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성남=장충식 기자】 아내와 18개월 된 아들까지 태우고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저지른 부부가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1부(김영오 부장검사)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A(29)씨를 구속 기소하고, A씨의 아내 B(31)씨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고 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4월 4일부터 올 2월 21일까지 경기도 성남 등지에서 신호 위반 차량을 고의로 추돌하는 수법으로 37건의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약 1억6700만원을 지급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 가운데 19건은 A씨 단독 범행이었으며, 나머지는 B씨 등과 공모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평소 배달 기사로 근무하며 이륜차를 몰다가 삼거리에서 후진하거나 진로를 변경하는 차량 등을 충돌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편취했다. 특히 아내인 B씨는 임신 6개월 때부터 A씨와 공모했으며, 올해 2살이 된 자녀를 차량에 함께 태운 채 범행한 것만도 16회에 달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도박 빚을 갚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녀를 차에 태운 이유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더 많이 타내고, 범죄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2023-06-07 11:15:11[파이낸셜뉴스] 미국에서 생후 18개월 아이에게 채식주의를 강요해 영양실조와 탈수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한 여성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비즈니스인사이더, AP통신 등 외신은 지난 3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지난 2019년 9월 18개월 아들 에즈라에게 채식만 먹여 숨지게 한 엄마인 쉴라 오리어리 케이프가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쉴라는 2019년 당시 18개월이었던 아들에게 과일과 채소, 모유만 먹여 영양실조로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쉴라에게는 아동 학대죄 가중 처벌로 인한 징역 30년, 아동 과실치사 가중 처벌로 징역 30년, 아동 방임죄 2건과 아동학대죄 1건으로 징역 5년이 선고됐는데, 플로리다주 검찰청은 형량이 동시에 집행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은 4차례 연기된 끝에 진행됐으며, 그의 남편인 라이언 오리어리도 같은 혐의로 재판을 앞둔 상황이다. 쉴라는 아들에게 고기나 생선뿐만 아니라 달걀 및 유제품조차 먹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아들은 심각한 수준의 영양실조와 탈수증에 시달리나 숨졌는데, 부검 결과 사인은 영양결핍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아이의 사망 당시 체중은 약 7kg으로 생후 7개월 아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외신은 보도했으며, 플로리다주 검찰청은 "아이의 다른 형제인 3살, 5살, 11살인 어린이 3명도 극심한 방임과 아동 학대에 시달렸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쉴라에게 남은 자녀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명령도 함께 내렸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2022-09-02 06:44:09【 용인(경기)=임수빈 기자】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7주기 추도식이 열린 19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 오전 9시부터 삼성을 비롯해 CJ 등 범삼성 계열 그룹 주요 인사들을 태운 차량이 바쁘게 선영 입구를 오갔다. 범삼성 일가는 과거 추도식을 함께했지만, 형제인 CJ 이맹희 전 회장과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이 상속분쟁을 벌인 이후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추도식을 하고 있다. ■오너 일가, 조용한 분위기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9시께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 등과 선영에서 40분가량 머무르며 참배했다.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등 삼성 일가는 오전 10시40분경 함께 각기 다른 차를 탄 채 선영을 찾았다. 이곳에서 50분가량 머문 후 오전 11시33분경 자리를 떴다. 지난해 이재용 회장은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1심 결심공판과 일정이 겹쳐 추도식 당일에 참석하지 못하고 별도로 참배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5일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추도식에 이어 이날도 별도로 대외 메시지를 내놓진 않았다. 삼성 사장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도체, 삼성 대들보 될 것" 이 창업회장은 한국 경제성장을 이끈 거인으로 불린다. 이 창업회장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삼성을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특히 반도체 사업을 두고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 창업회장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반도체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반도체 진출 발표에 미국 인텔은 그를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창업회장의 뚝심 아래 삼성전자 반도체는 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통상 건설에 18개월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고, 그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1983년 말 반도체회의에서 "삼성에서는 64K D램이 개발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우리는 큰 개발을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더 좋은 것을 개발해야겠다는 야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미래 기술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최근 인재유출과 관련해서도 이 창업회장의 핵심 경영철학 중 하나인 '사람 위주의 경영'이 다시 주목받는다. 