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影島)는 영도다리, 태종대, 봉래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면적은 14.13㎢이며 2000년 13.95㎢에서 매립으로 0.18㎢ 늘어났다. 인구는 2024년 현재 10만6108명으로 2013년 13만5816명 이후 꾸준히 줄었다. 부산 구도심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보인다. 10만명은 유지했으면 한다. 영도라는 지명의 어원은 절영도(絶影島)다. 명마들이 빨라 그림자가 안보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지도에서는 거의 절영(絶影), 절영도(絶影島)로 나온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마장이 있어서 목도(牧島), 목지도(牧之島)로도 불렸다. 조선 후기 영도로 부르면서 그림자 섬이 되었다. 1960년경 부산 해도에 봉래산이 목도산(牧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영도가 목도(牧嶋)로도 불린 것이다. 모두 목마장과 연관된다. 영도 목마장 기록은 신라 성덕왕과 김유신 장군의 기록에 처음 보인다. 당시 조정과 진골 귀족들이 마장을 운영했다. 명마는 군사와 운송 용도는 물론, 귀족의 자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영도를 제주 말의 임시 거처로 삼고 군사 훈련에 임했다. 영도의 지형은 내륙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봉래산(395m), 남쪽 동삼동의 진후산(150m), 그리고 태종대 해안의 태종산(252m) 등 3체의 산지가 주축을 이룬다. 해안에서는 해식애, 간석지와 평야, 자갈해안 등이 펼쳐진다. 섬의 북쪽은 완만해 부산 도심과 연계되면서 도시화가 잘 되어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산지와 식생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영도는 남서-북동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부산항의 천연의 방파제 기능을 한다. 그 징표로 영도의 서부해안은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식애와 좁은 자갈 해안들이 발달해 있다. 영도는 중심지에 인접한 주요 주거지가 되었다. 항만 해안가에는 조선업, 선박수리와 장비 관련 산업체가 집중했다. 항만 관련 창고업도 성행했다. 해방되면서 부산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다.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들, 해방과 6·25전쟁으로 북한 사람들의 남하 영향이 컸다. 급격한 인구와 인구밀도 증가로 부산에는 큰 화재가 많았다. 부산이 아니라 불산이라 했고 이름에 가마솥(釜)이 있어 그런가 우스개 말들을 했다. 유명한 사건들로 국제시장 화재(1953년 1월), 부산역전앞 화재(1953년 11월), 그리고 용두산, 영주동 피란민촌 화재(1953년 12월) 등이 있다. 영도는 피란민과 화재 재난민들의 입주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경남인들이 부산으로 모였다. 부산은 산업과 학업의 중심지였다. 1960년대 부산은 선박과 해양, 그리고 합판, 신발 산업 등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많은 부산 사람들이 어업과 해운업에 종사했다. 한국 조선공업은 부산이 기원이다. 1930년대 조선중공업과 해방 이후 대한조선공사가 이를 주도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북양 명태나 남양 참치잡이 등으로 원양업 종사자도 많았다. 영도는 이를 위한 공단과 주거지를 제공했다. 해양수산 사업이 많은 부산은 안전을 하늘과 신선에 기원할 일이 많았다. 특히 영도의 동이름에 신선사상(神仙思想)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봉래동(蓬萊洞), 신선동(神仙洞), 영선동(瀛仙洞), 청학동(靑鶴洞)이 그러하다. 상대적으로 대평동(大平洞), 남항동(南港洞), 대교동(大橋洞)은 개항 이후 간척과 매립, 항만건설, 영도대교 설립에서 유래하는, 현대화를 상징하는 동명들이다. 영도는 신선사상과 현대화가 대조적으로 지명에 반영되어 있다. 동삼동(東三洞)은 섬 동쪽에 상리, 중리, 하리 등 세 마을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삼동은 영도 면적의 57%, 인구의 40%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중리 지명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영도의 인구와 시설이 밀집하면서 도심에서 멀어 상대적으로 자연지형과 농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동삼동이 도시화된다. 교육시설만 보아도 초등학교 6개, 중학교 3개, 고교 5개, 대학 캠퍼스 3개가 자리잡았다. 동삼동은 교육마을로 자리잡고 있다. 봉래산은 영도에서 중심적 지형 요소다. 봉래산의 산신 '고갈 할매'는 영도 주민들의 바닷가 안전과 살림살이 등을 보살핀다는 것이다. 봉래산을 중심으로 복천사를 비롯해 30여개의 사찰이 밀집해 있다. 2013년 자료를 보면 부산에 대략 500명의 해녀가 있었고, 그중에서 150명이 영도에 살았다. 