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15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질서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공정위 강화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한 시장질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의 최대 개혁과제는 정경유착을 뿌리 뽑는 것이다. 공정한 대한민국은 권력과 재벌의 부당거래를 완전하게 사라지게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면서 "평화혁명의 에너지를 공정한 대한민국을 위한 경제개혁에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강화에 방점 안 전 대표는 4대 과제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재벌의 소유와 지배력 간의 괴리 해소 △시장의 투명성 제고와 견제기능 강화 등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공정위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야권 주자는 전속고발권 폐지 등 공정위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반대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안 전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공정위가 경제부처의 한 부서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준사법기관이 아니라 경제부처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공정위는 준사법기관으로서 국민과 국가 경제를 위해 (경제부처와) 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하되 투명성을 높여 제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공정위 상임위원 수를 5명에서 7명으로, 임기를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각각 늘리는 한편 공정위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공정위의 조사방해를 불법행위로 간주해 제재하되 전속고발권을 일부 폐지해 기업의 중대한 불법행위를 감시할 창구를 늘리기로 했다. △관제답합금지특별법 제정 △일감몰아주기 실효세율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소비자집단소송제 도입 등도 공정한 시장질서를 위한 복안으로 내놨다. ■"비리기업인 사면 없다" 재벌 개혁도 시급한 과제로 봤다. 안 전 대표는 "더이상 재벌을 법 위에 군림하는 예외적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대표소송제 보완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해관계자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 제한 등을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자신했다. 비리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비리기업인을 경영에서 배제하는 이사자격제한 규제를 만들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재벌총수에 대한 과도한 보수지급, 퇴직금 지급 관행도 개선하겠다"고 단언했다.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금융감독체계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안 전 대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통합금융감독체계 중요성이 강조됐지만 우리나라는 금융계열사를 다수 보유한 재벌이 존재함에도 통합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으며 "자본적정성 평가 시스템을 시행하고 그룹 전체의 위험관리와 지배구조에 대한 관리시스템을 점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지주회사 규제의 실효성 강화 △공익법인을 통한 총수일가의 지배권 강화 방지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강화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 △기업지배구조 관련 공시 확대 △최고경영자(CEO) 승계시스템 마련 △회계시장 투명성 강화 등도 공약했다. ■국회 설득해야…"자신 있다" 안 전 대표는 공약의 상당 부분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처리되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에 대해 "대선 공약으로 다시 말한 이유는 실행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협치를 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개혁법안이 통과되기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계파에 갇혀서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자신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법인세 인상 등도 경제개혁안으로 제시한 것과 관련해선 "법인세 부분은 경제개혁과 완전히 다른 주제"라며 "경제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한 시장으로의 개혁과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개혁"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 전 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가계부채"라면서 "가계부채 정책은 따로 발표하기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다"며 공약 발표를 예고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2017-03-16 11:45:12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11일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 △새로운 정치 △평화와 공존이라는 이른바 '다섯 개의 문(門)'을 중심으로 한 종합 정책공약집을 공개했다. 출마선언 이후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정책공약 발표를 통해 국정 전 분야에 걸친 정책 구상을 밝힌 바 있는 문 후보가 차기정부의 추진 과제로 제시한 5대 핵심분야를 24개 부문으로 세분화한 실천공약을 발표한 것. 문 후보는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가진 종합 정책공약 발표회에서 "국가의 자원배분에서 사람을 가장 우선하겠다"며 "그동안 많은 정책들을 발표했는데 오늘은 그 정책들을 관통하는 가치와 비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첫 과제 '일자리 혁명' 제시 캠프 내 일자리위원장을 직접 맡으며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 후보는 이날 공약집의 첫 과제로 일자리혁명을 제시했다. 