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25전쟁 발발 74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3년간 남과 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고, 미군을 비롯한 많은 유엔군과 북측의 소련 및 중공군이 참전했다. 특히 중공군의 참여는 심각하고 치열했다. 한국전쟁과 연관된 지도들이 많지만, 6·25 74주년을 앞두고 5점의 지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지도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만든 '북진도'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에 의해 파죽지세로 남한이 잠식되면서 9월 15일 낙동강 전선으로 밀렸고, 이후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진을 시작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9월 30일에는 38선을 통과했다. 10월 19일에는 평양을 넘어 북진했고, 10월 24일에는 압록강변에 도달했다. 그 후 중공군이 참여해 인해전술로 국군과 유엔군이 밀리면서 현재의 휴전선으로 고정됐다. 이 지도에는 이런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북한의 '남침 계획도'(자료 재인용 김성보 외)도 중요한 지도의 하나다. 이 지도는 북한의 남한 선제 타격 계획을 보여준다. 러시아어 제목과 함께 '조선인민군 선제 타격 계획!'이라는 손글씨 제목을 달고 있다. 대략 삼척 위도까지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서부에 걸쳐서 1단계 공격을 잡고, 더 남쪽으로 호남과 영남으로의 대형 공격노선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은 1948년에 조선인민군을 창설했고, 이후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어 남침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이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했는지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여러 자료들이 나와 있지만 결국 속수무책으로 38선이 함락되고 3년간 전쟁을 치렀다. 우리를 도운 혈맹 에티오피아군의 전투상황도도 흥미롭다. 이 지도엔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군 사이에 있는 적근산(1071m) 지역에서의 전투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클리버 작전'으로 불리는 이 전투는 1951년 8월 9일에서 9월 14일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티오피아군 제1진인 강뉴(Kangnew)대대는 미군 7사단에 배속돼 중동부 전선 적근산과 삼현 부근, 단장의 능선 및 펀치볼 부근에서 활동했다. 1951년 8월 12일 적근산 전방 797고지 서북쪽 봉당덕리 부근에서 중공군과 에티오피아 참전군이 최초로 교전을 벌였다. 8월 15일 4시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중공군을 물리치고 18회의 정찰과 탐색전을 실시해 탁월한 전과를 거뒀다. 에티오피아는 3518명이 참전해 전사 121명, 부상 536명의 사상자를 냈다. 253전 253승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참전 대대명인 '강뉴'는 '혼란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라 한다. 에티오피아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56년까지 한국의 전후 복구 사업과 고아원 운영 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장진호 전투상황도'(자료 재인용 이용규)는 1950년 12월 장진호전투에서 중공군에 포위된 미국 해병대들이 이곳을 힘겹게 벗어나는 군사작전도의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 해병 1사단은 유엔군 북진 정책에 맞춰 원산에 상륙해 장진호로 북진했다. 11월 27일 이곳에 잠복한 중공군 9병단이 포위 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황초령을 넘어서 12월 11일 흥남에 무사히 도착한다. 황초령은 함경산맥 능선에 속한 고개로 개마고원과 동해안 지역을 나누는 중요한 고개로 장진호 호수와 발전소에 인접해 있다. 치열한 전투로 잘 알려진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에서 12월 13일까지 치러졌다. '판문점 포로수용소 지도'는 휴전이 이뤄지면서 판문점 일대의 일시적 시설을 보여준다(자료 재인용 임종업). 여기에는 남북 간 담판이 이뤄진 판문점과 유엔군 사령부, 인도군 캠프와 함께 거대한 임시 포로수용소를 담고 있는 일시적이고도 희귀한 지도이다. 지도 중앙에 크게 표시된 지역은 1953년 9월 10일부터 1954년 2월 18일까지 포로 2만8000명이 5개월간 거주한 공간이었고, 지금은 완전히 철거된 시설들로 판문점 바로 아래 도라산 지역의 개활지에 만들어졌다. 이 지도는 6·25전쟁이 휴전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지도는 현재 파주시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6-17 18:27:17[파이낸셜뉴스] 러시아에 억류돼 있다가 2년 만에 자국으로 돌아온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의 사진이 공개됐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모습에 우크라아나 당국은 나치 수용소가 연상된다며 러시아를 규탄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 처우 조정 본부는 이날 러시아에 억류돼 있다 자국으로 돌아온 전쟁 포로의 사진을 공개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중재 하에 러시아와 전쟁 포로 교환에 합의해 지난달 31일 포로 75명을 되돌려 받았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공개한 사진 속 인물은 이번에 송환된 전쟁 포로 중 한 명인 로만 고릴리크씨(40)다.