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전라남도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에서 마한-백제-중국-일본 교류의 증거가 나왔다고 16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 2021년부터 5년간 진행한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발굴조사의 성과를 17일 현장설명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일원 표산고분군은 고대 마한 역사문화권의 핵심 유적지다. 특히 장고분(長鼓墳)이 군집된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번 조사를 통해 함평지역 고대 마한 세력이 백제, 중국, 일본과 긴밀히 교류했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장고분은 일본 묘제인 전방후원분과 유사하지만, 전형적인 일본 유물 대신 지역 생산 토기, 중국 남조의 동전문양도기, 백제계 유물 등이 출토됐다. 이는 서해안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유력 세력의 국제적 교류를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표산고분군 축조에 높은 수준의 공법이 적용된 사실도 확인됐다. 정밀한 측량과 설계, 구획과 지형에 따른 성토 방식은 고분의 장기 보존과 구조 안정성을 고려한 결과로 분석된다. 고분으로 분류됐던 15기 중 5기는 조선 후기 이후 조성된 민묘로 밝혀져 향후 정비에 반영될 예정이다. 고분군 내 장고분이 가장 먼저 축조되고 외곽으로 갈수록 원형 고분이 늦게 만들어지는 경향을 통해 6세기 전후 약 50~60년에 걸쳐 조성됐다. 지역 유력자를 중심으로 한 엄격한 위계체계가 존재했음도 밝혀졌다. 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함평군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해 고분군의 종합적인 보존·정비 및 활용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현장설명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7-16 10:48:00[파이낸셜뉴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오는 17일 오전 10시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물의 기억 한성의 역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풍납토성 성벽이 노출되며 백제 왕성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을축년 대홍수는 한반도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대재앙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백제 한성(漢城) 왕성의 존재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특히 홍수 이후 풍납토성과 암사동 선사주거지 등 서울 동부 일대의 중요 문화유산들이 발견되면서 한국 고고학사에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풍납토성 발견 이후 100년간 축적된 백제 한성에 대한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모색한다. 고고학, 역사학, 도시공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한강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백제 한성의 연구 방향을 심도 깊게 논의할 예정이다.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의 기조강연 '100년만의 귀환 풍납토성'을 시작으로 △한성의 도시화와 변화양상(이난경) △일제시기 한성 유적의 조사(오영찬) △도성사적 관점에서 본 백제 한성(신희권) △백제 한성기 한강의 수로 교통과 도성의 위상(임동민) △한성백제 도성 안팎의 공간구조(강동석) △한성기 도성의 공간구조와 운영체계(이보람 외) 등 총 6개의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발표 이후에는 권오영 서울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한성의 공간과 구조에 대한 종합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현장 등록을 통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누리집에서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할 수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7-16 10:34:15[파이낸셜뉴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충청남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재조사 결과 백제가 웅진 시대 전반부터 이미 안정적인 내부 정치체계와 대외 교역망을 운영했음을 시사하는 유물들과 왕실의 돌방무덤 구조가 확인됐다고 17일 밝혔다. 연구소가 이번 조사한 왕릉원 1~4호분은 무령왕릉 묘역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부터 1호, 2호, 3호, 4호분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연구소는 지난 2023년 9월부터 해당 유적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96년 만에 다시 이뤄진 조사다. 