그는 임기내 공공부문 40만개, 정보기술·융합기술·문화예술 등 창조산업 50만개, 여가산업 20만개, 2030년까지 탈원전·신재생에너지 분야 50만개의 일자리를 각각 창출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70만개 확보를 제시했다. 또 2017년까지 전 산업 비정규직 절반을 정규직으로 전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고용평등법 제정,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인상, 청년고용의무할당제와 고용분담금 도입 등을 약속했다. 국민의 기본 소득보장을 위해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의 2배 인상 △청년 구직자에게 최대 1년간 월 50만원 취업준비금 지급 △12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 아동수당 지급 △근로장려세제(EITC) 적용대상의 자영업자 확대를 공약했다.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연간 환자 본인부담금을 100만원으로 하는 상한제를 실시키로 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임기 중 시설기준 20%, 이용아동기준 40%로 확충하고 특별활동비 등 추가적인 보육료 부담을 없앨 계획이다. 서민주거비 절감 차원에서 장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2018년까지 10%로 확대하고, 1회에 한해 전세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 부여 등을 약속했다. ■'공정경제' '기득권·특권 포기' 문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키워드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시장 거래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공정경제'를 제시했다.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중소상공부'를 설치하고 대형유통업체 입점허가제, 중소기업적합업종특별법 제정, 원자재가격-납품단가 연동제 실시, 이익공유제 시행 등을 내놓았다. 재벌개혁 분야에서는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출자본 3년 내 해소, 10대 재벌에 대한 순자산 30%까지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 지주회사 부채비율 상한을 100%로 축소,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4%로 축소 등 강도 높은 지배구조 개선안을 제시했다. 금융감독체계의 경우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분리하고 국내금융정책과 국제금융정책을 통합하는 한편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담할 독립기구를 신설키로 했다. relee@fnnews.com 이승환 기자
2012-11-11 17:49:20한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가 오는 2030년까지 150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현재는 약 1000억달러로, 이 역시 작지 않은 규모지만 양국의 우호적 관계가 계속 이어지면 가능한 목표라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양국의 다양한 협력계획을 발표했다. 방산, 치안 분야를 필두로 원전, 고속철도, 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인프라 분야 협력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 급변기에 베트남 시장의 가치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아시아권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이고, 인구구조도 젊은 층 비중이 높은 역동적인 국가다. 인구 1억명의 평균연령이 32세다. 생산가능인구는 전체 인구의 67%를 차지한다. 성장세는 미국과 관세전쟁을 치르면서도 굳건하다. 올 상반기 베트남의 성장률은 7.52%로 최근 15년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가 8%대다. 시장의 활력이 느껴진다. 한국과 관계는 한때 전쟁터에서 서로 총을 겨눈 아픈 기억이 있지만 지금 베트남은 중국,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핵심 무역 파트너가 됐다. 베트남은 지난 2022년 일본을 제치고 3대 교역국이 된 이후 줄곧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2년 미국을 제치고 최대 무역흑자국으로 올라섰고, 이후엔 2위 흑자국 위치가 확고하다. 이 대통령이 회담 후 "베트남은 대한민국에 매우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럼 서기장이 새 정부 첫 국빈 방문자라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베트남 기업의 시너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양국은 지난 1992년 12월 정식 외교관계를 체결한 이후 경협 규모를 꾸준히 확대했다. 삼성과 현대차, LG 등 한국 대기업들이 앞다퉈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2014년엔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양국 교역 규모는 수교 이후 150배, FTA 체결 후 2.5배나 커졌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지난해 1만개를 돌파했고 이들이 현지에서 창출한 일자리는 1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향후 양국 기업들이 손잡을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베트남의 신규 원전 건설과 북남 고속철도 건설, 신도시 개발 등 대형 국책사업에서 한국 기업이 기회를 잡을 수 있길 기대한다. 양국은 이날 원전 분야 인력양성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원전 협력을 위한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 베트남 박닌성 동남신도시 개발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게 되면 K신도시의 첫 수출 쾌거도 거머쥐게 된다. 인공지능,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분야와 희토류 등 핵심광물 분야 협력도 양국에 중요한 이슈다. 정부의 외교적·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무역질서로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수출 시장과 투자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중국 비중을 낮춰 차이나 리스크를 극복해야 하고, 미국 등 기존 동맹국과의 무역 관계도 새로운 정립이 불가피하다. 베트남에서 새 기회를 찾고 이를 교두보로 삼아 아세안(ASEAN) 전역의 신시장·신사업 개척에 박차를 가해야 가능해진다. 경제를 넘어 안보 차원에서도 필요한 과제다.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베트남과 남방시장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길 기대한다.
