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투병 끝에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대표 배우 알랭 들롱이 자신의 반려견들이 묻힌 사유지 근처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앵포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8일(현지시간) 사망한 들롱은 자신이 생전에 살았고, 임종을 맞은 프랑스 중부 두쉬의 사유지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병이 악화하기 전 두쉬에 있는 소유지 내 예배당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들롱은 지난 1971년 여배우 미레유 다르크와 함께 두쉬에 처음 정착했다. 이후 들롱은 1980년대 스위스로 잠깐 이주하기도 했으나 1987년 네덜란드 모델 로잘리 반브리멘을 만나면서 다시 두쉬에 정착했다. '반려견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긴 들롱은 그는 수년에 걸쳐 소유지 내 예배당 주변에 자신과 함께해 온 반려견 수십 마리를 묻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사유지 매장은 특정 조건에서만 허용되는데, 매장지가 도시 지역 외부여야 하며, 최소한 주거지로부터 35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또 시신 매장에 따른 수질 오염 위험이 없다는 전문 수생학자의 의견서도 필요하다. 또 지자체장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들롱은 생전 지자체장에 요청했고, 지자체장은 '원칙적 동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들롱의 구체적인 장례 절차나 일정 등은 조만간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역할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들롱은 '세기의 미남'이란 별명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다만 들롱은 1990년대 이후로는 스크린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는 지난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받은 후에는 요양 생활을 해왔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8-21 09:18:59프랑스 영화계의 대표 배우이자 한국에서도 '세기의 미남'으로 유명했던 배우 알랭 들롱(사진)이 향년 88세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AFP통신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들롱의 가족들은 1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들롱이 "프랑스 두시의 자택에서 세 자녀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요양 중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들롱의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세기의 미남이란 별명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요양을 시작한 이후에는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4-08-18 19:08:09[파이낸셜뉴스] 프랑스 영화계의 대표 배우이자 한국에서도 ‘세기의 미남’으로 유명했던 배우 알랭 들롱( 사진)이 향년 88세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AFP통신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들롱의 가족들은 1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들롱이 “프랑스 두시의 자택에서 세 자녀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요양중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들롱의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들롱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역할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1957년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약 50년 동안 평단과 대중의 환호 속에 약 9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 중 약 80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세기의 미남이란 별명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태양은 가득히 외 대표작으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년)’, ‘태양은 외로워(1962년)’, ‘볼사리노(1970년)’, ‘조로(1975년)’ 등이 있다. 들롱은 1990년대 들어 영화에 거의 출연하지 않았으나 연예인 칼럼 등으로 존재를 알렸고, 요양을 시작한 이후에는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4-08-18 16:03:43'세기의 미남'으로 불렸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세 자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아버지 들롱이 나빠진 건강과 사투를 벌이다 사망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그는 자택에서 요양 생활을 해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들롱은 웨이터, 짐꾼, 비서, 점원 등 갖은 잡일을 했다. 우연히 여배우 브리지트 오버와 친분을 쌓으면서 영화계와 인연이 닿았고, 1957년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영화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했다.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 역할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수없이 리메이크된 이 공전의 히트작에서 그는 다부진 몸과 매혹적인 눈빛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조로'(1975) 등 50여년간 9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 중 80여 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앞서 그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들롱이 향후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8-18 16:02:13어느 누구도 세월을 비켜가긴 어려운 모양이다. 프랑스 칸에서 날아온 세기의 미남 스타 알랭 들롱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다. "차가운 달콤함, 내면의 절절한 고독이 스며나오는 크리스털 블루 시선, 어느 각도로 카메라를 들이대건 깔끔하게 선이 떨어지는 수려한 윤곽"(영화평론가 유지나)을 자랑하던 알랭 들롱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서 '우수 어린 아우라'나 '악마적 퇴폐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도 이제 한국 나이로 여든다섯이다. 