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제 막 입사 3주차가 된 신입 사원이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다음날 휴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곧바로 퇴사한 사연이 전해져 화제다. 직장 상사는 이러한 사연을 전하며 신입 사원의 태도를 지적했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친구 장례식' 휴가 낸다는 신입, 퇴근하고 갔다오라는 상사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입사한 지 3주 된 신입 사원이 친구 장례식 못 가게 해서 회사 그만둠'이라는 제목으로 해당 사연이 올라왔다. 사연을 작성한 A씨는 3주차 신입 사원의 직장 상사다. 그는 "입사한 지 3주 된 신입사원이 친구 장례식장에 가야 해서 다음날 출근을 못하겠다고 하더라"라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A씨는 신입에게 "퇴근하고 갔다 오면 되지 않겠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신입은 "회사는 서울이고 장례식장은 부산이라서 불가능하다"라고 답했다. A씨는 신입이 입사 3주밖에 안 됐기 때문에, 연차가 없어 하루 쉴 수는 없다고 전했고, 신입은 그 말에 "그냥 회사를 그만두겠다"라며 짐을 싸고 퇴사했다. A씨는 신입 사원의 이러한 태도에 "이해가 되는 상황이냐"라고 물었다. "근무규정 지켜야지" VS "못가게 하다니, 말이 되나" 네티즌 반반 처음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래도 규정은 지키며 근무하는 게 좋지 않나", "납득이 쉽지 않은 행동이긴 하다", "퇴근 후 비행기나 기차 타면 잠깐은 갔다 올 수 있지 않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다른 누리꾼들은 "절친이 상을 치른다는 소식 들으면 나도 저렇게 할 거다", "보내주고 무급처리하면 되는 일 아니냐", "못 가게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라고 A씨를 지적했다. 이 가운데 한 누리꾼은 "둘 다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며 "각자 자기 입장에서 회사의 의미가 달라 벌어진 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2023-11-28 08:12:00연애를 시작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가 있다면 조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엄청난 복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최근 영국에서 여자친구에게 빠져 친구들과 1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은 한 남성이 친구들로부터 '장례식'을 선물로 받아 화제다. 2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에 따르면 사우스웨일스에 사는 케이란 케이블(20)은 지난해부터 여자친구 제스 퍼거슨(19)과 사귀기 시작했다. 미모의 여자친구에 푹 빠진 케이란. 그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1년 반이 넘도록 주변 친구들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케이란이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을 괘씸해 했다. 이런 케이란에게 복수(?)하기 위해 50여 명의 친구들은 케이란의 가짜 장례식을 열자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장례식 준비에 돌입했다. 관과 운구차에 성경책과 추모사까지 준비했던 친구들은 검은 양복까지 챙겨입고 케이란의 가짜 장례식에 참여했다. 이들은 케이란에게 럭비를 보러 오라고 유인했고, 케이란은 이 상황에 놀랐지만 결국 제발로 관에 들어가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추모사를 통해 "1년 6개월간 케이란과 연락이 안됐다"며 "이제 기다림은 끝났고 케이란은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케이란의 한 친구는 "한 동안 우리들 중 누구도 키이란을 보지 못했다. 문자도 메일에도 답이 없었기에 마치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이번에도 케이란이 연락을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이 장례식으로 그가 정말 죽은 것으로 생각하려 했다"고 말했다. 여자친구 제스도 남자친구의 장례식에 매우 놀라워하면서도 "케이란에게 진정한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기쁘다"면서 "그들의 노력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열린 케이란의 장례식은 관을 술집으로 운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으며 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각종 SNS를 통해 확산되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얻었다. kjy1184@fnnews.com 김주연 기자
2015-10-24 12:58:02남자골프 세계랭킹 2위 버바 왓슨(미국)이 20일(이하 한국시간) 개막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기권했다. 왓슨의 매니저는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19일 "왓슨이 갑작스럽게 숨진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이번 대회에 결장한다"고 기권 사유를 밝혔다. 왓슨의 불참으로 케빈 키스너(미국)가 대타로 출전하는 행운을 잡았다. 키스너는 아담 스콧(호주), 브룩스 켑카(미국)와 1, 2라운드서 동반 플레이를 펼친다.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자인 왓슨은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함께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로 예상됐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15-03-19 17:08:42배우 박세영이 '고양이 장례식'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강인은 미스 캐스팅이라고 밝혔다. 박세영은 1월 7일 오전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고양이 장례식'(감독 이종훈)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현장에서 "현실에서 남자 친구는 이렇게 잘 생기지 않았다.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는 등 이렇게 잘 생긴 남자 친구가 어디 있느냐. 