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1970년대 서울 명동을 장악한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씨가 지난 10일 별세한 가운데, 그의 빈소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조기가 놓여졌다가 철거돼 논란이다. 10일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신씨의 빈소 앞에는 가수 설운도·태진아 씨 등 연예인과 각계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 100여개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1975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 등 신상사파와 맞섰던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씨도 ‘조양은 선교사’ 명의로 화환을 보냈다. 특히 ‘서울특별시장 오세훈’ 명의로 ‘근조(謹弔)’라고 적힌 조기(弔旗)도 놓여져 있었지만 서울시는 유명 조폭의 빈소에 조기를 보낸 것에 대한 논란을 우려해 오 시장 명의의 조기를 장례식장 직원을 통해 11일 오후 늦게 철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 시장의 지인이 요청해 조기를 보낸 것으로, 최측근도 관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라며 “오 시장과 직접 인연이 없고, 부적절한 설치였다는 지적이 있어 회수했다. 보다 엄격하게 조기 조치여부를 관리하겠다”고 전했다. 고인은 1970년대 전후 명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김두한, 이정재, 시라소니(본명 이성순) 등과 함께 ‘전국구 주먹’으로 불렸다. 1932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태어난 그는 1953년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전역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4년 상경해 명동 중앙극장 옆을 근거지로 삼아 ‘신상사파’ 두목으로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외제차 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까지 빈소에는 15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오갔다. 경찰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사복 경찰 50여 명을 장례식장 곳곳에 배치했다. 발인은 12일 오후 1시 30분이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12 05:47:55【파이낸셜뉴스 춘천·원주·경기=김예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강원 춘천과 원주를 찾아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부각, 원내 1당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의 강원 방문은 지난해 6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애로사항 청취를 위해 강릉 수산업자를 만나고,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한 후 약 9개월 만이다. 특히 춘천·철원·화천·양구 갑(이하 춘천갑)과 원주을의 경우 허영 후보와 송기헌 후보가 현역 의원으로 있는 지역구인 만큼, 해당 지역 의석을 수성하려는 의지와 함께 국민의힘의 원내 과반 의석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의석을 끌어오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19일 오전 춘천 중앙시장과 명동거리를 방문해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현장에는 허영 춘천갑 후보와 전성 춘천을 후보, 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 등이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허영 후보가 지난 4년간 열심히 일을 잘 해 왔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줘야 하지 않느냐"며 허 후보를 추켜세우는 한편 "전성이나 민주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원내) 1당이 되거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국회를 점령한다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 것이다, 전성으로 바꿔달라"며 전 후보 지지도 호소했다. 이 대표는 정권심판론도 거듭 수면 위로 올렸다. 이 대표는 "정부가 하는 일은 강경 모드로 한반도를 긴장에 빠뜨리는 것, 국민을 억압하는 것, 야당을 탄압하는 것, 꼬투리를 잡아 수사·압수수색으로 겁주는 것, 언론들의 입을 막기 위해 회칼로 테러했다고 위협하는 것, 입을 틀어막는 것밖에 없다"며 "국민이 부여한 권력으로 국민을 겁박하고 억압하는 잘못된 머슴들은 확실하게 책임을 묻고 해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는 접경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원도의 '안보 우려'를 의식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남북관계가 안정되고, 교류가 확대되고, 국제정세가 안정되면 접경 지역들의 경제가 좋아진다. 군사적 위협과 긴장을 최소화하고, 평화 체제를 주창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어 온 정당이 더불어민주당"이라면서 "(윤석열 정권이) 맨날 주먹만 휘두르고 말 폭탄만 던지니 미국에서 한반도가 전쟁 위험 국가라고 하지 않냐"고 맹비난했다. 이어 이 대표는 오후에 원주 중앙시장과 문화의 거리를 찾아서도 "전쟁을 획책하는 것 같은 국민의힘에 다시 권력을 맡기면 한반도에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른다"며 "4월 10일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대결하는 날이 아닌, 국민이 주인임을 선포하는 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2024-03-19 19:36:01[파이낸셜뉴스] [춘천·원주·경기·서울=김예지·전민경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강원 춘천과 원주를 찾아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부각, 원내 1당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의 강원 방문은 지난해 6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애로사항 청취를 위해 강릉 수산업자를 만나고,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한 후 약 9개월 만이다. 