그는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전달돼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 등 인재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한 바 있다. soup@fnnews.com
2024-11-19 18:05:59[용인(경기)=임수빈 기자]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7주기 추도식이 열린 19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 오전 9시부터 삼성을 비롯해 CJ 등 범삼성 계열 그룹 주요 인사들을 태운 차량이 바쁘게 선영 입구를 오갔다. 범삼성 일가는 과거 추도식을 함께 했지만, 형제인 CJ 이맹희 전 회장과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이 상속 분쟁을 벌인 이후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추도식을 하고 있다. ■오너 일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호암 37주기 추도식 마쳐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9시께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 등과 선영에서 40분 가량 머무르며 참배했다. 이병철 회장 손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등 삼성 일가는 오전 10시 40분 경 함께 각기 다른 차를 탄 채 선영을 찾았다. 이곳에서 약 50분 가량 머문 후, 오전 11시 33분 경 자리를 떴다. 지난해 이재용 회장은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1심 결심 공판과 일정이 겹쳐 추도식 당일에 참석하지 못하고 별도로 참배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5일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추도식에 이어 이날도 별도로 대외 메시지를 내놓진 않았다. 삼성 사장단의 경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도체, 삼성 대들보 될 것" 이 창업회장 어록 재조명 이 창업회장은 한국 경제성장을 이끈 거인으로 불린다. 이 창업회장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의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삼성을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는 특히 반도체 사업을 두고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 창업회장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반도체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반도체 진출 발표에 미국 인텔은 그를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창업회장의 뚝심 아래 삼성전자 반도체는 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통상 18개월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고, 그 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1983년 말 반도체회의에서 "삼성에서는 64K D램이 개발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우리는 큰 개발을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더 좋은 것을 개발해야겠다는 야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미래 기술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최근 인재 유출과 관련해서도 이 창업회장의 핵심 경영철학 중 하나인 '사람 위주의 경영'이 재주목 받는다. 그는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전달돼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 등을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 꾸준히 강조한 바 있다.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2024-11-19 15:42:23'개그콘서트' 선·후배들이 의기투합한 새 코너 '여자가 필요 없는 이유'와 '혹시 몰라서'가 시청자들의 배꼽 사냥에 나선다. 오는 17일 방송하는 KBS2 '개그콘서트' 1097회는 스타일이 다른 2가지의 새 코너를 선보인다. 먼저 박성광, 송준근, 김니나, 서아름, 채효령, 최기문, 황은비가 '여자가 필요 없는 이유'로 뭉친다. '여자가 필요 없는 이유'는 연애 트라우마를 가진 남자가 AI로 복구된 전 여자 친구들을 다시 만나며, 트라우마 극복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성광은 5년간 연애에 실패해 정부 산하 연애비상대책위원회에 소집된 박봉구 역을 맡는다. 그는 전 여자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연애 트라우마를 또다시 경험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새로운 음악 개그 '혹시 몰라서'도 첫선을 보인다. 이종훈, 오민우, 송준근, 김지호는 '혹시 몰라서'로 귀결되는 재치 넘치는 짧은 콩트를 연이어 선보이며, 유쾌한 웃음 릴레이를 펼친다. 특히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도는 멜로디와 다양한 상황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유행어 '혹시 몰라서'는 '개그콘서트'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았던 음악 개그들을 떠올리게 한다. '키 컸으면', '감사합니다', '도찐개찐', '킹받쥬' 등 무한 중독을 유발했던 음악 개그들의 명맥을 '혹시 몰라서'가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소통왕 말자 할매'에는 '차도녀'에서 아들딸 쌍둥이를 육아 중인 '워킹맘' 배우 공현주와 만난다. 