감독님의 미스 캐스팅이 아닌가 싶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그는 이어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에 많이 걱정했는데, 강인 오빠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줘서 어색함이 빨리 풀렸다. 덕분에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세영은 극 중 사랑 앞에서는 망설임 없이 표현하는 만화가 재희 역을 맡았다. 한편 '고양이 장례식'은 홍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동훈(강인 분)과 재희(박세영 분)의 만남, 사랑, 이별과 재회를 그린 감성 로맨스다.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서툰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는 1월 15일 개봉 예정. /fn스타 fnstar@fnnews.com 조정원 기자 사진 김현우 기자
2015-01-07 12:59:55[파이낸셜뉴스] 인천지법 형사항소2-1부는 15일 협박과 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인 A(37)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12월 30대 아내 B씨의 사생활을 개인 성인방송을 통해 공개하겠다는 등 6차례 협박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B씨는 지난해 10월 2차례 집에 감금됐고 결국 2개월 뒤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숨진 피해자의 아버지는 재판에서 “A씨는 딸에게 성인방송을 강요했고 거부하니 ‘아버지에게 나체사진을 보내겠다’며 협박했다”고 주장했으나 앞서 검찰은 성인방송 출연을 강요한 의혹은 무혐의 처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는 ‘1심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하면서 ‘피해자가 (성인방송 출연을 힘들어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상황도 양형 조건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성인방송 출연을 강요했다는 내용은 기소되지 않았다”며 “이를 근거로 형을 가중하면 죄형 균형의 원칙과 맞지 않아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방송 수입에 의존하다가 이혼을 요구받자 협박했다”며 “피고인의 범행은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A씨는 또 2011년 1∼4월 여성 나체 사진 등을 98차례 인터넷에 올린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음란물 유포)도 받았다. 당시 직업군인으로 일한 그는 해당 사건으로 강제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A씨의 아버지는 당시 MBC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전화를 했다”며 “딸이 ‘나 남편때문에 너무 힘들어’라고 자신을 괴롭힌다는 얘기를 했다”고 토로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다음날 만나기로 했으나 그날 오후 딸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도 털어놨다. 그는 “사위가 딸에게 성관계 영상 촬영을 강요해 이를 성인물 사이트에 돈을 받고 팔았다”며 “2년 전부터 하루 10시간씩 성인방송까지 하게했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들었다”고 주장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11-16 07:19:37[파이낸셜뉴스] 배우 고(故) 송재림이 생전 일본인 사생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송재림의 비보가 알려진 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한 사생팬이 송재림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내용이 빠르게 확산했다. 사생팬으로 지목된 A씨는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송재림을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다수 올렸다. A씨는 송재림을 향해 “당신의 연기력으로 야비한 본성을 숨길 수 있냐”, “시원찮은 배우에게 눈을 돌릴 사람은 없을 것” 등 비방성 글을 남겼다. A씨는 또 송재림 지인의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올리고 “팬들이 준 선물을 OO에게 바친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송재림의 비보가 전해지자 일부 팬들은 A씨를 지적했고 결국 A씨는 자신의 X 계정을 폐쇄했다.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송재림은 지난 12일 낮 12시30분께 성동구 소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점심 식사를 약속한 친구가 송재림의 거주지를 찾았다가 사망한 그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자택에서는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인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14일 낮 12시다.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송재림은 2009년 영화 ‘여배우들’로 데뷔했다. 이후 2011년 tvN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8년 11월~2019년 2월 방영된 JTBC 드라마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2019년 KBS 2TV 드라마 ‘너의 노래를 들려줘’ 등에선 주연으로 활약했다. 그는 지난 8월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우씨왕후’에 출연하는 등 최근까지도 작품을 통해 대중과 만나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11-14 05:22:10추수감사절을 맞아 장보기 목록을 만들면서 오빠를 생각했다. 필 오빠를 떠올리는 일은 내게 지울 수 없는 명절의 일부분이었다. 존 필립 제이콥은 태어날 때부터 요리를 사랑했다. 수중에 무엇이 있든지 맛있는 요리를 잽싸게 만들어 내는 기쁨을 찾았다. 50년도 더 지났지만 오클라호마의 농장 가옥 주방에서 덩실거리면서 소매를 휘날리던 오빠를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린다. 