특히 춘천·철원·화천·양구 갑(이하 춘천갑)과 원주을의 경우 허영 후보와 송기헌 후보가 현역 의원으로 있는 지역구인 만큼, 해당 지역 의석을 수성하려는 의지와 함께 국민의힘의 원내 과반 의석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의석을 끌어오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19일 오전 춘천 중앙시장과 명동거리를 방문해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현장에는 허영 춘천갑 후보와 전성 춘천을 후보, 백승아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 등이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허영 후보가 지난 4년간 열심히 일을 잘 해 왔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줘야 하지 않느냐"며 허 후보를 추켜세우는 한편 "전성이나 민주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원내) 1당이 되거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국회를 점령한다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 것이다, 전성으로 바꿔달라"며 전 후보 지지도 호소했다. 이 대표는 정권심판론도 거듭 수면 위로 올렸다. 이 대표는 "정부가 하는 일은 강경 모드로 한반도를 긴장에 빠뜨리는 것, 국민을 억압하는 것, 야당을 탄압하는 것, 꼬투리를 잡아 수사·압수수색으로 겁주는 것, 언론들의 입을 막기 위해 회칼로 테러했다고 위협하는 것, 입을 틀어막는 것밖에 없다"며 "국민이 부여한 권력으로 국민을 겁박하고 억압하는 잘못된 머슴들은 확실하게 책임을 묻고 해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는 접경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원도의 '안보 우려'를 의식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남북관계가 안정되고, 교류가 확대되고, 국제정세가 안정되면 접경 지역들의 경제가 좋아진다. 군사적 위협과 긴장을 최소화하고, 평화 체제를 주창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어 온 정당이 더불어민주당"이라면서 "(윤석열 정권이) 맨날 주먹만 휘두르고 말 폭탄만 던지니 미국에서 한반도가 전쟁 위험 국가라고 하지 않냐"고 맹비난했다. 향후 목표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는 1당을 하는 것이고, 좀 더 욕심낸다면 민주당 자체로 151석을 하는 것"이라며 "의석 수로 본다면 그렇게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지금 '170석 하겠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회복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간청했다. 한편, 막말 논란으로 정봉주 후보의 공천이 취소된 서울 강북을 경선에서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가 박용진 의원을 꺾고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비명계 박 의원이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의 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이변 없는 결과'라는 평가다. 두 번의 경선 탈락을 겪게 된 박 의원은 "우리 정치사에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라며 비통한 심경을 밝혔다. yesji@fnnews.com 김예지 전민경 기자
2024-03-19 16:01:45\r\r\r\r\r\r\r\r\r\r\r\r무대 위에서 배우 이순재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을 맡는 것이 좋다. 한번도 배우로서 충족된 적이 없다. 그러니 계속 무대에 오르겠지"라며 "그냥 항상 하는 건데 경쟁은 어디에나 존재 하는 것이니 역량이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박범준 기자\r\r\r\r\r\r\r\r배우 이순재(사진·80)를 인터뷰하러 간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고등학생 사촌부터 회사 동료, 부모님까지. 남녀노소를 아울러 사랑받는 배우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와, 좋겠다' 감탄에 이어 그에 대한 찬사와 함께 따라오는 말이 있었다. '그 연세에 참 대단하셔. 연극 도전도 하시고.' '도전'이라니…. 배우로서 한 우물만 파온 인생에서 연극은 그의 '시작'이었다. 1960년 서울대, 연대, 고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창단한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 멤버로 소극장 운동을 주도하던 그였다.\r\r요즘 세대에게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야동순재',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의 '직진순재'로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56년 서울대 철학과 3학년 때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연극·영화·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300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 출연작 가운데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 같은 연극들은 그가 특별히 아끼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이 시작일 수밖에 없었어요. 텔레비전도 없었고 영화라고 해도 당시 한국 영화는 외화에 비해 수준이 많이 못미쳤으니까 연극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지."\r\r\r관련기사\r[대한민국 명장열전] 로보트태권브이 아버지 김청기 감독\r[대한민국 명장열전] 한국 수묵추상의 거장 서세옥\r무대 위 배우 이순재는 여전한 현역이다. 아서 밀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시련'에 댄포스 역을 그가 맡았다. 지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잘못된 판단을 돌이키지 않고 사형선고까지 내려버리는 악역이다. 