공현주는 '말자 할매' 김영희를 만나 "쌍둥이들이 곧 18개월을 앞두고 있다"라며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라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개그콘서트'의 '워킹맘'인 김영희가 공현주에게 건넨 조언은 본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이날 '개그콘서트'에서는 '습관적 부부', '히어로입니다만', '심곡 파출소', '데프콘 어때요', '참...선배', '오스트랄로삐꾸스', '심의위원회 피해자들', '알지 맞지'가 방송될 예정이다. 한편, '개그콘서트'는 1097회는 17일 밤 10시 50분 KBS2에서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KBS2 '개그콘서트'
2024-11-15 08:37:12[파이낸셜뉴스] 6세 아들을 러닝머신 위에서 억지로 뛰게해 사망에 이르게 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25년의 중형이 내려졌다. 이 남성은 아들이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4일 미국 ABC뉴스, 허핑턴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뉴저지주 법원은 지난 2일(현지시간) 코리 미치올로(6)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아버지 크리스토퍼 그레고르(32)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날 법원은 그레고르에게 중과실치사 혐의로 20년형, 아동학대 혐의로 5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도 자신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1년 4월 2일 코리는 뉴저지주 스태포드 타운십의 한 병원에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이송됐다. 그러나 병원 도착 1시간 만에 코리는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이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급성 염증과 패혈증을 동반한 심장과 간의 타박상으로 밝혀졌다. 또 둔기에 의한 외상 흔적이 발견되는 등 미치올로가 그레고르로부터 만성적으로 학대를 받아온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그레고르를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했으나 부검을 통해 코리의 사인이 외상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2022년 3월 살인죄가 추가돼 기소됐다. 그레고르의 재판에서는 그가 아들에게 러닝머신 위에서 빠른 속도로 달릴 것을 강요하는 모습이 담긴 CCTV영상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다. 코리가 숨지기 13일 전 촬영된 해당 영상을 보면 아빠가 지켜보는 앞에서 코리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러닝머신을 뛰고있다. 그레고르가 계속 속도를 높이자, 코리는 이를 이기지 못하고 밀려 넘어진다. 이 상황에서도 그레고르는 아들을 다그쳐 다시 러닝머신을 뛰게하는데 이 과정이 무려 6번이나 반복된다. 그레고르는 "아들이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해 이런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나는 아들의 죽음을 초래한 어떤 짓도 하지 않았고, 다치게 한 일도 없으며, 그를 사랑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라며 "다만 아들을 일찍 병원에 데려오지 않은 것은 후회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레고르와 따로 살며 양육권을 놓고 다퉈온 엄마 브레아나 미치올로는 재판에서 "아들이 아빠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18개월 간 100차례에 걸쳐 신고했지만 당국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4 14:42:43[파이낸셜뉴스] 피자 브랜드 고피자는 태국 CP그룹의 핵심 유통 계열사인 ‘CP ALL’로부터 1000만 달러(약 136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고피자는 2022년 GS벤처스, CJ인베스트먼트 등의 대기업으로부터 총 250억원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한 것에 이어 이례적인 해외 대기업 투자까지 성사시키며 누적 투자액 약 600억원을 돌파했다고 설명했다. 시총 200조가 넘는 태국 재계 1위의 재벌 기업인 CP그룹은 세계 최대의 새우 생산 기업이자, 세계 3위의 가금류 생산 기업이다. 약 100년 전 사료 사업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유통, 통신, 금융, 제약, 부동산 등까지 확장한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2022년에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녀와 CP그룹 회장의 아들이 결혼하면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핵심 계열사인 CP ALL 그룹은 세븐일레븐 편의점, 로터스 슈퍼마켓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CP ALL 역사 상 첫 해외 스타트업 투자이기도 한 이번 투자 배경에는 고피자의 제품과 기술력에 기반한 빠른 동남아 시장 성장성과 더불어 GS25, CGV 등 대기업과의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통한 확장성이 주효했다. 약 18개월 동안 진행된 투자 협의에는 CP그룹의 치라와논 수파킷 회장까지 직접 참여해 제품 시연부터 초기 태국 매장 오픈까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고피자는 이미 CP그룹의 계열사들과 다양하고 구체적인 협업 논의를 마치고 태국 사업을 본격화 한다. 고피자는 현재 7개국에서 450여개 매장을 돌파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GS25에 연말까지 1000여개 매장을 추가 출점할 계획이다. 