어머니가 우리를 떠난 후 홀로 네 아이를 키우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부엌에 남자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믿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예기치 않게 퇴근했다. 필 오빠는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콩과 비엔나소시지에 관한 짤막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부엌 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버지는 오빠의 어깨를 잡아챘다. 오빠가 아버지를 수납장으로 밀어붙이고 방충망 문으로 급히 달아날 때까지 두 사람은 드잡이를 벌였다. "나는 곧 열일곱이야. 공군에 입대할 거야. 아버지는 내가 강인해지길 바라니까 분명 그러라고 서명해 주겠지." 오빠가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찢어졌다. "편지해." "약속할게." 오빠가 입대했다. 편지가 올 때까지 6주를 기다렸다. "동생아, 신병 훈련소는 힘들었고 지금까지 편지를 쓸 수가 없었어. 다행스러운 점은 입대하기 전에 훈련 교관 같은 아버지를 뒀다는 거야. 군대는 잘 먹여줘."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 후반 즈음 나는 이혼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콜로라도에서 지냈다. 필 오빠도 이혼하고 기체(機體) 정비사로 전국에서 일했다. 내 신앙심이 깊어지면서 나 외에 다른 분이 오빠를 사랑하고 지켜 주신다고 편지에 쓰기도 했다. 그리고 편지를 마무리할 때마다 오빠를 위해 매일 기도 드린다고 썼다. 필 오빠는 하나님 얘기보다는 레시피를 공유했다. 1982년에 아버지가 트랙터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오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 중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목장에서 만났다. 나는 오빠의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 지나치게 말랐고 한때 준수했던 얼굴은 술집에서 벌인 싸움들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묘지에서 우리는 끌어안고 울었다. 산산조각 난 우리 가족이 결코 치유될 수 없음을 알았다. "나한테 편지 써." 다음 날 헤어지면서 속삭였다. 오빠는 아이다호에 있는 스네이크강의 강둑에서 편지를 썼다. "수중 펌프로 작업을 하고 있어. 스네이크강에서 물을 빼서 감자 농부의 밭에 물을 대고 있지. 방금 끝내 주는 감자 요리 레시피를 떠올렸어." 어느 해 추수감사절에는 오빠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두려움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반송됐다. 오빠가 살던 아이다호 작은 마을의 술집마다 전화했다.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오빠가 얼마나 지쳐 보였는지가 계속 떠올랐다. "주님, 저희 남매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어요. 아빠는 애정을 보여 주지 못했고요. 그래서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신다는 걸 믿기 어려워요. 부디 필 오빠가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세요." 경찰서장인 친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2주가 걸려 친구는 워싱턴의 감옥에서 오빠를 찾아냈다. 나는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오빠는 자신의 독특한 필기체로 여섯 장을 꽉 채워서 답장을 보냈다. 그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수감된 사정을 또다시 늘어놓는 대신, 감방 창밖에 보이는 모든 걸 자세히 묘사했다. 소나무, 가문비나무, 미루나무. 멀찌감치 붉은색 헛간도 있는데 우리가 농장의 헛간 다락에서 놀면서 느끼던 재미가 다시 생각난다고 했다. 오빠는 주방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기뻐하면서 알려왔다. "두 달이 지나고 드디어 재료를 마음대로 쓸 여지가 약간 생겼어. 사람들이 말하는 걸 네가 들었어야 하는데. 무척 단순한 재료였지만,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으니까 조금만 달라져도 즐거워져." 그해 가을에 내가 물었다. "추수감사절 저녁에도 거기 있어?" 오빠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을 감옥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그렇겠지. 그래도 내가 여기 있으면서 요리하면 분명 사람들이 기뻐할 거야." 추수감사절 아침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동생아, 깜짝 선물이야!" "행복한 추수감사절 보내길. 오빠 목소리를 듣다니, 정말 근사한 선물이야! 출소했어?" "아니. 하지만 얼마 안 남았어. 오늘은 동료들을 위해 요리해. 콘브레드 드레싱(미국 남부에서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 자주 먹는 전통 음식)을 만드는 근사한 레시피가 있거든." "맛있겠다. 오늘 친구들이 오빠를 무척 좋아할 거야." "있잖아. 나는 레시피를 생각하고 있어."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는 언제나 레시피를 생각하니까." "아니야. 이건 달라." "무슨 뜻이야?" "인생 레시피를 말하는 거야. 여기서는 생각할 시간이 무척 많아. 우리는 모두 살면서 좋은 일, 나쁜 일, 약간의 기쁨, 얼마간의 어려움을 겪어. 성경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하잖아. 동생아, 사랑한다." 두 달 후 오빠가 편지를 보냈다. "집에 왔어. 내 작은 트레일러로 돌아왔고 마당의 잔디를 깎으면서 시간제로 일해. 날 받아 주겠다는 제안은 고맙지만, 너도 키워야 할 아들이 있잖아. 비틀거리는 나는 네게 필요 없으니까. 추신. 부엌을 넘겨주겠다는 제안은 구미가 당겼어. 감옥에 있는 동안 내 생명줄이 돼줘서 고마워." 그 다음 4월에 워싱턴 파스코의 어느 바텐더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술집에서 싸움이 있었다고 했다. 바텐더 얘기로는 오빠의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에 구멍이 난 것 같은데 병원에 가는 걸 거부했단다. "오빠는 못살게 구는 남자한테서 어떤 여성을 지키려 했어요." 마침내 필 오빠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안전해졌다. 오빠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장보기 목록 가장 위에 오빠가 어림짐작으로 알려준 콘브레드 드레싱 재료를 적었다. 우리는 평생 편지로 이어져 있었다. 