2025-08-11 19:06:26[파이낸셜뉴스] 국정기획위원회가 120여개의 국정과제를 사실상 확정하고 대국민 보고를 앞둔 가운데 1호 국정과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출범 직후 국정과제가 '내란 종식'에 방점이 찍힐 거라는 전망과 달리 1호 국정과제에는 잠재성장률을 3%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 기조를 과거 정부의 과오 수습이 아닌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1일 국정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중점전략 과제로 '진짜 성장' 전략과 '코스피 5000 시대'가 포함됐다. 이재명 정부가 지칭하는 진짜 성장이란 인위적 경기부양이나 모방을 통한 장이 아니라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지속적 성장을 뜻한다. 앞서 국정위는 진짜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한 바 있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과 잠재성장률 3%, 국력 5강 등 이른바 3·3·5 비전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AI와 바이오 등 전략산업 제도 및 인프라 지원 △중소벤처 및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확립 △공정과 상생의 시장질서 구축 등이 거론됐다.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주요 과제로는 △불공정거래 엄벌 및 적발 시스템 개선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주요 중점전략 과제의 특징은 구체적인 '수치'로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념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거 정부들의 경우 보통 최소 매년 1회 국정과제 이행 상황을 공유해왔는데, 이 대통령도 직접 관련 이행 상황을 살피면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과제는 정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1호 국정과제는 과거 정부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다. 앞선 두 정부의 경우 전 정부의 과오를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1호 국정과제에 담았다. 문재인 전 정부의 1호 국정과제는 적폐청산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촛불민심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실제 문 정부는 국정농단의 실태 파악을 위한 부처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범정부 반부패 백서를 발간했다. 또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를 통해 제도 개선 상황을 점검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완전한 회복과 새로운 도약'을 1호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대 대선 당시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큰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을 비판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윤 전 대통령은 주요 국정과제로 부동산세제 정상화를 제시했다. 당시 정권 교체 요인 중 하나로 꼽힌 것이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였다. 이처럼 정권 교체를 이룬 정부는 전 정부의 과오를 지적하면서 이를 수습하는 형태로 차별화 전략을 폈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내란 척결'이 주요 국정과제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거쳐 이룬 정권교체인 만큼 내란 세력 처벌, 검찰개혁과 개헌 등에 초점을 맞춘 1호 국정과제가 나올 거라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국정위가 중점전략으로 언급한 과제들은 성장에 방점이 찍혀있다. 내란 종식이라는 과제는 여당에 맡기고 실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정부가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국정위가 재벌을 포함해 경제6단체를 국정과제 논의에서 제외하지 않은 것도 진보 정권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물론 개헌과 검찰개혁, 사법개혁 등 내란 극복 관련 공약도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1호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 정부가 적폐청산을 내세운 것과는 대비를 보이는 부분이다. 이에 수습과 회복보다는 성장과 도약에 초점을 맞추면서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승래 국정위 대변인은 앞서 "중점 전략과제는 국민 체감도가 높고 이재명 정부의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인공지능(AI), 균형성장전략, 진짜 성장전략과 관련된 내용들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2025-08-11 14:51:41한미 간 상호관세 타결이 한국 경제에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5% 상호관세와 3500억달러 대미 금융 패키지 투자로 요약되는 결과에서 한국 경제의 취약점과 위협이 명확히 확인됐기 때문이다. 유예 종료 하루 전 전격 타결된 '협정문 없는' 대미 관세는 13년 전 한미가 합의한 자유무역협정(FTA), 지난 30년의 세계무역기구(WTO) 질서를 무력화하고 오직 강대국 미국이 지배하는 룰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가 교역의 질서를 바꾼 것 이상으로 한국 경제와 산업의 질서를 뒤흔들 것"이라며 대미 투자 쏠림에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황폐화를 막아낼 중대하고 시급한 정책 대응이 우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10일 파이낸셜뉴스는 경제·산업·통상 전문가들에게 '관세 타결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숙제를 안겼는가'를 물었다. 끝나지 않은 관세전쟁, 그 이후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찾기 위해서다. 