고피자 임재원 대표는“CP그룹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한국과 태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접근성이 높은 자랑스러운 한국 피자 브랜드로 지속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06-10 11:06:00[파이낸셜뉴스] 호주에서 자녀 4명을 살해한 혐의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여성의 유죄 판결이 뒤집혔다. 여성의 유전자에서 돌연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 등 외신 따르면 전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항소법원은 살인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캐슬린 폴비그에 대해 아이들이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폴비그는 지난 1989∼1999년 생후 19일∼18개월 된 자신의 두 아들과 두 딸 총 4명 중 3명을 살해하고 1명을 과실치사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폴비그의 자녀들은 모두 생후 20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아이 케일럽은 생후 19일 만에 요람에서 죽은 채 발견됐으며, 이후 패트릭와 사라, 로라가 각각 생후 8개월, 10개월, 19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의 남편인 크레이그 폴비그는 아이들 사망 이후 아내가 적은 일기를 경찰에 넘겼고, 폴비그는 자녀를 질식사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폴비그는 자녀들이 자연사했다고 주장했으나 2003년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폴비그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는 징역 40년 형을 선고했다. 당시 언론은 폴비그를 '호주 최악의 여성 연쇄 살인범'이라 불렀다. 이후 2021년 과학자들은 숨진 두 딸에게서 돌연사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에 90명의 과학자와 의료 종사자, 전문가들은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청원서를 냈다. NSW주는 은퇴한 톰 배서스트 전 판사에게 재조사를 맡겼다. 그는 "사망한 아이들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가 발견됐다"며 "아이들의 죽음이 자연사일 가능성이 있어 유죄 평결이 잘못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NSW주는 지난 6월 폴비그를 사면했다. 이후 폴비그는 항소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결국 유죄 취소 판결을 받았다. 폴비그는 재판 후 "최신 과학으로 내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답을 얻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법 시스템은 아이들이 예기치 않게 숨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를 비난하기를 더 좋아했다"고 꼬집으며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폴비그의 변호인은 "폴비그가 억울하게 옥살이 한 시간에 대한 실질적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호주 언론은 폴비그의 배상금이 호주 역사상 가장 큰 배상 사례로 기록된 데이비드 이스트먼 사건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스트먼은 경찰 살해 혐의로 19년을 감옥살이를 하다 지난 2018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수도 준주(ACT) 정부로부터 702만 호주달러(약 61억원)를 받았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3-12-15 14:30:15[파이낸셜뉴스] 17일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6주기 추도식을 맞아 이 창업회장의 어록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창업회장은 △ 사업보국 △ 인재제일 △ 합리추구의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삼성을 성장시켰다. 이 창업회장은 1938년 삼성물산의 모태인 청과물·건어물 수출업으로 창업한 '삼성상회'를 세웠고, 1953년 설탕 사업으로 시작한 제일제당은 현재 CJ그룹의 모태가 됐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해야겠습니다"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 이병철 창업회장이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업계의 냉소 속에도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진출을 두고 미국 인텔은 이 창업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조롱했다. 이 창업회장은 온갖 조롱에도 반도체에 삼성그룹의 사활을 걸었다. 이 창업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잘못하면 삼성그룹 절반 이상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성이 아니면 이 모험을 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 창업회장의 뚝심 아래 '삼성전자 반도체'는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갔다. 통상 18개월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고, 그 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0년 뒤인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에 올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 선구자'였던 이 창업회장의 뜻을 이어받은 이재용 회장은 '반도체 한파'에도 초격차 기술에 집중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경기도 용인 소재 기흥캠퍼스에서 개최한 '기흥 반도체 R&D(연구개발) 단지 기공식'에서는 현장에 설치된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에는 △ 무자원 반도인 우리의 자연적 조건에 맞으면서 해외에서도 필요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 △ 이것이 곧 고부가가치, 고기술 상품, 즉 첨단기술 상품이다 △ 반도체, 컴퓨터 등 첨단산업 분야는 세계시장이 무한히 넓다 △ 반도체, 컴퓨터 산업은 그 자체로서도 시장성이 클 뿐만 아니라, 타 산업에의 파급효과가 지대하며 무공해, 생자원(省資源), 기술 및 두뇌집약,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우리 실정에 매우 적합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등 이 창업회장이 '도쿄 선언' 직후에 한 발언 중 일부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재계에서는 '삼성 반도체의 발원지'인 기흥에서 미래기술 연구의 핵심기지 건설을 위한 첫삽을 뜨는 기념비적인 행사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40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도전의 의지를 다지자는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당시 나왔다. "내가 40여 년 동안 키워온 것이 인재"...