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7일 컨디션 난조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이 오늘 진행됐다. 9일 가요계에 따르면 송대관의 영결식이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유족과 동료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후배 가수들이 고인의 대표곡 ‘해뜰날’을 조가로 불렀다. 조사는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이 맡았다. 그는 노래 '네박자'의 제목을 고인과 함께 결정했던 일화를 떠올리며 "'네박자'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특히 정이 가고 노래에 한몫했다고 생각해 행복했다"며 "선배님의 유머 있는 모습과 따뜻한 미소와 주옥같은 노래들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 고인의 라이벌이자 막역한 후배였던 가수 태진아가 추도사를 했다. 지난 3일 밤낮을 술을 마시며 보냈다고 밝힌 그는 "대관이 형은 제 멘토였다"며 "치매를 앓는 제 아내가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인과 함께 '트로트 4대 천황'으로 꼽혔던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고 애도했다. 송대관은 지난해 10월 '전국노래자랑' 충남 당진시 편과 영등포구 편 녹화에 참여했다. 충남 당진시 편은 이달 16일, 영등포구 편은 오는 3월 2일 방송된다. 한편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10여년간의 무명 생활 끝에 지난 1975년 '해뜰날'이 히트하며 MBC 가수왕에 오르는 등 주목받았다. 그러다 당시 가수들의 주 수입원이던 극장쇼가 사양길로 접어들자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이민 생활 10여년 만인 1989년 귀국해 '정 때문에' 등을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1990∼2000년대에 '네가 뭔데', '차표 한 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유행가', '네박자' 등 히트곡을 꾸준히 내며 트로트 장르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했다. 비슷한 시기 활동한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남진에 이어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2008∼2010년)를 맡아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5-02-09 17:00:23[파이낸셜뉴스] 히트곡 '해뜰날'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 고인의 유족 등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평소 지병이 있어 수술도 세 차례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1975년 '해뜰날'의 히트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 장' 등 많은 히트곡을 내며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5-02-07 16:50:45[파이낸셜뉴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수 송대관 씨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7일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관아, 어떻게 이렇게 황망하게 가느냐"며 "'쨍하고 해뜰날'이 너였건만 너도 기어이 가는구나"라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어 그는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독립지사 후손으로 홀 어머님께 그렇게 효도하고, (내가) 문화부 장관 때 어머님이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니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형님 감사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용서를 빈다”, “내가 네 처를 야단쳤을 때 “형님 대학 무용과 출신의 부유한 집에서 하찮은 저 하나 보고 결혼, 자식들 낳고 길렀습니다. 저는 제 처를 절대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고 감싸면서 사랑을 표하던 너”라며 “뉴욕 씨씨 선물점에서 발리 구두 사 신고 좋아하던 너”, “해외동포와 금전거래로 시비 보도에 내가 갚겠다고 나섰던 나에게 형님 하며 울던 너”였다는 애절한 심정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선거 때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유세 지원해주고, 나도 요즘도 네 노래 가사 인용해서 글쓰고 하는데 이렇게 가다니” 하며, “이제 편히 가라. 쉬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노래 ‘해뜰날’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송 씨는 이날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 유족 등에 따르면 송 씨는 전날 컨디션 난조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얼마 전에도 칸디다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가 상태가 호전돼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1967년 데뷔한 송 씨는 10여 년간 무명 가수로 지내다 1975년 ‘해뜰날’을 히트시킨 뒤 ‘차표 한 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유행가’, ‘네박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5-02-07 14:10:05[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린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날 가요계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그는 얼마 전에도 칸디다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가 상태가 호전돼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가수 데뷔를 했다. 