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검문소 경비대원으로 일하던 고릴리크씨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지난 2022년 3월 러시아군에 끌려갔다. 2년여간 러시아에서 억류 생활을 한 고릴리크씨는 갈비뼈와 쇄골은 툭 튀어나와 있고, 창백한 피부에 배는 움푹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돌아온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들의 모습은 인류 역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인 나치 강제 수용소를 연상시킨다"고 꼬집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포로들이 끔찍한 상태로 우크라이나로 돌아왔다"며 "굶주림에 의한 고문은 끔찍하고 구타와 폭력은 교묘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방위군은 CNN에 "석방된 포로 대부분이 체중 감소를 겪었고 몸에 상처가 있었으며 부상을 치료받지 못한 데 따른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포돌랴크 고문은 "러시아가 국제 인권 협약을 무시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제네바 협약은 없다"며 "러시아는 또다시 전쟁 범죄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 조약으로, 전쟁 포로를 인도적으로 존엄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의 규정 등을 담고 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6-07 06:38:19【거제=오성택 기자】경남 거제를 대표하는 관광유적 중 하나인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포로생활관이 새롭게 단장을 마치고 일반에 개방된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17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포로생활관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하고 재개관한다고 밝혔다. 지난 1999년 처음 문을 연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2002년과 2013년 각각 2차(한국전쟁·포로수용소zone 등) 및 3차(평화파크zone) 개관에 이어, 이번에 노후한 기존 전시실의 보수작업을 통해 재개관했다. 이번에 재개관한 포로생활관은 관람객들의 관람 편의를 최우선으로, 기존 습하고 협소한 전시공간을 최대한 확장해 쾌적한 환경에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포로들의 일상’을 주제로 거제시로부터 사진과 영상자료를 협조 받아, 제네바 제3협약이 처음으로 적용된 한국전쟁 포로들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손윤정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관장은 “포로생활관에 이어 오는 9월 여자포로관, 10월 유적공원 개관 20주년을 맞아 야외 반공막사 리모델링을 통해 특별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오는 2020년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6.25역사관과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상설전시실, 포로송환열차를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07-17 16:59:20【거제=오성택 기자】 경남 거제시의 한국전쟁 포로수용소 관련 기록물이 국회에서 전시됐다. 거제시는 18일부터 오는 22일까지 5일간 ‘전쟁포로, 평화를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한국전쟁 포로수용소 관련 기록물의 국회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인영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특별전은 지난 2017년 거제문화예술회관과 지난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 전시회로, 미공개 사진 8장과 영상 1건이 최초로 공개됐다. 전시회는 △1부 ‘누가 포로가 되었나’ △2부 ‘포로들은 어디로 갔는가’ △3-1부 ‘포로들은 어떻게 관리됐는가’ △3-2부 ‘포로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3-3부 ‘포로 곁에 누가 있었나’ △4부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5부 ‘결국 포로들은 어디로 갔는가’ 등 시간적 전개방식으로 구성됐다. 시가 국회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은 유례없는 일로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거제시의 노력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이념과 분단의 상징적 장소에서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와 함께 평화로 나아가는 상징과 디딤돌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며 오늘 전시회를 통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이어져 거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거제시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지난 3년간 한국전쟁 관련 기록물을 수집해 왔으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최근 해외에서 새로 발굴한 자료를 포함한 120여 건의 자료를 전시했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02-18 16:20:56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9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서해수호관과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하고 탈북자들을 만나 대북압박을 이어갔다. 수호기념관 앞에는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참여한 참수리 357정이 있다. 