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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홍위병과 부동산정책/이지용 건설부동산부



홍위병(紅衛兵) 소녀들이 점령한 중국 소도시의 한 산부인과 병원은 아수라장이다. 의사들은 모두 묶인 채 인민재판을 받고 있다. 한 노부부의 임신한 딸은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조금전까지 만 해도 붉은 완장을 차고 거들먹거리며 환자들을 통제하던 홍위병 소녀들은 죽어가는 사람 앞에선 발만 동동 구르면서 속수무책이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을 배경으로 한 공리 주연의 중국영화 ‘인생(人生)’의 한 장면이다.

정부가 부동산 후속 정책을 발표한 얼마 전 어느날, 한 인터넷게시판에는 네티즌이 이 영화를 빗대어 정부 부동산 정책의 잘못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통해 홍위병 소녀들조차 산부인과 병원을 점령하는 큰 변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의술이 요구되는 치료까진 불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숨져가는 딸과 이를 지켜보는 노부부라는게 이 영화의 시사점이다.

새 정권이 과거 정권의 수많은 법적 제도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아닌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선 피해자는 여전히 사회의 하위층인 서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배를 외치며 변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변혁이라는 이름 아래 영문도 모르면서 완장을 찬 채 병원을 장악한 홍위병 소녀, 제도의 변화로 수모를 당하는 기득권 의사, 그 와중에 고통을 호소하며 죽어가는 환자들. 혼돈스런 한국 부동산시장에서 열연하는 관료, 서울 강남권 거주자, 일반서민들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지난 7일 정부는 급기야 강남 지역에 중대형을 공급하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긴급처방전을 내놓았다. 하지만 8일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네티즌은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정책자들은 영화 속에 나오는 홍위병 소녀들 수준보다도 못하다”고 혹평했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개혁목표도 잃고 의술도 없이 완장만 찬 홍위병에 다름아니다. 영문도 모른 홍위병들이 다시 병원 장악에 나선 꼴이다. 의사의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대기 줄은 길어지고 고통의 신음소리는 커지는데도.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