전문가 집단의 다양한 의견을 강점(S)과 약점(W), 기회(O)와 위협(T) 네 가지 요소로 전략을 찾는 SWOT 방식으로 분석했다. '트럼프식 관세'가 한국 경제에 던진 숙제에는 경제체질의 대전환과 산업 구조개혁이 관통한다. 핵심산업 고도화와 시장 다변화, 인공지능(AI) 전환(AX)과 혁신, 산업 공동화 위기로 요약된다. 조선·반도체 등 제조업 역량이 한국의 '방패'였다면 자동차·반도체에 편중된 수출 시장은 우리를 겨냥한 '창'이었다. 사회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미국산 쌀·소고기와 같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반도체·자동차·조선·석유제품·철강 등의 제한된 주력제품 라인업, 그것도 미·중에 편중된 시장은 강점과 기회에서 지금은 치명적 약점이 됐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실장은 "한국의 주력시장이 보호무역주의에 막혔다"면서 제조업 공동화를 차단하고 위협을 기회로 살려내는 비상한 정책을 주문했다. 1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업 투자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는 미국 시장에 밸류체인을 새로 구축하며 대체불가한 독보적인 조선업의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확장할 기회다. 그러나 한 해 국가 예산의 70%에 이르는 대미 제조업 투자에 힘을 쏟다보면 가뜩이나 취약해진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는 빨라진다. AI 산업과 상용 역량 부족에 따른 시장 종속, 근원적인 제조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과 생산과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는 위협 요인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20~30년간 별 변화 없이 해오다 역동성과 선도력이 떨어진 기존 주력산업들이 (관세폭탄에) 가장 세게 두드려 맞은 것"이라고 했다. 관세 타결은 끝이 아니라 도전과 위협의 첫 장이다. 장밋빛 기대만 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경고장이자 산업·경제 재편의 골든타임을 더는 놓치지 말라는 독촉장일 수 있다. 구조적 저성장과 생산성 둔화, 글로벌 경쟁력 약화, 주력산업 성숙과 신산업 창출 부진, 산업 역동성 하락 등 경쟁력 저하와 성장 기반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최근 여러 싱크탱크의 경고가 같은 맥락이다. 관세 타결 후 주력 수출과 대미 투자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을 확장하는, 국내 경제로 환류해야 한다는 데 전문가의 의견은 일치한다. 미국은 잃어버린 반도체·조선 등 제조업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해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고 독보적인 AI 기술에 더한 공급망을 완성할 것이다. 한정된 재원과 역량이 미국에 전적으로 투입되는 만큼 국내 산업은 상대적으로 황폐화, 공동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경제·기술 대국 중국과의 사이에 낀 한국은 생존이 걸린, 비상한 시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반기업 규제와 반시장 입법을 쏟아내는 여당과 정부의 정책은 우리의 내외부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라며 "오른손은 투자를, 왼손은 규제를 가리키며 성장하자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박지영 홍예지 기자
2025-08-10 18:32:54한미 간 관세전쟁이 2라운드를 맞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 30년 세계경제를 지탱해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종식을 선언했다. 글로벌 권역별 생산·공급 협력과 분화된 밸류체인 기반의 자유무역 체계로 빠르고 힘 있게 성장해온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의 모델에 타격과 대전환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한미 간 관세 타결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15% 상호관세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 패키지 투자를 '주고받기'한 결과이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협상 직후부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10일 파이낸셜뉴스는 '한미 관세 타결이 한국 경제에 던진 숙제가 무엇인가'를 주제로 경제.산업.통상 전문가들의 의견을 SWOT(강점.약점.기회.위협) 기법으로 분석했다. 이들의 제언은 엄중했다. "조선업의 기회에 들떠 있어도 안 되고, 우리가 깜빡하는 새 국가의 운명을 가를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숨기지 않았다. ■강점(S)-조선·반도체, 기회의 땅 가장 뚜렷한 성과는 조선업 분야다. 한미 간 조선부문 협력은 단순한 '수출물량 확대' 차원을 넘어선다. 미국은 자국 내 노후선박 교체와 해양안보 강화 차원에서 막대한 발주 수요를 안고 있고, 한국이 보유한 고부가가치 선박 설계·제작 역량은 미국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원인 상황이다. 미국이 자국 내 선박 건조와 운항을 폐쇄적으로 제한한 '존스법'을 100여년 만에 바꿔 동맹국 한국을 예외로 한 이유다. 한국 조선업은 미국 공급망 속에 '필수부품'처럼 편입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에 내세울 조건도 명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조선사는 단기에 수익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내 조선 건조는 비용과 인력 부족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현 수준의 기술력과 공급망을 유지하며 MRO(정비수리운영) 분야로까지 협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업은 나아가 선박 건조를 넘어 엔진, 재생에너지, 로봇·AI·자율운항 등 첨단기술이 융합될 수 있는 산업이다. 이를 확장하면 해상 물류와 방위산업까지 파급 효과가 커질 수 있어 한국 조선업이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도록 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약점(W)-주력산업 경쟁력 추락 한미 간 관세 타결에서 국내 산업구조의 편중과 취약성은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7%를 넘는다. 