오빠가 마침내 나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주신 그분께서 쓰신 가장 위대한 레시피를 이해했다는 점에 감사드리며 추수감사절에 콘브레드 드레싱을 만들려고 한다. ■원문으로 읽는 오늘의 이야기 Letters From Phil Making my thanksgiving shopping list, I thought of my older brother, Phil, his memory an indelible part of the holiday for me. John Phillip Jacobs was born with a love for cooking. He took joy in whipping up simple, tasty dishes with whatever we had on hand. More than 50 years later, I can still picture him, sleeves flopping as he danced around our Oklahoma farmhouse kitchen. Too bad my father, raising the four of us children on his own after my mother had left us, believed boys had no place in the kitchen. One day, Dad came home unexpectedly from work. He appeared in the kitchen doorway just as Phil glided across the floor, singing a ditty about beans and wieners. Dad grabbed Phil by the shoulder. They tussled until Phil shoved Dad against a cabinet and bolted out the screen door. "I'll soon be 17," he said. "I'm gonna join the Air Force. Since Dad wants me to be tough, I'm sure he'll sign for me to do that." The thought of my older brother leaving ripped at my heart. "Write to me," I blurted. "I promise." He enlisted. I waited six weeks before a letter arrived. "Boot camp was hard, Sissy. I couldn't write until now. Good thing I had Dad as a drill sergeant before I joined up." We wrote less frequently as adulthood caught up with us. By the late 1970s, I was divorced and living in Colorado with my young son. Phil was divorced and working jobs across the country as an airframe mechanic. As my faith grew, I would mention in my letters that Someone besides me loved him and was looking out for him. At the end of every letter, I told him I said a daily prayer for him. Rather than talking about God, Phil would share a recipe. When Dad died in a tractor accident in 1982, Phil was working in Saudi Arabia. We met at Dad's ranch. Phil's appearance shocked me. He was too thin, his once handsome face scarred by bar fights. At the cemetery, we held each other and cried, knowing that our fractured family would never heal. "Write to me," I whispered when we parted the next day. From the banks of the Snake River in Idaho, Phil wrote, "I'm working on these submersible pumps, pulling water out of the Snake to irrigate the potato farmers''fields. I just came up with a killer recipe for taters." One Thanksgiving, I couldn't find Phil. I panicked. My latest letter to him had been returned. I called every bar in his small Idaho town. No one had seen him. "Lord," I prayed, "we kids didn't get much love from Mama. Dad wasn't able to show affection. That makes it hard for us to trust that you love us. Please allow Phil to know your love." I went to a friend who was a police chief for help. Within two weeks, he located Phil in a Washington prison. I wrote my brother. He wrote back, filling six pages with his distinctive cursive. He was lonesome. Instead of rehashing how he'd landed in prison, he described everything outside his cell window in detail. The pine, spruce and cottonwood trees. The red barn in the distance that reminded him of all the fun we'd had playing in the barn loft on the farm. He happily declared that he had become head cook. "After two months, they have finally given me a little leeway on ingredients, Sis. You should have heard the guys. Such a simple ingredient, but everything is so much the same day to day in here that any little change brings a bit of joy." Later that year, in the fall, I asked, "Will you be there for Thanksgiving dinner?" It made my heart ache to think of Phil spending his favorite holiday in prison. "Probably," he said. "But the guys are sure glad I'll be here to cook." Thanksgiving morning, my phone rang. "Hey, Sis, surprise!" "Happy Thanksgiving," I said. "Such a wonderful gift to hear your voice! Have you been released?" "No, but