냉철하고 이지적인 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역할이다. 하지만 지난 4일 공연 전 극장에서 만난 실제 모습은 소탈하고 편안한 이웃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꽃보다 할배'를 찍기 위해 그와 함께 여행을 다닌 한 제작진은 "젊은 사람을 능가하는 연기에 대한 열정, 지적인 매력, 자상함까지 이런 어른이 또 있을까 싶다. '사기 캐릭터'가 따로 없다"고 고백했다. "나이도 많은데 자상하지 않으면 어린 친구들이 다 도망가지. 허허. 인간관계인데 엄격해야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큰 규범 안에서 벗어나지만 안으면 되지. 과거에 선배들 중에 엄격한 걸 하나의 권위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사인 받으러 오면 다 거절하고. 나는 사인 다 해주지.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60년 째 연기인생. 그는 스스로도 배우가 될 줄은 몰랐다. 다만 당대 최고의 예술영화들을 섭렵하면서 연기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영화광이었음을 증명하듯 그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명감독과 영화들을 줄줄 읊으며 당시를 회고했다. "'자전거 도둑' '밀라노의 기적' '무방비 도시'같은 영화, 비토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그때 다 나왔어. 지금 영화사에 남는 걸작들이지. 프랑스 영화로 치면 장 콕토가 대단했고,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 '오셀로'같은 작품들이 다 영화로 나왔지."―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대학교 2학년 겨울에 영국의 거장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출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봤다. 당시 배우는 '딴따라'로 통하는 시절이었다. 엄청난 천대를 받았다. 그런데 저 경지면 예술이다, 저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연기는 어떻게 배웠나.▲거의 독학이었다. 외국 명배우들의 연기를 많이 봤다. 그 다음이 책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론을 일본에서 구해다 봤다. 한국에는 아직 안 들어왔을 때다. 일본의 공연예술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초기 한국 연극, 영화, TV드라마의 메소드는 일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게 대부분이었다.연극 무대에 오르고싶어서 이해랑 선생이 하시던 명동 다방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은 적도 있었다. "명동길에 '동방살롱'이라고 있었어요. 이해랑 선생 아버님이 부산에서 의사인데 연극 돈벌이 안되니까 아들 먹고 살라고 만들어주신 거였지. 예술인, 문인들의 집결지였죠. 박인환, 김수영 같은 시인들도 드나들고. 거기 알짱거리고 있으면 혹시나 해서 뽑힐까했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고. 하하. 그래서 우리끼리 해보자고 한게 실험극장이었어."현재 극단 현대극장을 이끌고 있는 김의경 등과 함께 창단한 '실험극장'은 광복 후 가장 오랜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사립극단으로서 수많은 명작들과 배우들을 배출했다. 그런데 역시나 연극은 배가 고팠다. 제대 후 군에서 방송실장으로 월급쟁이도 해봤지만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만 굳어졌다. 드라마센터로 가서 이해랑 선생에게 배역 하나만 달라고 했다. 마침 '로미오와 줄리엣'의 머큐쇼 역할이 비어있었다. "이제부터는 굶을 각오를 하고" 연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고생 길을 말리러 찾아왔을 때 "이거 아니면 안된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해볼 재간도 없었어. 일찌감치 사업 능력이 없다는 건 간파했고 고시 공부를 하기도 늦었고." 아버지는 결국 "뭘 하든 일류가 되면 밥 벌어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겠냐"며 항복했다.\r\r\r\r\r\r\r\r\r\r\r\r\r\r\r\r―어릴 적부터 타고난 끼가 있었나.▲없었다. 끼가 있다고 연기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끼에 의존하면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니 정체된다. 연기 뿐만이 아니다.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해야 끊임없이 노력해 경지에 도달한다. 좀 떴다 하면 스스로 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으스대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이 나이 먹고 위상이 높아지니 마땅치 않으면 주먹질하고 돌출행동도 한다. ―그러면 연기는 무엇으로 하는가.▲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한다.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예술창조라는 것은 하다보면 업적이 나온다. 그런데 그 역시 과정일 뿐이지 끝은 아니다. 해석을 달리하면 다른 발견이 나오고 그걸 표현할 때 보는 재미가 생긴다. 그림도 잘 그린다고 맨날 똑같은 것만 그릴 수 없지 않나.―작품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인가.▲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댄포스도 단편적인 역할분석만하면 권위 내세우고 소리만 빵빵 지르면 된다. 그러나 인물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디테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배우라면 자기 역할 분석을 투철히 해야 한다.그렇다면 그는 스스로를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나? 평범한 배우지." 이유를 물으니 "평범하니까 제대로된 상을 못받았지"하며 껄껄 웃었다. "중간에 TV드라마로 옮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연극에 좀 소원해졌지."―배우로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동질감을 느껴서가 아닐까.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느냐다. 