대미수출 의존도 또한 20%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반도체 등 몇 개 주력산업에 편중된 점과 중국의 근본적 기술 추월 등 외부변수와 산업 구조개혁 지연의 내부 요인에 따른 한국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다. 철강·석유화학 등은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의 위협과 보호무역주의의 직접 타깃이 돼버렸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중이 각각 20% 정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특정국가의 수출 의존도가 높다. 산업도 너무 과도하게 2~3개에 몰려 있고, 부가가치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특정 시장 기반이 이제는 성장을 갉아먹는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50% 고율 관세를 맞은 철강은 현지에 거점을 둔 일본·유럽 기업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일본은 US스틸 인수를 통해 관세 리스크를 줄였고, 유럽연합(EU) 역시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 한국은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협상 테이블을 떠난 셈이다. 미국의 비관세 장벽 리스크도 상존한다. 통관절차 강화, 안전·환경 규제, 원산지 검증 등 관세 외의 다양한 수단이 언제든 무역장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회(O)-밸류체인 혁신 주도 트럼프 관세타결은 미국이 추진하는 공급망 재편 과정 전반에 한국이 깊숙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된다. 반도체·배터리·친환경 에너지 설비부터 조선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밸류체인을 함께 설계·운영하는 협력모델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 개념으로 미국시장 진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공통된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해 가야 하고, 우리의 실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우선은 미국 내 설비투자와 동시에 국내 연관 산업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실장은 "투자 규모나 기간이 국내 조선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며 "철강, 엔진, 추진 모터, 프로펠러 등 해외 투자용으로 나가는 관련 품목을 무관세로 해달라는 추후 협상이 중요하다"고 했다. ■위협(T)- 제조업 공동화 3500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투자는 양날의 검이다. 그만큼 국내 제조업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핵심업종의 생산시설과 인력이 미국으로 이동하면 국내 공급망은 취약해지고 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파급 효과가 미칠 수 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가 많다. 그만큼 국내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양 실장도 "미국시장에 수출하려면 미국에 진출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며 "대미투자가 국내 투자 감소와 기술·인력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의 산업정책과 규제 방향이 일관성을 잃을 경우 해외 투자자는 국내 장기투자에 신중해질 수 있다. 미국 현지 생산거점이 늘어날수록 국내에서는 투자와 고용이 동반 축소되고 기술역량이 해외로 이전될 위험도 커진다는 지적이다. 자유무역질서가 위협받는 비상한 시기,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데 전문가들은 공감한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산업의 근원적 경쟁력과 국부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국내에 더 많이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첨단 고도화하는 구조혁신과 인력 양성에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한국 기업의 국내투자가 줄어드는 만큼 해외에서 한국에 많이 투자하도록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이유범 김준혁 기자
2025-08-10 18:26:14[파이낸셜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먼저 추진하는 방안이 외교가에서 논의되고 있다. 정상회담 순서를 이른바 '선방일 후방미'로 구성할 경우, 한일이 먼저 입장을 맞추고 신뢰를 다진 뒤 한미일 3각 협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외교 전략은 동북아 국제 질서 변화와 한국의 외교적 위상 강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나오는 구상이라는 평가가 많다. ■경제·안보 현안 산적…'선방일 후방미' 주도권 구상8일 대통령실과 외교가 등에 따르면 최근 한미 간에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 조성, 관세 협상, 반도체·조선 등 전략산업 공급망 협력, 주한미군 규모, 방위비 분담 등 경제·안보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들어오는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고 한미 간 방위비 문제, 미국이 요구하는 추가 투자와 시장 개방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미리 현안을 조율하고 산업·공급망·통상·안보 전반에서 공동 보조를 맞춘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보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펼칠 수 있고, 불리한 양자 협상 구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기술패권 경쟁, 무역 질서 변화 등 국제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여기에 일본 역시 참의원 선거 패배 등 정치적 변수와 함께 미중 경제안보 패권경쟁, 미국발 통상 압력이라는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양국 모두 자국의 산업과 경제안보를 지키기 위해 전략적 연대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한미일 세 나라의 동맹 구조는 이미 긴밀하게 작동해왔고 한일이 같은 선상에서 경제·안보·통상 협력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와 미국에 강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도 크다. 