먼저 한성기에서 웅진기로 이어지는 백제 왕실 무덤의 양식이 공통으로 드러났다. 1~4호분 모두 경사면을 깎아내 완만하게 조정한 다음 가장 동쪽부터 순서대로 조성됐다. 또 지하에 만들어진 무덤 속 굴식 돌방무덤은 천장을 돌 한 장으로 덮는 궁륭식 구조였으며 내부 벽면에는 석회를 바르고 바닥에는 30㎝ 두께의 강 자갈을 채운 공통된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웅진 초기에도 백제의 대내외 정치 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2호분에서는 청색 유리옥이 달린 금귀걸이를 비롯해 화려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함께 발견된 은에 금을 도금해 줄무늬를 새긴 반지는 신라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도 유사한 형태가 출토된 바 있어 당시 백제와 신라 간 긴밀한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웅진 천도 초기에도 백제의 대외 교역망이 활발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결과도 얻었다. 1~3호분에서 유리옥 1000여 점이 출토됐는데, 이 가운데 황색·녹색 유리옥의 납 성분이 무령왕릉과 동일하게 태국산으로 분석됐다. 이는 백제가 웅진기 초부터 동남아시아와의 광범위한 교역망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이밖에 2호분의 주인공이 제23대 삼근왕(재위 477~479)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발견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2호분에서 출토된 금 귀걸이와 함께 나온 어금니 2점에 대한 법의학 분석 결과, 어금니의 주인은 10대 중후반의 연령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2호분의 조성 시기인 웅진기 초기 왕인 개로왕(21대)의 직계 후손 가운데 유일한 10대 군주였던 삼근왕일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연구소는 오는 18일과 19일 오전 11시 발굴 현장(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7)에서 일반 국민에 직접 공개 설명회를 진행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6-17 10:57:06[파이낸셜뉴스] 국가유산청은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에 있는 백제 무덤군인 '세종 한솔동 고분군'을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한솔동 고분군은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찾은 유적이다.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결과,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와 옛 무덤이 여럿 확인됐으며 현재 시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다. 백제가 웅진(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으로 수도를 옮긴 475년을 전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옛 무덤 48기 가운데 굴식돌방무덤 7기, 돌덧널무덤 7기가 현재 정비돼 있다. 굴식돌방무덤은 횡혈식 석실묘(橫穴式 石室墓)로도 불리며 무덤 방으로 들어가는 부분에 석축 측면 통로를 갖춘 형태의 무덤이다. 돌덧널무덤은 통로 없이 석재로 벽을 만든 무덤을 뜻한다. 한솔동 고분군은 백제시대 무덤을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특히 2호분으로 불리는 무덤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굴식돌방무덤과 비교하면 규모가 크고, 묘도(墓道) 출입석이 놓인 길고 경사진 통로가 남아있다. 묘도 출입석은 굴식돌방무덤에 시신을 안치할 때 만드는 임시 통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돌을 일컫는다. 통로와 무덤방이 모두 지하에 있는 점도 기존의 굴식돌방무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한솔동 고분군은 세종시의 첫 사적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학계에서는 추후 세종 일대의 역사적 배경과 가치를 연구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측은 "인근 나성동 도시 유적 및 토성과 더불어 거대하고 정교한 고분 존재를 통해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한 지방 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5-29 11:18:28【파이낸셜뉴스 익산=강인 기자】 전북 익산시가 백제 무왕의 탄생지로 알려진 서동생가터와 연동제(마룡지) 일대 유적지를 정비하며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29일 익산시에 따르면 194억원을 투입해 추진 중인 '서동생가터 유적정비사업'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정비를 통해 수변전망테크, 산책로, 꽃밭, 주차장 등 다양한 힐링 공간이 조성돼 시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쉼터를 제공한다. 