시트콤에서 '야동 순재'로 인기를 얻은 것도 젊은 아이들이 보기에 얼마나 친근했겠는가. '우리 할아버지도 나처럼 야동에 관심을 갖네' 그런 거다.1964년 TBC 개국부터 1980년 언론 통폐합 때까지 16년 간 전속 탤런트로 안방극장을 휩쓸었다. TV 드라마를 하게 된건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1968년까지 연극을 12년 넘게 했는데 한 푼이라도 받은 적이 없어. 처음 돈을 받았던게 1978년에 대박났던 '세일즈맨의 죽음'이었으니까."1966년 결혼한 그는 더욱 가열차게 작품을 했다. 영화같은 경우 한번에 10편 넘게 계약을 하고 촬영을 했다.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에 이어 '국민할배'까지, 아버지 역할을 수없이 많이 한 그였지만 실제로는 "형편없는 아버지"였다. "아버지 구실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한달에 집에서 자는 날이 많으면 일주일. 집에 들어오면 고단해서 쓰러져 자니까 남편 구실도 못했지. 그런데 어떡하나 안 그러면 밥을 못 먹는데. 10년 정도 그렇게 하니까 연희동에 집 한채 짓게 되더군요."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로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을 무렵 그는 14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중랑갑 민정당 후보로 나가 700여표 차이로 석패한 후 다음 선거에서 3500표 이상 차로 압승을 거뒀다. "완전히 내버린 지역이었어요. 3당 합당까지 했는데도 공천 희망자가 한 명도 없었어. 개천을 복개하다가 우리 면목동만 딱 남겨놨으니 알만 하지." 고(故) 김영삼 전 대통의 후보자 시절 선거유세도 함께 했다. "한 번은 국민들의 환호가 너무 나한테 쏠리는 거야. 다음 유세부터는 후보자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선도 연설을 하고 그랬지."정치는 계속 하지 않은 건 "본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내 지역에 서비스 했고 빨리 내자리로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했지. 그 때 딱 60세였어요. 기력이 남아있을 때 돌아가야 후배들 신세 안지고 내 길을 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지요"드라마, 연극을 병행하면서 후학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는 그다. 연극 출연 중에도 자신이 석좌교수로 있는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거의 매일 학교를 찾는다.―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말이다. 언어 훈련이 연기의 시작이다. 거리(street)와 거:리(distance)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잘못하다간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되기가 십상이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돌을 비싼 돈에 모셔오니 작품이 한심해 지는 거다. 특히나 언어로 밥먹고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는 언어가 연령과 지역에 상관없이 전부 전달해야할 책임감이 있다. 배우로서 이룰 만한 건 다 이룬 그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을 맡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한번도 배우로서 충족된 적이 없어요. 그러니 계속 무대에 오르겠지."그는 "화려한 배우를 꿈 꿔본적도 없다"고 했다. "그냥 항상 하는 건데 경쟁은 어디에나 존재 하는 것이니 역량이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지 더 바라는 것도 없어. 아쉬운 건 '햄릿'을 못해본 것.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서 아무도 안시켜 주겠지? 하하."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배우 이순재는△80세 △함경북도 회령 출생 △서울대 철학과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 △극단 실험극장 창단 멤버 △제14대 민자당 국회의원 △민자당 부대변인 △경희대 한의학 명예박사 △서울대학교 강사 △문화관광부 문화의 날 보관문화훈장 △제6회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 △제11회 부일영화상 신인남우상 △제1대 연기자협회 회장 △제1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분례기'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집념' △MBC 연기대상 사극부문 황금연기상 '이산',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거침없이 하이킥'△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문화예술인부문 대상 △제20회 금계백화장영화제 남우주연상 '그대를 사랑합니다'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및 고문 SG연기아카데미 원장\r
2015-12-06 19:43:47\r\r\r\r\r\r\r\r\r\r\r\r\r\r\r\r\r그는 '기억'과 '상상'으로 요리한다. 축농증 수술로 후각을 잃은지 30년이 넘었다. 30년 전 기억으로 재료를 찾고, 상상 속에서 그 향을 조합한다. 그런 요리들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셰프가 됐다. 중화요리 전문점 '목란(木蘭)'의 오너셰프 이연복(사진)이다.JTBC의 요리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GD(지드래곤)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GD의 냉장고에서는 세계 3대 진미라는 트러플, 캐비어, 푸아그라가 모두 나왔다. 출연한 셰프들은 냉장고 속 재료들로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셰프 홍석천은 3대 진미를 모두 선택했다.그런데 이연복은 갈치를 집어들었다. 갈치살을 발라 야채와 섞어 만두를 쌌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갈쌈만두'다. GD는 맛을 보자마자 엄지 손가락을 번쩍 들어올렸다. 투박하게 구워낸 그 만두는, 세계 3대 진미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이연복은 "후각을 잃기 전에는 트러플, 캐비어, 푸아그라가 없었기 때문에 무슨 향인지 모른다"며 "아는 재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주 덤덤한 말투로. 서울 연희동 '목란'에서 '사부'(중식당에선 셰프를 이렇게 칭한다) 이연복을 만났다. 토요일 오후, 힘들게 잡힌 인터뷰였다. 