한국은 과거 정부에서도 일본과 잦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협력을 다졌고 이재명 정부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 협력 강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특히 반도체·조선·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급망 협력, 무역·투자 문제, 비관세 장벽과 관세 등 다양한 경제 현안까지 포함해 한일 공조 체계가 더욱 중요해진 국면이다. 이 과정에서 지속되는 북핵 문제 등 동아시아 안보 이슈, 대중국 견제 등 다양한 전략적 목표도 맞물려 있다. 한국이 미국 트럼프 정부에 끌려가는 단순한 '수동적 응답자'가 아니라 '능동적 설계자'로 나서기 위한 외교 구도 변화로도 읽힌다. 일본 역시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공급망·안보 공조, 한국의 외교적 입지 바꾼다양국이 신뢰와 협력의 이미지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의 공급망 재편과 산업·통상 질서 변화에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예측불허식 요구에 대비해 한일이 사전 조율을 거쳐 입장을 견고히 할 경우 한국은 든든한 협상 '예비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여전히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국익과 국내외 여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홍규덕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미 정상회담 전에 한일이 입장을 확인하고 견고히 해두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할 때 든든한 예비조건이 될 수 있다"면서 "한일관계의 탄탄함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등 국제사회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같은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는 것이 외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west@fnnews.com 성석우 기자
2025-08-08 15:47:34관세폭탄에 자국 기업 보호 총력 상법·노란봉투법 대신 지원 시급 [파이낸셜뉴스]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 기고문을 통한 설명이었지만 동원한 개념과 주장 면에서 글로벌 교역의 중심축이었던 WTO의 종언 선언이라 칭해도 무색하지 않다. 그리어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유럽연합(EU)과 발표한 무역 합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경제 질서가 턴베리에서 확고해진 것"이라며 WTO의 대체용으로 턴베리 체제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라운드'라는 새로운 무역질서 구축을 예고한 것이다. 트럼프 라운드의 특징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이라는 당근과 관세라는 채찍을 활용해 세계의 교역 질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채찍과 당근을 두 손에 쥐고 있으니 미국이 질서 조정자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런 트럼프 라운드의 시작은 이미 WTO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예고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 3월 WTO의 재정 기여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이는 WTO 제도 전반을 무시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브레턴우즈 체제와 우루과이 라운드로 이어진 다자무역체제가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불만이 표면화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교역 질서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대응은 우물안 개구리 수준 아닌가 우려스럽다. 우선, 한미 관세 협상이 끝났다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언제든 협상의 판을 깨고 새로운 조건을 일방적으로 내미는 것이 지금까지 예측할 수 있는 트럼프식 체제의 특징이다. 가령, 미국은 반도체 관세 100% 부과 가능성을 압박하는 동시에 현재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은 예외라고 조건을 붙인다. 당장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로서는 다행이지만, 이런 구두 약속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의 실리를 지키면서도 협상으로 도출한 내용이 구속력을 갖출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 상황이다. 미국발 관세폭탄으로 각국이 자국 기업 보호에 여념이 없다. 브라질은 55억 달러 규모의 수출보증기금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스위스는 단축근로보상제도를 확대했다.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피해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우리만 기업 활력을 저해하는 법안 처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상법개정안과 노란봉투법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환경에서 이런 법안들은 우리 기업을 옥죄는 자해법과 다름없다. 트럼프 라운드 체제의 핵심은 자국 우선주의다. 각국이 자국 기업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적 제도를 정비하는 반면, 우리만 기업 규제를 강화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와 투자 촉진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정책 전환이 절실한 때다.