영도의 영선동과 동삼동에서 태종대에 이르는 바닷가에서 다양한 해산물을 채취해왔다. 더러는 영도를 작은 제주라고 했다. 바다 건너 해수욕장이 있는 송도에서 바라보는 영도 해안길을 제2송도, 즉 이송도(二松島)라 불렀다. 여기서 해녀들의 물길질과 해변 노상판매가 이루어졌다. 영도 해녀촌과 해녀문화전시관이 그 역사를 기념한다. 부산 영도에는 해운과 수산에 관련된 대학교, 연구소, 연구원, 박물관 등이 몰려있다. 한국해양연구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해양수산연구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해양환경교육원, 국립해양박물관, 해녀문화전시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한국해양대학교, 부산해사고등학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선 영조시대 문신 조엄은 1764년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영도에서 최초 재배했다. 고구마 재배가 성공해 전국으로 확대되고 쌀, 보리, 감자와 함께 주작물로 자리잡았다. 영도의 고구마를 조엄과 연관해 조내기고구마라 하고, 조내기마을도 있었다. 근래 조내기고구마 역사기념관도 만들어졌다. 부산은 임진왜란의 시작지였다. 1592년 4월 13일 오후 5시경 가덕도 응봉의 연대봉(煙臺峰)에서 왜군들의 부산포 접근을 최초로 발견하고 보고했다. 부산 첨사 정발도 13일 오후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면서 왜선들을 발견했다. 조공선으로 알고 느긋하다가 왜선의 조총소리에 놀라 대피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영남우수사 원균의 통지문에 1592년 4월 15일 왜선 90여척이 절영도 해안에 정박했다고 하고, 경상좌수사 박홍의 공문서는 왜선 350척이 이미 절영도 건너 부산포에 정박했다는 것이다. 4월 16일 원균은 부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보고했다. 영도의 최고 명승지는 역시 태종대라 하겠다. 남해안과 대마도가 보인다.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다녀간 곳이다. 해식애 절벽, 해안단구, 그리고 파랑과 남해안 전망이 빛난다. 해식애에는 자살바위로 불리는 곳도 있다. 인근에는 인명을 구한다는 사찰 구명사(求命寺) 가 있다. 태종대 외에도 봉래산, 송남사 등 영도의 많은 곳에서 바다와 해안을 전망할 수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2024-07-01 18:22:24부산 영도(影島)는 영도다리, 태종대, 봉래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면적은 14.13㎢이며 2000년 13.95㎢에서 매립으로 0.18㎢ 늘어났다. 인구는 2024년 현재 10만6108명으로 2013년 13만5816명 이후 꾸준히 줄었다. 부산 구도심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보인다. 10만명은 유지했으면 한다. 영도라는 지명의 어원은 절영도(絶影島)다. 명마들이 빨라 그림자가 안보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지도에서는 거의 절영(絶影), 절영도(絶影島)로 나온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마장이 있어서 목도(牧島), 목지도(牧之島)로도 불렸다. 조선 후기 영도로 부르면서 그림자 섬이 되었다. 1960년경 부산 해도에 봉래산이 목도산(牧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영도가 목도(牧嶋)로도 불린 것이다. 모두 목마장과 연관된다. 영도 목마장 기록은 신라 성덕왕과 김유신 장군의 기록에 처음 보인다. 당시 조정과 진골 귀족들이 마장을 운영했다. 명마는 군사와 운송 용도는 물론, 귀족의 자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영도를 제주 말의 임시 거처로 삼고, 군사 훈련에 임했다. 영도의 지형은 내륙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봉래산(395m), 남쪽 동삼동의 진후산(150m), 그리고 태종대 해안의 태종산(252m) 등 3체의 산지가 주축을 이룬다. 해안에서는 해식애, 간석지와 평야, 자갈해안 등이 펼쳐진다. 섬의 북쪽은 완만해 부산 도심과 연계되면서 도시화가 잘 되어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산지와 식생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영도는 남서-북동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부산항의 천연의 방파제 기능을 한다. 그 징표로 영도의 서부해안은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식애와 좁은 자갈 해안들이 발달해 있다. 영도는 중심지에 인접한 주요 주거지가 되었다. 항만 해안가에는 조선업, 선박수리와 장비 관련 산업체가 집중했다. 항만 관련 창고업도 성행했다. 해방 되면서 부산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다.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들, 해방과 6·25전쟁으로 북한 사람들의 남하의 영향이 컸다. 