점심과 저녁 사이 레스토랑이 잠시 쉬는 시간, 그는 만두를 싸던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타났다. 낡은 청바지에 후줄근한 조리복 상의, 길게 늘어뜨린 앞치마. 카메라 뒤의 현실, '전쟁터'와 같은 자신의 주방에서 이연복은 늘 그 모습이다.―너무 바쁜 것 같다.▲정말 피곤하다. 방송에, 홈쇼핑에, 매장 일까지 챙기다보면 3~4시간밖에 못 잘 때가 허다하다. 방송은 매장이 문을 닫는 월요일에 몰아서 한다. 홈쇼핑은 일을 끝내고 밤 늦게 출연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항상 목란을 지킨다.고단한 인생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화교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 가난했다.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혼나는 일이 잦았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배달통을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40년 요리사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좋아서 온게 아니예요. 먹고 살려고 선택했지. 내가 부유한 집에 태어났으면 이런 험한 일을 뭐하러 했겠어요. 남들처럼 캠퍼스에서 신나게 놀고, 열심히 공부했겠지."요리는 주먹다짐으로 배웠다. 불같은 성질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여러번 싸움에 휘말렸고, 많은 중국집을 전전했다. 그 험한 시간을 견디며 어깨 너머로 배운 요리다. 그는 "나는 사부가 없다"고 했다.―요리는 어떻게 익혔나.▲그때는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선배가 없었다. 보려하면 가리고, 물어보면 짜증을 냈다. 감으로, 눈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음식이 나가고 들어올 때 접시에 손가락을 살짝 넣어 맛을 보고,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 날 기회가 오면 만들어 보는 식이었다.중국집들 사이에 "이연복의 요리가 맛있다"는 소문이 났다. 열일곱에 우리나라 최초 호텔 중식당, 명동 사보이 호텔의 '호화대반점'에 들어갔다. 스물두살에는 주한 대만 대사관의 최연소 주방장이 됐다. 음식 솜씨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다.―대사관 시절은 어땠나.▲대사관 주방이라고 해도 요리사는 나와 보조, 둘 뿐이었다. 대사와 대사 부인의 매끼니를 챙겨야 하니 다양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자꾸 머리를 써야 했다. 연회나 파티도 자주 있어서 코스 요리도 도맡았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요리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조리법을 적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대사 부인들이 알려주는 레시피를 따라해보고, 뭔가 빠졌다고 말해주면 보충해갔다. 그 레시피들이 지금의 '목란' 메뉴를 만들었다.그렇게 8년쯤 지났을 무렵, 그는 안정된 직장을 떠나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 늘 그랬듯 갑자기 결정한 일이었다. 일본에서 부부는 첫 가게 '라이라이(來來)'를 열었다. 일본인, 한국인, 대만인, 중국인에게 맞는 맞춤형 도시락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결과는 대성공. 특히,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에선 아무도 먹지 않는 닭발을 조려 서비스로 제공한 것이 입소문을 탄 덕이다.―계획없이 벌인 일이다. 두렵지 않았나.▲우리 부부는 무슨 일을 하건 한가지 믿음은 꼭 갖고 있었다. 요식업계에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은 다른 사람들도 죽어도 못 이룬다는 것.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았다.―첫 가게부터 성과가 좋았다.▲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식당과 다르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했다. 각자의 성향에 맞는 메뉴를 만들기 위해선 늘 연구·개발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빈 도시락 쓰레기도 모두 직접 수거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을 들이니 입소문이 나고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일본에서의 10년은 요리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불같은 성질, 예민한 성격, 눈에서 느껴지던 날카로운 살기가 점차 사라졌다. 그의 온화한 미소, 친절은 일본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일본에선 어느 가게든 손님이 들고 날 때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요. 아주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억지로 따르다보니 나중엔 진짜 마음속에서 우러나게 되더라고요."1999년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서울 역삼동에 처음 '목란'을 열었다. 이후 15년동안 '목란'은 압구정동과 평동을 거쳐 지금의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다. 매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도 그는 한번도 시장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무슨 배짱인가.▲목이 좋은 곳은 임대료가 비싸지 않나. 중요한 건 자리나 크기가 아니다. 시장 조사를 하는 시간에 열심히 실력을 닦으면 된다. 음식이 맛있으면 자연히 소문이 난다. 내 실력, 내 음식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손님이 안들까 하는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그는 매일 400~500개가 되는 만두를 일일이 손으로 반죽해 직접 싼다. 파삭파삭하고 육즙이 풍성한 만두를 만들기 위한 고집이다. '동파육'은 6시간 넘게 졸여야 해서 예약제로만 주문할 수 있다. 짬뽕과 짜장면은 주문 즉시 신선하고 뜨겁게 조리한다. 사부는 편법없이 정직하게, 한 그릇의 음식에도 '자부심'을 담는다.―너무 요령없이 산다는 생각은 안드나.▲그래서 정말 피곤하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그렇지 않을거면 말아라'는 마음으로 산다. 