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주 경기 하남시에서 알고 지내던 남성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20대 여성의 유족이 “피해자와 가해자는 3주가량 교제한 사이로 이별 통보에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엄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1일 경기 하남경찰서는 하남시 소재 20대 여성 A씨가 사는 아파트 인근에서 A씨를 찔러 살해한 혐의로 남성 B씨를 구속했다. 당시 이들은 교제 중인 관계가 아닌 지인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족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12일 피해자의 친언니라고 밝힌 C씨는 SNS에 “제 동생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사건이 축소되는 일이 없도록, 이 사건이 공론화되길 저희 유족은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해당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남자친구가 아닌 알고 지낸 사이 혹은 지인이었다는 정정 기사들을 봤다”며 “동생과 가해자는 3주가량 교제한 사이가 맞다"고 주장했다. C씨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 당일 A씨는 사건 당일인 지난 7일 오후 5시쯤 친구들에게 “B씨에게 이별 통보를 했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는 내용의 메시지 보냈다. 이후 같은 날 오후 10~11시쯤 집 앞으로 왔다는 B씨의 연락을 받고 거주지인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간지 약 1시간 만에 살해당했다. C씨는 “(동생이) 저희 가족과 10시쯤까지 식사를 했기 때문에 아무리 길게 잡아도 둘이 만난 지 1시간 내외에 살해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가해자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한 번이 아닌 수차례 흉기를 휘둘렀다"며 "동생이 목과 안면, 손 등이 심하게 훼손되어 다량의 출혈이 있었고 심정지 상태로 병원 이송 후 사망했다”고 했다. 이어 “119 연락을 받고 내려간 아빠와 오빠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제 동생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C씨는 “가해자의 휴대폰을 포렌식 해보면 사귄 정황과 얼마나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어떠한 수사 과정도 알 수가 없다”며 “가해자는 시민의 도움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지만, 형사에게 조현병 등을 언급했다.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범죄에 체포되자마자 조현병 언급이라니 어이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이 사건이 얼마나 잔혹한지, 얼마나 안타깝고 무서운 사건인지 알았으면 좋겠다”며 “꽃다운 20세 피지도 못한 아이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줘야 하나. 부디 엄중한 처벌을 내려 그 누구도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슬픔을 겪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B씨는 범행 직후 1㎞ 떨어진 곳에서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B씨는 현재 구속된 상태며, 구체적인 범행 동기에 대해 진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6-13 19:43:25[파이낸셜뉴스] 경기 하남에서 20살 여대생이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18일 JTBC에 따르면 피해자는 A씨는 교제하는 3주 동안 노골적인 성적 요구에 시달렸다. 이를 견디다 못해 헤어지자고 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전 남자친구 B씨에게 살해당한 건 이별을 통보한 당일이었다. 밤 11시 20분 CCTV 사각지대에서 수차례 흉기를 휘두른 것. 목과 얼굴, 손이 훼손된 A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한 건 사건 3주 전이다. A씨의 첫 연애였다. 그런데 B씨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요구를 계속해왔다. 특정 신체 부위를 만져보고 싶다며 촉감이 궁금하다고 했다. '네가 나오는 야한 꿈을 꿨다'고 카톡을 보내거나, 성관계를 갖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A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B씨는 현재 조현병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에만 약을 안 먹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족은 "동생이 외출한 지 20분 만에 신고가 들어온 걸 보면 계획 범죄가 틀림없다"고 반박했다. CCTV가 비치지 않는 곳을 고른 점,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나이에 교제살인으로 세상을 떠난 A씨의 유족들은 제대로 된 처벌이라도 받게해 달라며 울분을 토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06-19 08:26:36#. 오는 15일 1심 법원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남편의 형(刑)이 선고된다. 남편은 변호사를 통해 합의를 요구하지만 아내 A씨는 마음을 닫았다. 형사재판 후에는 이혼소송도 진행할 생각이다. 중국 이주민인 A씨는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평생 떨어져 살기를 바란다. "승객 여러분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옌지 차오양촨 공항(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에 있는 공항)을 떠난 지 2시간여가 지났다. A씨는 기내 방송을 듣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한국에 왔구나….'