펜스 부통령은 서해수호관에서 제1연평, 제2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포격도발 등의 설명을 들었다. 서해수호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편의시설에 마련된 면담 장소에서 탈북자 4명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탈북자 지성호·지현아·이현서·김혜수씨와 2016년 1월부터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미국에 돌아와 사망한 오토 웜비어 부친 프레드 웜비어도 참석했다. 펜스 부부는 탈북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드 웜비어는 지성호씨와 오랬동안 포옹을 나눴다. 펜스 부통령은 "북 포로 수용소가 있고, 북한 사람 70% 이상이 식량 지원 없으면 생존 못한다"며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다. 이런 이야기 듣고 싶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프레드 웜비어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탈북자 김혜수씨는 "28년동안 수감돼 있다가 살아나왔다"며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나를 중국에 팔았다. 중국에서 3년 7개월 동안 식당에서 일하다가 브로커를 통해 2009년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탈북자 이현서씨는 "언론이 북한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수백만명의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지현아씨는 "기독교인이어서 북한에서 성경책을 봤다"며 "탈북을 3번 시도했지만 실패해 북송된 후 4번째 시도에서 성공해 2007년 탈북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 임광복 기자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2018-02-09 14:30:11시공테크는 거제시와 거제포로수용소 테마파크 전시체험물 실시설계및 제작 설치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29일 공시했다. 계약금액은 339억4450만원이며 계약기간은 2011년 1월 18일까지다. /yhh1209@fnnews.com 유현희기자
2009-04-29 10:19:42한국 감자의 원조는 당연히 강원도다. 감자를 한자말로 북저(北藷), 토감저(土甘藷), 양저(洋藷), 지저(地藷)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북쪽에서 왔다. 남미 안데스 산록이 원산지인데, 16세기 스페인을 중심으로 식민지배를 하던 유럽으로 들어가서 유럽 근대사에서 아일랜드 기근을 막는 데 기여하고, 독일의 식량 문제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885년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은 기근을 막은 감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당시 유럽 인구 증가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감자는 아시아에는 아마도 독일을 통해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본다. 원산지 안데스 산록의 감자는 냉동과 건조를 몇 년간 반복한 추뇨(chuno)라고 하며 지금도 주민들의 주식이 되고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보면 1824년에 관북으로 들어왔다고 적고 있다. 한국인들은 흉년에 감자로 자주 기근을 넘겼다. 감자는 산지 지형과 기후의 특성을 가진 강원도의 많은 지역들에서 주식이었고, 남쪽 경상도에서도 가뭄에 구황작물 역할을 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경남 함안에서도 쌀농사가 시원치 않았을 때 감자 수확철에 밥에 감자를 섞어 넣어 쌀을 절약했다. 쌀과 보리 외에 끼니를 잇는 데 고구마, 옥수수와 함께 감자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감자를 주로 심는 강원도 산간 농민들을 '감자바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박하고 부지런하다는 느낌과 함께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1960년대 화전민의 대표 작물과 식량도 옥수수와 함께 감자였다. 감자는 농사짓기에 손이 덜 가는 것으로 소중했다. 조선농회보(朝鮮農會報) 1912년 7월호에 의하면 1879년 선교사가 감자를 들여왔고, 1883년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 1920년경에는 강원도 난곡농장(蘭谷農場)에서 독일산 신품종 감자를 도입, 난곡 1·2·3호라는 신품종을 한국에서 개발했다. 강원도 난곡농장은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에 있었던 일본인 농장이다. 정확하게는 1920년 설립된 난곡기계농장이다. 이 농장에서 독일 품종의 감자와 독일산 기계를 들여와 해발 650m 고원지대에서 대규모 기계농에 의해 감자를 재배했다. 조선시대 강원도 북부 회양은 한양에서 출발해 철원, 평강을 거쳐서 금강산으로, 함경도로 가는 길목의 교통 요충지였다. 회양에서 북쪽으로 그 유명한 고개인 철령을 넘으면 안변과 원산을 거쳐서 함흥으로 그리고 백두산에 이른다. 또 동남쪽으로 가면 금강산에 이른다. 당시 철령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과 철원에서 원산으로 직선으로 연결되는 추가령을 통해 지름길 도로와 철도가 놓이면서 더 이상 철령이 이용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쇠퇴했다. 그러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으로는 여전했다. 난곡농장은 회양군 난곡면 산지 고원에 2만정보의 방대한 면적에 자리 잡았다. 주체는 일본 아이치산업주식회사이고, 독일인 5명도 참가했다. 이들이 참가하게 된 역사적 경위가 매우 이색적이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중국의 독일 조차지였던 청도(靑島)에 있던 독일인 5000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 일본은 이때 뒤늦게 잠시 연합군에 참전했다고 한다. 