알랭 들롱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일종의 공로상이다. 그가 버트 랭커스터와 함께 출연했던 '들고양이'(감독 루치노 비스콘티·1963년)가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이는 감독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점에서 이번 상이 사실상 칸에서의 첫 수상이다. 황금빛 트로피를 건네받은 알랭 들롱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오직 배우로서의 인생뿐"이라며 "마치 사후에 받을 상을 살아있을 때 미리 받은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데 그의 수상을 놓고 현지에서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가 과거 가정폭력으로 물의를 빚고, 극우 성향의 정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실제로 프랑스 여성인권단체인 '레 에프롱테'는 시상식이 있던 지난 19일(현지시간) "여성폭력 등 인권 논란을 일으킨 배우에게 상을 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시상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또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한 여배우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는 문구를 등에 새기고 나타나 영화제 측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칸영화제는 지난해에도 '미투' 열풍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심사위원을 포함한 여성 영화인 82명이 성평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영화제 측은 이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공표했다. 잠잠해진 줄 알았던 미투 논란이 엉뚱하게 알랭 들롱으로 인해 또 터진 셈이다. "우리는 그가 영화산업에 기여한 업적을 치하한 것뿐"이라고 영화제 측이 해명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2019-05-21 16:55:45알랭 들롱… 한세기를 풍미한 세기적 배우다. 곱상한 외모에다 세련된 매너,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마지막 명장면에서 테마곡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석양을 뒤로 하고 씩 웃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나도 젊었을 때 알랭 들롱이 나오는 영화라면 무조건 다 보았다. 여자친구가 그놈(?)을 너무 좋아해 한때는 죽여버릴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어서 몇년 전 알랭 들롱을 서울에 초청하여 와인을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알랭 들롱은 나이가 들자 영화보다 사업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는 국내화장품 회사와 향수제품을 공동마케팅하는 일과 알랭 들롱 코냑을 내가 수입하는 비즈니스로 방문했던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나면서도 난 그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건 내가 그의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여간 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무전기를 든 보디가드들과 비서 등을 데리고 나타났는데 마치 무슨 갱두목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는 프랑스인의 자존심 지키기에 나선 사람 모양 영어를 알면서도 불어만 사용해 나는 불어통역을 또 하나 붙이는 사치까지 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누가 인생무상이라 했으며 세월은 붙잡을 수 없다고 했던가. 그의 얼굴 주름은 내 옛날 여자친구가 봤으면 눈물을 흘렸을 만큼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어쨋든 그가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우린 의형제를 맺었다. 지금도 내 사무실에 놓여 있는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형, 잘 계슈?” 하고 인사를 하곤 한다. 제네바 인근에 있는 그의 집에 놀러간 것도 몇년이 되니 ‘out of site, out of mind’란 말이 실감이 난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다. 알랭 들롱은 와인을 무척 즐겼다. 와인을 마실 때 잔을 들곤 새끼손가락을 구부리고 입안에 털어넣었는데 와인을 입안에서 몇차례 굴리곤 삼켰다. 한번은 리유니트와인을 마셔보라고 권했더니 “젊으니까 맛이 좋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그가 거품을 가리키는 것을 보곤 ‘아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발포성이다 그말이구나’라 생각을 하곤 웃어 주었다. 그는 특히 람부르스코의 맛에 감격한 듯 “멕시코 촬영을 곧 떠나는데 그곳에 가서 사먹겠다”고 하여 나를 감동시켰다. ㈜마불리유니트와인 회장
2004-03-11 10:53:46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8-18 15:06:53[파이낸셜뉴스] ‘세계 최고 미남’으로 손꼽혔던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알랭 들롱(87)이 일본인 동거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6일(현지 시각) BFM방송,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알랭 드롱의 세 자녀인 앙토니, 아누슈카, 알랭 파비앙 들롱은 아버지와 동거하는 일본인 히로미 롤링(66)이 아버지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경찰에 고소했다. 87세인 들롱과는 19살 차이인 롤링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해왔다. 들롱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19년부터 같은 집에 살면서 회복에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알랭 들롱 본인도 함께 이름을 올린 고소장에서 세 자녀는 “롤링이 아버지의 전화통화 내용과 사적인 메시지를 감시하고 우편물도 가로챘다”며 “아버지인 척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보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큰아들인 앙토니는 롤링을 추가로 고발한 상태다. 취약한 아버지에게 최소 18개월 동안 폭력을 행사한 혐의다. 알랭 들롱은 2021년 TV5 몽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롤링을 “몇 달 동안 나를 돌봐준 일본인 동거인”으로 소개한 바 있다. 자녀들의 변호인은 알랭 들롱이 롤링을 입주 도우미로 고용했다고 표현했다. 