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난 A씨는 어릴적부터 한국말에 친숙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6.25 전쟁때 중국으로 건너와 결혼했다. 아버지는 과수원에서 사과와 배를 재배해 자식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지린성에서 정규 교육을 마친 A씨는 스무 살이 되던 1994년, 중국 칭다오에 위치한 한국계 섬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상하이에서 한국 소매상들을 대상으로 가이드를 하며 통역분야에 전문성을 높였다. 서른살이 되던 해 A씨가 한국행을 결심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가쪽 친척들이 A씨와 어머니가 한국에 오기를 원했다. A씨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중국보다 경제수준이 나은 곳에서 새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2004년 11월, 그렇게 A씨는 자신의 뿌리가 있는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보다 한국에서 벌이가 나을 거야. 돈을 차근차근 모아보자.' ■고된 한국의 첫 일자리 이주여성이라는 신분으로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는 녹록지 않았다. A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한달 후 첫 일자리를 구했다. 서울 구로동쪽 직업소개소를 전전한 결과다. A씨의 첫 한국 직업은 경기 하남시에 있는 고급 한정식집 서빙이었다. 3층 건물인 식당에서 숙식도 가능하다는 사장의 말에 A씨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A씨는 하루 빨리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았다. 밤 10시 일이 끝나면 1층 홀에서 테이블을 한쪽으로 치워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날 아침 6시 일어나 일을 준비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손님들의 팁이 괜찮았다. 한식당에서 10개월 정도를 보내고 친척들이 있는 서울쪽에서 일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여 혼자 거주할 곳도 찾고 싶었다. 청량리쪽에 거처를 마련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A씨는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한국에 온지 1년여가 지나 타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던 A씨도 싫지만은 않았다. 버스기사를 하는 30대 후반의 남자고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성실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몇달 전 한국에 들어온 어머니도 한국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원하던 터였다. ■수치스러운 사건이 계기로 2006년 4월 청량리역 근처에서 남자와 첫 만남이 이뤄졌다. 남자는 A씨에게 적극적이었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거절당해도 다음에 만날 날짜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몇 달간 남자와 교제를 망설이던 A씨는 한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열었다. 청량리쪽에서 새로 구한 일자리는 호프집 서빙이었다. 호프집에는 A씨와 같이 중국 국적의 여직원 3명이 더 있었다. A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한달쯤 지난 어느날 60대 사장이 퇴근하던 A씨를 불러 앉혔다. "나랑 애인하자.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다 그렇게 지낸다. 용돈도 챙겨줄 거다." A씨는 당황했지만 침착하려 애썼다.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고 아무말 없이 호프집을 빠져 나왔다. 그 길로 A씨는 처음으로 남자를 먼저 찾았다. "한국에 너무 실망했어요. 아무리 이주여성 혼자 살고 있다 해도 사람을 이렇게 쉽게 대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대우를 받고 일해야 한다는 게 수치스럽고 힘들어요" A씨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매달 생활비를 줄테니 일 그만하지. 그리고 우리 같이 사는 것은 어떤가"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된 폭력 2006년 11월 A씨는 남자와 결혼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신혼은 행복했고 아이도 생겼다. 하지만 낮선 땅에서 찾은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8월 남편이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모의 병문안을 놓고 시작된 말다툼 끝에 남편이 A씨의 목을 조른 것이다. 이후 남편의 행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A씨가 먹는 반찬에 독극물을 몰래 타는 엽기적인 행각도 벌였다. A씨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한국 땅을 밟은 지 3년여 만에 A씨의 부푼 꿈은 그렇게 무너져 갔다. 현재 A씨는 남편의 형이 최대한 무겁게 나오기를 바란다. 딸과 아들을 홀로 키우는 A씨는 현재 거주하는 곳에서 이사를 가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A씨는 언젠가 출소할 남편이 다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두렵다. relee@fnnews.com 이승환 기자
2016-01-10 17: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