특히 마룡지 주변에는 초화류를 식재하고, 산책길 곳곳에는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해 감각적인 야경을 연출했다. 야간경관은 오는 5월 3일 서동축제 개막과 함께 일몰 후부터 자정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새로 조성된 제2주차장(연방죽 가든 옆)을 이용하면 산책로로 바로 접근할 수 있어 이용 편의성도 높였다. 서동생가터 정비사업은 2023년부터 추진됐으나 부지 내 석축, 저온저장고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면서 발굴조사가 병행됐다. 이에 발굴구역을 제외한 지역을 1단계로 구분해 우선 조성했으며, 하반기에는 수변테크 주변 추가 경관조명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또 2단계 정비공사는 올해 설계와 착공 후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추진할 방침이다. 익산시는 이번 서동생가터 정비를 통해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 및 활용 기반을 다지고, 고도보존육성 기본계획에 따라 백제왕궁, 금마저 등 주요 유적지와의 연계를 강화해 익산의 고도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회복해 나갈 계획이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서동생가터 유적 개방을 시작으로 금마저 역사문화공간 조성과 고도 이미지 복원 사업을 본격 추진하겠다"며 "세계유산센터와 연계해 체류형 관광 기반을 확충하고, 익산을 백제역사의 거점 도시로 도약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kang1231@fnnews.com 강인 기자
2025-04-29 15:58:06【파이낸셜뉴스 오산=장충식 기자】 경기도 오산시는 충남 공주시와 우호 교류도시 협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오산시는 백제 온조왕 때 축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의 병법이 살아 숨쉬는 독산성 및 세마대지 등 사적이 있다. 공주시도 공산성, 무령왕릉이 백제역사유적지구 일환으로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대규모 역사문화축제인 대백제전의 중심지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양 도시는 백제의 숨결이란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공유되는 유구한 역사 기반을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서에는 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한 공동협력, 역사·문화·예술분야 교류를 통한 상호 발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권재 시장은 "오산시와 공주시가 선진 정책공유는 물론, 지역 특산물 직거래 장터를 운영하고, 지역 내 관광지 입장료 감면 등을 통해 상호방문을 촉진하자"며 "양 도시의 활발한 교류가 지역 간 동반 성장에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원철 공주시장도 "양 도시간 우호 교류 활동을 계기로 많은 오산시민들께서 우리 공주시에 방문해주시기를 바란다"며 "관광지 입장료 감면 등 오산시민들이 힐링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함께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2025-03-20 16:18:36[파이낸셜뉴스] 하림은 이마트와 협업해 하얀 국물 라면 '백제면'을 출시하고, 하반기 라면 시장 공략에 나선다고 17일 밝혔다. 백제면은 우사골로 국물을 내는 사골곰탕과 달리 닭고기와 돈사골, 우사골을 모두 넣고 정성껏 끓인 고기 육수에 새우, 조개를 넣어 해물의 시원함까지 담은 제품이다. 닭고기의 고소함, 돈사골과 우사골의 감칠맛에 해물과 채소로 풍미를 더한 깊고 진한 닭곰탕 맛이 특징이다. 백제면은 4개입 번들 형태로 구성됐으며 전국 이마트, 이마트 에브리데이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림 관계자는 "점차 세분화되는 라면 트렌드에 맞춰 이마트와 함께 '백제면'을 출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소비자가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제품 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
2025-03-17 09:18:50【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 연수구는 중국 장쑤성 난징시 친화이구에 백제와 남조 교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우호 상징물 설치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연수구는 이재호 구청장이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장쑤성 난징시 친화이구를 방문해 우호 상징물 설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1월 31일 밝혔다. 연수구는 백제와 중국 남조의 교류 역사를 기념하는 우호 상징물을 설치하고 양 도시 간 역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연수구는 친화이구의 주요 유적지와 관광지를 시찰하고 상징물 설치가 가능한 부지를 방문했다. 또 양국의 우호교류 활동과 두 지역의 공동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교류사업을 논의했다.