피곤해도 남들과 다른 음식을 만들려면,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 정확하고, 정직해야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망설임을 갖지 않고 가야 할 길을 바르게 가는 것, 속임수나 꼼수없이 정직하게 하는 게 내가 요리를 대하는 마음이다.그는 미각이 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을 거르고, 단 것을 먹지 않는다. 흡연과 폭음도 금한다. 후각을 잃은 후, 그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원칙이다.\r\r\r\r\r\r\r\r\r\r\r사진=박범준 기자\r\r\r\r\r\r\r\r―후각을 되살릴 방법은 없나.▲아직 없다. 병원에서 검사를 할 때 보니 1단계부터 50단계까지 있는 향을 나는 전혀 맡지 못했다. 코를 확 찌르는 신맛이나, 와사비의 매운 맛 정도는 느낌으로 알뿐 향은 전혀 모른다. 새로 들어온 향신료, 허브, 식재료는 향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쓰지 못한다. 예전에 써 본 향을 기억해 재료를 찾고 상상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내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판단한다. 물론 한계가 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다. 남보다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요리사로 사는 삶에 만족하나.▲처음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좋아졌다. 요리가 마음을 담는다고 생각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사람이 짜증날 때 음식을 하는 것과 기분이 좋아서 하는 음식은 정말 다르다. 음식은 단순히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예술'이란 걸 시간이 갈수록 느낀다. 그러면서 점차 생각도, 책임감도 많아진다.칼을 든지 40년, 사부는 이제 은퇴를 준비한다. "먹고 살만해졌으니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했다.―앞으로 계획은.▲작은 레스토랑 2~3개를 만들어서 제자들에게 관리를 맡기고 싶다. 내 레시피를 활용한 프랜차이즈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제대로 된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면 중국요리 전문점을 체인화해서 소자본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들려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꿈이 있는지 물었다. 매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꿈이라긴 뭐하고. 아내랑 요즘 그런 얘길 해요. 한적한데 땅을 사서 유기동물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자고. 불쌍한 사람들은 도와주는 단체가 많은데 말도 못하는 동물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정부 지원을 받는 유기동물 안식처들은 보호 동물들이 15일 안에 입양이 안되면 안락사를 시켜야 한데요. 동물들 눈이 얼마나 선해요. 안쓰러워서 제가 직접 다 돌봐주려고요. 동물들이랑 같이 늙어가야죠."'목란'을 나서던 길, 주차장 한편에 놓아 둔 그릇들이 눈에 띄었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물과 사료를 넣어둔 그릇이다. "세상에 하찮은 음식은 없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모두 다 귀하다"는 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음식 한 그릇에 담아내는 사부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이연복 셰프 프로필△56세 △1977년 사보이호텔 △1980년 주한 대만대사관 주방장, 총주방장 △1999년 중화요리 전문점 '목란' 오픈 △2014년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2015년 KBS 2TV '해피투게더', 올리브TV '셰프들의 레시피 게임', SBS플러스 '강호대결 중화대반점' 등 출연 △ 2015년 '사부의 요리' 출간 △'목란' 오너셰프(현)\r
2015-11-01 16:43:20추징금도 2억6864만원 '명동 사채왕'으로 불리는 최모씨(61.구속)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억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민호 전 판사(43.사법연수원31기)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최 전 판사에게 징역 4년 및 추징금 2억6864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전 판사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앞서 최 전 판사는 금품수수 혐의는 인정했지만 "청탁을 받아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알선명목으로 받은 것은 아니다"며 알선 혐의를 강력 부인해왔다. 재판부는 "사채업자 최모씨가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해 도움을 받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피고인의 삼촌을 통해 피고인에게 접근했으며 피고인도 최모씨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고 보여진다"며 "피고인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단 지난 2008년 10월경부터 판사로 부임한 2009년 2월 23일 이후까지 최모씨의 마약 사건 담당 검사에게 전화하거나 사건 기록 사본을 받아 검토하는 등 최모씨의 의도대로 형사사건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사채업자 최씨에 심어주기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무너진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피고인을 정직하고 성실한 사회인 거듭나기 위해 장기간 실형에 처해 엄벌할 것"이라며 "다만 피고인이 최씨의 형사사건을 담당한 판사 또는 검사에게 부정한 업무의 처리를 부탁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한편 이날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하늘색 수의를 입은 채로 법정에 들어선 최 전 판사는 선고 내내 주먹을 꽉 쥔 채로 서 있었다. 또 재판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크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