하지만 10여년간 무명으로 지내다 1975년 '해뜰날'이 큰 인기를 끌면서 MBC 가수왕에 오르는 등 그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당시 가수들의 주 수입원이던 극장쇼가 사양길로 접어들자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이민 생활 10여년 만인 1989년 귀국해 '정 때문에' 등을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1990∼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네가 뭔데', '차표 한 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유행가', '네박자' 등 히트곡을 꾸준히 내며 트로트 장르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했다. 비슷한 시기 활동한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송대관은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MBC '10대 최고 가수왕', KBS '가요대상' 성인 부문 최고가수상 등 유수의 상을 받았고, 지난 2001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는 남진에 이어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2008∼2010년)도 맡아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회장 재직 당시인 2009년 일본 노래방에서 한국 가요가 무단으로 사용된 점을 지적하며 현지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2025-02-07 12:12:08[파이낸셜뉴스] 국민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7일 가요계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송대관은 지난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1975년 '해뜰날'이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같은 해 가수왕까지 석권했다.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5-02-07 11:29:12[파이낸셜뉴스] 트로트 국민 가수 송대관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7일 뉴스1에 따르면 송대관은 이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평소 지병이 있었으며 수술도 세 차례 진행했으나 호전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송대관은 지난 1967년 곡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이후 이후 1975년 발표한 곡 '해뜰날'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고 태진아, 현철,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군림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5-02-07 11:06:59구두산업의 메카였던 서울 성수동에는 아직까지 옛 명성을 지키고 있는 구두 명장들이 있다. 한용흠 레오(신발 수선업체) 대표(사진)도 성수동 구두거리를 지키고 있는 명장 중 한 사람이다. 그는 50년 가까이 구두를 만들고 고쳐왔다. 1972년 처음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성동구 연무장길에서 보낸 기간만 35년째이다. 서너 평 남짓 작은 가게지만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용흠 명장을 성수동 공방에서 만났다. 그는 "여기 이 고소리가 제일 중요해요. 틀에다 가죽을 씌우고 잡아당겨서 구두 모양을 잡아주는 거죠"라며 "집게, 가위, 망치가 단순하고 흔한 물건으로 보이죠. 요렇게 네 개만 있으면 못 고치는 구두가 없어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한 대표는 주로 수선을 전문으로 한다. 그래서 넓은 공장도 필요 없고 자신이 앉을 공간만 있으면 세상 어떤 명품 구두도 다 새것으로 만들수 있다고 자부했다. 손에 든 새 부리처럼 생긴 고소리를 통해 그의 장기인 특수화가 무엇인지 설명해줬다. 그는 "어떤 분이 젊었을 때 신었던 명품 구두를 굽이 높아서 버리려고 하다가 가져왔어요. 10㎝ 굽을 4~5㎝로 낮춰야 하는데 남들이 못한다고 했답니다"며 "정성껏 해드렸죠. 특수화란 것이 다른 거 없어요. 그 사람의 발에 맞춰 제작해서 편하면 특수화예요"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가 꼽는 특수화 중 백미는 좌우 다리의 길이가 달라 걸음이 불편해서 목발을 짚는 선배를 위해 최적의 신발을 제작한 사례다. 목발 없이 잘 걸을 수 없던 선배를 위해 좌우 굽 높이에 체형을 계산해 특수 제작, 구두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걸 신어 본 선배는 목발을 버릴 정도로 꼭 맞는 구두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한 대표는 "가장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며 "이게 수제화의 묘미이고 특수화를 하는 재미"라며 웃었다. 공방은 작았지만 한 대표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고, 못할 게 없는 창작실이에요. 구두와 공방은 '내 인생 전부'예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GD 등 유명인의 구두도 제작했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이 독일 전시회에 가져간다고 3M 반짝이를 사용한 구두 제작 의뢰가 들어와 제작해줬다. 이후 독일에서 해당 구도가 유명해지면서 YG로부터 빅뱅 무대 신발을 전담하게 됐다. 이후 2NE1하고 송대관씨 신발도 제작했다. 이상봉씨 패션쇼 모델 하이힐도 몇년간 한 대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한 대표는 "특이한 걸 만드는 게 좋아서 한 일이에요. 한 켤레를 만드는 데 20일 걸려요"라며 "한 켤레 값으론 많이 받지만, 그 시간에 다른 구두를 만드는 것과 수입이 비교가 안돼 실속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돈 버는 데 재주가 없고 특이한 걸 만드는 걸 좋아하는 한 대표가 성수동에서 구두 명장으로 오랫동안 있길 기원해 본다. kjw@fnnews.com 강재웅 기자
2022-01-02 18:27:34[FN스타 이승훈 기자] 가수 송대관이 28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진행된 '가요무대' 녹화에 참석했다. totopurdy_star@fnnews.com fn스타 이승훈 기자
2020-12-28 22:58:34[FN스타 이승훈 기자] 가수 송대관이 28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진행된 '가요무대' 녹화에 참석했다. totopurdy_star@fnnews.com fn스타 이승훈 기자
2020-12-28 22:57:32[FN스타 이승훈 기자] 가수 송대관이 28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진행된 '가요무대' 녹화에 참석했다. totopurdy_star@fnnews.com fn스타 이승훈 기자
2020-12-28 22:5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