soon. Today I'm cooking for my guys. I have this amazing recipe for cornbread dressing," he said. "Sounds delicious," I said. "Your guys are going to love you today." "You know, Sis," he said, "I've been thinkin' about a recipe." I laughed. "You've been thinking about recipes forever." "No, this is different." "What do you mean?" "Sis, I'm talking about a kind of recipe for life. I've had a lot of time to think in here. We all get some good, some bad, a sprinkle of joy and a cup of trouble in life until we're…well. There's a scripture that says,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I love you, Sis." Two months later, Phil wrote: "I'm home, Sis. Back in my little trailer, working part-time mowing yards. Thanks for your offer to take me in, but you have your son to raise. You don't need me stumbling around. P.S.: The offer to take over your kitchen was tempting. Thanks for being my lifeline while I was in the joint." The following April, I got a call from a bartender in Pasco, Washington. Phil was gone. There had been a bar fight. The bartender said Phil likely broke some ribs and punctured a lung but refused to go to a doctor. "Your brother was defending a girl from her bully boyfriend." Phil was finally safe in God's arms, where he was meant to be. I put the ingredients for Phil's by-guess-and-by-gosh cornbread dressing, at the top of my shopping list. I would make it on Thanksgiving, grateful that we'd stayed connected through a lifetime of letters and that, in the end, my brother understood the greatest recipe was written by Someone who loved him even more than I did. 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4-11-12 18:26:20[파이낸셜뉴스] 방송 댄서 겸 안무로 활약한 김용현(45)씨의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시건방춤', 그룹 카라의 '엉덩이춤' 등을 만든 김용현이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연예인들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4일 애프터스쿨 출신 가희는 자신의 SNS에 "지난주 소식 듣고 바로 갔어야 했는데. 늦어버렸네 오빠. 이렇게 갑자기 소식 듣기엔 오빠는 너무 예쁘고 젊고 유능한 댄서라고 너무 아깝고 슬프다"고 애도했다. 가수 길건은 “춤출 때 가장 빛났던 용현이.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내 친구 용현아 널 알게 돼서, 네가 안무가라서, 나 힘들 때 춤 춰주고 응원해주서 너무 고마웠다”라고 했다. DOHC 안무팀, YAMA 안무팀 등을 거쳐 위더스컴퍼니 대표로 활약했던 김용현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카라의 ‘미스터’ 등의 안무를 맡았다. MBC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응원단에 합류해 ‘콕콕댄스’를 만들어 대중에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빈소는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5일 오전 10시,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04 22:19:13[파이낸셜뉴스] #. 23일 경기도 부천 원미구 중동 소재 한 호텔 앞. 20대 간호대생 A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난 22일 밤 화재 상황을 이야기했다. A씨는 7명의 사망자와 1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부산 호텔 화재 사건'을 직접 겪은 생존자였다. A씨는 대학 실습으로 배운 지식을 활용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그는 "문을 열자 연기가 가득했다. 연기 때문에 다시 문을 닫고 화장실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어 "수건으로 입을 막고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맞으면서 소방대원이 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일산화탄소'가 물에 녹는다는 지식을 알고 있었기에 이같이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샤워기로 일산화탄소를 씻어내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울먹였다. 이날 A씨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지난 밤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속에서 버틴 끝에 소방대원으로부터 구조됐던 현장을 증언했다. 사망자들이 안치된 빈소에서도 황망한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병원 실습·수술받으러 왔다 참변 겪을 뻔"이날 A씨 어머니 B씨는 "지난 22일 오후 7시 40분에 불이 났다고 연락이 오자마자 호텔과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연락해서 구조를 요청하고 곧바로 춘천에서 출발했다"며 "너무 무서웠는데 전화로 구조됐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간호대에 재학 중인 A씨는 부천의 한 병원으로 실습을 왔다가 화재에 휩싸여 변을 당할 뻔했다. A씨는 불이 난 810호와 같은 층에 있는 806호에 머물고 있었다. 