2015-05-21 17:18:32'명동 사채왕'으로 불리는 최모씨(61·구속)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억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민호 전 판사(43·사법연수원31기)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2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최 전 판사에게 징역 4년 및 추징금 2억6864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전 판사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앞서 최 전 판사는 금품수수 혐의는 인정했지만 "청탁을 받아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알선명목으로 받은 것은 아니다"며 알선 혐의를 강력 부인해왔다. 재판부는 "사채업자 최모씨가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해 도움을 받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피고인의 삼촌을 통해 피고인에게 접근했으며 피고인도 최모씨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고 보여진다"며 "피고인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단 지난 2008년 10월경부터 판사로 부임한 2009년 2월 23일 이후까지 최모씨의 마약 사건 담당 검사에게 전화하거나 사건 기록 사본을 받아 검토하는 등 최모씨의 의도대로 형사사건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사채업자 최씨에 심어주기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과 공정성, 청렴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피고인이 판사의 기본 소양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도 집을 구하려는데 보태려는 가벼운 욕심에 판사로서의 직업윤리와 자존심 마저 내버렸다"며 "2억여원에 달하는 현금을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수수했고 수표 대신 현금을 요구하는 대담한을 보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무너진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피고인을 정직하고 성실한 사회인 거듭나기 위해 장기간 실형에 처해 엄벌할 것"이라며 "다만 피고인이 최씨의 형사사건을 담당한 판사 또는 검사에게 부정한 업무의 처리를 부탁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한편 이날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하늘색 수의를 입은 채로 법정에 들어선 최 전 판사는 선고 내내 주먹을 꽉 쥔 채로 서 있었다. 또 재판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크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앞서 최 전 판사는 사채업자 최씨로부터 2009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수사무마 청탁과 함께 2억6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기소됐다.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
2015-05-21 11:34:15박봄 코믹셀카 (사진=박봄 트위터) 박봄이 산다라박과 찍은 코믹셀카를 공개했다. 19일 2NE1 박봄은 자신의 트위터에 “다라와 함께”라는 짧은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은 서울 명동 아디다스 플래그십 스토어 리뉴얼 오픈 기념 이벤트에 참석한 박봄과 산다라박이 깜찍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사진 속에는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사람이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부릅뜨고 코믹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에 박봄 코믹셀카를 접한 네티즌들은 “박봄 코믹셀카 빵 터져”, “박봄 산다라박 완벽한 호흡이네”, “박봄 코믹셀카 표정 자연스러워”, “싸우자!”등의 반응을 보였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gagnrad@starnnews.com최현정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3-04-19 15:28:49‘발효가족’의 송일국과 박진희의 티격태격 커플 사진이 공개됐다. 오는 12월7일 방송예정인 JTBC개국 특집 미니시리즈 ’발효가족’의 두 주인공 호태(송일국 분)와 강산(박진희 분)은 만났다 하면 서로 시비를 걸며 아옹다옹하는 와중에 서로의 진심을 느끼게 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물들이다. 특히 '가게주인'과 '알바생'의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은 근무 시간이나 밥값 같은 사소한 일에도 티격태격하며 귀여운 로맨스를 펼쳐나가게 된다. 드라마 ‘발효가족’은 평소 사사건건 부딪치는 호태와 강산이 위기의 순간에 찰떡궁합이 돼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나갈 예정으로 23일 이들의 로맨스를 일부 느낄 수 있는 스틸 컷이 공개됐다. 공개된 장면은 한식당 '천지인'에서 일하고 싶음을 밝힌 호태를 의심하며 호태의 취직을 반대하는 강산의 모습과 결국 '천지인'의 식구로 함께 하게 되면서도 아옹다옹하는 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주먹을 꼭 쥐며 호태를 노려보는 강산의 표정은 살벌함까지 느껴져, 둘 사이에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다. 한편 멋대로 살아온 호태가 연애 초보인 강산을 만나 티격태격하면서 펼쳐나가는 좌충우돌 로맨스를 담는 ‘발효가족’은 오는 12월 7일 JTBC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syafei@starnnews.com김동주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최효종 개그 철학, “생각없는 개그는 재롱, 뼈가 있어야해” ▶ 오연수, 김남길에 호감 “'나쁜남자' 연기몰입 가장 잘 돼” ▶ 김한석 아내 임신, “4년만에 김한석 주니어 생겨 기뻐” ▶ 이승기 명동 등장, “여자 얼굴부터 본다”..너무 솔직? ▶ '천일의 약속' 문정희-정준, 수애-김래원과 새로운 대립관계?