전용기 팔았던 삼성이 공채 유지하는 이유 "내가 40여 년 동안 키워온 것이 인재이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내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인다." (1982.7 사장단 회의에서)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1982.10 '한국인' 기고문) 이병철 창업회장은 수차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57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공채를 도입한 삼성은 국내 주요 대기업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공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창업회장의 '인재제일, 인간본위' 정신이 이건희 선대회장에 이어 이재용 현 회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했으며, 1995년에는 지원 자격요건에서 학력을 제외하는 등 국내 채용문화를 선도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에 취임하면서 취임 일성으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냅니다"라고 밝히며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사명은 인류 봉사"...삼성이 사회공헌에 진심인 이유 있었네 "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다. 나라가 잘되어야 기업도 잘되고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1981.1 신년사) "나는 인간사회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은 봉사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경영하는 기업의 사명도 의심할 여지없이 국가, 국민 그리고 인류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1987.1 언론 기고문) 이병철 창업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이 창업회장은 기업 외 영역에서 사회에 직접 공헌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모색하다가 1965년 55회 생일에 삼성문화재단 설립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 창업회장의 정신은 이재용 현 회장의 '미래 동행' 경영정신과 닿아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소 예술을 사랑했던 이 창업회장은 개인의 소장품을 국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전시하기 위해 1982년 호암미술관을 개관했다. 삼성문화재단의 호암·리움미술관은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또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악기은행 프로그램을 199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젊은 음악가들에게 세계적인 명기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창업회장의 예술 사랑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아들 이건희 선대회장 또한 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4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세기의 기증품'인 '이건희 컬렉션'이 전시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창업회장의 손녀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문화산업에 투자하게 된 근간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이 컸음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할아버지는 항상 문화 없이는 나라도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병철 창업회장은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옴과 동시에 문화, 예술, 교육,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도 큰 업적과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JY 재판 겹친 올해 추도식올해 이 창업회장의 36주기 추도식은 17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렸다. 올해는 이병철 창업회장의 기일(11월19일)이 올해는 일요일이어서 추도식이 평일로 앞당겨졌다. 재계에 따르면 신세계, CJ, 한솔 등 범삼성 계열 그룹들은 예년처럼 올해도 시간을 달리해 용인 선영을 찾을 예정이다. 다만 호암의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결심 공판과 일정이 겹쳐 추도식에 불참하는 등 삼성가(家)의 참배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35주기 추도식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 바 있다. 이날 CJ, 한솔, 신세계그룹 사장단이 차례로 선영을 찾아 참배했다. 호암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 등과 함께 18일이나 19일에 선영을 찾을 전망이다. 이재현 회장은 예년처럼 추도식과 별도로 호암이 생전에 살았던 서울 장충동 고택에서 고인의 제사를 지낸다. 