급격한 인구와 인구 밀도 증가로 부산에는 큰 화재가 많았다. 부산이 아니라 불산이라 했고 이름에 가마솥(釜)이 있어 그런가 우스개 말들을 했다. 유명한 사건들로 국제시장 화재(1953년 1월), 부산역전앞 화재(1953년 11월), 그리고 용두산, 영주동 피난민촌 화재(1953년 12월) 등이 있다. 영도는 피난민과 화재 재난민들의 입주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경남인들이 부산으로 모였다. 부산은 산업과 학업의 중심지였다. 1960년대 부산은 선박과 해양, 그리고 합판, 신발 산업 등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많은 부산 사람들이 어업과 해운업에 종사했다. 한국 조선공업은 부산이 기원이다. 1930년대 조선중공업과 해방 이후 대한조선공사가 이를 주도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북양 명태나 남양 참치잡이 등으로 원양업 종사자도 많았다. 영도는 이를 위한 공단과 주거지를 제공했다. 해양수산 사업이 많은 부산은 안전을 하늘과 신선에 기원할 일이 많았다. 특히 영도의 동이름에 신선사상(神仙思想)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봉래동(蓬萊洞), 신선동(神仙洞), 영선동(瀛仙洞), 청학동(靑鶴洞)이 그러하다. 상대적으로 대평동(大平洞), 남항동(南港洞), 대교동(大橋洞)은 개항 이후 간척과 매립, 항만건설, 영도대교 설립에서 유래하는, 현대화를 상징하는 동명들이다. 영도는 신선사상과 현대화가 대조적으로 지명에 반영되어 있다. 동삼동(東三洞)은 섬 동쪽에 상리, 중리, 하리 등 세 마을이 있다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동삼동은 영도 면적의 57%, 인구의 40%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다. 중리 지명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영도의 인구와 시설이 밀집하면서 도심에서 멀어 상대적으로 자연지형과 농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동삼동이 도시화된다. 교육시설만 보아도 초등학교 6개, 중학교 3개, 고교 5개, 대학 캠퍼스 3개가 자리잡았다. 동삼동은 교육마을로 자리잡고 있다. 봉래산은 영도에서 중심적 지형 요소다. 봉래산의 산신 ‘고갈 할매’는 영도 주민들의 바닷가 안전과 살림살이 등을 보살핀다는 것이다. 봉래산을 중심으로 복천사를 비롯해 약 30여개의 사찰들이 밀집해 있다. 2013년 자료를 보면 부산에 대략 500명의 해녀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50명이 영도에 살았다. 영도의 영선동과 동삼동에서 태종대에 이르는 바닷가에서 다양한 해산물을 채취해왔다. 더러는 영도를 작은 제주라고 했다. 바다 건너 해수욕장이 있는 송도에서 바라보는 영도 해안길을 제2송도, 즉 이송도(二松島)라 불렀다. 여기서 해녀들의 물길질과 해변 노상판매가 이루어졌다. 영도 해녀촌과 해녀문화전시관이 그 역사를 기념한다. 부산 영도에는 해운과 수산에 관련된 대학교, 연구소, 연구원, 박물관 등이 몰려있다. 한국해양연구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해양수산연구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해양환경교육원, 국립해양박물관, 해녀문화전시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한국해양대학교, 부산해사고등학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선 영조시대 문신 조엄은 1764년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영도에서 최초 재배했다. 고구마 재배가 성공해 전국으로 확대되고 쌀, 보리, 감자와 함께 주작물로 자리잡았다. 영도의 고구마를 조엄과 연관해 조내기 고구마라 하고, 조내기 마을도 있었다. 근래 조내기고구마 역사기념관도 만들어졌다. 부산은 임진왜란의 시작지였다. 1592년 4월 13일 오후 5시경 가덕도 응봉의 연대봉(煙臺峰)에서 왜군들의 부산포 접근을 최초로 발견하고 보고했다. 부산 첨사 정발도 13일 오후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면서 왜선들을 발견했다. 조공선으로 알고 느긋하다가 왜선의 조총소리에 놀라 대피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영남우수사 원균의 통지문에 1592년 4월 15일 왜선 90여척이 절영도 해안에 정박했다고 하고, 경상좌수사 박홍의 공문서는 왜선 350척이 이미 절영도 건너 부산포에 정박했다는 것이다. 4월 16일 원균은 부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보고했다. 영도의 최고 명승지는 역시 태종대라 하겠다. 남해안과 대마도가 보인다.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다녀간 곳이다. 해식애 절벽, 해안단구, 그리고 파랑과 남해안 전망이 빛난다. 해식애에는 자살바위로 불리는 곳도 있다. 인근에는 인명을 구한다는 사찰 구명사(求命寺) 가 있다. 