알랭 들롱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스위스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3월에는 안락사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알랭 들롱은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해 전성기에는 세계 최고의 미남 배우로 꼽히기도 했다. 2019년에는 제72회 칸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3-07-07 10:02:11[파이낸셜뉴스] 2018년 5월,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호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의사 조력 자살을 통해 사망했다. 그는 의료진이 마련한 신경안정제가 들어 있는 주사액이 정맥으로 주입되도록 하는 밸브를 스스로 열었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세기의 미남’이라고 불리는 알랭 들롱이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76.3%가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 입법화에 찬성했다. 2025년 35만 명, 2040년 50만 명, 2050년 70만 명 등 향후 대한민국의 사망자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락사의 입법화에 대한 입김 또한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은 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를 24일 밝혔다. 조사 결과, 찬성 비율이 76.3%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찬성의 이유로는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인권보호에 위배되지 않음(3.1%) 등이 있었다. 반대 이유로는 △생명존중(44.4%)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자기결정권 침해(15.6%) △악용과 남용의 위험(13.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윤영호 교수팀은 지난 2008년과 2016년에도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를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약 50% 정도의 국민들이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해 찬성한 데 비해 이번 연구에서는 약 1.5배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안락사 도입을 논의하기에 앞서 환자들이 ‘안락사를 원하게 되는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락사를 원하는 상황은 크게 △신체적 고통 △정신적 우울감 △사회·경제적 부담 △남아있는 삶의 무의미함으로 나눠진다. 이러한 분류는 안락사의 입법화 논의 이전에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여주는 의학적 조치 혹은 의료비 지원, 그리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또한 ‘광의(廣義)의 웰다잉’을 위한 체계와 전문성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약 85.9%가 찬성했다. 광의의 웰다잉은 협의(俠義)의 웰다잉(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을 넘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 확대와 함께 독거노인 공동 부양, 성년 후견인, 장기 기증, 유산 기부, 인생노트 작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광의의 웰다잉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약 85.3%가 동의했다.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호스피스 및 사회복지 제도가 미비할 뿐만 아니라 광의의 웰다잉마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라며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광의의 웰다잉이 제도적으로 선행되지 못한다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요구가 자연스러운 흐름 없이 급격하게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정한 생명 존중의 의미로 안락사가 논의되려면 환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존재적 고통의 해소’라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웰다잉 문화 조성 및 제도화를 위한 기금과 재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국제 환경연구 보건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최근호에 게재됐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2-05-24 09:32:57배우 알랭 들롱(톰 리플리 역)은 지중해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는 세일요트에 있다. 자신을 멸시하는 부잣집 아들 친구 필립 대신 키를 잡는다. 질투와 욕망이 활활 타오르지만 눈빛은 더없이 슬프다. 무명의 알랭 들롱을 하루아침에 세계적 스타로 만든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이다. 1960년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요트를 처음 봤다는 국내 관객도 있었다. 사기극의 종말이 닥치기 전 알랭 들롱은 이런 말을 한다. "햇살이 눈부실 뿐이에요. 그것 빼놓고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상아빛 요트는 그 자체로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역사적으로 요트 종주국은 네덜란드다. 17세기 해상왕국 네덜란드에서 망명 중이던 영국 찰스 2세는 뱃놀이로 울분을 달랬다. 크롬웰 공포정치가 끝난 뒤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갈 때 네덜란드로부터 받은 선물이 길이 15m의 대형 요트였다. 수시로 런던 템스강에 등장한 이 요트가 근대화된 해양 스포츠로 가는 길을 열었다. 세계 부호들에게 요트는 자기만족의 공간이다. 제작비 45억달러(5조3000억원)가 들어간 말레이시아 사업가의 요트는 재료가 압권이다. 공룡 화석뼈로 갑판을 꾸몄고, 내부 인테리어에는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을 사용했다. 요트가 귀족 이미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엔 친환경, 모험과 도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회의 참석차 미국 뉴욕까지 갈 때 타고 간 것이 태양광 요트다. 국내에선 2000년대 이후 요트 동호회가 생기고, 체험시설이 확대되면서 수요층이 늘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지난 3일 요트 쇼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외교부가 국민에게 해외여행 자제를 요청하는 특별주의보를 내렸는데 정작 장관 가족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요트 소유자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요트를 되팔 때라는 말이 있다. 유지·관리가 피곤해 구입 후 후회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구입도 하기 전에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2020-10-05 18: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