제사는 19일 저녁 열린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2023-11-17 14:23:29차고 뒤편에서 거실로 끌고 온 낡은 나무 상자 윗면에 쌓인 먼지를 쓸어냈다. 50년 전에 만든 타임캡슐이었는데, 내가 13살이던 1972년에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가득 채워 두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내가 타임캡슐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뭐가 들었죠?"라고 물었다. 이제는 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알아내기 직전이다. 상자 윗면의 틈으로 지렛대를 쑤셔 넣었다. 가족이 내 주변에 모여들었다. 아내 페그, 아흔 두 살 어머니, 아들, 딸, 사위, 손녀 둘까지 글자 그대로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서 대단한 개봉박두를 지켜보았다. "미국 독립선언서가 한 부 들어 있을지도 몰라요." 아들이 내 공상을 방해하며 말했다. "아니면 숨겨 둔 백만 달러가 든 깡통일지도요." 또 다른 추측이 뒤따랐다. 정말 모두 재미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근심이 엄습했다. 내가 이 일을 너무 과하게 떠벌렸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들판에 묻거나 건물 주춧돌 뒤에 숨긴 타임캡슐 얘기를 들었다. '나만의 타임캡슐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상자를 지하실에서 찾아냈는데,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고서 가져온 오래된 물건이었다. 상자를 채우고 못을 박아서 봉했다. 상자 윗면을 가로질러서 '2022년 개봉'이라고 썼다. 세 번 이사하는 동안에도 상자를 잘 챙겼는데, 가장 최근 이사는 18개월 전이었다. 아이들이 장성해 독립해 살게 되자, 아내와 나는 저장공간이 훨씬 작은 집으로 규모를 줄였다. 쉽지 않았다. 나는 버리는 걸 싫어한다. 내게는 옛 물건이 소중한데, 가족 중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하는 특성이었다. "이것들은 전부 버려야 해요. 상자에 들어 있을 거라면 여기저기 끌고 다닐 수 없어요." 아내 페그가 말했다. 모든 걸 처분하기는 했지만, 때때로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타임캡슐은 내가 간직하겠다고 고집한 상자 중 하나였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랐다. 쇠지렛대로 천천히 뚜껑을 들어 올렸다. 다들 보려고 모여들었다. 두툼하게 쌓인 신문 더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계획과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이 민주당을 도청하려다 발각된 미국의 정치 사건)이 표제를 장식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농구 시간표, 몽고메리 워드(미국의 통신 판매회사) 카탈로그, 찌그러진 차량 번호판,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스낵인 스크리밍 옐로 잔커스(팝콘 스낵)의 빈 상자를 건져 올렸다. 마침내 마지막 물품을 꺼냈는데, 포장된 밀짚꽃 잔가지였다. 그게 1970년대에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게 전부예요?" 아이들이 물었다. 그 목소리에서 실망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기분이었다. 상자는 외면당한 채 거실 한가운데에 놓였다. 모두 떠나고 상자를 차고에 도로 집어넣으러 갔다. 뚜껑을 다시 고정하려고 망치를 들었다. 상자 옆면의 무언가가 내 눈길을 끌었다. 대단한 개봉박두를 둘러싼 야단법석 중에 못 보고 지나친 하얀 페인트 얼룩이었다. 이 상자 주변에서는 페인트 칠을 한 적이 없었다. 가만, 분명 내가 어릴 때였을 거다. 불현듯 아버지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이 상자를 포함해 의도한 것보다 페인트를 훨씬 더 많이 칠한 데다 다시 붓에 페인트를 너무 많이 묻혔을 때, 아버지는 인내심을 갖고 페인트 칠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새 둥지를 짓는 법과 새는 수도꼭지를 수리하는 법도 보여주셨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우리 둘이 함께 페인트 칠하던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건 절대 잊지 않았다. 이음새 없이 롤러로 페인트를 칠하는 법과 큰 붓으로 좁은 선을 그리는 법 등이다. 가장 중요한 건 '청소가 끝날 때까지는 어떤 작업도 마무리된 게 아니다'였다. "마이크, 뭐 하고 있어요?" 아내 페그의 말이 들렸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상자의 페인트 얼룩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같이 작업하던 거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전하고, 또 아버지가 내게 전한 지식이죠…." "그리고 당신은 그걸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잖아요." 아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아내가 옳았다. 나는 아들딸과 손주를 가르치면서 집과 마당 곳곳에서 일하는 걸 즐겼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시간은 계속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한 어떤 물건보다 훨씬 가치 있었고 50년 묵은 타임캡슐보다 더욱더 오래도록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오늘 밤은 근사했어요. 다들 거기서 많이 얻은 것 같네요." 내가 마지막 못에 망치질을 하고 뒤처리도 거의 끝냈을 때 아내가 말했다. "맞아요. 특히 내가 그랬죠." 