청도는 지금까지도 청도맥주로 유명하듯이 일찍이 독일의 맥주 제조와 기계공업이 들어왔다. 이들 중 나고야 수용소에 있던 일부 독일인이 한국의 회양군 난곡면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당시 독일인들은 포로이지만 독일인답게 기계에 능숙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강한 체력을 가졌다고 한다. 난곡기계농장의 특징은 대규모이고, 기계농업이고, 유축밭 농업(有蓄田作)이었다. 즉 곡물과 축산을 연계해 생산·가공·판매까지 일관된 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물론 토지개량, 품종개량 등 연구에도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영이 여의치 않아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오랜 화전농으로 지력이 쇠하였고, 기계농이라 하지만 자갈이 워낙 많아 돌을 골라내는 작업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결국 난곡 1·2·3호라는 감자 품종이 개발되면서 당시 금강산과 농장 인근에 있던 이왕조목마장, 난곡농장이 3대 명승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자료는 일본인 학자가 당시 기록을 정리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들이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성과 등에 대해 기록을 많이 남겼다. '조선의 풍수' '조선의 취락' '조선의 임수' 등 자연환경과 함께 산업개발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소위 한반도 수탈정책은 '미곡증산(米穀增産)' '남면북양(南綿北羊)' '남농북공(南農北工)' 정책 등의 명칭을 남긴다. 이를 위해 신작로, 철도, 저수지, 광산 등이 대규모로 건설되고 개간된다. 흥남비료, 무산철광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개간에는 동양척식이 대표적인 회사였다. 회양에서는 감자 재배와 축산업이 성행했고, 낙농업과 식품공업까지 진출했다. 인근의 북쪽 안변에는 양을 키우는 목양장인 세포목장과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도 설립됐다. 안변은 원산에서도 가깝지만, 서울까지는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경원선이 거의 직선으로 나 있었다. 현재 강원도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는 감자 품종은 1930년대 일본 북해도에서 전래된 남작(男爵)을 비롯해 돼지감자, 수미감자, 도원감자, 러셋감자 등이다. 러셋감자는 현재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재배하는 품종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1980년대 강원도 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한 것은 씨감자 덕분이라 한다. 감자씨를 심어 최종 감자 수확까지는 5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씨감자는 1년이라는 빠른 생산과 높은 생산성과 함께 병충해에도 강하다. 당시 씨감자는 원예조합이 사들여 전국의 감자 재배농가에 공급했다. 1994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세워진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시험장은 2004년 고령지농업연구소로 개편되었고 2008년 고령지농업연구센터, 2015년 다시 고령지농업연구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연구소에서는 개발 육종 감자와 유망 품종을 선발, 전국 여러 지역에서 시험재배한 뒤 우수 품종을 전국에 보급하는 업무를 했다. 감자 외에도 고랭지에서 요구되는 배추, 무, 채소 등 작물들도 연구한다. 1824년 시도된 한반도 감자 재배의 역사는 올해로 200주년을 맞았다. 강원도 씨감자는 K감자로 수출까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감자는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다양한 맛과 식품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0-28 18:05:11[파이낸셜뉴스] 국가보훈부는 한국전쟁(6·25전쟁) 중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국 참전용사의 유족들의 한국 방문 초청 행사를 26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이번 방한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전사 장병 2명의 유족 3명과 실종 장병 7명의 유가족 13명 등 모두 16명이다. 강 장관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전사·실종된 가족을 그리워하며 오랜 시간 슬픔 속에 지내오신 유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한민국은 참전영웅들의 희생과 공헌을 영원히 기억하고 알려 나가는 것은 물론, 전사·실종 장병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한단에는 미 공군 소령으로 폭격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해 태극 무공훈장을 받은 찰스 로링 주니어 소령의 사촌, 김포 공군기지에서 일본으로 수송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된 미 공군 모리스 핀리 톰슨 대위의 딸, 전쟁 중 압록강 인근 포로수용소에서 전사했으나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바비 에반츠 중사의 동생 등이 포함됐다. 이들 유족은 26일 입국해 27일 전쟁기념관을 방문하며, 28일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찾아 브리핑을 들은 후 강정애 보훈부 장관이 주재하는 위로 만찬에 참석한다. 위로 만찬에는 제임스 킹 주한 미국대사관 무관,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6·25전쟁 튀르키예 참전용사의 손녀로 보훈부 서포터즈 및 아너스클럽 위원으로 활동 중인 일라이다 아심길 등이 참석한다. 