2011-11-23 15:50:05도깨비 방망이로 뚝딱하면 대박이 터졌다. 매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골프 얘기다. 그린을 후끈 달군 올 여름부터 지은희, 송민영, 양용은, 허미정, 안병훈, 신지애가 바통을 이어가며 우승 퍼레이드를 펼치더니 엊그제 최나연이 또한번 세계를 제패했다. 짧게는 한나절 몇시간 시차로 세계 무대를 쥐락펴락했으니 어지간한 낭보에도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표 골프 아이콘들은 이제 한류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할 때마다 브랜드 ‘대한민국’은 빛을 발했다. 세계는 주목했고 극적 드라마가 빚어낸 골프 한류의 경제효과는 곧장 날개를 달았다. 핫뉴스는 날갯짓 한 번에 천리길을 휩쓸었다. 양용은 골프가 몰고온 경제가치가 물경 1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왔으니 이만한 효자 산업이 또 어디 있으랴. 저 비용 최대 효과, 그들은 현대 경제학의 서막을 알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이 태동한 이래 ‘가장 경제적인 게 뭔지’를 오롯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맨몸으로 보여줬다. 고부가가치 창출이 따로 없다. 한데 골프한류 열풍에 관광이 불현듯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관광이야말로 고부가가치 산업의 총아여서 일 게다. 요 며칠 사이 전해진 관광소식 한 토막. 일본인 관광 매출 실적이 짧긴 해도 또렷한 상승 곡선을 그려냈더랬다. 일본 연휴인 ‘실버위크’(19∼23일) 특수 덕분이다. 그 기간 서울 명동과 남대문은 붐볐다. 신종플루 신드롬에 가슴 조였던 그곳 쇼핑가들은 전년 동기 대비 일본인 매출이 많게는 갑절가까이 뜀박질했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대박이 터졌다. 그러나 맹점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그 기간 일본 관광객들이 쇼핑에 유난히 눈독을 들였다는 관광업계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원·엔화 환율의 강세(원화가치 평가절하)가 일본관광 특수의 원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이른바 환율 효과를 등에 업고 상대적으로 물건값이 싼 국내 쇼핑이 일본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물론 쇼핑도 관광이다. 원·엔화 환율이 그러나 역으로 전개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가격 경쟁력이 뚝 떨어져 관광특수를 견인했던 쇼핑은 시들해진다. 그 수많은 실속파 일본관광객의 다음 행보는? 대비하지 않으면 저 망망대해의 환율 파고에 우리네 관광 운명을 내맡기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귀 따갑지만 해법은 역시 경쟁력이다. 때마침 신성장동력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의료 관광이 경쟁력을 키우고 있어 퍽 희망적이다. 수준 높은 의료 기술력과 서비스가 의료 관광의 밑천이다. 24일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이 본사 ‘2009 서울 국제의료 관광 콩그레스’ 행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관광상품과 접목시켜 2500억원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희망 메시지를 띄웠다. ‘제2의 한류 붐’을 기대해본다. 또 하나의 경쟁력은 차별화다. 그냥 차별화가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한다. 그게 세계화다. 한국만이 갖는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쇼핑거리를 앞세워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밖에 달리 용빼는 재주가 없다. 이방인들이 한 번 오면 다시 찾고 싶어지는 관광명품을 만들면 된다. 경쟁력에 불을 댕길 재료는 많다. 한옥, 한식, 한복, 한약재, 한지, 한우, 사물놀이, 아리랑타령, 하회탈, 굿, 방앗간, 막걸리, 이순신…. 이 재료들을 한데 버무려 이색체험 문화공간을 마련해준다면 이방인 가슴에 깊게 각인될 수밖에. 테마별로 재미 있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른바 스토리텔링으로 숨겨진 한국의 미를 일깨워줘야 한다. 그저 풍경 구경만 재촉하면 경쟁력이 있을 리 없다. 맥 짚어야 할 또 하나.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쇼핑거리 등을 관광산업 이름 아래 두루뭉술하게 하나로 뭉뚱그려 평가해서는 안 된다. 4대 ‘거리’의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80점이라고 해 모두가 80점은 아니다. 60점·70점·90점·100점, 100점·90점·70점·60점, 100점·100점·80점·40점 등 여러 경우의 조합이 나올 수 있다. 한국관광에 매겨진 ‘거리’별 성적표가 과연 몇 점인지 돌이켜 볼 때다. /joosik@fnnews.com 김주식기자
2009-09-24 18:2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