2025-08-08 10:51:48[파이낸셜뉴스] 미국의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7일(현지시간) 관세와 제조업 보호에 중점을 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지금까지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로 규정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와 이후 WTO 설립으로 이어진 우루과이 라운드 등 미국에만 불리하게 작용한 세계 무역 질서를 개혁하려고 한다면서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과 진행한 무역 협상을 과거의 다자 무역 협상에 빗대어 '라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이를 통해 미국이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의 토대를 깔았다"고 그리어 대표는 평가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유럽연합(EU)과 발표한 무역 합의를 "공정하고, 균형 있으며, 다자 기구의 모호한 염원이 아닌 구체적인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의 역사적 합의"로 평가하고서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턴베리에서 확고해졌으며 이 질서는 실시간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라운드가 시작된 지 130일도 안 된 상황에서 턴베리 체제는 결코 완성됐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체제의 구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돈 벌기 좋은 소비 시장이라는 '당근'과 관세라는 '채찍'을 활용한 덕분에 "지난 짧은 몇 개월 동안 미국은 수년간의 헛된 WTO 협상을 통해 얻은 것보다 더 많은 해외 시장 접근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여러 국가도 미국과의 경제 관계를 더 지속 가능하게 재조정할 필요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EU 외에도 영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한국, 태국, 베트남 등과 체결한 무역 합의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은 15% (상호)관세와 함께 미국의 자동차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이 3500억달러를 미국 제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면서 "한국은 비(非)시장 경쟁 앞에서 쇠퇴한 미국 조선 산업의 재활성화를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나라가 무역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겠다면서 미국은 시간을 오래 끄는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활용하는 대신 "합의의 이행을 긴밀히 감시하고 이행하지 않는 경우 필요하면 더 높은 관세율을 신속하게 재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2025-08-08 07:28:15미국의 상호관세가 7일부터 본격 부과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폭주기관차처럼 몰아붙였던 고율 관세가 현실화되는 순간이 목전에 왔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에 15% 관세가, 나머지 국가들은 41% 고율 관세 폭탄을 맞는다. 관세정책과 별도로 일본·유럽연합(EU)·한국 등은 수천억달러의 투자금을 미국에 쏟아부어야 한다. 경제안보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의 일방적 관세부과라는 점에 모든 국가들이 침묵 속의 유감을 표한다. 수십년간 유지돼온 자유무역주의가 역사적 퇴행을 맞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힘의 논리가 우선이라는 국제 역학 질서의 냉혹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번 위기를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기회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남다른 지혜와 역동적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수출 경쟁을 벌이는 일본, EU 등과 관세 수준을 비교해 볼 때 한국은 같은 출발선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유리하지도 않지만 불리하지도 않은 조건이다. 한국 기업의 경영혁신과 정부의 역동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환경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정책이 불러올 후폭풍도 면밀하게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당장 미국의 재정에 보탬이 되겠으나 결과적으로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가격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힘으로 얻은 이익이 도리어 자국 내 인플레이션과 미국 기업의 경쟁력 쇠락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도 있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주에 발표할 품목별 관세 부과는 걱정되는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 "처음에는 약간의 관세를 부과하지만 1년 뒤 150%, 이후 250%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품목별 관세가 추가되면 우리 기업에 실질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 부과 조치들이 우리 기업과 경쟁국에 미칠 영향을 비교우위 관점에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새로운 공급망 사슬을 구축한다는 것이 핵심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중 강국 간의 충돌 속에서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당장 세계 무역질서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거대한 역사적 변곡점에 서게 된다. 지난 수십년간 지속된 관세를 통한 자국이익 보호라는 자유무역 체제가 퇴보하고,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룰로 대체되는 시점이다. 이처럼 기존 무역질서가 흔들리는 시점에서 새로운 시장 주도권을 잡는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수동적 대응이 아닌 선제적 전략이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경제의 내부 정비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 경쟁력 떨어지는 낡은 산업의 대대적인 구조개혁과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우선돼야 글로벌 시장의 선도자로 나설 자격이 생긴다. 아울러 글로벌 가치사슬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산과 물류 전반의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트럼프발 관세 파동을 한 단계 도약할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5-08-06 19: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