의 일원이다. 이는 중국을 완전히 대체하는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