태종대 외에도 봉래산, 송남사 등 영도의 많은 곳에서 바다와 해안을 전망할 수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7-01 13:33:29【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시는 인천 수돗물 ‘인천하늘수’가 뉴욕 페스티벌이 주최·주관하는 ‘제15회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대상’ 수돗물 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고 3일 밝혔다.대한민국 국가브랜드대상은 브랜드 인지도, 대표성, 만족도, 충성도, 글로벌 경쟁력 등 각각의 평가 항목마다 소비자들이 직접 평가해 브랜드의 경쟁력지수를 산출한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인천하늘수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온·오프라인 캠페인 진행, 인천하늘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 확대, 언론·방송·대중매체 활용 광고, 인천하늘수 시민평가단 및 서포터즈 활동, 인천하늘수 과학 교실 운영 등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해 시민 소통을 강화했다. 또 브랜드에 다채로운 스토리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인천하늘수 캐릭터’를 새롭게 제작하고 시민 공모를 통해 ‘하리’와 ‘수리’라는 캐릭터 이름을 선정해 다양한 캐릭터 활용 상품(굿즈)를 제작 배포하는 등 신규 콘텐츠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밖에 6개 광역시 중 최초 ISO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국제인증 취득, 고도정수처리시설 증설, 스마트 물관리 시스템 도입 등의 노력으로 시민이 만족하는 고품질 수돗물을 생산함과 동시에 친환경 무라벨 병입수 생산과 에너지절감 계획 추진으로 사회가치경영(ESG)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김인수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소비자가 직접 선정하는 국가브랜드대상에서 인천 수돗물의 브랜드 가치를 2년 연속 인정받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4-04-03 15:49:04【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인천 수돗물의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시민과 함께 만들기 위해 ‘인천하늘수 홍보 슬로건·캐릭터명 공모전’을 실시하고 최종 당선작을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공모에는 슬로건 부문 443건, 캐릭터명 부문 583건 등 총 1026건의 작품이 접수됐다. 심사를 거쳐 부문별 우수 작품 3개를 선별한 후 시민 선호도조사에서 가장 높은 득표를 받은 작품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지난 6월 30일부터 14일간 진행된 시민 선호도조사에는 총 3929명의 인천시민이 참여했다. 시민 선호도조사 결과, 슬로건 부문은 투명하고 청명한 하늘을 닮아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를 함축한 ‘하늘을 담은 순수, 인천하늘수’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Hi, High, 인천하늘수’와 ‘내 안에 투명한 하늘을 채운다, 인천하늘수’가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캐릭터명 부문에서는‘하늘’과 ‘수돗물’에 큰물을 가리키는 옛말 ‘아리’를 합친 ‘하리, 수리’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하리’는 하늘이 내린 큰물의 흐름, ‘수리’는 수돗물이 만드는 큰물의 흐름을 의미한다. 그 외‘하니, 누리’, ‘하롱이, 수롱이’가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최종 선정된 입상작에는 당선작(2명) 각 30만원, 우수작(4명) 각 15만원의 상금이 수여되고 공모에 참여한 응모작 중 추첨을 통해 100명에게 5000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참가상으로 지급한다. 입상작과 이벤트 추첨 결과는 인천시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선작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콘텐츠, 인쇄물, 굿즈 등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돼 각종 홍보 매체, 오프라인 홍보캠페인, 인천하늘수 수돗물 교실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김인수 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시민과 함께 선정한 당선작을 활용해 인천하늘수의 친환경적 가치와 우수성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3-07-20 11:11:17【파이낸셜뉴스 인천=한갑수 기자】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인천시 상수도인 '인천하늘수'의 홍보 슬로건·캐릭터명 공모전 최종 당선작 선정을 위해 7월 13일까지 온라인 시민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다고 6월 30일 밝혔다. 