내가 대답했다. ■ 원문으로 읽는 오늘의 이야기 The Big RevealI swept a layer of dust from the top of the old wood crate I'd lugged from the back of the garage to the living room. It was a time capsule I'd made 50 years ago, filling it with things I'd prized as a 13-year-old in 1972. In the decades since, people I'd mentioned it to would ask, "What's inside?" At this point, I didn't remember. But I was about to find out! I wedged a pry bar into a gap at the top of the crate. My family was gathered around me―my wife, Peg; my 92-year-old mom; my son; my daughter and son-in-law; and my two granddaughters―literally on the edge of their seats to witness the big reveal. "Maybe there's a copy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my son suggested, interrupting my reverie. "Or a tin with a hidden million dollars," came another guess. It was all in good fun. Still I felt a pang of concern. Maybe I'd hyped this up too much. As a boy, I'd heard of time capsules being buried in fields or sealed behind the cornerstones of buildings. Why not make my own? I'd thought. I found an empty crate in the basement that no one was using, some old thing my father had brought back from his service in the Korean War. After I filled it, I nailed it shut. "Open in 2022" I wrote across the top. I kept it through three moves, including the most recent one, 18 months earlier. With the kids grown and on their own, Peg and I had downsized to a home with much less storage space. That was tough. I hated throwing things away. Old stuff felt important to me―a trait no one in my family shared. "All this stuff has to go," Peg said. "We can't lug it from place to place if it's going to sit in a box." I'd let it all go, though I sometimes wished I hadn't. The time capsule was the one box I'd insisted on keeping. I just hoped it would be worth it. I slowly jimmied off the lid. Everyone crowded in for a look. A thick stack of newspapers peered up at us, headlines about the space program and Watergate. I fished out a high school basketball schedule, a Montgomery Ward catalog, a dented license plate, an empty box of my then-favorite snack, Screaming Yellow Zonkers. Finally, I pulled out the last item, a wrapped spray of straw flowers, a symbol of peace in the seventies. "Is that it?" my kids asked. There was no mistaking the disappointment in their voices. I felt as if I'd let everyone down. The crate sat ignored in the middle of the living room. When everyone was gone, I went to tuck it back in the garage. I lifted my hammer to reattach the lid. Something on the side of the crate caught my eye. A blotch of white paint I'd overlooked in all the hoopla over the big reveal. I hadn't done any painting near this crate since… well, I had to have been a kid. My mind flashed on a memory of my father, patiently teaching me to paint, after I'd again left too much on the brush, getting paint on way more than I intended to, including this crate. He'd also shown me how to build a birdhouse and repair a leaky faucet, but my favorite times were the two of us painting together. I had never forgotten what he'd taught me: how to keep a leading edge with a roller, how to cut in with a big brush. And most important: "No job is done until the cleanup is done." "Mike," I heard Peg say, "what are you doing?" I realized I'd been staring at the paint splotch on the crate for who knew how long. "I was just thinking about my dad," I said. "Working together. The knowledge my grandfather passed down to him and he passed down to me…" "And you're passing it down to our kids," Peg said, putting her hand on my shoulder. I hadn't thought of it that way, but she was right. I loved working around the house and yard with our kids and grandkids, teaching them. Those God-given moments were worth way more than any object I had felt the need to hang on to, making memories together that would live on far longer than a 50-year-old time capsule. "Tonight was nice," Peg said as I hammered down the last nail, the cleanup nearly finished. "I think everyone got a lot of out of it." "Yes," I said. "Especially me."글·사진=가이드포스트
2023-10-10 1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