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능허대는 백제가 중국에 사신을 파견한 이래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출발했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연수구는 인천시 기념물로 지정된 능허대지 일대에서 매년 능허대축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축제를 찾았다. 이재호 구청장은 “우호상징물 설치는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연수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5-01-31 13:17:22전북 익산(益山)은 서울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길목이고, 여산은 그 입구다. 현재 익산은 행정구역으로 익산시이며 과거 오랫동안 익산은 익산군과 이리시로 분리돼 있었다. 1906년 익산군, 1931년 이리읍, 1949년 이리시, 그리고 1995년 통합으로 익산시가 되었다. 익산시의 읍면 행정구역으로 익산시 외 금마면, 여산면, 왕궁면, 황등면, 함열읍, 함라면 등이 있다. 전체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전북에서 전주 다음이며 군산보다 인구가 많다. 전북은 지형적으로 동쪽의 소백산지(무주·진안·장수), 서쪽의 호남평야(전주·이리·군산), 그리고 그 중간에 중산간지(임실·순창·남원)로 이루어진다. 익산은 금강 북쪽의 논산평야, 익산 남쪽의 호남평야와 연결된다. 익산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장항선) 등의 철도가 교차하는 호남 최대 교통요지가 되었다. 익산의 지리적 위치, 지정학적 장소성의 영향으로 백제와 고려시대의 불교, 근현대의 천주교·기독교·원불교의 터전으로서 종교도시로서 익산의 단면을 본다. 익산은 고대사에서 백제 이전의 마한과 청동기·석기 시대의 문화유적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호남의 입구 여산은 특히 현대시조의 거두인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와 문학관으로 유명하다. 이병기 선생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도 잘 인식하면서 전북의 여러 초중등 학교와 전국 유수 학교 교가를 작사했다. 경남중, 경기중, 경복중, 경북중 등 당시 전국 명문들도 포함된다. 가람문학관에는 이병기 선생이 작사한 모든 교가를 다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문학관의 한국 학교 교육에 대한 큰 기여를 보여준다. 전북 익산시는 1995년 행정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돼 이루어졌다. 고조선시대에는 건마국(乾馬國)이었고, 위만(衛滿)에 쫓긴 기자(箕子)의 준왕(準王)이 익산으로 내려오면서 마한국(馬韓國)이 됐다. 현재의 금마를 중심으로 백제시대에는 금마저(金馬渚)라 했고, 통일신라가 되면서 금마군으로 바뀌었다. 1344년 고려시대 원나라 순제의 황후 기황후 친정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익주(益州)'로 높여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다시 익산으로 변경됐다. 고산자 김정호는 지리지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익산을 백제의 별도(別都)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백제의 수도 사비에 버금가는 특별수도로 여겼음을 뜻한다. 왕궁 터와 미륵사지, 많은 산성들이 그 의미를 더한다. 백제 무왕의 새로운 통치이념을 위한 철저한 계획 왕도(王都)로 개발했다고 본다. 백제가 더 존속했다면 아마도 수도를 익산 금마로 이전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도 왕도로 손색없는 많은 시설과 유물이 나오고 있어 백제와 마한의 역사를 살펴준다. 역사적으로 마한과 백제, 부여로 연결되며 고려의 역사유적도 더러 살필 수 있다. 마한은 진한(경북), 변한(경남)과 함께 삼한으로 불린다. 마한은 기원전에서 대략 기원후 400년까지 경기, 충청, 전라도에 존속한 정치체제였다. 익산은 역대 왕조에서 수도가 된 일이 없는 곳임에도 한국의 4대 고도(古都)로 공식 인정되었다. 4대 고도는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익산이다. 고도는 과거의 왕궁, 왕성, 왕릉, 왕사(王寺)가 있는 도읍이다. 익산에는 백제 무왕과 관련된 미륵사와 왕궁 유적, 쌍릉 등이 있다. 4대 고도의 보존과 육성을 위해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2017년 입법예고되고 2020년 5월 정식으로 시행됐다. 이에 힘입어 익산에도 '국립익산박물관'이 설립됐다. 지형 및 지질에 있어 익산은 화강암 지대로 유명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강암으로 1억5000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백악기 정도의 질이 좋고 아름다운 화강암이다. 현재 채석되고 있는 한국의 화강암 생산에서 가장 높은 품질을 보여준다. 황등면에 국내 최대 화강암 채석장이 있고, 암석의 질도 매우 높다. 익산의 발전은 자연 및 인문지리의 연관성에서도 살필 수 있다. 산지의 지역 특성에 대한 영향, 호남평야의 개간과 수리시설, 저수지시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후의 근대적 개발과 현재의 상황 등으로 지역의 문화와 경제가 잘 나타난다. 