인천시민은 물론 인천시를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온라인으로 선호도 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인천시 홈페이지(소통참여-설문조사) 또는 네이버폼에 접속해 가장 마음에 드는 슬로건과 캐릭터 이름을 선택하면 된다. 이번 공모전은‘인천하늘수’의 가치를 담은 홍보 슬로건과 친근한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한 인천하늘수 캐릭터 이름을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선정해 인천하늘수 브랜드 스토리에 다채로움을 더하고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앞서 이달 초부터 실시한 공모 기간 총 1026건의 작품이 접수됐으며 1차 담당부서 내부심사와 2차 인천시 건강한 수돗물 만들기 위원회 심사를 거쳐 적합성·상징성·창의성·대중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부문별 3개 후보작을 선정했다. 선정된 후보작은 △슬로건 부문 ‘Hi, High, 인천하늘수’, ‘내 안에 투명한 하늘을 채운다, 인천하늘수’, ‘하늘을 담은 순수, 인천하늘수’ △캐릭터명 부문 ‘하니&누리’, ‘하롱이&수롱이’, ‘하리&수리’ 등이다. 시는 후보작을 대상으로 시민 선호도 조사를 진행해 부문별 최다 득표를 한 작품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된다. 당선작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콘텐츠, 홍보물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인천하늘수 홍보에 적극 활용될 예정이다. 최종 선정된 당선작(2명) 각 30만원, 우수작(4명) 각 15만원의 상금이 수여되고, 선호도 조사 참여자 가운데 100명을 추첨해 커피 쿠폰을 증정한다. 입상작과 이벤트 추첨 결과는 7월 17일 인천시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인수 인천상수도사업본부장은 “인천하늘수의 우수성과 친환경적 가치를 잘 담아낸 시민 공감 슬로건과 캐릭터 이름 선정에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
2023-06-30 11:21:02【울산=최수상 기자】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이 농촌 자매마을 일손 돕기에 나서 구슬땀을 흘렸다. 현대차 툴링센터 봉사단 80여명은 18일과 19일 양일간 자매결연 마을인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 하리마을을 방문해 양파수확 일손 돕기에 나섰다. 툴링센터 봉사단은 양파를 수확하는 세대를 찾아 바쁜 일손을 돕는 한편, 마을 주민들과 미리 준비해 간 식사와 간식을 함께 먹으면서 마을의 애로점을 듣고, 친목을 다지는 자리도 마련했다. 현대차 생산기술센터도 오는 22일 자매마을인 울주군 종곡마을을 찾아 양파수확과 운반 작업을 돕는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지난 2007년 울산시 울주군의 농촌마을 12곳과 자매결연 후 매년 농번기에 배추, 사과, 배 등 농산물 수확을 돕고 있다. 농한기에도 마을을 찾아 환경정화, 농기구 수리, 경로잔치 마련 등 다양한 활동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2018-06-19 14:46:35문화재청은 사단법인 전통숲과나무연구회와 함께 천연기념물 및 천연기념식물 보존·관리 강화를 주제로 한 아카데미를 오는 17일 오후 1시 대전광역시 유성 호텔 아드리아 세미나실에서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천연기념물·식물의 치료·보수의 우수·미흡 사례를 공유하고 상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으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문화재수리기술자·기능자, 국립대학교 수목진단센터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다. 발표 주제는 천연기념물 식물의 상시관리제도 도입 목적과 연혁, 지침 등을 소개하는 '천연기념물·식물 상시관리 제도 안내'와 충북지역 상시관리사업을 중심으로 본 '천연기념물·식물 상시관리 제도 개선점', 천연기념물 제166호 강릉장덕리은행나무로 살펴본 '천연기념물·식물 상시관리 사례', 울주목도상록수림, 양산신전리이팝나무, 안동주하리뚝향나무 관리 사례로 본 '천연기념물·식물 보존·관리방안 등 4개 주제로 진행된다. 발표가 끝나면 차병진 충북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토론자와 관계 전문가들이 펼치는 종합 토론과 방청객이 함께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각계 전문가와 관리 단체 등이 내놓는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취합해 천연기념물 상시관리 지침 개정 등에 반영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더 발전적인 상시관리 제도 마련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17-05-16 09:4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