이 호텔은 4층이 없는 건물로 이들 호수는 7층에 있다. A씨는 "친구들은 건너편 호텔에 묵고 저 혼자 여기 묵게 됐다"며 "의식을 잃었다가 구급차에서 산소를 마시고 정신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A씨는 갑작스럽게 번진 화재로 객실에 두고 온 노트북 등을 찾기 위해 유실물 신고를 하기 위해 가족들과 다시 현장을 찾았다. B씨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아이처럼 대처하면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인근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들도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카자흐스탄인 C씨는 "6층에서 묵고 있다가 탈출하라는 안내를 받고 급하게 나왔다"며 "여행가방을 두고 와서 찾으러 왔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용지물이 된 '에어매트'사망자 대부분은 탈출하다가 숨진 것으로 확인돼 생존자들의 안타까움을 더욱 자아냈다. 특히 소방당국은 사고 접수 4분 만에 현장에 출동해 5분 만에 에어매트를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는 점이 논란이다. 부천소방서는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는 구조용품이라고 했지만 에어매트로 뛰어 내린 남녀 2명 모두 숨졌다. 먼저 뛰어내린 여성이 매트 가장자리로 떨어지면서 매트가 뒤집혔고 곧바로 남성이 뛰어내려 두 명 모두 구조에 실패했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나머지 사망자 5명 중 상당수는 계단, 복도 등에서 발견돼 대피 도중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건물 구조가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호텔 복도가 좁고 객실 창문이 작아 유독가스가 건물 안에 가득 찼고 열이 축적돼 대피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추정이다. 지난 2003년 준공된 건물이어서 스프링클러도 설치돼있지 않았다. 경찰 등으로 꾸려진 수사본부는 이날 합동 화재감식을 진행했다.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전기안전공사 등 총 33명으로 구성된 합동감식팀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 30분여간 합동 감식을 벌였다. 오석봉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화재 장소로 확인된 8층에 대해 화재 발생 이후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정확한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며 "향후 현장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등 수사를 종합해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황망한 죽음에 이어진 '오열'부천 호텔 화재 희생자들은 순천향병원 등 인근 병원 6곳으로 분산 이송됐다. 4명의 사망자가 안치된 순천향대 부천병원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날 정오쯤 마스크를 쓴 채 병원을 찾은 20대 여성은 핏기 없는 표정이었다. "어떤 심정이시냐"는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안치실로 들어간 다른 사망자 유족은 "아이고 어떡해"를 연신 외쳤다. 경기 부천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호텔 화재 사망자 김모씨의 어머니는 딸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를 휴대전화로 듣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듯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김씨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지난 22일 부천 호텔을 찾았다가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함께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빈소에 속속 도착한 다른 유족들도 김씨의 황망한 죽음을 믿을 수 없는지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김동규 기자
2024-08-23 15:42:19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양성한 '저항 가수' 김민기가 예술인들의 못자리 옛 학전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24일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이후 지난 17일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문패를 바꿔 달고 개관식을 한 옛 학전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아르코꿈밭극장 운영을 맡은 정병국 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배우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가수 박학기 등 동료와 친구 수십 명이 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했다. 이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모두 '아침이슬'을 불렀고, 후배들은 "사랑합니다, 선배님"이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1971년 가수로 데뷔한 고인은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대표곡으로 남겼으며 1991년 학전을 개관하고 다양한 공연예술 작품을 연출했다. 지난해 11월 폐관한 학전은 지난 33년간 예술인들의 배움터가 됐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던 배우 황정민, 김윤석을 비롯해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학전에서만 1000번 넘게 공연을 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한편, 이날 개그맨 장두석의 발인도 진행됐다. 지난 22일 숨을 거둔 고인은 1980~90년대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다양한 KBS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개그맨 엄영수(개명 전 엄용수)는 앞서 "고인은 고(故) 서세원 씨와 함께 우리나라 2세대 개그맨으로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었던 위인이었다"고 평가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07-24 10: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