고대와 중세의 도로, 하천, 해안 교통과 근현대의 철도와 신작로 건설 등이 익산의 역사지리와 현재의 익산 지리에 반영되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익산, 여산, 함열, 용안 등이 통합돼 현재의 익산이 됐다. 일제강점기 솜리 마을에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을 잇는 철도역이 들어서면서 익산의 중심은 금마에서 솜리로 옮겨졌다. 솜리(혹은 솝리)는 '깊은 속 마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데 그대로 한자어 이리(裡里)로 변경되었다. 여기서 이(裡)는 한자 표리(表裏)에서 속을 뜻하는 이(裏)와 같은 뜻이다. 이리라는 지명은 '대동여지도' '동국여지승람' 등 고문서와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호남선 개통으로 솜리가 철도 요지가 되고, 이를 배경으로 금마에 있던 익산 행정 중심을 솜리로 옮기면서 1931년 전격적으로 익산을 한자 지명 이리로 바꾼 것이다. 이리시가 다시 익산시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1977년 11월 11일 일어난 이리역 폭발사고 때문이다. 그럼에도 익산에는 이리초, 이리중, 이리고, 이리공고 등 이리 명칭 학교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이리시와 익산군으로 분리됐다가 현재는 익산시로 변경됐다. 여전히 익산의 경제와 행정중심지는 과거 이리에 있다. 주요 문화유적은 청동기 문화, 초기 철기 문화 유적과 함께 마한과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가 모두 함께한다. 그중에서도 마한과 백제 유적이 대표적이다. 익산은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만경강이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지맥이 경계가 되고 서쪽으로는 호남평야 군산과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부여군과 논산시, 동쪽으로는 완주군, 남쪽으로는 김제시와 전주시, 서쪽으로는 군산시와 행정 경계를 이룬다. 호남평야상으로 보면 평야의 북동부에 해당하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경제개발에 따른 대규모 평야 개척은 익산에서는 만경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말과 일제강점기의 거대한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황등제는 당시 익산 농업의 큰 힘이었다. 익산역은 철도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의 교차역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농업 물산의 집산지 역할을 해왔다. 사실 평야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의 논산평야, 익산평야, 호남평야, 나주평야가 연결돼 있다. 익산은 지형, 물산, 장소와 위치, 역사와 문화 등에서 풍요로운 지역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2-09 18:49:18[파이낸셜뉴스] 삼국시대 백제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475년)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서쪽 성벽에서 과거 의례를 지낸 흔적이 나타났다.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풍납토성 서성벽 복원지구 일대를 조사한 결과, 과거 의례 행위를 한 흔적과 한성기 백제인이 성을 짓는 기법을 새로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소 측은 "(풍납토성) 성벽에서 의례 행위를 한 다양한 양상을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조사 결과, 서성벽을 이루는 기반 층에서는 지진구(地鎭具)로 추정되는 항아리 총 3점이 출토됐다. 지진구는 건물을 짓기 전에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해 묻는 상징물을 뜻한다. 항아리 형태로 추정되는 지진구 가운데 2점은 뒤집힌 채 묻혀 있었다. 약 11.95m 깊이에 묻혀 있었던 나머지 지진구 1점은 바로 선 형태로, 상단에 나무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뚜껑 흔적과 함께 발견됐다. 서문이 있었던 터에서는 동물로 추정되는 유체도 확인됐다. 발견된 유체는 개와 어린 소의 뼈 등으로, 과거 의례를 올릴 때 공헌물(貢獻物)로 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흔적들은 대규모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조사에서는 한성기 당시 백제인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흔적도 나왔다. 성벽 일대에서는 다양한 나무 기둥이 확인됐는데, 토루(土壘·흙을 쌓아 만든 성) 경계에서는 길이가 2.5m가 넘는 장목주(長木柱)도 발견됐다. 오늘날 건축물의 뼈대를 이루고 구조적 안정성을 더하는 에이치(H)빔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연구소는 오는 17∼18일 이틀간 오후 2시 현장에서 설명회를 연다. 연구소는 지난 2017년부터 해 온 풍납토성 서성벽 복원지구 일대 조사를 올해 마무리할 방침이다. 연구소는 그간의 조사 성과를 토대로 연구 성과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0-15 11: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