강 장관은 유가족들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과 참전용사의 계급, 군별, 소속을 기재한 인식표를 수여하며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할 계획이다. 만찬장에는 전쟁 중 사망·실종됐거나 포로가 된 군인을 기리는 의미로 설치하는 빈 테이블인 '추모 테이블'이 놓인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추모 테이블에 소품을 올려놓는 의식을 진행한 후 강 장관이 촛불 점화를 통해 우리 정부가 전사·실종 장병을 기억하면서 끝까지 그들의 유해를 찾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예정이다. 방한단은 29일 판문점에 이어 30일 강원도 인제군의 유해발굴 현장을 찾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한 후 31일 한국을 떠난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10-25 16:52:38한국 감자의 원조는 당연히 강원도다. 감자를 한자말로 북저(北藷), 토감저(土甘藷), 양저(洋藷), 지저(地藷)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북쪽에서 왔다. 남미 안데스 산록이 원산지인데, 16세기 스페인을 중심으로 식민 지배를 하던 유럽으로 들어가서, 유럽 근대사에서 아일랜드 기근을 막는데 기여하고, 독일의 식량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885년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은 기근을 막은 감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당시 유럽 인구 증가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감자는 아시아에는 아마도 독일을 통해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본다. 원산지 안데스 산록의 감자는 냉동과 건조를 몇 년간 반복한 츄뇨(chuno)라 하며 지금도 주민들의 주식이 되고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보면 1824년에 관북으로 들어왔다고 적고 있다. 한국인들은 흉년에 감자로 자주 기근을 넘겼다. 감자는 산지 지형과 기후의 특성을 가진 강원도의 많은 지역들에서 주식이었고, 남쪽 경상도에서도 가뭄에 구황 작물 역할을 했다. 필자가 어릴 때 살던 경남 함안에서도 쌀농사가 시원치 않았을 때, 감자 수확철에 밥에 감자를 섞어 넣어 쌀을 절약했다. 쌀과 보리 외에 끼니를 이어준 것이 고구마, 옥수수와 함께 감자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감자를 주로 심는 강원도 산간 농민들을 ‘감자 바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박하고 부지런하다는 느낌과 함께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1960년대 화전민들의 대표 작물과 식량도 옥수수와 함께 감자였다. 감자는 농사짓기에 손이 덜 가는 것으로 소중했다. 조선농회보(朝鮮農會報) 1912년 7월호에 의하면, 1879년 선교사가 감자를 들여왔고 1883년에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 1920년경에는 강원도 난곡농장(蘭谷農場)에서 독일산 신품종 감자를 도입해 난곡1·2·3호라는 신품종을 한국에서 개발했다. 강원도 난곡농장’은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에 있었던 일본인 농장이었다. 정확하게는 1920년 설립된 ‘난곡기계농장’이다. 이 농장에서 독일 품종의 감자와 독일산 기계를 들여와 해발 650m의 고원지대에서 대규모 기계농에 의해 감자를 재배했다. 조선시대 강원도 북부 회양은 한양에서 출발해 철원, 평강을 거쳐서 금강산으로, 함경도로 가는 길목의 교통 요충지였다. 회양에서 북쪽으로 그 유명한 고개인 철령을 넘으면 안변과 원산을 거쳐서 함흥으로 그리고 백두산에 이른다. 또 동남쪽으로 가면 금강산에 이른다. 당시 철령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과 철원에서 원산으로 직선으로 연결되는 추가령을 통해 지름길 도로와 철도가 놓이면서 더 이상 철령이 이용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쇠퇴했다. 그러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으로는 여전했다. 난곡농장은 회양군 난곡면 산지 고원에 2만 정보의 방대한 면적에 자리 잡았다. 주체는 일본 아이치산업주식회사이고 독일인 5명도 참가했다. 이들이 참가하게 된 역사적 경위가 매우 이색적이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하면서, 중국의 독일 조차지였던 청도(靑島)에 있던 독일인 5000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 일본은 이때 뒤늦게 잠시 연합군에 참전했다고 한다. 청도는 지금까지도 청도맥주로 유명하듯이 일찍이 독일의 맥주 제조와 기계 공업이 들어왔다. 이들 중 나고야 수용소에 있던 일부 독일인들이 한국의 회양군 난곡면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당시 독일인들은 포로이지만 독일인답게 기계에 능숙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강한 체력으로 가졌다고 한다. ‘난곡기계농장’의 특징은 대규모이고, 기계농업이고, 유축밭 농업(有蓄田作)이었다. 즉 곡물과 축산을 연계해 생산, 가공, 판매까지 일관된 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물론 토지개량, 품종개량 등 연구에도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영이 여의치 않아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오랜 화전농으로 지력이 쇠하였고, 기계농이라 하지만 자갈이 워낙 많아 돌을 골라내는 작업에서 애를 먹었다. 그러나 결국 난곡 1·2·3호라는 감자 품종이 개발되면서 당시 금강산과 농장 인근에 있던 이왕조목마장, 난곡농장이 3대 명승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자료는 일본인 학자가 당시 기록을 정리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들이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성과 등에 대해 기록을 많이 남겼다. ‘조선의 풍수’, ‘조선의 취락’, '조선의 임수' 등 자연환경과 함께 산업개발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소위 한반도 수탈 정책은 ‘미곡증산(米穀增産)’, ‘남면북양(南綿北羊)’, ‘남농북공(南農北工)’ 정책 등의 명칭을 남긴다. 이를 위해 신작로, 철도, 저수지, 광산 등이 대규모로 건설되고 개간된다. 흥남비료, 무산철광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개간에는 동양척식이 대표적인 회사였다. 회양에는 감자 재배와 축산업이 성행했고, 낙농업과 식품공업까지 진출했다. 인근의 북쪽 안변에는 양을 키우는 목양장인 세포목장과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도 설립됐다. 안변은 원산에도 가깝지만, 서울까지는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경원선이 거의 직선으로 나있었다. 현재 강원도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는 감자 품종은 1930년대 일본 북해도에서 전래된 남작(男爵)을 비롯해 돼지감자, 수미감자, 도원감자, 러셋 감자 등이다. 러셋 감자는 현재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재배하는 품종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1980년대 강원도 농가의 소득 증강에 기여한 것은 씨감자 덕분이라 한다. 감자씨를 심어 최종 감자 수확까지는 5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씨감자는 1년이라는 빠른 생산과 높은 생산성과 함께 병충에도 강하다. 당시 씨감자는 원예조합이 사들여 전국의 감자 재배 농가에 공급했다. 1994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세워진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시험장은 2004년 고령지농업연구소로 개편되었고, 2008년 고령지농업연구센터, 2015년 다시 고령지농업연구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연구소에서는 개발 육종 감자와 유망품종을 선발해 전국 여러 지역에서 시험재배한 뒤 우수 품종을 전국에 보급하는 업무를 한다. 감자 외에도 고랭지에서 요구되는 배추, 무, 채소 등 작물들도 연구한다. 1824년에 시도된 한반도 감자 재배의 역사는 올해로 200주년을 맞았다. 강원도 씨감자는 K감자로 수출까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감자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다양한 맛과 식품으로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0-25 11:18:25[파이낸셜뉴스] 미국 백악관이 북한국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당국이 북한군 장병들에게 전투에 가담하지 말고 투항할 것을 촉구하며 세끼 식사와 의료 서비스, 수면 공간이 갖춰진 포로수용시설이 준비되어 있다고 전했다. "외국땅에서 무의미하게 죽지말라" 투항 핫라인 가동 23일(현지시간) 키이우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은 이날 러시아군을 상대로 운영하는 '투항 핫라인'을 통해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는 국적과 종교, 이념과 관계없이 모든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라며 북한군의 투항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푸틴(러시아 대통령) 정권을 위해 파견된 인민군 장병들에게 호소한다. 외국 땅에서 무의미하게 죽지 말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십만 러시아군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말라"라며 "투항하라! 우크라이나가 쉼터와 음식, 따뜻함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항복한 러시아 군인 수천 명도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종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나는 살고 싶다'라는 이름의 투항 채널 텔레그램에 한국어로 제작한 1분14초짜리 홍보 동영상을 올리고, 북한군 포로를 위한 수용시설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이 영상에는 시설 전경과 침실 내부, 식사 준비 장면 등이 담겨있다. 영상은 "북한에서 새로 도착한 전쟁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가까운 장래에 전선의 여러 부문에서 포로가 된 최초의 북한 점령군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포로들은 별도의 수면 공간을 갖춘 크고 따뜻하고 밝은 방에 수용된다. 하루 세끼 식사를 받으며 식단에는 고기, 신선한 야채, 빵이 포함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북한군 파병 확인 "참전땐 표적 될 것" 경고 한편 미국 백악관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했다고 밝히며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면 분명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반 사이에 최소 3천명의 군인을 러시아 동부로 이동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커비 보좌관은 "우리는 북한군이 배로 북한 원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고 평가하고 있다"면서 "이후 북한군은 러시아 동부에 있는 다수의 러시아군 훈련 시설로 이동했으며 현재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에 임할지 아직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히 매우 우려되는 가능성이다"라면서 "북한군이 훈련을 마친 뒤 러시아 서부로 이동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1진으로 파병한 병력인 3천명이 러시아의 훈련소 3곳에서 기본 전투 훈련을 받으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0-24 07: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